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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과 관련한 학예사 자격제도 개선 문제

2014년 2월 28일(금) 오후2시
최열, 정준모, 조은정, 권근영, 윤철규

윤철규(이하 윤)  최근 학예사와 관련된 미술 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반에게는 학예사, 큐레이터 하면 뭔가 생소한 직업이면서 선망의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지요. 미술관 활동의 주체가 되는 인력이지만 큐레이터에 대한 인식은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큐레이터, 학예사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점들을 짚어보고 싶어 이번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앞으로 많이 증가될 듯 한데 이 시점에서 큐레이터 자격 제도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는 바가 있습니다. 집은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다는 문제들도 제기되구요. 여기에 학교에 계신 분도 계시고 미술관 안에서 일하신 분들도 계시니 다양한 입장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조은정(이하 조)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선망의 시선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몇 년 전 재미있는 조사가 있었어요. 학생들에게 선망하는 직업군을 물었을 때 그 답 중에 큐레이터가 있었습니다. 큐레이터가 드라마 등에 멋지게 나와서 그렇다는 분석들도 있구요. 우아한 직업으로 보여진 것이죠.  그런데 미술계 내부에서는 대체 큐레이터가 뭔지나 알고 그러느냐는 질문들이 생겼죠. 대학이나 대학원 미술사 수업을 할 때도 큐레이터를 하고 싶어하는 많은 학생들을 보게 됩니다. 강의가 끝날 때쯤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하면 큐레이터가 될 수 있나요”라며 문의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런 친구들에게 박한 점수를 주어서 미술 직업군에 대한 환상을 깨게 만들라는 충고를 듣기도 해요. 그것이 그 친구들을 아끼는 방법이라는 것이죠. 웃고 넘기긴 했지만 학생들에게 실제로 너희들이 알고 있는 큐레이터라는 것이 어떤 거냐 물어보면 드라마에 나오는 갤러리 직원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 국립미술관이나 박물관 큐레이터는 전국적으로 몇 명 되지도 않으니 너무 어렵고.... 갤러리에서 근무하는 일명 ‘큐레이터’라고 하는 직업군의 근무조건을 살펴보면 일요일에도 근무하고 한 달에 두 번 쉬는 곳도 많구요. 조건도 까다로와서 일단 외모가 준수하고 키 얼마 이상에, 한국말과 영어를 잘 해야 하고, 기타 몇 개 외국어 알아들어야 하고, 보수는 월 백 만 원, 그런 식이죠. 이것을 알려주면 학생들이 “설마...” 그러죠.
 


정준모(이하 정)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명함에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새긴 것은 저의 경우 89년인데 그게 거의 처음 아닐까 생각해요
 
조  저도 86년에 새긴 명함이 있는데 그 때 큐레이터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지요. 월간 객석에 큐레이터가 무엇인가에 대해 쓰기도 했구요.
 
정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큐레이터’라는 말부터 사용했어요. 모더니즘도 모르는 동네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우린 너무 빨리 용어를 먼저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죠. 제 생각에는 큐레이터 보다 레지스트러 먼저 있어야 된다고 봐요. 레지스트러라는 것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판별하고 등록하는 사람이죠. 80년대 당시 변변한 미술관도 없는데 큐레이터가 먼저 생겨버렸어요.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을 큐레이터로 퉁쳐버린 것이에요. 전시 기획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큐레이터는 박물관/미술관에서 학예 연구를 하는 전문직인데 우리가 그 용어를 쓸 때는 박물관 미술관 일을 하는 레지스트러 에듀케이터 컨서베이터 등을 싸잡아서 부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문화부가 과도하게 일찍 큐레이터/학예사 제도를 도입하고 자격증을 만든 것이 문제입니다. 일본에도 학예사 시험이 있지만 이것은 일반 교양에 가까운 것이에요. 반면 외국의 큐레이터는 적어도 석사학위 이상을 받고. 인턴쉽도 받기 힘들도록 된 전문직종 입니다. 인턴도 거의 유급이고 미술관 후원 기업들이 장학금을 주는 식으로 양성하도록 되어 있죠. 근데 우리는 전문대학만 나와도 준학예사가 될 수 있죠. 즉, 외국에서는 큐레이터라고/학예연구사가 되려면 석사학위를 받아야 하는데 대개 미술사 학위와 박물관학 석사학위 같은 두 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학예사는 그렇게 전문직으로 생각되지 않죠.
 


