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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계 雜담 -우리 근대미술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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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의 성공에 즈음하여

2014년 3월 28일(금) 11시 AM
최열, 정준모, 조은정,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작년 10월 29일에 시작되어 이번 주말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한국근현대회화 100선>展에 현재까지 36만명의 관객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근래 수십만이 드는 블록버스터 전시가 간간히 있긴 했지만 한국미술에 대한 전시에서 이렇게 많은 관객이 든 예는 드물지요. 이런 수요는 무엇 때문에 나타난 것일지, 이런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지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근현대 미술을 주제로 대규모 전시를 한 시작이 언제인가요? 


정준모(이하 정)   199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대를 보는 눈> 시리즈를 펴내면서 그 해 전시가 있었고, 2002년에 <한국근대회화 100선>전이, 2005~2006년 <한국미술 100년>전 1, 2부로 이어졌습니다.

윤  근대미술이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기있는 테마 중 하나인 듯해요. 2010년 현대화랑 박수근전도 5월7일부터 30일까지 한 달도 안 되어 3만 명이 다녀갔고, 최근 인사아트센터 박수근전도 인기리에 전시를 마치고 부산으로 순회전을 갔습니다.

조은정(이하 조)  이번에 근현대 전시도 끝나고 부산으로 간다고 하니, 부산에 근현대와 박수근 두 큰 전시가 가게 되었네요. 부산이 올 봄 근현대 미술이 꽃피는 도시가 되겠어요. 이렇게 근대미술이 인기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미술사 영역에서는 근대가 불모지인 때가 있었어요. 근대로는 미술사 논문을 쓰지 말라고 하던 적도 있을 정도였죠. 아마도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이 복잡했기 때문에 미술도 덩달아 폄하되는 면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열(이하 최)  역사학계 내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해방 후 일반 역사학계에서 일제시대 이후 20세기 역사를 다루지 못하도록 통제가 되었죠. 일제시대에 대해서는 연구가 거의 불가능했어요. 친일세력들이 학계에 포진해 있었고 말이죠. 미술계도 그런 맥락의 문제가 있는 데다 연구하려고 하는 사람 자체가 없었죠. 조 선생님은 그 다음 세대라고 볼 수 있고. 

조  80년대에 친일 잔재를 청산하면서 그 이후에 가능해지기 시작했다고 봐야 되겠습니다.

정  근대미술사학회가 생겼지만 연구자 수가 너무 적었죠. 

최  여기 학회에 저나 조 선생도 참가했지만 근대미술의 정체성을 세우기 힘들었죠. 결국 연구자가 거의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정  국립현대미술관에 일찍 세상을 떠난 김희대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근대미술 전시를 무척 하고 싶어해서 그 친구가 미술사적으로 의미있는 작가들을 리스트업한 것을 토대로 제가 빌리러 다니고 했죠. 몇 번의 전시 후 연구자들이 꽤 많아지고 석박사 논문을 쓰는 친구들도 한동안 많았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그때만 못한 편이에요. . 

윤  좌우간 “한국근대미술”이라는 것이 이제 36만의 관객을 모으는 주제가 된 것인데 어떻게 이런 현상이 가능했을까요?

조  이번 전시에는 관람자의 특성이 몇 가지 있는 듯해요. 제가 갈 때마다 보면, 젊은이들에 비해 65에서 70세 내외의 자발적인 어르신 관람자들이 많았는데, 작품을 보면서 아주 즐거워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창인 듯한 여성 관객들이 “아, 저거 국전에서 내가 봤던 거네!  그림하고 나하고 같이 늙는다, 얘.” 하시더군요. 작품 한 점 한 점이 ‘우리들의 추억’이 된 것이죠.

