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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계 雜담 - “외유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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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국외반출 문제로 도마에 오른 문화재 관련 기관의 불협화음

참석 : 정준모(미술평론가), 조은정(미술사학자), 임종업(한겨레신문 기자), 윤철규(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일시 : 2013년 8월6일 화요일 10시


<사건경과>

2001.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토머스 캠벨 관장이 한국에서 ‘신비한 황금의 나라, 신라황금전’을 관람.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을 본 후 전시 유치 의사를 밝힘
2008.~

수 년 간 국립중앙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특별전 기획 논의

2013. 3. 국립중앙박물관은 미 메트로폴리탄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2013년10월29일~2014년 2월23일)을 위해 국보 제83호를 포함한 26점의 국가지정 문화재 해외 전시 허가를 문화재청에 요청
2013. 4. 문화재위원회에서는 반가사유상 등 박물관이 해외 반출 신청한 문화재에 대해 조건부 가결을 달아 반출 허가 결정을 내림
2013. 5. 문화재청장이 기자간담회에서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이 1957~2008년 8차례나 해외로 나갔고 유물 훼손이나 도난 우려가 있다”며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이 불상보다 크기가 10㎝ 정도 작은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83.2㎝)을 가져가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 관장이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전시될 유물들이 작아서 문제”라고 난색을 표하자 “큰 유물 전시를 원한다면 석굴암을 떼어 가 전시하라”고 말함.
2013. 7.29 문화재청장,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이 잦은 해외 전시로 훼손 우려가 있다”며 반출 불가를 박물관에 공식 통보.
2013. 8. 9 문화재청,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열리는 '황금의 나라, 신라'(Silla, Korea's Golden Kingdom)특별전을 위해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반출을 허가했다고 밝힘.(국보 195호 토우장식장경호는 제외)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요청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적극적인 중재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짐.



조은정(이하 조) : 우리가 이 미술계 잡담을 시작하면서 개선을 위해서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하자 했던 것을 한번 짚고 이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해요. 미국으로 한국 국보가 나가서 전시되는 계획 아래 양국 문화계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연초부터 일종의 잡음이라고 할까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낸 리스트에 대해 ‘다 나가야 하느냐’는 얘기들이 오갔습니다. 진원지는 문화재청으로 알려졌구요. 전시 기획 주체에서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여 나가는데, 문화재라는 이유로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면도 보여졌다고 생각됐어요. 전시에서의 전시 주체의 독자성, 우리 문화재를 보는 눈, 미술의 해외 전시에 대한 인식 등 몇 가지 문제를 뽑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 기자님이 오셨으니 상황에 대해 간단히 말씀을 해주시죠.

임종업(이하 임) : 미국 메트로폴리탄에서 열리게 된 ‘황금의 나라, 신라’ 전시는 국립중앙과 메트로폴리탄과의 교류로 인한 것이였어요. 캠벨 관장이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신라 전시를 하면서는 이 반가사유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을 한 거죠. 국립중앙박물관 쪽에서 오케이를 했던 것이구요. 하지만 협정에는 문화재청의 허가 여부에 따라 전시 변경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있게 되니 그 점은 별도로 하겠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 사이인데... 중요 문화재를 해외에서 전시할 때는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문화재 관련 원로들로 구성된 자문기관인 문화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게 되구요. 밖으로 나가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말이죠.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은 조건부 가결, 즉 이번에는 박물관끼리 약속해서 어쩔 수 없으니 내보내고 다음번에는 안했으면 좋겠다는 것으로 결정되었죠. 문화재위원회에서 곤혹스러운 것은 국보 83호의 경우는 자주 나갔고 한번 나가면 몇 달 씩 있으니 시달리는 문화재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죠. 곤혹스러웠던 것은 사전에 박물관 쪽에서 통보를 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거나 했으면 모르겠는데 협정을 체결한 후 리스트를 디밀어 버린 거죠. 노(No) 하기도 그렇고. 문화재청장이 이번에 태클을 걸었던 것은 제가 볼 때는 문화재청장 개인의 의견은 아니었다고 봐요. 조건부 가결 이면에 국보 83호를 내보내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태클로 표현된 것이에요.