윤  사실 학예사에게 그런 역할이 요구되는데 그런 전문성이 없다보니 현장에서 삐걱거리게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조  우리나라에서 처음 큐레이터 제도를 두어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생긴 것도 갤러리에서 일을 하면 업무나 연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미술의 비전공자까지도 큐레이터라고 부르니 적어도 소양을 갖춘 연구자들에게 자격을 주기 위해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에요. 아무나 그 일을 하지 않도록, 전문가들이 그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왜곡되어 온 바가 있는 듯합니다.
 
정  자격증 제도를 보면 현행 준학예사 – 3급 정학예사 – 2급- 1급이 등급별로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자격증에 ‘준’이 붙는 것은 전문대학 졸업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준학예사는 그런 기준과 맞지를 않죠. 또, 우리나라처럼 학부에 큐레이터 학과 미술사학과가 있는 나라가 외국에는 거의 없어요. 그 학과에서 길러낼 수 있는 큐레이터는 기능인인 전시기획자일 뿐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미술사적인 내공을 가진 미술관 큐레이터는 아닐 거예요. 아트센터 전시시설이라면 모를까.
 
 미술관과 아트센터가 따로 구분도 잘 안 되죠. 큐레이터도 미술평론가와 마찬가지로 그 직함의 남용 문제가 있어요. 학예 업무를 하는 전문가를 지칭하여야 하는데, 미술계 주변의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까지도 큐레이터라고 부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술평론가도 정식 등단을 한 공식적인 사람들만 미술평론가로 부르자고 했었지만 어느 정도 지켜지다가 지금은 무너져서 아무나 자칭 타칭 미술평론가가 되었어요. 

 여기 윤 대표도 권 기자도 책임이 있어요. 언론에 글 몇 줄 써도 괄호 열고 미술평론가라고 불러주는 경우가 많아졌죠. 박물관 미술관 등록이 쉬워지고 많아진 데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큐레이터라고 싸잡아 부르고 거기에 대안공간 등등 엄한 공간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그곳의 전시기획자도 큐레이터로 쓰이게 되었죠.
 
 전시기획자와 큐레이터를 구분해야 된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렇습니다. 호칭의 인플레가 많이 되어서 웬만하면 수석 큐레이터라 부르는데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맨 처음 학예사 제도가 생길 때는 미술관 박물관의 사회적 역할을 고려한 전문적인 일이라는 의미로 만든 것이지만. 학예사와 자격증 제도를 만들고 나니 혼동이 왔고. 이 혼동에 의해 실제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들입니다. 학예사를 두는 경우 학예사의 인건비를 보조하게 되죠. 60%인가요? 120만원 정도 보조를 하게 되는데 그런 제도조차 악용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기관에서 근무한 연수만 채워서 2급 3급 학예사 자격을 취득해도 실제 현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사립미술관 같은 경우 딸 며느리들을 준학예사 시험을 보게 한 후 자격증만 가지고 사용하는 경우도 많구요.
 


 사립미술관 학예사의 경우 임금 중 120만원을 보조받고 미술관측에서 더 줘야 되는데, 추가해서 주지 않고 이것만 주는 경우도 있고, 보조를 받기 위해 알량한 학예사 자격증을 돈을 주고 빌리기도 합니다. 미술관 등록시 학예사를 등록해 놓고, 자격증 소지자에게 일은 시키지 않고 보조금 일부만 주고 나머지를 착복하는 경우도 있구요.
 
권근영(이하 권)  문득 의문이 드는 것이, 90년대에 학예사 자격 제도를 왜 그때 어떤 필요에서 새삼 만들었을까요?
 
 미술관 박물관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죠. 
 
권  미술관이 늘어날 거라고 예상해서일까요? 아니면 기존에 있던 사람들이 요구했는지요?
 
정  문화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 2000년까지 1000개의 미술관 박물관을 만들자는 주장이 있었죠.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 때 미술관들이 많이 생겼고 전문 인력 도입의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정책적으로 인력에 대한 고민까지 한 셈이 되나요. 예산의 대부분을 미술관 건립하는데 쓰고 조직 구성이나 내용은 개관에 임박해 부랴부랴 챙긴다는 것이 오늘날에도 미술관 개관을 놓고 나오는 비판인데, 전문 인력이라는 것에 대해 제도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있었던 거네요. 
 