정  향수 마케팅이라 할 수 있겠네요. 대한민국의 소비 주 타겟층 중 하나가 50~70대 퇴직한 사람들이라고 해요. 현대미술을 보긴 보지만 이해도 안 되고 답답하던 차에.... 세시봉 시대의 공연이 먹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최  성공요인이 이야기되는 중이니 나도 좀 보태자면, 시대 배경을 짚어봐야 한다고 봅니다. 1960년대 독재와 민주화, 거대한 양극단의 시대가 1980년대에는 종말을 맞고 이른바 다원화, 민주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죠. 또 88올림픽 이후 국제화와 세계화가 지향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95년의 고분벽화 사진전, 98년 <근대를 보는 눈> 시리즈와 이어진 전시, 또 광주비엔날레... 이렇듯 동양/한국의 것과 서양/국제적인 것이 번갈아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서양의 것이 유행한다 싶으면 다시 한 번 임권택의 <서편제>가 엄청난 사랑을 받고... 왜 이러한 반복 현상이 일어날까요. 수천 년 동안 살아오면서 외국의 좋은 것을 쫓고 그에 휩쓸리다가도 문득 어느 순간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내부적인 욕구, 욕망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조선일보의 홍보의 힘이 중요했겠지만 그것만으로 36만 관객을 설명할 수는 없어요. 

정  덕수궁이라는 장소성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전에 국전 보러가던 기억으로. 

조  옥션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갤러리 등은 공간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이 있는데 덕수궁은 친근한 곳이니 더욱 편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윤  프랑스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전시는 인상파 전시예요. 서양을 통해 근대를 이식한 일본도 인상파 전이 항상 인기를 끌죠. 이번에 근현대 100선을 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런 경향이 조금 투영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최  오지호의 그림을 보면, 서구인상파와 달리 필획의 강도가 느껴져요. 조선 화가들의 선묘가 강한 전통이 인상파의 경계가 풀린 듯한 느낌과 만나면서 조화롭게 표현되고 있죠.

정  항상 정반합의 역사처럼 서양 것이 강하게 밀려오면 반작용으로 우리의 것이 강조되게 되죠. 60년대 앙포르멜 추상이나 기하학적 추상이 유행하다가 단청 등의 로칼 칼라가 떠오르기도 하고, 70년대 후반 서양 모노크롬이 들어와 유행하다 박서보 등 한국적 정서가 대입되고.... 무엇인가 과하다 싶으면 반작용이 생기죠.

최  제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네요. 정체성, 고유성에 대한 욕망이 의식하진 못해도 무의식 또는 DNA 안에서 꿈틀대는 거죠.

조  지엽적으로 보면 관객이 허기를 느껴 게걸스럽게 관람을 하게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윤  미술이나 미술시장에 일반인들이 궁금해 하는 면들이 있죠. 박수근은 값이 얼마라더라, 이중섭은 또 얼마라더라 하는데, 막상 그렇게 가치 있다고 하는 그림은 어떤 것인지 잘 정리되어 보여주는 것이 있기를 바랐을 거예요. 이러한 전시가 한국근대미술 참고서처럼 딱 포장해서 “요것만은 꼭 알아야” 식으로 제공하니까 허기를 충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  미술계가 이런 흐름을 시장 중심의 문화에서 미술관 중심의 문화로 견인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  미술관 중심의 문화로 이끈다는 것에 대해 부연설명을 좀 더 해주세요.

정  이번 경우에는 좋은 그림인지 아닌지를 떠나 비싼 그림을 확인하러 오는 경우도 많았다고 봅니다. “그렇게 비싸다는데 한번 보러 가자” 하는 식으로 말이죠. 미술관이 보여주는 미술이라는 것이 그저 교양 수준에 머물러 있기도 하구요. 그런 점들을 생각할 때 미술관이 근대미술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연구하고, 개별 주제에 대하여 집중조명해 보여주고, 주목되지 않았던 작가들을 발굴하고, 유명한 작가라도 다각도로 해석하여 전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미술관이 중심이 되어 문화를 이끌어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이런 인기도 하나의 현상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조  연구자들의 입장으로 이번 전시에서 안타까운 부분이 있어요. 100선을 영어로 하면 MASTERPIECE, 즉 그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걸로 구성되어야 마땅한데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죠. 마스터피스 선정의 근거를 설득력 있게 대지 못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  나도 아쉽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번 100선이 완결판이 아니라 또 다른 100선이 있을 수 있다고 봐야 할 듯합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와서 그런 과정이 계속되어야죠.