윤철규(이하 윤) : 미술관 박물관이 주도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국보급 유물의 경우는 정치적인 또는 문화사적인 배경으로 외유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번 경우는 과거 밖으로 나갔을 때의 정치적 배경 같은 것은 없는 듯해요. 과거에 경주에서 보고 메트로폴리탄 사람들이 원해서 박물관에서 2년 전부터 진행되었다고 하니 상당히 오랜 기간 진척시켜 온 것이죠. 모양새가 나쁜 점이 뭐냐면, 문화재청의 문화재 정책은 문화재 보존 뿐만 아니라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고 외국에 알리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행정적으로 집행되어야 하는데 행정 프로세스 상에서 문제를 보여준 점입니다. 이 논의가 2년 전부터 되어 왔다면 사전조율이 되어서 어차피 나가야 될 물건이라면 포장까지도 잘해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문화재청이 할 일 아닐까요.

: 문화재청과 박물관의 관계는 상하관계가 아닙니다. 문화재청은 별청이고, 박물관은 문광부 소속이라 라인이 다르죠. 또 박물관의 경우는 예술품 전시 교류에 초점이 맞춰지고 문화재청은 보호에 초점이 맞춰지니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준모(이하 정) : 문화재 정책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문화재법에 의하면 계승 및 발전이 궁극적 목표인데 문화재청은 너무 보존적인 계승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에 문을 열고 난 이후에 중앙박물관으로서의 과도한 자신감이랄까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고 봐요. 문화재청과의 긴밀한 협조가 아쉬운 부분이 드러났죠. 신임 청장님이 ‘계승’ 쪽에 지나치게 중점을 둔 부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실 문화재청으로서는 “최종판단 기구는 문화재청인데 박물관이 문화재청과 충분한 협의나 조율 없이 니들 맘대로 내보내냐”는 서운함 + 괘씸죄가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되죠. 살짝 감정적으로.

: 이유를 둘로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해요. 첫 번째는 이 조치가 보호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 하는 것이에요. 그간 지나치게 ‘활용’으로 나갔었다는 것이죠. 학자들 입장에서는 보호와 전승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또 하나는 일의 조율에 있어서 업무 협의 시스템 부재가 드러난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 조 선생님 말씀처럼 기획 주체로서의 큐레이터 역할도 무시된 면이 있습니다. 기획했을 그 무렵에도 보존이라든가 해외전시의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기 때문에 리스트에 넣은 것일 텐데 말이죠.

: 전시를 기획하다 보면, 전시 주제 하에 꼭 필요한 작품이라 넣었다가 훼손을 걱정하는 소장자들 때문에 못하는 일이 꽤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최근 준비한 전시에서 역사성을 생각하면서 나눔의 집 할머니들 작품을 넣고 싶어서 접촉했었는데 그쪽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 결국은 훼손 우려 때문에 이사회에서 불가가 되었어요. 나눔의 집에 가서 보는 경우가 적으니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또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위치시켰을 때 더 가치가 드러나고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 분들은 후손들에게 전승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 ‘러시아 천년의 삶과 꿈’ 국내전시를 위해 러시아 국보들을 빌려올 때 러시아 문화성에 일일이 반출 승인을 받아야 했었어요. 프랑스에서는 근대미술품도 다 승인을 받아야 되고, 이태리는 반출이 더 까다롭습니다. 어쨌든 이번에 반출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실무자들끼리 사적으로라도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전혀 없었을까요?

: 글쎄요. 박물관 큐레이터와 문화재위원이나 문화재청 실무자가 사전 의견조율은 전혀 없었던 듯합니다.


“문화재위원회의 조건부 가결 이면에는 국보 83호를 훼손 우려가 있었고,
문화재청장이 이러한 정서를 반영하여 반출을 거부한 것”(임종업) 


