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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계雜담] 세월오월, 스무 살 광주 비엔날레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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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1980 그 후>를 둘러싼 파행

2014-8-26 15:00pm 최열 정준모 조은정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여러 가지 사건들로 복잡한 세상인데, 미술계에도 지난주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죠.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광주 비엔날레에서 예기치 않았던 일이 생겨 크게 보도가 되었습니다. 광주 비엔날레 본 행사에 앞서 열린 2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 전시되기로 했던 한 작품이 결국 전시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죠.  

조은정(이하 조)
20주년 기념 특별전 <달콤한 이슬-1980 그 후> 전이 개막식도 갖기 전에 전시되기로 했던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이라는 작품에 대해 전시 불가 방침이나 작품 수정에 들어갔다는 둥, 주최측과 작가와의 불협화음이 있다는 것이 소문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언론을 통해서 크게 알려지고, 결국은 개막식 때 작품이 설치되지 못하면서 예술에 대한 검열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오르게 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공개적이며 미술 자체에 집중한다는 비엔날레의 장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 당혹스러울 뿐입니다.



정준모(이하 정)
특별전 개막식에 갔었는데, 제목이 ‘달콤한 이슬’이라 소주 회사에서 협찬했나 했습니다(웃음). 

저도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전시장 안에 들어갔더니 비엔날레에 조선시대 감로탱이 걸려 있어서, ‘감로(甘露), 아, 달콤한 이슬이구나’ 하고 깨달았죠. 죽은 사람들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 제를 지낼 때 사용하기 위한 그림 감로도가 정면에 있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전시 기획의 의도가 제목에 어떻게 표현된 것인지 이해가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감로도를 내걸고 3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의 유혼들이 이제 천국으로 가실 수 있도록 제를 드린 건지, 아니면 천국에 잘 가있는 양반들을 들쑤신 꼴은 아닌지.....

감로도와 함께 광주 나눔의 집 할머니들 작품을 대거 전시 하는 등 전시 기획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위로. 맺힌 것은 풀고 편안한 삶과 그 다음을 생각하라는. 요즘 말로 하면 힐링, 치유 같은 의미이죠. 개인적으로는 더 깊은 층위로 들어가서 기억을 딛고 일어서서 다른 단계로 나아가자는 의도가 아닐까 추정을 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정치적인 압제를 테마로 하는 작품도 있었기 때문에 인간 보편성을 가진,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틀 안에서 해석하려나보다 했죠.

그런 기획 의도라면. 광주가 겪었던 희생 위에 예술로서 치유를 하자는 비엔날레의 취지와 그 20주년 기념에 잘 맞는 의미 있는 기획인데, 결과적으로 보면 다시 뒤집어 놓은 꼴이 되었으니 안타깝네요. 


그렇긴 한데, 20년을 맞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하는데 달라진 게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 아쉽기도 했어요. 비슷한 작품들이 컬렉션 이름으로 다시 전시되기도 하고, 케테 콜비츠, 일본 원폭 작가 등등.


학술 세미나도 그렇고... 총체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별전의 전시 규모에 비해 브로슈어에 있는 큐레이터의 이름이 다소 많아보였습니다. 어떤 섹션을 누가 기획했는지 브로슈어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어서 도대체 어떤 시스템인지 궁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홍성담의 작품 문제에서, 사실은 표현의 자유의 문제와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사회에서 얼마나 용납할 건가는 언제나 어디나 논쟁의 여지가 있어 왔습니다. 얼마 전 로마 21세기미술관에서 외설이라며 내려진 채프만 형제 작품의 예도 있고.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측(재단)이 취한 행동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어요.