조  마땅한 말씀이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정한 100선은 대중적 권위를 획득한 것이니만큼 책임있게 보여져야 하겠죠.

정  탈권위를 얘기하면서도 국립이라고 하면 뭔가 대법원 판결같은 것으로 보여주길 원하죠. 국립도 ONE OF 미술관이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윤  어떤 사회가 한 사상, 가치관을 다져 나가는 데는 선언적인 일들도 필요하지만 기초적인 토대를 충실히 쌓는 것 또한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100점에 대한 논의를 계기로 보다 충실한 논의를 시작하면 될 겁니다. 연구도 하고 사회적인 관심도 끌고. 최근 유행하는 SNS 설문도 하고. 

  360점을 올려 놓고 점수매기는 설문을 하기도 했죠. 전문가 집단 점수를 따로 두기도 하고. 

윤  현재까지 알려진 근대미술 작품의 양이 많지 않아 한 작품이 materpiece가 되기까지 이벤트성인 쇼도 필요합니다. 그러한 면에서는 이번이 성공한 전시라고 생각되요.

정  오늘 오면서 덕수궁 앞을 지나왔는데, 매표소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지하철역까지 꺾여 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것으로 그러한 인기를 만들어 냈다니 대단해요. 다양한 관점에서 근대미술에 대한 해석과 이해 필요한 시점이고,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에 필요한 게 바로 (국립)근대미술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다양한 버전의 100선 전 뿐 아니라, 다양한 근대미술 기획전이 필요하고, 상시적으로 근대미술전시가 진행되는 상설전이 있어야 합니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의 경우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근대미술이 상설전으로 보여지고 있죠. 우리 근대미술의 100선전이라고 하면 호암, 국립, 개인이 연합해야 가능하다고 하는데, 국립근대미술관이 있다면 그 지위에서 개인소장가나 거대컬렉션과 연대한 대규모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더 용이할 겁니다. 충분히 질적으로 훌륭한 유대가 가능해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근대미술을 담을 그릇이 없어요. 국립근대미술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정  『한국근대미술을 빛낸 그림들』 책을 낸 후에 여러 이야기를 들었는데, 책에 들어가지 않은 그림 가지고 더 써볼 수 없겠느냐는 요청이 많았어요. 유력한 개인 소장가가 가진 좋은 그림이 엄청나게 많지만 세상에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이 그림들이 왜 나오기 어렵냐면, 소장자의 입장에선 좋은 작품을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두렵기 때문이죠. 양도소득세 문제도 있고... 미술품의 개인소장에 대한 시각이 달라져서 모두 오픈될 수 있으면, 좋은 작품을 개인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립 미술관 등의 공공기관에 기탁하여 시민이 공유하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문화융성의 시대라고 하면서 그렇게 되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최  세금 감면 등의 행정적 조치와 더불어 그걸 담는 그릇이 중요하죠. 국립근대미술관이 있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오르세. 모마, 동경근대미술관의 역할을 보세요. 현재 우리나라에 국립 미술관은 사실 국립현대미술관 한 곳 뿐입니다. 일본의 경우 여러 지역에 국립 미술관이 있어요. 나가사키의 근대미술전은 나가사키파를 일본미술사의 수면에서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찌된 일인지 근대미술사학회가 설립된지 20년이 지났는데도 근대미술의 실체가 없는 느낌이에요.

조  한국미술 내에서 근대미술을 짚어 그 위상을 세워야 합니다. 

정  농담이 아니라 근대미술관을 짓자는 캠페인을 벌여야 할 것 같네요. 광화문에 생긴 대한민국역사관이 근대미술사 측면에서 정리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쪽은 정치적인 면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이 들어요. 그쪽도 순수예술 컬렉션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된 연구자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최  국립현대미술관에도 학예사 중 근대미술 전공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외부 기획자들과 함께 작품을 선정해야 하고.

정  근대를 보는 눈 이후 근대에 대한 공부를 하는 학예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근대미술을 맡기로 하고 인원을 채용하기도 하고. 그런데 미술관에서 할 일이 없으니 전문가가 길러지질 못했죠. 