: 지금까지 문화재와 관련된 것들은 문화재위원회의 위원들이 결정했죠. 개인이 땅 파다가 유물이 나왔을 때도 사유재산을 제한하는 내용이 문화재위원회에서 결정되면 그에 따라야만 했어요. 대단한 권력이죠. 그런데 사실 문화재위원회는 자문기구일 뿐이에요. 그런데 사실상 문화재위원회의 이름을 빌어 정책을 결정해 왔죠. 그런데 이번에는 행정기관이 문화재위원회의 결정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도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보여져요. 차후에는 개인 재산권과 관련된 결정을 했을 때에도 번복될 여지가 있지 않나 싶은 거죠. 존중받아왔던 문화재위원회의 권위와 판단이 깨지고 앞으로 탄력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보인다면, 보존 측면에서도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 문화재위원회의 성격도 사실 많이 변화해 왔습니다. 원로에 의한 소수의 최종 심의기관 같은 모양이었다가 유홍준 청장 시절 수를 급격히 늘려 중견이 늘었고, 최근에는 대학교수여야 한다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이 생겼고... 문화재위원회 위원 스스로 역할 규정에 문제를 제기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대 의견을 내다가 행정기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직서를 내신 분도 계시구요. 국가가 급여도 주지 않는데... 문화재정책에 있어서 사적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부딪힐 때 그것을 사적 존재인 문화재위원이 공적인 조율을 해서 최종 결정하고 국가나 개인이 수용하는 입장이다 보니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문화재청장의 이번 태도를 그래서 다소 위험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다만 미묘한 점이 있는 게, 애초에 문화재위원회 측 조건부 가결에 있어서 기본 정서는 내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위원회 결정을 번복한 것으로 보이지만 문화재청장이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거부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 때문이죠.

: 혹시 이런 점은 없나요? 우리나라가 G20 정상회의도 열었고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잘 버텨왔으므로 이런저런 자신감이 사회적 분위기로 조성되었던 거죠. 세계 3대 미술관에서 요청하는데도 우리 판단에 의해서 거부할 수 있다 라는 것. 그런 자신감을 보여주는 케이스는 아닐까요? 과거라면 미국에서 요구하면 거절은 언감생심, 기꺼이 보냈을 거 같은데요. 그것도 3대 미술관이라는 ‘메트’인데.

: 계속 이런 생각이 나는데요, 고희동이 50년대 이전에 미국을 둘러보고 쓴 <미주별견기> 같은 글을 보면 미국이 우리나라를 너무 모른다고 탄식하는 내용이 있어요. 중국이나 일본 유물들은 잘 알면서 우리 문화유산을 모르고 있으니 ‘선전’해야 한다고 말이죠. 10여 년을 원하다가 미국에서 한국 국보전이 이뤄졌죠. 이후 ‘한국미술 5천 년’ 전 등 끊임없이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나갔었어요. 못살지만 우수한 민족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홍보하는, 하나의 도구 역할을 한 거죠, 문화재가. 이제는 좀 먹고 살고, 문화적 자신감이 있는 상태에서 다시 메트로폴리탄에서 국보들을 보여주고자 할 때 복잡한 심리가 생겨나게 된 것이죠. 굳이 뭐 이제는....

: 누가 칼럼을 쓴 데에 “와서 보라 그래라”라던데(웃음). 예전에 우리 문화를 보여 줄 때는 제3세계 국가로서, 말하자면 파푸아뉴기니 엑스포에 생활모습을 보여주듯 그런 측면에서 다뤄진 감이 있었잖아요. 요즘은 그렇지는 않은 듯해요.

: 다른 나라 미술품을 들여와서 전시할 때 보면, 허접한 게 아니라 좋은 작품들을 가져오길 바라잖아요.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이러한 미술품들을 보여줌으로써 문화적 교류가 생겨나는 것이죠. 한쪽이 콤플렉스를 가지게 되지 않고, 국내에서 다른 나라의 좋은 작품을 들여와서 보고 이해하고 하는 것이 국가 간의 중요한 문화적 교류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 문화재위원회에서 작품의 외부 반출을 반대할 때 주요한 이유가 보존 문제인데, 문화재위원 중에 금속 유물 등 각 분야의 보존 전문가가 포함된 건 아니잖아요. 문화재위원 안에 전문가가 없다면 전문가 회의를 통해 위원회에서 그것을 근거로 판단하도록 해야 되는데, 대개는 그게 아니라 막연히 “나가면 훼손되지 않냐”라는 데에 문제가 있어요. 어떤 건 나가서 훼손되도 괜찮고 어떤 건 안 괜찮냐는 말도 나올 수 있으니 근거가 될 만한 가이드라인과 논의구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이제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이 ‘자문’이고 최종 결정은 따로 있는 것이 정식화 되었다면 문화재위원회에서도 운송, 포장, 전시, 보존과학 각 분과의 전문위원 제도를 만들어서 전시를 위해 문화재가 움직일 때의 위험도를 전시 공학적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도록 좀 더 확대해야 된다고 봅니다.


