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12월 13일(금) 오후 1시 최열(미술평론가), 정준모(전시기획자), 조은정(미술사학자), 권근영(중앙일보 기자), 윤철규(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조은정(이하 조) 늘 다사다난했던 한해라고 하는데요. 2013년 특히 미술계에는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죠. 올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미술계를 정리해 볼까 합니다. 우선 올해 초 특히 우리나라 미술계의 큰별인 원로 작가분들께서 많이 서거하셨는데 특히 밭은 시간 안에 갑자기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깜짝 놀랐었던 게 기억나네요.
1. 별이 지다 – 미술계의 원로들의 사망 소식
권근영(이하 권) 올 2월에 진 별이 많습니다. 원로 사진가 최민식 선생님이 2월 12일에 돌아가셨고, 23일엔 이두식 선생님께서 정년퇴임전 오픈 다음날 돌아가셔서 많은 분들이 황망해 하셨죠. 이어 25일에 박노수 선생님과 여운 선생님께서 돌아가셨고요. 추웠던 한주였습니다. 올 하반기엔 박노수 선생님이 기증한 옥인동 자택이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개관했죠. 또 6월 8일 같은 날엔 송수남 선생님과 변시지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송수남 선생님은 만년의 화사한 꽃그림처럼, 당신의 장례식엔 화사한 옷을 입고 꽃 한 송이 들고 오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천편일률의 우리네 장례 문화를 돌아보게 하셨죠. 얼마 전에는 한국화가 권영우 선생님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유난히도 부고 기사를 많이 썼던 한 해였습니다.
조 정말 많은 분들이 갑작스럽게 가셔서 놀랍고 슬펐던 한해였습니다. 예술인들이 아름다운 장례 문화의 예를 일반에 보여주시기도 하고, 특히 작품과 집을 사회에 기증한 박노수 선생님의 경우를 보면 미술인들이 생을 마치면서 사회에 미술의 향기를 남기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일이 흔치 않잖아요.
권 예술은 더러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정년퇴임전으로 빛나는 절정을 보여준 다음날 돌아가신 이두식 선생님을 보며 우리는 어떻게 마지막을 맞게 될까 생각하기도 하고요. 누구에게나 닥치는 죽음의 문제이건만 대체로 잊고 살다가 이런 일들을 맞을 때 떠올리게 되네요.
최열(이하 최) 우연히도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한해였네요. 여러 원로 작가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2. 100% 낙찰의 신화 - 전씨 일가의 미술품 창고
윤철규(이하 윤) 뭐니뭐니 해도 올해의 가장 센세이션한 일은 전씨 일가의 미술품 자산들이 압류되고 공개되었던 게 아닌가 싶은데요.
권 생존 유명인의 소장품이, 그것도 검찰 압류품이 대거 공개되고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조 제가 알기론 우리나라 미술 역사상 처음입니다.
정준모(이하 정) 저축은행 등이 부도가 나서 은행 등 채권단이 자산을 경매에 붙인 예는 있지만, 검찰에서 압수를 하고 그것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죠. 전두환 시대가 완전히 물러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권 어제가 마침 12.12였죠. 신군부의 쿠데타가 벌써 34년 전 일입니다. 그런 인물이 지금의 미술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희한한 일이죠.
정 영향이라기보다는 미술계에 오염이라고 봐야겠죠(웃음). 이 사건은 검찰의 선정적인 발표와 이에 부화뇌동한 일부 언동 때문에 많이 왜곡되고 파장이 더 커졌던 면이 있어요.
조 전씨 일가의 컬렉션은 그래도 흥미롭던데요.
정 그런가요? 저의 경우는 실망스러웠어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써 그나마도 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할까. 수준 낮은 컬렉션의 가장 좋은 예였어요. 계통 없이 중구난방으로...
최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죠. 이번 과정을 통해 그 현상을 드러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 경매장에 모인 사람들이 또 대단했죠. 사들이려고 난리들이었고. 지난 12월 11일 전두환 미술품 1차 경매장 분위기를 자세히 전해 주세요.
