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25일 오전 10시
이동국(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학예관 / 서예부장) 최열(미술평론가) 권근영(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윤철규(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윤철규(이하 윤) 세월호 참사 때문에 우리 모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은 사회의 시스템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개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계의 여러 문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춰 깊이 있게 얘기해 보자는 취지의 모임이 이 좌담회였는데, 우리가 하는 많은 얘기들도 혹여 공염불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습니다. 사안에 대해 더 효과적인 안이 도출되고 개선되도록 분명하게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은 개관한 지 28년째를 맞은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이 이번에 맞게 된 리노베이션 기회에 대하여 도움의 말씀을 듣기 위한 자리입니다. 이 힘든 여건 속에서 여기까지 왔고, 힘든 시대에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하기 위해 도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죠. 도약을 위한 리노베이션은 어떤 방향이어야 하고 어떤 문제들을 안고 있고 어떻게 해결애햐 할까요. 서예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던 미술계의 입장에서 여러 제안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술의전당 이동국 부장님께서 진행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네요.
이동국(이하 이) 지난해 11월 5일 1차 포럼부터 올해 4월 8일 있었던 3차 포럼 때까지의 결론은 총예산 180억원으로 올해 10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전당 서예박물관을 리노베이션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건축 규모는 지하를 제외하고 1층에서 4층까지 연면적 1900평 정도입니다.
좀 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경과를 말씀드리면 그간 10여 년 간 서예박물관 건물의 노후화와 구조상의 문제로 해마다 리노베이션 에산을 요청해왔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밀리고 밀리다가 작년 신임 사장이 오면서 작년 8월에 서예박물관의 리노베이션에 43억 예산이 확보됐습니다. 그후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서예박물관만을 가지고 문제점이나 해결책이 집중적으로 거론 되었습니다. 문화융성 과제에서 서예의 중요성을 생각했을 때 서예박물관의 시설이나 소장품 등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들이 지적되었죠. 이에 최재천 의원이 주재하여 서예진흥정책 포럼이 11월 5일 1차로 열렸고, 동시에 30년 만에 4개 서단이 한국서예단체총협의회(이하 '서총' 또는 '서단')이름으로 하나가 되었고 전국 각지의 서예가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공간 문제, 교육문제, 작가지원 문제 세 가지를 화두로 해서 논의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대안을 얘기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단번에 될 일은 아니라는 점에 다들 공감하신 것이죠. 전면 리노베이션 얘기가 처음부터 된 것은 아니고, 1차 포럼 결과를 놓고 43억 예산만으로는 전시장 하나 넓히는 정도로 끝나며 그것을 해도 표시도 나지 않는다,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서예박물관 공간은 낡은 것도 문제지만 원래 박물관으로 지어진 곳이 아니라 교실 구조라서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올 2월14일에 2차 포럼이 열리면서 그 때 제시되었던 예산이 150억이고, 그때 외벽에 대한 얘기도 나왔습니다. 밖에서 보아서는 서예박물관인지 뭔지 알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죠. 실제 그곳이 뭐하는지 모르고 들어오는 사람이 꽤 많아요. 서예박물관이라고 대답하면 그냥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죠. 기왕에 리노베이션을 하게 되었으니 문자를 전문으로 하는 뮤지엄이라는 상징물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고, 중앙일보 등에 기사화되었습니다. 예술의전당 설계자인 김석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반구대 암각화가 포함된 외벽 디자인을 보고했죠. 1988년 1차 개관시에 교육관이었던 건물이 급작스레 서예관으로 바뀌면서 건축가로서는 제대로 설계되지 못한, 건축 철학을 반영도 못한 점이 있었을 겁니다. 선사시대 암각화. 광개토대왕비, 훈민정음 등 우리 역사에서 등장하는 우리 독자적인, 그러면서도 세계 보편의 언어를 상장으로 하자는 결론이 나면서 예산 30억이 추가되어 총예산이 180억이 된 것입니다. 사실 180억 안에는 앞으로의 자구책 부분도 포함되어 있어요. 이들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 정부, 서단이나 미술계, 문화예술 전반에서 힘을 보태주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좀 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경과를 말씀드리면 그간 10여 년 간 서예박물관 건물의 노후화와 구조상의 문제로 해마다 리노베이션 에산을 요청해왔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밀리고 밀리다가 작년 신임 사장이 오면서 작년 8월에 서예박물관의 리노베이션에 43억 예산이 확보됐습니다. 