세미나와 전시개막식을 지켜보면서 무언가 근본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막식 날의 강연에서 첫 번째로 발표자로 기입되어 있던 오쿠이 엔위저는 영상을 통해 이용우 재단 대표이사와의 대담형식으로 발표를 하였습니다. 무언가 발표를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분명 당혹스러웠습니다. 유창한 영어의 대담이 길게 이어지자, 다큐멘터리같은 이 영상을 왜 보고 있어야 하는지 의아해졌습니다. 다른 두 명의 발표자는 자리에 앉아 자신의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그들의 느낌이 어떨지 걱정이 되기도 했죠. 세미나에 대한 예도 아니구요. 전체 세미나 진행에서 청중에 대한 배려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객석이 미어지도록 관객이 참여한 것도 아니었는데 학술행사 자체의 브로슈어는 조금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받을 수 없었죠. 사실 전체적인 진행도 타성에 젖어 있는 듯이 느껴져 불쾌했죠. 이렇게 큰 국제적인 행사가 짜임새도 없고 의전도 없는 것을 보니 이벤트회사에 외주로 진행된 것인가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20년의 경력을 갖춘 행사진행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학술세미나가 끝나자 리셉션 세팅을 한다면서 한 시간이나 세미나가 진행되던 공간의 밖으로 내몰아 딱히 머물 공간이 없는 외부인사들은 마당에 서 있거나 했어야 했죠. 식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물 한잔, 커피 한잔 준비된 게 없었으니... 전 세계적으로 손님을 모셔놓고 뭔가 홍보성을 띤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려는 노력도 없고. 이렇게 예산을 써버리면 안되지 않나 싶었습니다.
 
제1회 광주 비엔날레를 시작했던 사람으로서 매번 빠지지 않고 가게 되는데.... 요 근래에 비엔날레가 ‘타이틀 방어전’ 같은 느낌이 든달까요. 옛날 복싱할 때 보면 챔피언이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수를 지명해서 6개월 이내에 시합을 해 이겨야만 해서, 저 시골에서 못하는 놈 불러서 지명 타이틀 방어전을 했었죠. 광주도 타이틀 방어를 위해 억지로 하듯이, 뭔가 새로운 이슈나 담론 제기 같은 것도 없고...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듯 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습니다.


광주 비엔날레는 한국 미술계가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놓은 창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일 처음 열린 중요한 창문이며, 지역과 국가에서 큰 지원을 받고 있죠. 광주라는 도시가 가진 전통적인 이미지, 민주화 과정의 역사, 이런 것들로 특별히 포지셔닝이 된 것입니다.  이제 20년이 지났으면 이러한 경험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새롭게 앞으로 나가는 발전적 형태로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합의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철거까지의 일련의 사건들이 마치 20년 전처럼 대립의 양상이고 지난 20년 동안 비엔날레도 갈등 상황도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10년 정도 전부터 광주 비엔날레의 진행을 보면, 권한은 있는데 문제가 있을 때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최측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어요. 초기에는 운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많고 흑자냐 적자냐 관람객이 얼마냐 말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공식 발표나 결산보고서가 공식적으로 발표되질 않습니다. 홍보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중앙 언론에는 오픈하는 날 기사 한 번 나오는 것이 다입니다. 좋든 나쁘든 이슈를 생산했던 초기와 달라진 모습이죠. 책임도 안 지는 구조이니 당연히 문제가 생기죠. 큐레이터도 책임져야 하겠지만 그를 임명한 최종 책임자도 있잖아요. 

최열(이하 최)
광주비엔날레 재단 이용우 대표이사가 사임의사를 발표했지만 수리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책임 큐레이터가 사임한 후에도 정리가 안 되니까 사임한다고 했었죠. 특별전의 큐레이터는 윤범모 교수였는데, 협력 큐레이터로 장경화 광주시립미술관 과장,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미셀 현 캘리포니아대 샌디에고 캠퍼스 미술관 학예연구원 등이 있었고 이용우 대표이사까지 실질적으로 5명이었다고 합니다. 

광주 비엔날레가 방향성을 가지고 책임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재단 대표이사를 둔 것인데.... 

