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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계 雜담] 예술원, 그들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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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원 미술분과, 어떻게 변해야 할까

2014. 7. 11(금)
정준모 최열 조은정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예술원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회원전을 열고 있습니다. 또 최근 예술원 회원인 천경자(90) 화백에게 수당 지급을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고(관련기사 링크) 원로화가 김창열(85) 화백이 예술원 신입회원 심사에서 떨어져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관련기사 링크) 예술원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야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조은정(이하 조)
그간 종종 예술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곤 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예술원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해 보았으면 해요. 예술원의 현재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예술원의 시작은 유럽에서 근대 직전에 엘리트들이 모여 사회 계도를 하기 위해서 만든 학술원이나 예술원을 본떠 출범한 것이죠. 사실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제도를 그대로 지켜보며 도입한 제도가 되겠구요. 대한민국 예술원의 역사를 비롯해서 기본적 내용에 대해 최열 선생님께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최열(이하 최)
『월간미술』 2008년 1월호에 원로 미술가 특집이 실렸습니다. 이 시대의 미술계의 원로들이 여러 명 나와서 젊은이들에게 조언해 주는 내용이었는데 이와 관련되어 원로에 대해 한 꼭지 글을 쓰라 해서 예술원과 연관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보고 원로들이 잡지사에 항의를 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예술원을 얘기하기 전에 국가 원로라는 개념을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조선시대의 기로소를 언급해야 합니다. 지금의 세종로 부근에 세워진 기로소에 존경받고 덕망 있는 국가의 어른들을 모셔서 그 앞에서는 말을 타고 지나가지도 못하게 하여 하마비를 세우기도 했죠. 기로소는 유가 사상의 입장에서 가족 윤리를 국가 윤리로 그대로 확장시킨 것으로, 그를 통해 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고자 한 제도입니다. 여기에 든 국가 원로들은 국가에서 극진한 대접을 했습니다. 왕이 직접 갖은 보물을 하사하고, 초상화도 제작해 주고, 기로소에는 본당을 비롯해서 열 채가 넘는 건물을 지어주고, 쌀과 옷감, 의약품 등을 정례적으로 지급했습니다. 조선 500년 내내 기로소에 든 미술인은 강세황이 유일합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가제도가 해체되면서 기로소도 폐지되었죠. 20세기 초, 안중식, 오세창 등의 중인들이 국가 미술의 중심이 되고 미술계를 장악함으로써 중인들이 원로, 거장이 됩니다. 개화당원으로서 혁명적 전위에 서게 되었고, 조직가로, 인품으로도 훌륭하여 문하에 어마하게 많은 제자를 거느리게 됩니다. 그 문하에서 10대가, 6대가가 나오고 고희동 같은 이도 그 문하에서 시작했죠. 그런데 그러한 권위가 식민지 시대에 무너지게 됩니다. 일제시대에는 예술원은 없었고 선전의 심사위원 정도의 원로들이 있었지만 일본인 심사위원의 하위 체제여서 존경받는 자리라 할 수는 없었죠. 한국전쟁 발발 후 1952년 문화보호법이 법제화되게 되는데 이 법이 예술원법이라고 할 수 있는 법입니다. 피난지 부산에서 8월에서 제정, 공포되었는데, 문화예술가를 우대한다고 하면서 좌익 예술인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문화인 등록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후 1954년 문화보호법에 따라 예술원 회원 선거가 있었는데, 미술계에서는 이상범, 장발, 손재형, 김환기, 고희동 등의 순으로 표를 얻었는데, 이상범의 반 밖에 표를 얻지 못한 고희동 만이 대통령 임명으로 예술원 회원으로 임명되었죠. 이승만의 휘하에 일을 해줄 사람으로 미술계에서 고희동을 낙점한 것입니다. 
  논란이 계속되고 1957년에도 예술원 회원 문제에 대한 신문기사가 반복적으로 나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하는 일에 대한 의문, 투표 방식, 종신회원과 일반회원 등. 1958년에 문화보호법이 폐지되고 날치기로 예술원법이 통과되는데 여기서 예술원 회원은 예술원 회원이 투표하는 종신제가 됩니다. 


정준모(이하 정)
현재는 사실 예술원 회원은 종신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연임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은 종신과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중간에 그만둔 경우가 몇 번 없었죠.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주게 된 것입니다. 419 혁명 직후 심각하게 문제가 제기 되었죠.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난리가 날 때 예술원은 납작 엎드려 태풍을 피해가고자 했습니다. 예술원 회원들이 정치가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을 희롱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날치기법으로 당선되었다, 315 부정선거에 가담했다는 것 등 예술원의 모든 근본적인 것들이 폭로되고 비판을 받게 되죠. 예술원 미술분과 위원회를 통해 국전 심사위원을 뽑게 되니, 그게 어마어마한 권력이 됩니다. 자기 제자들을 입상시키기 위해 폭력을 불사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서 근원적 문제가 예술원에 있었습니다. 예술원이 자유당과 밀착했다는 비판으로 예술을 해체하라는 공식적인 주장까지 나왔지만 516 군사쿠테타 이후 원점으로 돌아갔죠.


