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조은정, 윤철규, 정준모, 최열
일시: 7월 26일 오후 2시~4시
장소: 한국미술정보개발원 회의실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미술품
윤철규(이하 윤); 지금 전두환 전대통령 추징금 환수에 나선 검찰이 압수 미술품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고 하죠. 국민들은 전 전대통령 일가가 가지고 있던 고가의(?) 미술품을 압수해서 추징을 할 수 있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요.
정준모(이하 정); 자신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면 별로 귀담아 듣지도 않으면서 전문가라고 여기저기 불려다는 과정에서 모 언론사에서 지난 7월 19일 입수했다는 압수 미술품 목록을 봤습니다. 그런데 사실 별 게 없더라구요. 뭐 루시앙 프로이드다, 천경자다, 김종학이다 하면서 압수미술품 총액이 수 백 억 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떠들었던 검찰이나 언론이 글쎄요 어떻게 말을 바꾸어 나갈지 궁금합니다.
현재 약 300점을 압수했다고 하지만 그 리스트와 그간의 언론보도를 통해 살펴보면 그 중에서 1/3은 아르비방 관련 작가들을 포함한 90년대 작품들이고, 1/3은 아마도 작가나 작품제목을 밝힐 수 없는 소위 장식용, 사무용비품으로 분류될 만한 액자류 그리고 TV에 나온 압수과정에서 나왔던 불상이나 불두 등 흔히 말하는 서화, 골동류와 민화 등등이 1/3 정도 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됩니다. 따라서 100억이다 뭐다 말들이 많았지만 300여 점 중 쓸 만한 건 100점 정도. 나머지는 뭐 싸구려 액자 수준이라서. 대강 줄잡아 최대로 계산해도 5억 여 원이 될까 말까. 특히 서화 골동류의 경우 대개의 경우 진품보다는 가품이 많은 경우가 많죠. 그런 점에서 마음먹고 모은 소위 “콜렉션”은 아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윤; 미술품을 압수수색 결과물로 제시하면서 비자금 은닉을 목적으로 미술품을 사들인 것 아니냐는 의혹을 만들게 되는데, 이런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니 미술 작품을 자주 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조금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장남 전재국 씨가 경영하는 시공사 사옥 등에서 압수한 미술품이 다수라서, 아르비방 작가들과의 연관성도 얘기되고 있구요(시공사는 1993년 말부터 1996년 말까지 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흐름을 당시 젊은 작가들의 개별 화집을 통해 조망하는 '아르비방 시리즈'를 펴낸 바 있다).
시공사 아르비방 시리즈
정; 시공사에서 아르비방 도록을 만들 때 저도 잠시 참여 한 적이 있는데 92년 카셀 도큐멘타에 갔더니 다른 나라에 비해서 한국 작가 화집이 정말 없더라구요. 당시에는 뉴스에 나오기도 했던 전** 외에 한**, 김**, 이**, 박** 등의 사람들과 함께 큐레이터 구락부라는 모임을 만들어, 주로 동숭동 오감도 등에서 만나 현대 한국 작가들의 도록을 만들어 작가들의 세계진출을 모색해보자는 얘기를 했죠. 그래서 몇몇 미술전문출판사들에 제안했지만 손해날 것이 뻔 한 기획이라 성사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당시 돈이 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음악세계를 인수해서 1990년 문을 열었던 신생출판사 시공사에 제안을 하게 된거죠. 결국 아르비방 도록 시리즈를 내게 되고 그걸 계기로 전** 도 그곳에서 적을 두게 되었지요. 이 시리즈는 어마어마한 적자를 내면서 55명으로 끝났지만 지금까지도 이런 정도의 질과 수준을 담보한 도록이 없다는 점에서 대단한(?) 기획이었다는 점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윤; 전재국씨는 홍대 앞 미술서점 아티누스를 내기도 하고, 화랑을 열기도 했죠. 전두환 전대통령의 장인 이규동씨의 성강문화재단 부설기관인 한국미술연구소, 시공아트스페이스 등도 전 씨 일가와 긴밀히 연결된 미술 관련 기관이고.
조은정(이하 조); 제가 알기로 시공사는 아르비방 시리즈를 내기 이전에 이미 미술사를 전공한 친구를 출판사에 고용하기도 했었어요. 아마도 처음부터 미술출판이나 그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때문 아닐까요.
정; 전재국씨도 그렇지만, 차남 전재용씨도 뉴욕에서 프랫대학원에 적을 두고 두어 학기 다닌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중요한 일 또는 사건이 있을 때 마다 왜 미술이 매번 동네북이 되느냐는 겁니다. 돈 백억 빼돌려 은닉한 사람과 갖고 그 돈으로 그림을 백 억 어치 사서 갖고 있는 경우 것을 현금보다 그림으로 갖고 있는 경우 훨씬 더 많은 비난을 받고 사회적으로도 두 세배의 비난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미술품이나 서화 골동류의 문화재가 마치 이들의 범죄행위를 부추기거나 유인한 것처럼 몰아가거든요.