그후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서예박물관만을 가지고 문제점이나 해결책이 집중적으로 거론 되었습니다. 문화융성 과제에서 서예의 중요성을 생각했을 때 서예박물관의 시설이나 소장품 등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들이 지적되었죠. 이에 최재천 의원이 주재하여 서예진흥정책 포럼이 11월 5일 1차로 열렸고, 동시에 30년 만에 4개 서단이 한국서예단체총협의회(이하 '서총' 또는 '서단')이름으로 하나가 되었고 전국 각지의 서예가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공간 문제, 교육문제, 작가지원 문제 세 가지를 화두로 해서 논의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대안을 얘기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단번에 될 일은 아니라는 점에 다들 공감하신 것이죠. 전면 리노베이션 얘기가 처음부터 된 것은 아니고, 1차 포럼 결과를 놓고 43억 예산만으로는 전시장 하나 넓히는 정도로 끝나며 그것을 해도 표시도 나지 않는다, 전면적인 리노베이션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서예박물관 공간은 낡은 것도 문제지만 원래 박물관으로 지어진 곳이 아니라 교실 구조라서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올 2월14일에 2차 포럼이 열리면서 그 때 제시되었던 예산이 150억이고, 그때 외벽에 대한 얘기도 나왔습니다. 밖에서 보아서는 서예박물관인지 뭔지 알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죠. 실제 그곳이 뭐하는지 모르고 들어오는 사람이 꽤 많아요. 서예박물관이라고 대답하면 그냥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죠. 기왕에 리노베이션을 하게 되었으니 문자를 전문으로 하는 뮤지엄이라는 상징물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고, 중앙일보 등에 기사화되었습니다. 예술의전당 설계자인 김석철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이 반구대 암각화가 포함된 외벽 디자인을 보고했죠. 1988년 1차 개관시에 교육관이었던 건물이 급작스레 서예관으로 바뀌면서 건축가로서는 제대로 설계되지 못한, 건축 철학을 반영도 못한 점이 있었을 겁니다. 선사시대 암각화. 광개토대왕비, 훈민정음 등 우리 역사에서 등장하는 우리 독자적인, 그러면서도 세계 보편의 언어를 상장으로 하자는 결론이 나면서 예산 30억이 추가되어 총예산이 180억이 된 것입니다. 사실 180억 안에는 앞으로의 자구책 부분도 포함되어 있어요. 이들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 정부, 서단이나 미술계, 문화예술 전반에서 힘을 보태주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권근영(이하 권) 3차 포럼 자료에 180억원 중 미확보 예산이 100억원으로 되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원 가능성이 있는지요.
이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정부예산을 타낸다는 것의 어려움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43억은 올해 집행예산이고, 공사를 시작하면 나머지도 내년에 받을 수 있습니다. 서예박물관을 하나 제대로 세운다는 것은 전당은 물론 서단 우리문화예술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경부고속도로 나 4대강보다 훨씬 부가효가가 큰 역사 인문으로 통하는 정보고속도로하나를 뚫는 다는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고 어떤 노력을 감수하더라도 받아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분도 확실히 해야 하고, 재개관하고 나서 프로그램도 획기적인 변화를 보여주어야겠지요.
서예관이 서예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장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됩니다. 서와 문자를 기반으로 하되 미술과 디자인은 물론 심지어 공연에도 열려있는 공간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포럼의 모토가 '한 손에 붓, 또 한 손에 스마트 폰' 입니다. 2차 포럼 때 문화부장관님도 그렇고 3차 포럼에서 이군현 국회 예결위원장님과 신학용 교문위원장도 문화융성시대 서예살림의 현실적인 토대가 되는 여기에 적극적인 지원의사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1, 2, 3차 포럼이 계속되면서 힘이 확실히 실리고 있습니다.
윤 서예관이 서예박물관으로 바뀐 것이 언제 일이죠?
이 2003년 3월 12일입니다. 박물관 자격심사 당시 안휘준 전 문화재위원장도 왔던 기억이 납니다. 서예가 고미술 측면에서 보면 유물도 제일 많고 그림은 물론 서지 금석문 고고유물 도자 불교미술 등 안 걸리는 데가 없죠. 고미술은 서(書)가 토대가 되는 것인데 이를 전문으로 하는 박물관이 없는 실정이니 매우 안타까워 했습니다.
최열(이하 최) 서예박물관의 소장품은 어떻게 됩니까?
이 현재 1500점 정도입니다. 뮤지엄으로 등록된 이유는 자격요건이 갖추어져서가 아니라 요건을 만들어나가자라는 취지였습니다. 당시 전문가들의 눈에는 소장품도 절대 부족하고 수장고도 전시장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전문인력과 소장품도 차차 확보하도록 하고... 지금에 와서보면 10년이 넘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시설도 서예와 문자를 전문으로 하는 뮤지엄으로 개비하고...
최 내년 작품구입 예산은 없는 것인가요?