 학예사 자격 제도를 시작할 때는 미술관 박물관을 위해 인력의 전문성을 기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자격증을 가졌으나 비전문적인 인력을 양산한 결과를 낳았어요. 질적으로 발전되지 못한, 의도치 않은 결과가 된 것이네요.
 
  자격 취득자, 관련 전공자들을 적절히 흡수할만큼 미술관ㆍ박물관의 많은 것도 아니고, 제대로 처우할 만한 여건이 되는 곳도 드물고, 미술관마다 학예사 자격증 가진 이를 두도록 하는 제도로 인해 자격증 대여 같은 편법도 난무하고, 이 자격을 얻는 데 필요한 경력 연차를 악용해 저임금으로 부리는 일도 있죠. 정책 취지의 순수함과 달리 현장은 요지경 속인 것이 학예사 제도 만은 아니겠지만요.
 
 좋은 지적입니다. 자격이 필요해서 2년 동안 의무 복무하듯이 거의 무급으로 일을 하죠. 그런 인력이 있으니 실제로 돈이 나가야 하는 자격 있는 사람이 그 미술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80년대에 보육교사 자격증 제도가 생겼을 때 그 취지는 집안에 있는 여성인력을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통신강의만 가지고도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다든가 하여 쉽게 딸 수 있게 했는데, 지금은 보육교사의 질이 문제되고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니 그 조건을 제한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요. 학예사 제도도 비슷한 점이 보이는데, 보육 같은 경우는 피부에 와 닿는 심각한 문제지만 미술관은 ‘국민이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 쉽지는 않습니다. 내가 보는 전시의 질이 떨어져서 피해를 본다고 체감을 할까요.

 
 수요가 그만큼 많지 않은데 자격 제도를 국가적인 규모로 키운 게 문제입니다.
 
 지방 대학에 가 보면 학예사 자격에 합격했다는 현수막이 붙기도 합니다. 미술계 내부에서는 그다지 알아주지 않는 자격증인데....
 
 지금 국내에 1급 학예사는 없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 제도를 만들 때 관여했던 사람들은 학예사 자격 취득을 안 하기로 해서 저는 학예사 자격증이 없어요. 초기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는 등록하지 않은 기관은 미술관 박물관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었는데 김대중 정권 당시 규제 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이 규제가 풀어졌어요. 제가 알기로 많은 인사동의 미술관과 간송미술관 등의 유명 미술관도 사립 미술관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경력을 쌓아서 준-3-2-1급 자격을 따고자 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고, 이런 수요가 있으니 자격취득과 관련된 시장도 형성이 되어 있다고 하는데, 실제 이 자격증이 취직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일할 곳이 없다고는 하지만, 지방에 가면 외진 곳에 있는 미술관들이 있고, 인력이 필요한데 올 사람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수에 있는 GS칼텍스 여울마루는 대기업 직원에 준하는 월급을 받고 시설도 좋지만 여수에서 일해야 되니 학예사가 그만둬서 구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학예사 자격증이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죠. 2000개도 안 되는 자리지만.
 
 동물원 식물원 등에도 학예사라는 직함을 쓰던데...
 
 예전에 지인이 서울시 학예직 공무원 6급이 되었는데 행정직들이 학예사는 동물원의 사육사들이랑 똑같은 업종이니 그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며 농담하기도 했다더군요. 
 
 저도 예전에 세계 박물관협회 총회에 가서 어느 분과에 갔더니 명함을 주고받는데 zoo가 써 있어서  내가 아는 동물원 말고 다른 뜻이 있나 한 적도 있어요. 하도 뜬금없어서..... 박물관 카테고리 안에 동물원 천문대 과학관도 모두 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학예사 자격 시험이 다른 국가 자격증에 비해 합격률은 낮고, 더 쉽게 자격증을 따도록하는 방향으로 고치고자 하는 데 실제 현장에서는 더 엄격한 자격이 요구된다는 것이죠.
 
조  지금 자격증이 있는 사람도 수두룩한데 인력은 더 많이 공급될 것이고, 그러니 조건은 열악해지겠죠. 자격을 갖췄다 하더라도 일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실제로 없고.
 
정  미술관에 전문 인력을 두라고 되어 있는데 큐레이터 외에는 규정이 안 되어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하는 직종을 다 뭉뚱그려놓았어요. ICOM 규정을 보면 미술관에 57개 직무가 있다고 규정하는데, 일반적인 것만 추리면 15-17개가 되죠. 도입하면서 한국 현실에 맞게 몇 개를 뺐었습니다. 미술관이라면 작품 수집 등록이 1차 목표니까 레지스트러가 반드시 필요하고 큐레이터만큼이나 중요한데 그 개념은 없죠.
 