이번에 홍성담 작가는 스타일만 구긴 셈이죠. 고쳐 그렸지, 안 걸겠다고 말했지, 참 거지같은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성격으로 봐서 그럴 사람은 아닌데... 시민운동을 함께 했던 윤장현 시장과의 문제도 그렇고... 문제가 불거진 이상 작품을 걸어도 말이 나오고,  안 걸어도 말이 나오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소신 있게 주최측에서 이런 의도에서 건다, 아니면 뗀다고 자신 있게 못하고 토론회를 한다는 둥 시간만 끌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불거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역사 속에서 누적되어온, 박대통령의 어법으로 ‘적폐’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민선 시장 선출 역사상 처음으로 광주에서 시민운동가 출신이 공천을 받아서 당선이 되었죠. 그전까지는 정당 정치인이 공천받아 당선되었었고. 광주 비엔날레의 경우 시장이 당연직 이사장이 되고. 모든 일의 궁극적 책임자는 시장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입니다. 사실 작품 전면에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등장하면 광주 시 입장에서는 중앙에서 받는 예산에 문제가 되니 문제 되는 부분을 조정하면 좋겠다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나오기 전에 작가와 큐레이터가 상의는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작품이 문제가 된다, 닭으로 바꿔 그린다, 그래도 못 걸겠다’라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단순화시켜 말해서 시장이라는 사람의 어리석음과 무능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표현의 자유 차원은 제껴두고.
 
세월오월 그림이 걸리지 못하는 이 사건에서도조차 세월호 생각이 났습니다. 어린 학생 몇백명 죽었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듯이...

저쪽가서 물어보라고 하고 아무도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죠.

윤장현 시장이 해외에 있을 때 보고하여 지시 받았다고 하면서 행정부시장이 걸지 말라고 했다가, 시장이 돌아와서는 비엔날레 측 전문가들이 검토하라고 넘기며 번복했어요. 이때 본인이 알아서 허수아비를 닭 그림으로 바꾼 것이죠. 어쨌든 광주비엔날레 시스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떤 젊은 친구는 광주 비엔날레 이제 그만할 때 안 됐냐고 얘기할 지경이라고 하네요.

20년간 쏟아부은 투자가 얼만데 쉽게 그만둘 일은 아니죠.

큐레이터 연봉이 많기로 베니스 카셀 광주 순이고, 비행기값도 별도로 들여 모셔오죠. 호텔. 세미나 하는데 여러 분들 부르고... 정말 많은 투자를 했죠.
이번 특별전 예산이 20억이었다고 들었는데, 큐레이터 비용은 총 5천만원이라고 하고, 전시 예산은 4억이라는데 나머지는 어디 간 걸까요?  광주의 의회, 감사기관들은 뭘 하고 있는지... 적어도 예산과 결산이 투명하게 밝혀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광주비엔날레가 외국에서 봉 소리를 듣는 게. 지금까지 많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 돈 들여 불러 오고 칙사 대접을 해서 보냈지만 그 사람들이 그 다음에 한국 미술에 기여한 게 과연 뭘까요. 개인 인맥 외에 남은 게 뭐 있을까요?


특별전 예산은 백퍼센트 광주시 예산으로 20억이고, 비엔날레 본행사예산은 총 87억인데 15억원은 광주, 국비에서 30억, 나머지는 기업 등의 후원입니다.

그 돈이면 대한민국 미술을 전 세계에 홍보할 만한 큰 돈이죠.

그 많은 돈을 쓰면서 이렇게 규모 없이 무대포로 진행하다니...

이용우 대표이사의 사표를 수리할 것이 아니라, 지난 세월동안 어떻게 해 왔는지 감사를 해서 책임이 있으면 지도록 해야 합니다. 시장은 이를 계기로 깨달음을 얻어 앞으로는 단단히 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구요.

특별전에 협력 큐레이터 제도는 사실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전시의 규모로 보면 필요한 것은 특별전 총감독과 코디네이터 정도이죠. 협력 큐레이터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는 아직도 잘 파악이 안 됩니다.

직함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눠주기 좋으니...

이번에 세월오월 사건 직전까지 논란이 붙으면 모든 것은 윤범모 책임 큐레이터가 결정을 해 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월오월을 거느냐 마느냐 하는 순간부터 대표이사가 결정권한을 가져간 셈이라고 해요. 그런 사항은 감사사항이 되어야 하죠. 책임 큐레이터가 할 일이 없으니 사퇴한 것이고.

 

이번 사건의 진행을, 이용우 대표이사를 내리려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의 갈등으로 보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번 사태의 와중에 제1회 안티비엔날레를 열었다가 2회 비엔날레 조직위로 왔던 인물을 포함해서 지역의 미술인들이 이러저러하게 등장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광주 시장이 강운태에서 이번에 바뀌면서 대표이사가 바뀔 것이라고들 이야기했었는데, 그 문제가 있어서 더 삐걱거린 듯합니다.
 