권 이 전직 대통령 일가가 문화부 기자의 취재 대상이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웃음) 추징금 환수를 위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창고에서 미술품을 압수하는 장면이 ‘수사의 얼굴’처럼 전면에 등장했고, 거기서 어떤 것이 나왔으며 얼마인가 등등이 담당 기자로서 알아야 할 대상이 됐죠. 산정된 가치도 작품별로 제각각이고, 당장 현금화하기엔 복잡한 게 미술품입니다. 추징금 환수라는 목적에는 차명 계좌나 부동산 쪽이 더 실질적으로 부합할 법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미술품이다보니 ‘수사의 전위’가 된 면도 있었죠. 그런 면에서 그 동안 비자금 수사에 단골로 등장한 것이 미술품인데, 이번 전씨 일가 미술품 경매가 바로 그 ‘미술품=비자금’ 인식의 절정이었던 듯합니다. 바로 그 인식 때문에 언젠가부터 미술품을 갖고 있는 것이 죄악시되는 분위기였는데, 바로 그 정점에 있는 전씨 일가의 소장품 경매는 도리어 100% 낙찰이라는 비현실적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너도 나도 다투어 샀다는 얘기인데요. 김환기ㆍ이응로ㆍ류인 등의 작품이 경합 끝에 최고 추정가를 훨씬 웃도는 가격에 낙찰되는 걸 보면서 ‘저 그림들의 운명도 참 기구했구나’ 싶었죠. 권력자의 창고에 갇혀 있다가, 검찰 압류품이 되고, 또 특별경매를 통해 팔려 나가고, 그리고 앞으로 죽 ‘전씨 일가 컬렉션’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닐테니까요.
정 팔자가 드센, 기구한 그림인 거죠. 대통령 집 창고라는 대단한 지위에 있다가 검찰 압류 창고에 있다가 경매 매물이 되는. 재미있는 현상이죠. 종종 배우 등 유명 인사가 가지고 있던 구설수에 오르내린 그림이 잘 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이번 일로 우리 사회가 그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의 척도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21세기 전반 대한민국의 미술문화의 위상, 기반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요.
조 경매낙찰율을 높일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요?
권 1차로는 소장자의 이름값일 겁니다. 비호감이어도 유명인은 유명인, ‘전직 대통령 집에 있던 그림’이라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한 동시에 확실한 출처로 작용했으니까요. 2차로는 검찰 수사가 자아낸 홍보 효과일 거고요.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던 그림들이 경매될 때면 장내엔 가벼운 흥분이 일었죠.
정 올해는 노스페이스가 가고 몽펠리에와 캐나디언 구스로 관심이 옮겨졌다더니 미술품도 마찬가지로 유행처럼 옮겨 다니는, 겉껍데기처럼 가벼운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거죠.
권 시작은 그러할지라도, 언젠가는 취향도 다변화될 거라는 희망을 가져야겠죠.
정 권 기자는 볼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그 때가 올까요(웃음)?
최 미술이라는 것이 조형 그 자체나 양식만으로 평가되지는 않지요.
정 미술계의 가장 큰 문제가 미술품 가치를 미술사적 가치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가와 동일시하려는 것이라고 봐요. 이게 해결될 날을 기대해 봐야겠죠.
윤 경매시장이라는 것이 워낙 스토리가 있으면 작품의 본래 가치에 플러스 되게 마련입니다. 작품 고유의 가치만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는 힘들지요. 좌우간 미술계에서도 전두환 시대가 종언되는 느낌이 드네요.
3. 비엔날레의 나라 – 평창에서 부산까지
조 올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등의 국제 비엔날레와 평창 비엔날레가 있었죠, 최근 내년에 있을 부산 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임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인인 올리비에 캐플랑으로 확정되었는데 현재도 미술인들이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는 단계입니다. 이번 사건도 숱한 비엔날레 문제와 그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은데요.
권 부산 비엔날레 관련 뉴스와 비슷한 시기에 또다른 비엔날레 뉴스를 접했습니다. 바로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한 겁니다. 최근 오쿠이 엔위저 감독이 선임됐습니다. 반면 부산 비엔날레는 8개월 밖에 안 남았는데 감독도 안 정해져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왜 이렇게 급하게 닥쳐서야 일이 진행될까요. 최종 결정도 불투명하고 말입니다.
조 나중에 각자의 입장을 또 들어보니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긴 하더군요. 하지만 전시감독 선임 등에서 문제되는 부분은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합니다.
윤 미술행사를 치를 때 내부적 필요에 의해 목표가 정해지고 감독이 선정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이나 효과를 더 먼저 생각하다보니 형식에 치우치게 되는 겁니다.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인데.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일 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못할 바에는 하지 않는 게 낫죠.
조 평창의 경우 최종 데이터만을 볼 때는 많은 관람객이 다녀갔고 긍정적인 효과를 본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최 지자체 행사의 경우 대부분의 평가가 그렇습니다. 수치상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알맹이는 없는.
조 여러 가지 면에서 국내 2위의 비엔날레인 부산 비엔날레가 벌써 어려운 지점에 봉착하고 미리 준비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운영 주체의 문제인가요?