이 없습니다. 사실 예술의전당이다보니 공연이나 전시가 중심이 되고, 1차적으로 유물이나 작품을 콜렉션하고 이것을 연구 전시하는 박물관이라기보다 아트센터나 갤러리 컨셉과 가깝습니다. 개관 26년째가 되는 지금까지 서예사특별전을 31번 열었습니다만 매번 백 여 점에 이르는 유물은 전국의 박물관 개인 문중 사찰 등지에서 대여를 해온 것들입니다. 갤러리가 뮤지엄 역할을 해왔다고 할까요. 좀 심하게 말하면 발버둥이라고 할까, 전당에서 이렇게라도 안하면 우리 한국서예의 역사나 존재가 그냥 급속도로 망각되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윤 말씀 들으니까 서예관이 서예박물관으로 바뀌고 리노베이션 추진까지 20여년 진행되어 온 것이 문화 속에서의 서예 부문의 문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재 개념으로서의 서예, 박물관의 역할, 미래의 방향, 아티스트로서 존립 근거가 무너지고 있는 서예가들...
최 19에서 20세기로 넘어오면서 근대 문명권으로 편입되는 시기의 큰 이야기를 좀 해 보자면... 당시 조선미술전람회가 생길 무렵 일본에는 서예 문화가 지극히 적었던 상황에서 조선미술전람회의 동양화부와 서부(서예부)를 따로 나눴습니다. 사실 서화이니 두 부분이 나눠질 이유가 없었는데 말이죠. 이 두 동네가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습관화되면서 권력, 지분, 이권, 명예, 이런 것들이 작동하면서 두 분야가 더 이상 합쳐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 강직한 논객들이 나서서 ‘서예와 사군자는 fine art가 아니’라고 정리해 버리기 까지 했죠. 해방 이후 국전을 통해서든 뭐든 다시 통폐합여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그대로 나뉘게 되었죠. 19세기에는 서화동원(書畵同源)이라고 했었는데... 결국 일제 식민지의 산물이지만 당연히 서로 자초한 측면이 있고 그 부분에 대한 의식의 벽을 깨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나눠진 것을 통폐합하자는 의미라기보다 서예, 서화를 예술로 당연히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천년간 그래왔으니까요.
이 중요한 말씀을 해 주신 거 같습니다. 100년 만에 다시 서화를 하나로 얘기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1896년, 고야마 쇼타로(小山正太郞) 같은 서양화가가 “서(書)는 미술이 아니다”라고 하고, 심지어 동양화 서양화가 걸린 곳에는 서예를 걸지도 못하게 했었죠. 시쳇말로 쪽팔린다고 하기도 하고... 이들이 서양에 가 보니 글자, 타이포는 실용예술이나 디자인 정도로 생각하는 걸 보고 그걸 그대로 들여와 서예를 제껴버린 것입니다. 식민지 서구화 소용돌이 속에서 선과 획, 즉 펜의 라인과 붓의 스트록도 구분 못하는 서예문맹을 우리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최 서양에서는 현재도 동양화, 수묵채색화도 드로잉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예를 우습게 생각하는 동양화가들도 백인의 눈으로 보면 자신들의 그림을 드로잉 정도로 여길텐데...
이 선전에서 10회까지 있던 서예 사군자부가 그 이후에는 없어졌죠. 우리 전통 중에 식민지 시대에 희생되지 않은 분야가 없겠지만.... 일본본토는 물론 대만이나 만주에서 열린 관전에는 아예 애초에 서예 분야 자체가 없었다고 해요. 올 2월부터 열리고 있는 후쿠오카 관전 미술전을 준하는 과정에서 일본 큐레이터들이 어떻게 조선만 서예부문을 10회나 했는지 특이하게 생각하더군요.
최 서예 사군자부는 완벽히 심사위원이 조선인이었죠.
이 그때까지만 해도 서화가 한 몸이라고 봤는데 그 이후에는 서예가 예술이 아니라고 해서 제도교육과정에서도 사실상 내쳐졌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백여 년간 서예는 사설인 서예학원과 공모전으로 지탱되어 왔습니다. 완전 서구 잣대로 우리 문화를 스스로 재단해온 것이지요. 역사는 그래왔다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이게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요.
윤 예술의 전당 내부에서는 서예박물관에 대한 컨센서스가 유지되나요? 박물관은 센터와 다른 활동들을 해야 되는데. 내부 컨센서스가 있어야 리노베이션과 그 이후의 발전 방향의 추진이 가능할 텐데 말이죠.
이 한마디로 컨센서스가 이제는 활발히 형성되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당 조직으로 보자면 올해 서예부가 미술부와 동등한 입장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리노베이션이 처음 이야기 된 때인 지난 10여 년간 부침이 있었지만 동등하게 기구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전당내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서예의 필요성이나 존재이유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의 결과라고 보여집니다. 키보드 '치기'시대 붓글씨 '쓰기'의 진정한 가치나 인문학이나 정신문화의 가치가 문화융성이라는 국가정책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시대에 서예와 서예박물관이 작지만 구체적인 성과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면 컨센서스에 관해서는 더욱더 공공해지리라고 봅니다. 사실 10년 전 같으면 서예가 우리 안에 왜 필요한지 이해를 못한다고 보는 게 맞았습니다. 거의 공연 중심이고 그 다음 미술이 있고. 서예는 주워온 자식 같은 느낌이었죠. 게다가 어렵고 재미도 없고 돈도 못 벌고 관객도 없고... 예술의전당 뿐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에도 서예 분야가 아예 없어졌고 전통문화학교나 한예종에도 전통문화는 여러 학과를 개설하고 있으나 그중에 서예는 없습니다. 문화재 지정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서화 대신 서지 카테고리가 되기도 하고.