예술원의 설치는 정치적인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규정에 언급한 많은 기능 중 가장 강력하게 활동하였고 또 영향을 미쳐 실제로는 거의 유일한 기능이었던 것이 국전 심사위원 선출권이었습니다. 그런데 국전이 민간에 이양된 지금은 그 역할조차 없습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외국의 예를 좀 살펴본다면 프랑스의 아카데미 프랑세즈, 영국의 로열아카데미 오브 아트 등 예술원과 유사한 기관들이 있는데, 그곳은 계몽주의 시대 때 무지한 백성들을 계도하고 선도 앙양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었죠. 그런 역할을 기대하고 있구요. 우리나라 예술원도 그런 역할을 하는가 짚어봐야죠.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다고 본다면...  긍정적 역할이 무엇이었을까요?

예전에는 논문집도 활발히 나왔고, 미술사, 무용사 사전 같은 편찬 작업도 많이 했지만 요즘은 별로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미술분과의 경우 예술원의 자료들이 귀중한 것이 많았습니다. 당신들이 살았던 시대, 동료, 선배에 대한 기록이어서 예술원 논문집이 학술활동에 도움이 많이 됐었어요. 국전이 80년대에 민간에 이양되면서 그 전후로, 70년대 후반부터 중요한 자료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듯 합니다. 

예술원이 있는지 없는지, 뭘 하는지 아는 사람도 드뭅니다. 합당한 대접이 필요하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뭔가 사회적으로 역할을 해야 대접을 할 수 있을 텐데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예요. 매주 한 번 회의를 한다고 하는데, 어떤 일을 하는지...

일반인들은 예술원, 한림원 등에 모인 분들은 최고 권위자들, 원로들이어서 많은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운영 제도상으로는 프랑스와 일본의 예를 참고해서 섞어 쓰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 매주 목요일 회의 참석이 의무이고 월 250만원의 연금을 지급하는데, 문화청 소속된 비상근 국가공무원과 같이 취급하여 과세한다고 합니다. 

예술원이 하는 일 중 큰 부분이 예술원상을 수여하는 것인데, 2008년 이전에 예술원 회원들이 돌아가며 이 상을 받는다는 게 문제가 되어서 외부 사람들에게 주기 시작했죠. 각 분야별 5000만원의 상금이 있는 큰 상입니다.

예술원 회원 구성에 대한 것도 논란이 많죠. 지난번 성북구립미술관 11인전을 할 때 보니 김창열, 최만린 두 분만 예술원 회원이 아니었어요.  


문제는 예술원이 폐쇄적이어서 회원들끼리 만장일치로 신입회원을 뽑고. 상도 그렇게 정한다는 것입니다. 또 사회적 문제가 있을 때에 원로로서 한 마디 조언이나 도움을 주어야 할 때에는 뒤로 빠질 때가 많구요, 한 예로 기무사 자리에 미술관을 짓자로 할 때도, 덕수궁 서관을 미술관에 인수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예술원에 한 말씀 해 달라고 사정했는데 모두 거절당했어요. 원로들이 가벼이 나서는 게 아니라고. 그러면서 덕수궁미술관에서 회원전을 하겠다고 하시니.... 전임 관장님들이 다 예술원 회원이 되고 싶어하셔서 긍정적으로 검토하신 건지는 모르겠는데... 딱 한번 미술관 작품구입비 관련해서 예술원 근처에 있는 예산처에 들러 말씀좀 해달라 할 때 이준 선생님, 윤명로, 이종상, 백문기 선생님이 직접 가서 미술관 작품구입 예산에 대해 주장해 주신 일이 있기는 합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원로들이 나서야 할 때는 나서지 않고 본인들의 이익 앞에서만 주장의 목소리를 높이시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에서 오래 활동하고 경험을 쌓은 분들의 식견을 듣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기대했던 것만큼 원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발언하지 않으니 그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발언을 안 한 게 아니라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기도 했죠.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호헌철폐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역사의 흐름에 반대되는 일을 해 온 것입니다. 

예술원 속 미술분과의 문제점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미술분과의 경우 과거 예술원 설치되었을 때의 가장 중요한 기능-국전 심사위원 선정-이 사라졌죠. 사회적으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공식적인 표명이 없습니다. 또, 만인이 알게 된 연금 문제에 대해서도, 죽을 때까지 평생,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계속 주는 것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 호의적일까 하는 점이 있죠. 세 번째로는 예술원 신입회원 선정의 문제예요. 만장일치로 뽑는 것도 그렇고, 결과적으로 서울대학교 출신에 집중되어 있어요. 물론 개개인이 훌륭한 작가이고 많은 일을 했겠지만 너무 많은 것을 자신들끼리 누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여 탐욕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번 덕수궁에서 열린 예술원전을 유심히 봤는데, 작고 회원을 봤을 때는 근대미술사 책 보는 거 같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보았지만, 생존 회원 작품의 경우는 어떤 분들은 너무 오래된 작품이 나와 있고 어떤 분들은 신작이 올라와 있고 해서 복잡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결국 미술인이라는 것은 작품을 해야 미술인인 건가. 붓을 접은 지 20년이 넘은 사람들 미술계에 어떤 행보도 남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미술인이라고 해야 하는가. 과거의 업적으로 연금과 발언권이 자동적으로 지급되어야 하는가....