윤 비엔날레 운영 주체가 문화계 쪽 인사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행정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산비엔날레의 운영위원장이 오광수 선생이기는 하지만 임시적인 자리였죠.
권 오히려 행정 중심으로 진행된다면 예산에 민감할 것이고, 그 예산에 책임질 수 있도록 내실있게 운영되어야 되지 않나요?
정 지난 번에도 이야기되었지만, 국내의 실력있는 큐레이터를 제치고 매번 외국 큐레이터를 데려다가 하려고 하는 걸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전도 그렇고 비엔날레도 그렇죠. 국내 누군가를 선임했을 때 일어날 골치아픈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의혹을 벗어날 수 없어요. 한 사람으로 부족하다면 우리 큐레이터 두세 사람이 공동으로 할 수도 있잖아요. 국내 큐레이터의 국제 네트워크를 키우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전부 일회용으로 쓰기만 하지 장기적인 계획은 없어요. 단물 빠지면 뱉어버리는 모양새잖아요.
조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경우도 엄밀히 이야기하면 전시총감독이 없는 상태였어요. 특별전기획 공모 당선자만 있었을 뿐이죠(박남희 감독). 간판으로 외부에 사용은 하되 전체 전시를 총괄하는 권한이 없고, 임금도 그만큼만 지불했을 것이고. 전체를 컨트롤한 것은 도대체 누군가요? 보이지 않는 귀신인가요?
윤 물론 운영위원인 공무원들이겠지만 무언가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구체적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 대외적인 책임은 공모전 기획자가 하고 내부적인 권한은 사무국이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최 운영위원회든 귀신이든 도깨비든 보이지 않는 실세인 거네요. 우리 눈앞에는 감독이 있는데. 부산 비엔날레도 운영위원회가 있지만 그것을 위촉하는 것은 부산 조직위원회(부산시-지역미술단체)일 텐데, 이 사건에서 무책임하게 피해가고 있어요. 운영위는 절차적 정당성이나 합리성 없이 파행상태에 이르고 있고 조직위는 그것을 방치하고.
정 큐레이터가 가진 책임과 권한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 전문성으로 고유 권한을 인정받는 것인데 권한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정당성 확보가 안 되다보니 실행을 할 때 항상 문제가 제기됩니다. 예술감독을 선임하는데 절차적 정당성이 있었다면 권한 행사도 정당할 텐데 말이죠. 부정입학을 했는데 어떻게 학생회장을 하겠어요?
윤 작가 발굴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또 하나 짚고 넘어갈 일이 있어요. 과학자들도 연구가 중요하지만 그것을 발표하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겠죠.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있어도 그것을 골라내어 대중에게 알려주는 일이 큰 역할일 겁니다. 그런데 큐레이터가 자신의 전문가 영역의 일부인 이 일을 행정가들에게 넘겨버릴 때가 많아요. 연구자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연구자를 이끌고 제시하는 것이 유리하듯이, 행정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이 미술계에서 나와야 합니다. 기획 잘하면 끝, 글 잘 쓰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회에 납득시키는 것도 자신의 역할로 생각해야 해요.
조 너무 많은 예술행사와 비엔날레가 있어서 집중하지 못하게 마련이죠. 결국 예산은 낭비되고.
정 비엔날레가 넘쳐나니 엉망진창으로 진행되어도 그 때 감독은 “비엔날레 감독”이라 명함에 새기고 다닙니다. 제대로 된 인력을 제대로 된 곳에 썼으면 합니다.
조 외부에서 본다면 미술계 내에 뭔가 알력이 있는 것처럼 비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미술계 내부 문제 외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지자체가 비전문적이고 지나친 의욕을 가졌다든가 할 때 더욱 그렇죠.
정 한 지자체에서 비전문적으로, 하면 된다 식으로 행사를 치르고 나면 다른 데에서도 ‘쟤네도 별거 없는데 다 하던데... 쟤들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거 뭐있어’하면서 행사를 무리하게 끌고 가게 되죠. 어떤 비엔날레가 되었든 조직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주최 주관하는 역량이 되지 못한다면 접었으면 좋겠어요. 비엔날레가 좀 줄어들었으면.