권 말씀을 들으니 논리적 딜레마가 있는 것 같네요. 서예를 미술에서 따로 분리해 낸 게 문제이고, 통합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서예 분야가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며 따로 떼어내 키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습니다. 서화동원(書畵同源)이라 하면서도 지원은 따로 받자고 하는 것이냐는 비판의 소지도 있겠는데요.
이 예리한 지적이신데요. 서예를 미술과 완전히 분리해서 딴살림을 차리고 보자는 것은 아닙니다. 서도 있고 화도 있고 미술도 있고 서화미술도 있고. 다만 지금 서의 존립 근거마저 없어지고 서가 죽어가니 그것을 일차적으로 살려내고 그 다음 다른 장르와 손을 잡고 열린 서예를 하면서 하나로 보자는 의미가 되겠죠. 깨진 구슬을 복원시키고 서화미술의 고리로 꿰자는 뜻입니다.
윤 지금까지 많은 경우 집부터 짓고 그 안의 것을 챙겨넣자는 식의 일들이 되어왔는데, 서예박물관의 경우 오랜 숙제여서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스탠스를 너무 넓게 잡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가 지원, 문화재 유물의 연구와 전시, 미래지향적 기획 세 가지를 다 하면 보는 사람에겐 정체성이 불분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고, 읍참마속이라고 뭔가 하나를 잘라낼 수도 있고... 세 가지를 다 동거시키자면 분명 내부적인 모순에 봉착할 것입니다.
이 매우 중요한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리노베이션 이후에는 서예 문자를 중심으로 모든 예술장르와 시대 사회에 열려있는 프로그램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 보기에는 포커스가 없고 중구난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담고자 하는 것이 욕심이고 딜레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요구는 준엄합니다. 전당 안에서는 미술관과 늘상 비교되는데, 미술관의 경우 많으면 하루 관객 5000명씩 오는데 서예는 100명이 채 안 됩니다. 사람을 어떻게 불러들일까. 서단에서는 유일한 서예전용구장인데 그들만의 리그라 할지라도 공모전대관이 줄을 서있고, 우리서예역사는 어느 박물관도 돌보지 않고 방치되어 있습니다. 장사가 안되지만 이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어요. 이제 한자도 안 쓰고 붓은 일상에서 사리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자판이 그야말로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는데 효율로 보자면 말할 것도 없이 서예는 가차 없이 없애야 하죠.
그런 측면이 있기 때문에 관객의 요구, 즉 서예를 둘러싼 우리사회에 더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고, 관객을 모으는 부분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에게 모든 장르에 열린 서예는 그 고민의 결과입니다. 서예란 놈의 본성이 중구난방인데 요즘말로 하면 융복합의 결정입니다. 서예 본자리 찾기 그걸 하자는 것입니다.
윤 현재 많은 미술관 박물관이 자신의 정체성, 경계를 허물고 있기는 하죠. 그런데 일반인들이 인식할 수 있는 타이틀이 제시되는 것은 중요할 듯합니다. 그 명제가 활동을 제시하는 기준이 될 수 있고 그것에 따라 일해야 보다 수월할 거라고 봅니다.
권 서예박물관의 오랜 숙원이던 리모델링이 예산 지원으로 본격화되면서, 이제 서예박물관의 진짜 위기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서예박물관은 그간 열악한 환경에서도 면면히 그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큼지막한 지원이 시작됬으니, 뭔가 보여줘야 하는 시험대에 오른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은 지원이 적어서, 건물이 협소해서 등의 이유를 댈 수가 없게 됐네요.(웃음)
이 사실 그 핑계대면서 가만히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끝은 죽음이 분명해요. 두들겨 맞아 죽을 때 죽더라도 이제는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건물 리노베이션 만이 아니라 이를 기회로 프로그램도 리노베이션해서 서예가 구시대 유물이라는 발상을 전환하여 돌이나 칼 붓을 넘어 키보드가 주도하는 문자영상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예술이자 궁극의 파인아트로 다시 나자는 것입니다. 붓과 키보드, 아날로그와 디지털, 인간과 기계, 동과 서의 문명이 공존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가 되는 마당과 그릇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공모전에서 상 따기 ‘서예’가 아닌 만인의 예술인 ‘서’로 자리매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 그 핑계대면서 가만히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끝은 죽음이 분명해요. 두들겨 맞아 죽을 때 죽더라도 이제는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건물 리노베이션 만이 아니라 이를 기회로 프로그램도 리노베이션해서 서예가 구시대 유물이라는 발상을 전환하여 돌이나 칼 붓을 넘어 키보드가 주도하는 문자영상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예술이자 궁극의 파인아트로 다시 나자는 것입니다. 붓과 키보드, 아날로그와 디지털, 인간과 기계, 동과 서의 문명이 공존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가 되는 마당과 그릇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공모전에서 상 따기 ‘서예’가 아닌 만인의 예술인 ‘서’로 자리매김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권 리모델링 후 무엇이 바뀌나 도면을 보니, 2층에 큰 전시공간이 생기고 3층에 상설전시장이 생기는 정도네요. 전시공간으로서는 답답했던 층고는 좀 달라지나요?