“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이 문화재청장의 이름으로
번복되었다는 사실이 향후 문제가 될 듯”(정준모)


: 설득력의 문제에서 그러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 해외 전시를 통해 문화재가 훼손된 전례가 있습니다. 그것도 메트로폴리탄과 관계가 있는데, 2001년에 호암미술관 소장의 금동관 날개 부분이 꺾였었죠. 

: 문화재라는 게 늘 그렇습니다. 전시하면서 가지게 되는 리스크라고 할 수 있어요. 수복보존 기술로 원상복귀 못할 정도로 망가뜨린 건 아닙니다. 문화적 쇄국주의라고 불러야 될지, 외국 거는 빌려 오면서 나갈 때는 못나가게 하고..... 외국 박물관에 가면 아시아 국가들의 유물을 전시하는 곳들이 많은데 대개 중국과 일본관은 질적으로나 규모로나 화려하고 좋은데 한국관은 황학동 뒷골목에 온 것 같고 요즘 만든 달항아리나 좀 있고 하는 경우가 많아 창피하다는 말을 들어요. 중국관과 일본관에 비해 한국관이 초라하다고 하면서 문화재 반출은 또 안 된다고 하잖아요. 빅토리안 알버트 박물관이나 휴스턴 등은 정말 우리 것만 허접해서 중국과 일본에 낀 느낌이에요. 외국 여행갔다 굳이 우리 문화재 보러 찾아가서는 자존심만 상하고 옵니다. 정책이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방향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아요.

: 문화재를 어떻게 여길 것인가가 문제예요. 우리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그냥 가지고 있다가 땅 파서 나온 상태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잘 닦아서 많이 보여주는 것 중 어떤 것을 택하느냐는 것이죠. 근대 이후 문화재에 대한 두 가지 면의 정체성이 혼재된 듯합니다.

: 우리나라에서 문화재는 거의 항상 보존에 치우쳤다고 봅니다. 일제강점기 수탈 약탈의 역사로 인한 피해의식 때문인지 잘 지켜야 된다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된 거죠. 무형문화재 지정 50주년 기념 전시 때 느꼈는데, 우리의 문화재가 새로운 시대를 조우할 적응력이 없습니다. 무형문화재의 95퍼센트가 극보호대상이에요. 유형문화재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존도 중요하지만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오늘날 현대 사람들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열린 문화재가 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경복궁 야간개장 같은 경우를 보면 열린 태도를 보이는 것 같은데, 대부분의 경우는 상당히 폐쇄적이에요. 활용, 계승 쪽으로 문화재 정책이 변화할 때에요. 시대와 같이 호흡하는 문화재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문화재위원회에서 보존과 활용 측면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하는데 어떤 철학이 없어 보입니다. 원형보존 원형보존 하면서도 경복궁 복원공사를 하면서도 조선총독부 후생관 식당 연금매장 건물인 현 고궁박물관은 없애지를 않잖아요.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하다보니 건청궁 자리에 있던 일제시대 총독부미술관 건물을 없앴죠. 하지만 총독부미술관도 나름대로 근대문화재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준대로 하자면 고궁박물관도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원래 그 자리는 사복시 자리입니다. 임금님이 사용하시는 말과 가마를 관리하는 관청이지요. 모두 복원하겠지만 아마도 순서에서 밀린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복원이 되겠지요. 궁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궁궐이 회의나 행사의 장소로 사용하는 것도 활용 측면에서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이런 활용을 할 때도 심의를 합니다. 어떤 경우는 허가되고 어떤 경우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이 경우도 문화재의 해외 전시와 마찬가지로 ‘문화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함의에서 기준이 마련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기본적 국가의 방침이 있고 그 틀 안에서 결정되어야지 ‘그때그때 달라요’가 되어선 안 되지요. 그렇게 결정될 때 그 위원회의 심의는 결정권, 절대적 권한을 가지게 될 수 있구요.