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나왔던 학술지인 『근대미술연구』도 휴간인지 폐간인지 나오지를 않고 있어요. 국립 미술관에서 만드는 학술지인데 외부인사들의 청탁원고로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죠. 내부 학예사가 채웠어야 하는 것인데. 

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구상을 할 때도 소위 1930년대 모더니티 구본웅 그림 같은 것들 상설전시가 한 방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외국관광객들이 와서 볼 수도 있고 말이죠. 

조  덕수궁은 친근하게 느끼는 장소성이 있고, 서울관 같은 경우는 미술관으로 인지하고 그 나라의 대표적 미술을 보러가는 장소라 성격이 조금 다르지요. 

정  거대언론의 홍보 덕분이든, 한국미술 가격에 대한 호기심이든, 향수 때문이든, 여기에는 국민적 요구가 있습니다. 이것이 한 때의 붐으로 끝나지 않도록 불을 지펴야 하는데, 우선 근대미술관의 부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할아버지, 아버지는 없고 자식만 있는 상황이에요. 근대미술관 만드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작품의 아름다움을 떠나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정치적, 역사적인 물건들로서도 의미 있는 것이니까요.

조  좋은 지적입니다. 미술관 박물관들이 관장들에게 부여되는 책임과 권한 때문에 관람객 숫자가 중요해졌고, 주요 관심사가 관람객 수이다 보니 인기 있는 것에 끌려 장소에 상관없이 국립이든 공립이든 미술관이든 박물관이든 비슷한 주제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여는 해프닝을 벌이곤 했지요.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을 모아놨을 뿐이지만 상대적으로 입장료도 저렴했고 많은 사람들이 꼭 봐야 되는 전시로 접근되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관객/일반대중의 요구를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윤  이러한 전시를 함으로써 그림도 역사를 만들게 됩니다. 이중섭의 소 그림도 나란히 나오게 됨으로써 또 더 주목받게 되고, 박수근의 빨래터도 전시회에서 주목 받으며 대표작으로 단단히 자리매김 되고...

정  최근에는 해외 유명작 블록버스터 전시가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는 셈으로 관객이 줄어 적자인 경우가 많았었죠. 그런데 이번 전시는 운송비나 보험료 등에서 비용을 상대적으로 적게 들이고 상대적으로 적은 관람료로 큰 성공을 거둔 셈이에요. 

윤  아까 얘기되었듯 그동안 팝송을 많이 듣다 케이팝에 다들 열중하듯, 한국문화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거죠.

조  글로벌리즘에서 로컬리즘으로.

최  정체성 회복의 맥락도 있고 최근 국공립미술관과 유력 사립미술관이 서구 당대미술을 뒤쫓아가는 데 20년을 바쳤어요. 난해하지만 잡다한. 온갖 다양한 내용들을. 백인의 동시대를 고민하는 휘트니 비엔날레의 고민, 현대 뉴욕의 고민을 압축하는 미술을 우리 것처럼 받아들이고 신나서 따라했죠. 그게 가장 고상한 것인 양.

윤  있어보였던 것이죠(웃음).

최  해외 큐레이터와 친교하는 것이 국제화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황인종이면서 교류만 가지고 백인이 된 것처럼 생각했던 건 아닌지.... 이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자각이 보이기 시작해요.

정  늘 2류로 기죽어 살다가 우리 경제가 커지면서 조금씩 자긍심이 되살아난 것 같습니다. 외국 직항이 가지 않는 상대적으로 낯선 도시에서 외국 비행기를 탈 때 코리아 여권을 보여주면 상당히 호감을 보입니다. 경제적, 문화적인 위상이 높아지면서 우리 것에 대한 은근한 자신감을 느끼게 되었겠지요.

조  우리 문화나 예술에 대한 자각이 전시 기획에도 적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피카소전이라고 해서 100퍼센트 피카소 작품 만으로 이뤄져야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외국도 자기나라 작가들을 끼워넣어서 전시하는 예가 많은데 우리는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죠.

정  국립현대에서도 암스텔담 스테델릭미술관 소장품을 빌려와 <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 전을 한 적이 있는데 나름 재미있었어요. 일본의 경우 모네전람회를 하면 일본에서 모네 풍으로 그리는 작가를 끼워 넣는 경우는 많습니다.