이 전면 리노베이션이라 해도 골조를 그대로 두게 되니 층고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뮤지엄 기능이나 구조로 되돌린 도면대로 보자면 근본적인 변화는 없죠. 어제도 관계자들과 그 얘기를 했는데, 150억 가지고 확 밀어버리자, 고치는 것보다 수월하다 등등의 얘기들을 합니다. 진짜 위기 맞는 말씀이에요. 위기가 시작 된 거죠. 건물만 고쳐지어 놓고 전이나 후나 관객 수가 같다든지 프로그램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든지... 실무자로서 이만 저만 걱정이 아닙니다.
최 서예박물관에 학예직은 몇 명 정도 있나요?
이 저 포함해서 다섯 명입니다. 기획, 소장유물, 교육, 전시연구, 대관 공간관리 등.
윤 5명이면 규모에 비해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 허점이 있는 것이 규모가 작고 유물이 1500점이라고는 해도 시대가 고전에서 근대, 현대까지 포괄하려면 전문화되기에는 너무 적은 인원입니다.
이 서예 영역으로 일을 해 온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허점이 있습니다. 차차 보완이 되어야 합니다.
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30명 중 근대는 없고 다 현대입니다. 간판이 중요해서 그런지... 처음에는 근대를 담당하던 이들도 나중에는 현대로 가기도 했습니다. 서예박물관 학예사 5명이 고근현을 다 아울러야 하니 그렇게 생각하면 적은 인원이죠.
권 미술을 기본으로 하면서 서예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자료를 보면 김생, 김정희, 이우환, 클라우드 게이트, 다나까 잇코까지 다양한 작가를 다루게 될 듯한데, 디자인, 현대미술 분야까지 함께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요구됩니다.
이 ‘서’라는 것이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을 위한 원형질이나 원천과 같은 것으로서 보여줘야 하고 전시 학술에서 그런 미션을 담아야 합니다. 예컨대 서예 유물만 정리하겠다거나 지금까지 패턴만 고집하면 미술관 자료관 한 칸 줘서 한 군데로 옮기면 되죠. 그랬기 때문에 이런 맥락에서 현재 국립공연단체 사무실이 서예관 건물의
절반을 차지하는 처참한 상황이 된 겁니다. 이 시점에서 건물은 물론 전시 교육 유물 등 뮤지엄 프로그램도 제대로 정립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 우리나라에는 ‘현대’미술관이 국립현대미술관 하나 밖에 없어요. 처음에는 미술관 취급을 받지 못하다가 차츰 미술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해 왔습니다. 예술의전당은 국립은 아니나 특수법인 형태의 공립이죠. 서예박물관이 지금은 전시관 취급을 받지만, 과거에 국립현대미술관도 그랬던 것처럼 점차 발전해서 장기적으로는 꼭 필요한 유일한 박물관으로 자리잡을 것 같습니다. 다만,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특성화’를 말하고 싶습니다. 한 공간 안에서 세 개의 시대를 아우를 것인가. 프로그램을 말한다면 대중과의 접촉면에서의 성과로 일련의 가장 강력한 프로그램을 제대로 하고 나머지는 대관 등으로 대체한다든가 하면서 프로그램 특성화를 지향해야 할 듯합니다.
이 당위와 실현가능성 앞서 말씀드린 대로 현실적 요구를 모두 생각해야겠지요. 역사와 현대를 아울러야 하는 것이고, 붓과 타이포도 같이 가야하고, 이미지는 물론 텍스트가 주인 문학적 시적 영역도 와야 하고, 필가묵무라는 입장에서 공연 쪽도 손을 잡을 수 있고... 요즘 융복합, 융복합 하는데, ‘서’ 안에는 태생부터 늘 융복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대중들에게 보여주어 서예가 재미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프로그램에서 수행해줘야죠.
서의 다면성 다양성 중첩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앞서 윤 대표님이 지적하신대로 포커스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제운용에 있어 프로그램의 선후 경중 주부의 문제는 꼭 따져 구사하겠습니다.