4. 핫이슈가 된 문화재청 – 숭례문 부실복원, 반구대 암각화 보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외유, 일본 도난불상의 국내유입, 문화재청장 경질
조 사실 올해 큰 사건 중의 하나가 몇 년에 걸친 숭례문 복원 사업이 마무리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경사이니만큼 행사도 크게 하고. 또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가지 못하도록 문화재청이 전례없이 거부를 하는 등 신문지상에 문화재청이 계속 등장했죠. 최근 들어 문화재청이 가장 홍보가 잘 되었던 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와중에 얼마전 갑작스럽게 문화재청장이 경질되어 12월13일 현재 문화재청장은 공석으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최 경질 사유에 대해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기사를 봤을 때 표면적으로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이 반구대 암각화 문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 숭례문에 대해서는 문화재청장이 책임져야 할 일이 사실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 숭례문 부실복원 사건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고 싶네요. 불났을 때 슬퍼하고 다시 만들어서 기뻐하고. 그러다가 단청이 박락되었다고 하고 나무가 갈라졌다고 하고... 사실상 단청은 칠할 때부터 얘기가 있었습니다. 국산으로 해보겠다고 얘기했는데 사실 국산 단청 안료라는 게 없습니다. 급히 일본 단청안료를 가져다 칠하느니 단청을 칠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놔뒀어야 합니다. 현재 일각에서 전통안료 되살리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사실 목조 문화재들은 단청을 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공사 기한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어 하루 150만원씩 위약금을 물어가며 원래 공기보다 조금 더 했다고 하긴 해요. 나무에 금이 가고 문제가 된다고 하니까 대목장이 “나는 성심껏 했다. 장인들이 노력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던데 사실 이해는 됩니다. 돈만으로 일한 분들은 아니죠. 그런데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했어도 사적인 층위로 문제가 해결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대목장이 “사재를 털어서..” 운운 했을 때는 그건 아니다 싶었어요. 어쨌든 숭례문에서 청장의 경질까지 문화재 정책에 대한 총제적인 문제를 드러낸 한해였다고 보여집니다.
정 정책에 관한 문제로 집중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문화제 제도가 생긴지 50년 되었는데. 단청안료 하나 개발 안하고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산이나 인원 늘릴 생각보다는 그런 것을 먼저 해나가야죠. 국산 옻이 귀하다며 조달청이 매년 사서 비축한다고 하던데, 사실 시대에 맞게 개발해야 될 때입니다. 단청안료도 전통 방식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고 새롭게 개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해요.
조 안료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연구가 덜 되어 있어요. 하나씩 개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의 빨강과 라파엘로의 빨강은 달라요. 우리 안료도 그렇죠. 옛날 것을 그대로 알아내는 건 불가능해요.
조 숭례문 단청 문제로 시끄러울 때 청장이 경질되었죠. 그러고 나니 숭례문 문제가 조용해졌어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책임으로 미뤄지면 끝이고 더 이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정 문화재청장 경질에 관해서 말들이 많지만... 공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공적인 일을 맡는다는 것은 일종의 훈련이나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청상과부가 변절하는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미술 하는 사람들이나 학자들이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 편협한 외골수처럼 보이지 않도록 고민을 좀 해야 하구요.
최 반구대 암각화 문제에 대해서는 문화재청에서 지난 10년간 댐을 반대하여 수위를 낮추자고 주장했었고, 이번 문화재청장이 되고 나서 40미터 투명 유리막을 설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죠. 사실 일방적으로 발표되어 어떻게 결정난 것인지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좌우간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는데 공룡 발자국이 나와 버린 거예요. 정부측에서 변 청장에게 연락해서 80미터로 늘리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 때 변 청장이 ‘아니 그럼 또 저쪽에서 발견되면 120미터로 늘릴 거냐, 못하겠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경질이 된 거죠.
정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이기는 한데 반구대 + 숭례문 + 석굴암 문제가 차례로 불거졌습니다. 석굴암 얘기가 나오자 원래 그랬다는 얘기까지 있구요. 어디에나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귀신들이 석굴암을 관리하고 숭례문을 복원하고... 지금까지 해오던 귀신들은 삭 숨고 변 청장만 왔다갔다 하다가 걸렸어요. 기존의 관료들은 책임지지 않고.
윤 문화재와 관련해서 또 다른 사건이 있어요. 연초에 도난당한 일본 불상이 국내로 유입된 사건도 있었죠. 일본에서 불상반환 요청이 들어오고. 일본에서도 기사가 계속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일본에서 돌려달라고 하니까. 절 입장에서는 왜구가 가져간 것이니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정 일본 막사발 개인소장 전시를 보면서 우리에게 천대받던 막사발이 애지중지 대접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묘한 느낌을 받았어요. 우리가 천대하는 걸 귀하게 여겨주면 돌려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죠. 버릴 땐 언제고. 입장은 다르지만 불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반출이 되었든 찬탈이 되었든...