  미술관ㆍ박물관의 전시ㆍ연구 기능 뿐 아니라 교육적 기능이 강화되면서 에듀케이터의 역할 또한 강조되고 있죠.
 
 미술관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큐레이터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몇 천 개도 안 되는 미술관의 일자리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자격증 줄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큐레이터에 대한 묘한 환상 때문에 큐레이터 자격증을 따겠다는 사람은 너무 많습니다. 그에 대한 수요 자격증을 원하는 사람이 많으니 이번에 학력제한을 풀겠다고 했구요.  취업의 기회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지만 미술관 박물관 전문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다른 분야는 점점 전문화 되어가는 추세잖아요.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던 것이 점점 전문화되어가는 상황인데. 전문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쉽게 자격증을 따도록 하려면 일본처럼 4지선다형 시험으로 교양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이 규정, 제도로는 전문성 담보에도 부족하고 일반인들이 교양으로 따기에도 어렵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공적 지원을 할 것인지 그 대상을 선정할 때 따로 기준이 없으니 자격증 있는 사람을 두면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된 면이 있죠.
 
 사실 지원 여부에 관해서는 미술관 등록을 하는 순간 끝나 버립니다.

 
 실질적으로 자금 지원 여부가 박물관 미술관이 질적 수준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해 주는데,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미술관 박물관이 일정 수준이 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이와 병행하여 미술관 박물관 평가가 제대로 되어야 합니다.
 
  작년 말 박물관 미술관 진흥법을 개정할 때, 박물관 미술관 평가제도를 추진하자고 했고 연구보고서도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대대적 개편이 못 되고 두 꼭지만 바뀌게 되었어요. 가장 큰 것이 국공립도 기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과 학예사 자격 제도를 완화한 것입니다. 학력제한이 있다 보니 외부에서 보기에 진입장벽이 높았던 것을 풀 자고 한 것이었죠.
 
* (2014년 3월 현재 학예사 자격제도 관련 시행령 부분은 논란이 많아 정해지지 않고있는 상태이다-편집자주)
 
최열(이하 최)  기부금을 푼 것은 잘 한 일이지마 학위와 전문성을 풀어버린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정  하향평준화된 것이죠.
 
최  의사가 되려면 자격시험 뿐만 하니라 학위가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미술관 박물관에 전문적인 인력에 대해서는 그렇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권  이 개정안에 따르면, 학예사의 기준이 완화되는 것인데 학예사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보여주는 사례인 듯해 우려됩니다. 학예사의 하향평준화를, 제도적으로 가속화할 수 있다는 거죠.
 
 개정 법안에서 전문성을 인정치 않는 방향인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제도에 따르면 학예사는 미술관 전시를 기획하는 기능인입니다. 그러나 그같은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미술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여기엔 대학에서의 관련 공부, 즉 전공지식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공불문’인 자리는 아니지요.
 
 지방미술관 큐레이터는 거의 계약직이라는 함정도 있어요. 첫 계약을 2년 내지 3년으로 하고 들어가서 5년까지 연장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5년이 되면 무조건 나와야 됩니다. 더 일하고 싶으면 신규채용에 도전해야 되고. 그래서 또 최대 5년 근무할 수 있겠죠. 큐레이터들이 전문성을 가지려면 적어도 5년에서 10년 일하며 기관의 소장품을 이해하고 그래야 되는데 경력 있는 학예사를 키울 수가 없어요.
 
 국립현대미술관도 계약직으로 4개월, 8개월 일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렇게 일하고는 어디 가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했다고 이야기하겠죠, 4개월 동안 작가에게 전화해서 픽업만 하고서도.
 
 이런 근본적인 심각한 문제들을 행정 관료들에게 제기하면 정치인들 탓이라고 서로 떠넘기기 바쁩니다.
 
 학예사 하향평준화가 선거를 염두에 둘 만한 사안도 아닌데.
 
 뭐 대학 전공하지 않아도 기득권자들이 쉽게 원하는 사람을 학예사로 뽑을 수 있게 될 수는 있겠죠.
 
 자격증제도 문제는 기회를 균등하게 만들었을 수는 있지만 전문성 측면에서는 무시가 되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의 일이 전문직으로 인정이 안 된다는 얘기죠.
 