최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이 아카데미 사업부에 미술영재는 있지만 아직 서예는 따로 없습니다. 재개관프로그램으로 어린이 서예 뮤지엄 같은 것도 조사를 해보는데 이 자체도 한정된 인력 예산안에서 엄청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이 크면 어른 되는데 서예 십년 백년대계는 어린이서예에서 출발해야합니다. 요즈음 초중고 방과 후 서예학교와 연계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요즘 애들 글씨 너무 못 써요. 서예를 진흥해야 되요.
이 키보드 시대가 되면서 붓은 서예가들의 전유물이 되고, 지식인들도 붓을 놓고 외면합니다. 아이들은 자판만 반복적으로 두들기니 고민을 안 할 수 없는 부분이죠. 이대로 라면 이 삼십년 뒤 인간이 기계가 안 되리라는 법도 없는 것 같아요. 최근 서단의 가장 뜨거운 문제는 원광대 서예학과가 없어졌다는 사실이에요. 계명대는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만 문제가 심각해요. 한쪽은 새 피가 돌고 있는데 예술분야 학과의 취업률과 같은 잣대 때문에 이렇게 허망하게 없어지니. 그림과 글씨가 함께 가는 것은 한국 그림 전통에서는 당연합니다. 그런데 ‘서’가 무너졌습니다. 한 붓으로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는데. 붓을 쓰는 법을 대학에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서예 과목이 회화과 수강과목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부차적입니다. 좀 주제넘은 이야기 일 수 있습니다만 한국미술의 정체성이 모호한 것은 한국화 동양화 는 물론 서양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서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작년에 전당에서 '그리기와 쓰기의 접점'이라는 전시가 있었습니다만 오히려 20세기 서구추상미술의 거장들의 작품 뿌리가 동아시아 서예라고 찾아오지 않습니까.
최 원론으로 말하면 기본이 서와 화가 동시에 가야 하지만, 서구 문명의 체계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낡은 과거의 유물이라고 생각하죠. 저 개인적으로는 동서융합론자라고 해야 할까, 한국화의 전통을 살리고 현대와 맞물려야 한다고 봅니다. 거장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이구요.
권 대학 서예과의 폐지는 애석한 일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서화동원이라면, 서예가 회화의, 미술의 한 과목으로 다뤄지도록 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서예를 독립된 학문으로 세우려는 노력이 오히려 서예의 고립을 초래하지는 않느냐는 얘기죠.
이 걱정과 지적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서예를 독립시키자는 뜻이 고립으로 비춰졌다면 수정하겠습니다. 요즈음과 같은 사회 관계망시대 예술에 있어서도 고립은 살아갈 방도가 없어요. 서예는 미술과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당장 미술의 필수교과에서 빠진 부분은 집어넣어야 합니다. 방과후 교실조차도 운영되기가 힘든 실정이니까요. 시범학교인 서울 한신초등학교를 보니 방과후 지도교사가 50명을 일주일 내내 가르치고 사례발표도 합니다. 이를 확장시켜서 전국에 서예 시범학교를 15개정도 세우도록 정부에서 추진을 하고 있습니다. 지도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글씨를 쓴 학생들은 실제로 성격이 바뀌는 것이 1년 2년 3년 해가 거듭 되면서 확연히 드러난다고 합니다.
최 일단 서예박물관의 여러 영역에서 고전 서예가나 대가 등의 기본은 되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권 기본이 서 있어야 현대와의 접합도 가능합니다.
이 상설전시장을 작지만 붙박이로 해서. 서예의 기본과 본질, 서예 역사와 관련된 부분을 수행하도록 할 겁니다. 지금까지 같으면 현대 작가 전시도 한 곳에서 했는데, 이제 완전히 구분될 겁니다.
권 우리 문화의 근본인 서예를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를 몇 년에 한 번 씩 해서 딱 틀을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최 모든 문명과 문화가 교육이 근본이라 생각합니다. 끝없는 교육을 동시에 해야 하는 책무가 서예박물관에 있습니다. 그리스로마의 다른 문명 이야기도 어떻게 풀고 교육했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지 않습니까. 일반적인 의미의 파인아트 박물관, 미술관과 달리 달라진 시대의 서예박물관의 성격에서 어떻게 교육하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갖다가 전시하는 것은 전문가들끼리의 얘기고.
이 서예 감상에는 한자라고 하는 너무나 큰 벽이 있는데, 그건 당장 해결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국가 어문정책과도 관련되고. 작지만 지속가능하도록 서예박물관에서부터 교육의 터를 잡아 확산을 시켜가겠습니다.
최 이를테면 허목 선생의 글씨를 지렁이체라고 소개한다면? 그런 글씨들은 조형 자체가 재미있죠. 프로그램을 그런 식으로 꾸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전시 기법 등은 현장에서 많이 개발되어 있고 당연히 노력해야 합니다. 기존에는 자료를 발굴해서 보여주는 것이 주였다면 이제부터는 여기에다 감상에 포인트를 주어서 재미있게...
윤 별개의 질문인데요, 우리나라에 서예인구를 몇 명으로 보시나요?