조  우리가 모르는 지역 작가들도 한 레벨 안에 동시대 작가로 인지하고 동시대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들을 주류 작가들과 함께 조망하는 것으로 틀을 바꿨으면 해요.

정  작년 포스코미술관에서 있었던 <글子, 그림이 되다>라는 캘리그라피 전시도 성황리에 잘 치러졌죠. 우리 것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은데 미술관들이 너무 안전빵으로 가려고만 해요.

최  그뿐 아니라 무지한 것이 문제입니다. 모두들 서양미술에만 귀를 쫑긋 눈을 반짝. 공부를 안했기 때문에 무지할 수밖에 없어요. 아는 것이 없는데 뭘 어떻게 설명을 하나요.

정  현대미술 전공한 친구들에게 한국 근대미술 화가 10명 이름을 적어 보라 하면 다 적는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최  서양미술을 전공하고 한국에서 활동 시작하면서 근대를 보려고 하면 너무 찌질해서 볼 게 없다고 말하는 것도 들었어요.

윤  죽었다 깨나도 박수근 이중섭 타령이니 시장도 좁을 수밖에 없고.... 

조  그래서 근대 미술관이 필요합니다. 작가를 끊임없이 소개해야죠. 아직 발굴되지 못한 작가들도 많아요.

정  퍼머넌트 콜렉션에 더하여 작가 하나하나를 깊게 보여주는 전시가 중요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도록 서문에 작가 소개가 없는 게 아쉬웠어요. 이미 보여졌던 작가라고 하더라도 다 달리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의 관점으로만 미술을 보는 나쁜 버릇이 있어요. 올려다도 보고 내려다도 보고 째려보고 다양하게 봐야죠. 

최  국립근대미술관이 있다면 대중들이 잘 모르는 작가 회고전을 열 수 있죠. 예를 들어 “이달주”라고 하면 지금 아무도 모르지만 회고전을 한다면 재조명될 여지가 많습니다. 전제는,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아무리 근대미술관을 만들어봐야 제대로 된 인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현재 13개의 전국 국립 박물관은 1000년의 한국미술 작가들이 있는데도 개인전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김영나 관장 이후 분위기가 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김희겸, 이유신, 이번에 국립박물관의 달력으로 다시 조명된 신명연 등등 알려지지 않은 좋은 작가들이 수두룩합니다. 크게 여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국립박물관의 작은 방에, 잘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작가들의 개인전을 하면 환상적일 거예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허련 전을 하고,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서병오 전을 하고. 


조  전북도립미술관에서 효산 이광열이라는 지역의 서화가이자 화가를 조명하여 가전으로서의 서화와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주요 작가들과의 교유관계를 조명한 것은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최  그런 기획을 잘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준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조  근대미술의 한 길을 파신 몇몇 분들이 떠오릅니다. 많은 시간과 정열을 근대미술 연구에 바치신 분들깨 이 역할이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혹여라도 우리 미술사에서 전통이라든지 역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외형적인 면에서만 근대미술을 판단하고 그 이론을 유통시키면  안 될테니까요.  

정  미술관이 생기면 사람은 생깁니다. 일할 만한 사람은 많아요. 사실 덕수궁 서관을 근대미술 전용관으로 쓰기로 하고 동관 석조전을 미술관에 양도해서 두 동을 다 미술관으로 쓰기로 했었고 문화재청이 합의했었어요. 공문도 남아 있구요. 꾸준히 노력해서 이를 이뤄냈어야 하는데 국립현대미술관 쪽에서 그걸 하지 못했어요. 

최  조금 다른 얘기지만 중요한 것을 하나 보태자면, 덕수궁 같은 그런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장소는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전시로 채워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현재 예술원회원전을 계획 중인데, 근현대미술의 발전에 하나의 보탬이 없었던 예술원 회원 개인들을 위한 추악한 회원전을 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근대미술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조  정리하자면 근대미술관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개별 작가를 깊이있게 조명하는 기획이 박물관부터도 차분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번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의 큰 성공이 근대미술관의 필요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깊이있게 이뤄지는 계기로 이어졌으면 좋겠네요. 


정리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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