윤 문화재를 보는 눈을 크게 둘로 나누면 국제주의라고 해서 다양한 인류 문화를 전체적인 입장에서 보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 함께 보호하자는 입장과 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빼앗긴 민족의 유산들을 돌려받자는 주장입니다.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로 국제주의로 가기 힘들기는 하지만 도난 불상 같은 경우는 국제주의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범죄는 범죄로 다루어 처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 국외반출 해외문화재를 가져오고 싶다면 우리도 정당하게 해야 되는 면도 있구요. 사 오는 것이었다면 모를까 도난 물건은 곤란하죠.
정 민족주의적, 국제주의적 시각에 대해 문화재청이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문화재 행정 정책이 국소적인 부분에 머무르지 말고 국민의 뜻을 수렴해서 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윤 문화란 시대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도태되는 건 사라지고 하게 마련이죠. 단청도 단순히 옛 것을 고집할 수는 없어요. 살린다면 어느 시대로 살릴 건가요. 청화백자도 거기에 그린 청화 안료는 수입품이었어요. 과도한 국수주의는 배격해야 합니다.
최 덮어놓고 보존하자는 생각, 근대문화 유산은 특히 끔찍한 생각이에요.
조 우리가 너무 개발 논리에 시달려서 그렇습니다. 삶의 공간이 자본화되니까 그걸 거부하는 방식이 문화재를 지키는 쪽으로 기울게 된 것이죠. 근대문화유산의 경우 도시개발 전체와 맞물려서 조화롭게 지켜져야 합니다.
5.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시내 진입 - MMCA 서울관 개관
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개관도 최근 들어 미술계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였죠. 간단히 몇 마디씩 해주시죠.
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하고 나서 이러쿵저러쿵 미술계 내에서 상당히 말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이제 막 열었으니 이제 이삼년 지켜보고 그때 가서 비판을 하더라도 하고 다시 점검했으면 해요.
최 현재 인원이 너무 부족해요. 아직 10월에 35명 준 인원도 다 못채웠는데... 그것도 한참 모자란 인원이죠.
정 서울관에 대해서는 두고 봐야 됩니다. 다 개관한 것도 아니고 가개관 상태로 봐야 합니다. 왜 그리 서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큐레이팅의 역량과 전문성 강화를 좀더 신경썼으면 좋겠고, 불미스런 얘기들이 자꾸 나오는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과천 골짜기에서 시내로 입성해서 처음 시작한 거예요. 자동차 엔진에 열도 안 받았는데 너무 밟는 거 아닌가 싶네요.
최 연극 체육 무용 등 육체예술인 들의 경우 그들끼리 밥그릇싸움이 치열할 때도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불만은 있을 수 있으나 큰 덩어리에서 미술계 전체의 경사잖아요.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건국 이래 처음으로 시내 복판에 미술관다운 미술관(인력 예산 형편없지만)을 얻게 되어 축제 같은 분위기인데 먹이다툼 권력다툼을 하다니... 반성해야 합니다.
조 일단 그렇게 아름다운 미술관을 우리도 가질 수 있다는 데 대해서, 그곳에 가 있으면 굉장히 흥분됩니다. 그곳에서 수업을 하면 학생들 얼굴이 환해지고 자랑스럽다는 얘기를 하죠. 아줌마들이 아침부터 일찍 와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개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술관이 시민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것 사실인 듯해요. 관광 온 외국인 접근성도 좋아서 한국 현대미술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장소이기도 하구요. 안에 휴식공간이 없어서 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해도 나가야 되는데 나가면 못 들어온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이제 조금씩 개선되겠죠. 잡음들이 있어서 조금 걱정이 되지만 현대 미술관으로서 잘 지켜지고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최 지난주에서 이번주 사이 미협과 미술평론가협회 등에서 관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었는데, 요구 조건은 명확하지 않아요.
조 서울관이 개관됨으로서 서울관 뿐만 아니라 미술관 전체가 좋아진 면도 있습니다. 과천에 아카이브 공간이 생겨서 공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리해졌습니다. 공간 분할을 통해 미술관 전체 지형도가 발전되니 시민 향유 이외에도 미술계 내부 학술적 발전에도 영향을 미치죠, 미술계 발전을 위해서도 고무적인 사건입니다.
정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12월10일 통과되었다고 해요. 이제 미술품에도 양도소득세가 시작되는 등 내년에도 미술계가 조용하지 않을 듯합니다. 많은 부분에서 내실을 기하고 발전할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