이 대중이 없습니다만 선거철에 이야기로 보면 오백만명 정도 됩니다. 전국에 공모전만 삼,사백 개가 되고요, 네 개 단체 초대작가가 삼천명이 넘어요.
윤 그 오백만명이 서예박물관에 안 옵니다. 서예가 뿐 아니라 한국화가들도 박물관을 잘 안 가요.
이 민간 서예공모전이 많습니다. 그 경우 오픈하는 날 상 받으러나 오지요. 일반 관객들은 서예를 보러 잘 오지 않습니다. 한자 모르지, 재미없지...
최 역사교육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돌리고 시험과목에서 뺄 때, 저는 이것이 끔찍한 자기공동체 학살정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역사교육이 부활되는데, 정책적으로 어떤 의도든 간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자기 공동체의 정체성과 오랜 역사를 근본에서 불을 지펴주는 이런 일들을 기조로 해야 합니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은 프로그램일 뿐이고. 근간을 제대로 하는 작품수집, 연구가 토대를 이루면서 지속되어야 하지요.
이 결국 동아시아는 한자문화권이 그 근본인데, 현재의 한국은 현실적으로 한자문화권이 아니죠.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인지, 시간이 걸려도 회복을 시켜야 할지,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트센터 속에서 박물관을 하려고 하니 수집과 연구 쪽으로 예산지원도 되기 어렵고.... 연구한다고 앉아있으면 쟤들은 일 년에 전시 하나하면서 맨날 논다고 합니다(웃음).
윤 일본에 있는 서예 전문 미술관 중에 아이다 마쯔루라는 사람의 개인미술관이 있는데, 사람이 많이 찾아와서 흑자가 난다고 해요. 일본만 해도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이 일본이나 중국은 여전히 붓이 살아있어서, 지식인들이 늘 붓을 들고 글씨를 씁니다.
최 남한이 기독교 국가가 되어서 그런지.... 지금 우리는 뉴욕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소미국, 동북아시아의 섬입니다.
이 정확한 지적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지금 미국 뉴욕에 대어진 파이프를 우리 역사로 다시 깊게 박아 퍼올린 물을 마셔야 됩니다. 그러면 동서가 하나 된 예술의 발원지가 여기가 되지 않을 까요. 그렇지만 여전히 서구중심 생각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이런 현실상황에서 한가람미술관의 미술전에 비해 재개관 이후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을까봐 스트레스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권 예술의전당 내 다른 미술관과의 동등 비교는 좀 무리가 아닌가 합니다. 그쪽은 기획사에게 대관한 대중 전시가 많이 이루어지니까요. 서예박물관은 대관으로 이루어지는 서단 공모전 외엔 기존 인력과 예산에 기대는 자체기획전이 많은 편이니까요. 가령 2012년 ‘필신(筆神)’이라는 야심만만한 제목으로 김생 탄신 130주년전을 연 것을 봤습니다. 우리 서예사의 중요한 줄기를 세우는 인물전인데, 표구비도 없어 압정으로 작품을 꽂아놓은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주요 전시가 이럴진데, 재개관 이후의 전시 연출은 어떻게 할 건지도 걱정스럽습니다. 문자라는 큰 틀에서 미디어 아트나 설치 등을 포괄할 수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윤 최근에는 전시 연출과 관련된 비용을 상당히 많이 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그렇구요. 멀티미디어의 활용 등 어느 나라 박물관에 갖다놔도 뒤지지 않아요. 심하게 말하면 엄하게 많이 쓰는 느낌이에요.
권 서예박물관은 비교적 작은 공간이니까 선택과 집중을 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처음 43억 예산이 배정되었을 때는, 2층을 뚫어서 블록버스터급 전시 1~2개를 넣고 나머지는 대관전을 하자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아주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맛을 들여놓았을 때 어느 때부터인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서예가 실종되었다고 할 때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어요.
권 10여년간 애써 거의 숙원을 해결하듯이 예산을 배정받았는데, 일반 관객이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 안 됩니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고, 반응이 있는 것이 좋겠어요(웃음).
윤 ‘명품 100선’ 전 같이 크게, 문중에 있는 것, 박물관, 개인 소장 다 끌어들여서 서예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봅시다.
이 개관전으로는 조선서화 보물전을 할 예정입니다. 서양미술 블록버스터처럼 관객이 모일까. 그런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윤 디스플레이 전략에 대해서는 자문을 받아야 합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한자 자체에 장애물이 있으니 오디오 가이드든 어플이든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권 교과서에 나오는 서예가들의 작품을 위주로 학부모ㆍ학생 대상의 교육적 전시도 필요할 듯합니다.
이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추사 전시를 해도 서양미술 400년 전 같은 것과 비교가 안 되더라구요.