: 문화재위원회가 중요한 결정을 한 것은 맞습니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같은 경우 성격이 다른 유물들과는 달라서 프랑스로 치면 모나리자 정도라고 여겼던 것이죠.

: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성격이 있죠. 저의 경우 어려서는 교과서를 통해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었고, 문화재 공부를 하면서는 기술적으로도 완벽하고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더해 일본 광룡사 소장 반가사유상과의 유사성이 있는데, 일본의 반가사유상은 해외에 널리 알려져 프랑스에서조차 지구가 멸망해도 그것만은 보존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판인데, 우리가 원류인 것이 분명한, 비슷한 도상을 가졌음에도 그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구요.


“자국의 유물을 해외에 알리는 것은 중요한 문화적 교류.
어떤 것을 내보낼지 가이드라인이 정해져야”(조은정)


: 귀한 문화재 중에도 나갈 수 있는 것과 못 나가는 것이 있죠. 우피치의 비너스의 탄생은 나무판에 그려진 것이라 훼손 우려가 커서 해외로 못 나갑니다. 모나리자는 그걸 보러오는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못 나가죠. 이번 경우는 꼭 그런 경우라고 볼 수 없는데다가 메트로폴리탄 관장이 83호 반가사유상이 꼭 올 수 있도록 해달라며 대통령한테 편지도 보냈다는데 이걸 준비하는 미술관으로서는 반가사유상 빠진 신라전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여길 테죠. 흥행 측면도 분명이 있습니다. 몽유도원도가 국내에 왔을 때 전시 기간 중 일부만 전시되고 일찍 일본으로 되돌아 간 적이 있잖아요. 긴 전시기간이 문제가 된다면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운송 중 파손 우려가 가장 클 텐데, 60,70년대를 떠올려 가다가 망가지면 어떡하나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현재 제대로 된 운송업체들의 기술력은 상당합니다. 독일 등 유럽에서 백여 년 미술품 운송을 전문으로 해온 최상의 운송업체에 요구하면 기술적 문제는 없다고 봐도 됩니다.

: 현재로 봐서는 나가건 안 나가건 손해날 건 없는 것 같아요. 안 나가더라도 자존심을 지킨 셈이 되고, 나가게 되면 그만큼 외유가 논란이 되는 귀중한 작품을 큰 맘 먹고 빌려준 것이 되고. 사실 외국에 국내 문화재를 전시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 외국에 우리 문화를 알리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이건 대단히 중요한 기회라고 볼 수 있죠.

: 그건 맞습니다. 다만, 아까 얘기했듯이 문화재가 나가고 말고 표면적인 문제 외에, 시스템이 없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안 나가는 게 보존 측면에선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안 나갈 수는 없으니, 기준과 원칙을 세워야죠.

: 외국의 문화재위원들 규약을 보면.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가능하지만 원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토우 흙으로 만들어 저화도로 구워진 작품은 가급적 반출을 억제하지요.

: 내부 가이드가 없다고 하니 그게 놀랍네요.

: 나름의 기준은 있었겠지만 말이죠.

: 명문화 된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 국가지정문화재는 반출이 불가하므로 지정문화재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국보 지정이 안 되면 심의대상이 안 되는데, 그 중에서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외국으로 나갑니다.

: 개인의 경우는 더 심해요. 자기가 가진 것이 문화재 지정되면 귀찮으니까 아예 신청을 안 하게 되죠.

: 문화재 관련 정책 법률이 내부에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통째로 들여왔는데, 사회가 커지면서 이제 신축성이 필요해졌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문화재 중에 모나리자 급이라고 한다면 1세기에 한번 정도 나가는 게 맞습니다. 근데 내부의 함의 없고 가이드도 없어요. 뭐는 안 되고 뭐는 되느냐라는 얘기가 나오게 되는 거죠. 우리 실정에 맞는 규정이 만들어 질 때가 된 것입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지자체 교육위원회에서 보관하도록 되어 있는데, 일본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최근 그 유물들을 폐기처분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사금파리 하나하나 가치 있는 유물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미국 유명 박물관의 요청에도 거부할 수 있다는,
문화적 자존감을 보여주었다고 볼 수도 있었을 듯”(윤철규)


: 문화재의 보존 계승에서 활용 방안으로 나가고자 하면 경계가 없어지게 되는 면이 있어요. 낙선재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을 재운 것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죠. 서양의 성 체험을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우리 궁으로 가져왔어요. 캐슬과 팰리스는 다른 건데.