 옷가게, 가구점도 갤러리라고 하고, 그 안에서 디스플레이 하는 사람들도 큐레이터라고 스스로 일컫는 지경이 되었어요.
 
   전시 외에도 어떤 사안을 놓고 기획하는 사람을 큐레이터라고, 기존에 있는 것들을 효율적으로 선별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활동을 큐레이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근사해 보이니 유행처럼 쓰이며 용어의 범주가 확대된 것이죠. 
 
 명칭은 근사한데 고학력, 저임금, 비정규직인 일자리죠.
 
 그나마 고학력도 저학력으로 낮춰졌네요(웃음).
 
 더 엄격하게 하는 방향이 맞다고 봅니다. 기왕의 자격증을 소지한 자들에 대한 재시험을 봐도 부족할 판이에요.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보장을 해 주던지.... 고학력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가는 한은 큐레이터의 전문성에 대해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학예사가 비정규직의 방향으로 가게 된 시작은 국립현대미술관 아닌가요. 정규직 학예사를 뽑지 않기 시작할 때 마침 노무현 정부가 2년 비정규직 법안 만들면서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탄탄했던 부산시립미술관을 비롯해서 모든 국공립이 계약직으로 전환되고 외양으로 필요한 숫자만 갖추게 되었죠.
 


 서울시립 등에서도 일반 연구직 공무원이 계약직 팀장과 맞지 않아 문제가 된 적이 있었죠. 
 
  해외 미술관장들이 10년 이상 재임하는 것에 비하면 우린 2∼3년으로 현저히 짧아요. 공무원 수 자체를 줄이는 분위기 속에서 미술관의 특수성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제대로 된 학예사, 학예사의 롤모델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미술기관 외에도 마찬가지지만 공적 기관에서 본래 기능과 직접 연관된 일자리 외의 행정직 공무원 숫자가 외려 줄어들지 않습니다. 2/3에 이르는 행정직은 계약직도 없고 절대 줄지 않아요. 미술관의 학예사, 동물원의 사육사가 계약직이 되는 형편이죠. 또 행안부, 기재부 등에는 책임운영기관이든 민영기관이든 인원을 줄여나가는 일이 적고 문화체육부 등 가장 힘없는 쪽의 산하 기관부터 바뀌게 됩니다.
 
조  정리해 보자면, 학예사 자격제도는 전문적인 직종이 생겨나면서 만들어진 것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전문성을 담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미술사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나도 미술관 업무는 더 많은 공부를 요하는 현실과는 반대되는 것입니다. 필기시험만 보고 합격하면 운좋게 붙었든 어쨌든 의사가 될 수 있다는 것과 비슷한 것이죠. 인문학, 시각예술, 다양한 사회현상까지도 고찰하고 오랫동안 꿈꾸고 훈련받아야 인턴도 하면서 지켜보고 해야 가능하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준학예사 학력기준 삭제는 고려해 봐야 될 문제입니다.
 
 충격적인 것은 학예사 자격을 위해 인턴으로 일을 하는 데 돈을 내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많은 인력들을 어떻게 흡수하고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운영되게 할지 개인적으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예사 자격 제도의 대상을 더 넓히느냐 좁히느냐의 문제일텐데, 지금 이 자리에서 이상적으로 논의되는 바는 좁히는 것인 듯합니다. 그러나 정책 당국자들 입장에서는 소수의 제대로 된 학예사를 인증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시험을 통한 자격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비용을 유발할 뿐이라 여길 수도 있겠네요.
 
 엄격하게 더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은 더 좋지만...
 
 지금 상황은 전문성 강화 방향은 아닌 듯 합니다. 지난해. 지방에서 학예연구관을 채용하도록 하는데 국가에서 내려온 내용의 주된 목적은 젊은이 일자리 창출이었습니다. 일자리 창출이니 전공이 아니어도 시험을 볼 수 있게끔 합니다. 편법으로 얼마든지 이용이 되고 있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결국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나 그냥 각 지역 문화국 소속의 기관으로 보는 듯해요. 영국 같은 경우 국가가 문화역량 중 미술 쪽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미국은 다양한 창조적 문화산업에 투자했는데, 결국 영국이 승리했다고 봐야 하죠. 새로운 창안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자 한다면 시각예술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는데, 그런 분야에서의 기간 산업이라고 할 만한 관련 인력에 대해 비전문화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리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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