광주 지역에서 일어나는 비엔날레이긴 하지만 국가 예산으로 미술계에 지원되야 할 돈의 일부가 지원되고 있으므로, 제대로 미술인의 행사로 기능해야 합니다. 작가들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디딤돌 기능이라도 과연 했는지..

지난 비엔날레의 총감독들은 개인적으로 광주를 디딤돌 삼아 세계 무대로 진출하긴 했죠.

사실 광주 비엔날레 재단에서 이용우 씨가 빠진다면 당장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겁니다. 그간 맺어온 외국과의 주요 네트워크에 대해 인수인계를 잘 받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윤범모 교수는 홍성담 작품을 끝까지 걸자고 했습니다. 다섯 사람 큐레이터 회의 중에서 장경화 큐레이터 한 사람만 반대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그런데 대표이사가 행정쪽과 왔다갔다하면서 일이 생깁니다. 광주시 쪽 공무원이 청와대 의견을 물었는데 그쪽에서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도 계속 큐레이터 회의의 전개 상황을 체크하면서 일이 심각해지기 시작한 거지요.

광주 비엔날레가 그간 많이 나태해지고. 이젠 부산 비엔날레에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가는 것 같아요. 그동안 나만 아니면 돼 근성, 제도나 시스템에 대한 무관심이 일을 키워 고름을 만들었어요. 우리의 무관심이 광주비엔날레의 오늘을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전문성을 확보하고 비엔날레의 컬러를 만들어가기 위해 개인에게 많은 책임과 권한을 줬는데, 감시 감독이 부족하다 보니 사유화된 경향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20년 동안 많이 바뀌었고 이제 성년이 된 셈인데. 광주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어떤 의미가 될 것이냐. 지역의 의미를 붙이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비엔날레로서 대한민국 미술계가 어떻게 대응하고 광주비엔날레는 대한민국 비엔날레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의미를 다시 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엔날레나 도큐멘타 같은 국제적인 미술행사는 그 자체가 지역의 수입자원도 될 수 있잖아요. 문화행사는 주변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부가가치가 높은 경제활동으로 파악할 수 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역 경제 관광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부가가치가 있는 프로그램을 현재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죠.


홍성담 작품이 국가 권력이나, 공안 경찰, 검찰 등에서 문제를 삼은 게 아니고. 특이한 방향에서 억압된 희한한 사례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시민운동가 출신의 시장 행정권력 하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취약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했습니다.

쉽게 해결책이 발견되지는 않겠지만 공론화시킴으로써 문제를 환기하고, 그러다보면 해결 방법도 서서히 찾아질 듯합니다. 모든 사회 문제가 그렇듯이.
 
주식회사로 바꿔 책임지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지방 문화재단들이 전문성도 없는 지방 명망가들을 불러 이사를 맡기는데 그럼으로써 많은 문제가 발생돼요. 카셀 도큐멘타의 경우 유한회사 형식이라 경제적인 책임도 집니다. 성과 측정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책임지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광주 비엔날레에는 지방과 국가 예산이 들어가니 공공성을 강하게 띄어야 하죠. 지방자치단체의 작은 행사 즉 지역에 국한한 것이 아닌 국가적인 행사로 파악해야 합니다. 미술계 내부 사람들조차도 그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는 폐쇄성이 이번 기회를 통해 드러났어요. 어찌 보면 이번의 사태가 광주비엔날레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20년을 정리하고 어떻게 나가야 될 것인가를 점검하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광주조차도 문화적 환경이 1회 때와는 많이 달라졌죠. 도시 모습도 그렇고... 광주비엔날레 자체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repositioning이 이뤄져야 합니다.

두 분 말을 조합을 시키면 해결책이 나올 것 같습니다. 경영과 운영은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재단과 시는 이것에서 손을 떼고. 전시 기획을 해서 이끌어 갈 때 총감독과 큐레이터 그룹. 두 바퀴의 전문가 그룹에 의해 잘 굴러가게끔 해야죠. 공공성을 살려서.

정리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4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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