: 실적에 욕심이 났던건지 과도한 활용이 된 것 같습니다. 활용에 대한 것도 매뉴얼을 고민해야 합니다.

: 저는 경복궁 야간개장의 경우는 몇몇 문제는 있었지만 잘 한 행정이라고 봅니다. 동궐에서 하룻밤 잔적 있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어쨌든 문화재라는 것은 활용을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특히 건물은 사용해 주는 것이 오히려 보존에 도움이 되지요. 어떤 식으로 활용할 것이냐는 원칙을 정해야죠.

: 나름대로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인 함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일반 국민들도 문화재의 활용이나 보존에 관해 의견에 대해 얘기하고 공론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21세기에 맞는 문화재 정책이 필요한 시기예요.

: 국보 195호 토우장식장경호,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등 중요한 문화재의 해외 박물관 전시로 문제가 불거졌지만 결국 매뉴얼 없는 문화재 정책이 문제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프닝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삼아 문화재의 해외 반출 등에 대한 심의에서 객관적인 가이드라인이 바탕이 되어야 겠습니다. 전시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전시할 작품의 리스트업을 하는 고유 권한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공유되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이번에 사전 협의 부족 문제가 컸지만, 국립중앙박물관조차 주체적인 결정이 어렵다면 다른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전시 기획에 있어서의 자율성을 보장받기 어려워진다고 봅니다.

: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을 할 때 유물에 대한 보존 문제까지 모두 고민을 해야 됩니다. 그게 없으면 다른 거 가져가라 더 큰 거 가져가라 이렇게 밖에서 간섭하는 상황이 되풀이 될 거예요. 기본적으로 전시 컨셉을 잡는 큐레이팅, 전시 공학의 영역에 대해서는 전문성으로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 이 자리에선 제가 이질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웃음).

: 물론 하나가 불가할 때는 대안을 가지고 있겠지만 외부에서 “그거 말고 석굴암 본존불을 떼어가지 그러냐”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은 과하다고 보는 거죠.

: 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전에 목록을 만들었다는 것이 문제예요. 사전에 조율이 전혀 안 되었다는 거죠. 조율 과정 없이 문화재청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박물관이 독자적으로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에 대한 얘기입니다.

: 아마도 전시는 박물관 고유의 업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외국에는 국립 박물관에 ‘헤리티지 오브..’가 붙어서 문화재청과 같은 유물 관리부서의 소속인 경우가 많지만 우리 국립박물관은 그렇지 않죠. 문화재청 입장에서는 독자적인 국립박물관들의 노선이 껄끄러울 겁니다. 외국에 나가기 어려운 문화재가 있고 그것을 꼭 어떤 교류협력 전시에 해당 유물을 포함시키고 싶다면 큐레이터가 사전에 문화재청 쪽에 열심히 뛰어다니고 해답을 구해야 했던 거라고 봐야죠.

: 그런데 조율 없이 리스트를 던졌으니 좀 껄끄러웠겠군요.

: 박물관과 문화재청의 힘겨루기로 보이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유물이었다면 문화재위원을 설득하고 수없이 사전에 얘기했어야 합니다. 담당 큐레이터로서 성실하게 기본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어요.

: 앞으로 어떻게 수습될까요?(방담이 진행되던 6일에는 아직 문화재청이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은 상태였음-편집자주)

: 청장이 이 상황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어요. 이렇게 무리가 있는 일을 왜 그렇게 했을까요?

: 행정 관료 출신이 아니라 학자 출신이어서 행정절차보다는 문화재 보호 측면을 강조하다 일이 커졌던 것 같습니다.

: 위원회로 재심의를 요구한다든가 하는 행정절차가 필요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사안에서 박물관장이 직접 개입하지 않게 되었던 것도 조금 이상해 보였습니다.

: 미술사학계에서 동갑인 두 분이 사실 문제의 중심에 서 계셨네요.

: 문화재에 대해서 할 얘기가 무척 많은 듯합니다. 앞으로 전시를 위한 문화재의 반출 외에도 문화재 정책에 대해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리 /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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