역대 회원 리스트를 살펴보면 대한민국 예술원이 예술인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지도 의문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꼭 유명해야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화가가 아니었어도 국내 미술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분에 대해서는....


대표성 문제는 좀 복잡한 면이 있지만, 예를 들어 1946년~50년에 걸쳐 미술비평계에 한 획을 그은 이경성 같은 분은 대표적인 미술인인데 결국은 배제되었죠. 미술비평이니 문학 분과로 가라고 해서, 나는 미술인인데.. 그랬더니 학술원으로 가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원로 미술작가 중 정말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한편으론 차라리 기왕 연금 줄 생각이면 이를 늘려서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에 원로가 필요한데, 지혜를 베풀어주기를 원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예술원 구성원들이 사회적인 원로로서 최소한 자기 절제를 보여주고 나름대로 사회 귀감이 될 수 있었으면 하게 되죠. 요즘 장관 청문회하는 거 보면서 예술원 회원도 청문회를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선출된 국회의원이 아무리 같잖아도 존중해야 하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국민으로부터 선택된 선출직이기 때문이죠. 예술원 회원은 선출된 권력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권리처럼 자기들끼리 돌려막기해요. 이번에도 이분 저분 거론되다가 안 되었는데 얼마나 자존심이 상할까 싶어요. 정원은 아직 남아 있는데 비우는 이유는 또 뭘까요.
* 예술원 회원 명단 링크

자정의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예술원 회원으로서 품위있고 미술계를 위해 원로의 역할을 하신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술원이 해체되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조 선생님 정 선생님 두 분은 해체를 반대하시는 입장인 듯합니다. 60년 동안 국민의 세금을 얼마만큼 낭비했는가, 또 군부독재 전제정권에 협력해 온 역사를 생각하면 존재 자체가 죄악입니다. 게다가 현재도 미술분과는 서울대 중심 학연으로 뭉쳐진 특권 결사체 같아요. 이것을 지속하는 것은 절대 반대입니다. 기로소는  가족 윤리와 국가 윤리를 근간으로 본질적 권능을 지워준 것이지만 예술원은 단지 양로 시스템일 뿐이에요.

그 양반들이 대개 그림도 잘 팔리고, 서울대 교수나 명예교수 타이틀 가지고 계시고, 부도 어느 정도 누렸고. 연금도 타시고..... 사실 모든 걸 가지고 계시죠. 원로 작가들 중 수입이 전혀 없으신 분들도 많은데.

기존 연금 기초연금 받으면 기존연금이 깎인다고 하고 다들 이리 힘든데, 충분하고도 남은 성공을 한 사람들에게 기초 연금을 월 180만원을 지급하는 게... 

오죽하면 없애자고 할까 싶기도 합니다. 한편 역할을 하고자 하는 원로들도 계시니, 시스템은 놔두고 자정작용을 통해 사람들을 바꿔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회원도 다 후보자로 하고 다시 선정한다면.

제일 권위 있는 원로 집단인데 얘기하다 보니 미술계나 사회의 현상들과도 딱 오버랩되는군요. 사회가 양극화되고 끊임없이 회전문처럼 이익을 얻는 집단들이 폐쇄적으로 이익을 나누고. 사회전체의 개조는 힘들더라도 미술 안에서만큼은, 우리들이 관여하고 있는 미술계 안에서는 작은 규모로라도 개선과 리폼, 새로운 판짜기를 노력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꼬리 칸은 영원한 꼬리 칸이 되지 않도록?(웃음)

앞의 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면 배는 안 아플 수 있겠지요. 예술원이 지금이라도 법에 의거해서 제대로 활동하고, 원로들이 국가 장래를 걱정하여 선도해 주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원 관련 문제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면 일반 국민은 존재조차 몰랐을 수도 있어요. 제대로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오죽하면 예술원미술관이 있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안 가요. 있는지도 모르구요. 

미술이란 인간의 육체 활동이 기록으로 남는 대표적인 예술이고, 우리 예술원 미술분과는 우리나라에서 그에 대표되는 일을 하셨거나 미술을 가장 진흥시키신 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그런 분들을 어떤 방식으로 선출할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이 가능할 겁니다. 당신들 눈에는 온당할지 모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요. 

예술원이 더 이상 문닫아 걸고 있지 말고 세상과 소통을 해야 합니다. 

예술원 탄생 60년, 회갑을 맞아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야겠죠. 


정리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7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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