권 ‘서양미술 400년’의 경우는 일반 관객에게 ‘뭔가 이것만큼은 봐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부분이 있쟎아요. 고미술이 외면받는다지만 간송 미술관의 정기전에도 상당한 사람들이 몰리고. 블록버스터처럼 되어가는 간송미술관 전시처럼, 서예에서도 그럴만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요.
이 앞서 말한대로 서예는 한자라는 큰 벽이 있는데다가, 예전에는 만인의 예술이 될 수 있었지만 요즘은 붓을 사용하지 않아 멀어져버렸죠. 극복할 수 있을지.
윤 서예에서 ‘예’를 빼자고 하는 의미는 보다 보편적인 문자, 기호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다만 서예는 오랜 수련을 해야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특성이 있어요. 그런 경지에 대한 신성화를 떼어 내면 보다 오픈된 예술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요즘도 고등학교 같은 곳에서 서예 퍼포먼스를 열기도 해요. 강당에 모여 대걸레에 먹 묻혀서 큰 글자 쓰기 같은 걸 하더라구요. 필법에 구애받지 않고.
최 포럼에서 작가지원 문제가 얘기되었지만, 센터이든 박물관이든 현역 작가 공모전 등 현역작가 위주로 박물관 전시 공간이 사용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이 리노베이션 문제와 별개로 포럼에서도 얘기된 것인데.. 최열 선생님이나 미술계 상식으로 보면 이해합니다만 세계유일의 서예박물관과 서예계라는 특수성 안에서 현역작가 전시와 관련된 것을 이렇게 한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어려운 얘기입니다. 공모전의 순기능을 백분 살려 현역작가 서예작품 수준을 획기적으로 지속적으로 높이는 안을 고민하고 있어요.
윤 유명 서예가들이 새로이 박물관이 지어지고 나면 초대전 같은 것들을 기대하게 되죠. 포럼에서도 보니 그분들이 리노베이션을 열렬히 환영하던데, 그런 부분도 조금은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다만 어느 정도 선은 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최 현역작가들은 대관전을 할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권 재개관은 새로운 원칙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예산 면에서도 대관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 서예가들이 대관전을 할 수 있는 사설기관은 백악미술관 등 한두 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
최 원로나 단체에서 전시 공간을 더 원한다면 국립현대서예미술관을 설립하는 운동을 더 할 수 도 있겠습니다. 여름과 겨울 방학에는 대규모 기획전시를 해야겠죠. 여름에는 현대와 결합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전시를, 겨울은 중후하고 고전적인 전시를.
윤 자료집에 보면 외벽에 반구대 암각화, 광개토대왕비, 훈민정음 언해본 등이 새겨지는 외벽이 눈에 띄는데요, 외벽 문제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상징물이 없으니 이런 정도로 하면 되겠다했는데 디자인적으로는 보완할 부분이 있을 듯합니다. 반구대암각화 광개토대왕비문 훈민정음은 설계자의 기본생각입니다.
권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오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ㄱㅋㅇ ㄷㅌㄴ…’를 새긴 대형 좌대나, 인물상이나, ‘너무 직접적이다’ 하는 건데요. 한글 창제가 핵심이라면, 한글의 멋을 보여주는 조형물을 만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서예박물관의 경우 외벽에 뭔가를 담아 리모델링이라는 변화를 알리는 점에는 찬성입니다. 세련되게 잘 담았으면 좋겠어요.
최 공모를 하는 방법도 있죠. 세종대왕상 디자인 자문을 할 때 열 가지 규정을 미리 해 놓고 심사위원 자문위원을 불렀다고 합니다. 가서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외벽엔 전세계 문자를 담았습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이집트, 문명의 집산지라는 의미에서의 도서관, 이 두 점을 외벽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자기네 문자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고요. 이에 비하면 지금 서예박물관은 우리 것만 강조하려 한다는 인상도 줍니다. 서예는 동아시아 문명과 함께해 왔는데요. 외벽에 뭔가 영구히 새기는 것이 부담이라면 미디어 파사드로 여러 기호들이 흘러가게 두는 방법도 있을 듯하고요.
이 논의 과정에서는 아랍어 영어도 이야기되기도 했습니다. 얘기를 모으다 보니 이렇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것들은 우리 유물이지만 인류 문명의 공통적인 문자의 변천사와 같습니다. 그림에서 상형 한자가 되고 한글이 되고. 3차 포럼에서 미술계는 물론 사계 전문가들께서 진정으로 매우 좋은 제안을 많이 해주셨는데요, 앞으로 별도 위원회를 구성하여 예술작품으로 우리나라가 글씨의 나라이자 문자공화국임을 대중들 앞에 제시하겠습니다.
최 갑골문부터 월남, 아시아 전부 아우를 수 있고, 현대까지 포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갑골 자체가 중국 것만도 아니구요. 먼저 가져오는 게 임자인데 중국 거라고 배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극복해야죠.
윤 그동안 열악한 환경에서도 외로이 서예박물관이 많이 애써주셨는데 그에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예박물관을 자주 찾을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