윤; 미술 쪽에 있으니 이런 일이 생기면 술자리에서 지인들에게 질문들을 많이 받게 되요. 신문에서는 수백억이라고 하는데 실제 그러냐면서. 하지만 이전에도 보면 대개의 경우 한 두 점 빼고는 별거 없는 경우가 많아요. 유명 작가라고 다 비싼 것도 아니고... 세간에서는 언론에서 그림, 미술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그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미술, 서화 골동,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최열(이하 최); 자 혹세무민한 세상에 언론이나 검찰이 미술품에 대한 나쁜 이미지와 인상을 심어주었다고만 하기에는 설명이 좀 부족하지요. 일단 그렇다는 사실을 전제로 왜 이 지경에 이르렀나 하는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이야기해야죠. 검찰이 그래서 그렇게 됐다는 건 좀 그렇고... 물론 검찰 압류나 발표 과정에서 더 확대가 된 건 맞겠지만 그 전에 왜 미술품이 그런 대접을 받게 되었는지 얘기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정; 유난히 뭔 얘기만 나오면 으레 ‘미술작품이 비자금 조성용으로 쓰였다’는 게 기정사실화 돼 버려요. 동의할 수 없는 것이, 만일 비자금 조성으로 쓰인 것이라면 관련된 화랑 등도 자세히 조사받아야 되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거든요. CJ건만 해도 이 회장은 구속됐지만 검찰과 언론이 떠들었던 S화랑의 경우 관세법이나 탈세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고 벌금형을 받은바 있지만 비자금조성에 협력한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미술품=비자금’의 등식을 일반화 시킨 ‘행복한 눈물’ 사건도 결국은 그림과 비자금과의 연관성을 밝혀내지 못했지요. 오리온 비자금사건에서도 미술품이 전면에 등장했지만 수사결과 비자금은 부동산거래로 조성 된 것이라면서요. 따라서 오늘날 미술품이나 서화 골동류의 문화재가 이런 대접을 받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의 사회적 환경이 미술품에 대한 진정한 가치, 의미를 교육받거나 습득할 기회가 없다는 데에 있다고 봐요.
윤; 왜 그림이나 서화 골동류가 나오면 기자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일단 ‘깜짝 놀랄만한 고가(高價)’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는 미술계 안에 있어서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그림이 보편적인 문화 감상의 대상이자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때문일 거예요. 아직도 특정한 사람이 즐기는. 특정한 사람이 가지는 것이고 터무니없이 고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초보적인 수준에 있기 때문 아닐까요.
조; 몇 년 전 기획했던 전시에서의 경험인데요.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와서 **의 작품을 찾더래요. 그래서 안내해 줬더니 첫마디가 “야~ 저게 7억이래~” 그러더라는 거예요. 아이들 앞에서도.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알고 보니 신문에 전시를 소개한 기사에 그렇게 썼더라는 거예요. 결국 관람객에게는 그림을 보는 것고 ‘느낌’을 얻는 것보다 그렇게 비싼 작품, 그림을,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봤다는 게 가장 중요했던 거죠. 일반인들의 경우 미술을 대하는 것이 교육, 학교였는데 이제 전시에 대한 정보는 다양한 방면에서 얻을 수 있죠. 대중매체를 통해 전시가 소개될 때는 흥미를 제일 먼저 염두에 두는 것 같아요. 마치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는 광고 때문에 많은 어린이들이 침대를 과학으로 알게 된 것 처럼 말입니다. (다들 웃음)
정; 언론의 속성이라고 할 수도 있죠. “사고가 났답니다”하면 사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 명이나 죽었는데?”하고 먼저 물어보는 것처럼. 보도가 경쟁이 심해지고 점점 선정적이 되다 보니까 말이죠. 미술품이 나왔다고 하면 유명작가의 엄청난 가격으로 부풀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겠지요.
최; 일반인의 시선이라는 것이 미술만 그렇게 취급하는 게 아니라 다른 정치적인 사건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사실. 황우석 박사 사건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보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줄기세포에 장난치고 생명을 경시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인간과 자연의 윤리라는 본질적 문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심지어 정부가 그 반인간, 비윤리 행동에 국민세금을 지원하는 어이 없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또 일부이긴 하지만 존경과 경의의 말들이 많았어요. 같은 패턴 아닌가요. 사회의 분위기와 언론의 속성이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미술동네의 이미지가 실추된 데 대한 내재적인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작가-미술사학자 등 이론가-화상-큐레이터-독립큐레이터 등 미술계에서 일하고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했기에 오늘날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정; 동의합니다. 우리나라 미술계가 88올림픽 이후 화랑 중심으로 갑작스럽게 발전하면서 창작과 평가와 시장이 균형이 무너진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급작스레 물신화해졌지요.
여기에 부유층 관련사건이 나고 미술품이 나오면 언론이나 검찰 등 책임있는 사회적 기구들까지도 일반 시민들의 초보적인 미술에 대한 인식이나 수준의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마치 쫓기듯 전문가들의 신중한 평가와 분별있는 이야기보다는 비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여과없이 되려 확대 재생산한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번에도 보면 미술동네에서 보도듣도 못 한 ‘듣보잡’들이 방송이나 신문에 나와 자처하면서 일을 키운 부분도 있지요. 언론이 마치 이창호 9단에게 찾아가 '장기'관련 인터뷰를 한 셈이에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수근, 천경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전 전대통령 일가 압수수색에서 나왔다고 했을 때 그 작품을 보지도 않은 채 유명작가라고 하니 무조건 비싼 거라고 발표를 했고 국민들은 이를 그대로 믿었습니다.
값이 훨씬 덜나가는 판화도 있고 옛날에 전시하면서 기념품으로 옵셋으로 찍은 인쇄물도 있고, 가품인 것도 있는데 말이에요. 어쩌면 검찰이 열심히 수사해서 고가의 많은 작품들을 찾아내고 이를 압수함으로서 큰 공을 세운 것처럼 보이는 데 미술이 희생당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윤; 그러다 보니 미술품 가격이 부풀려서 비자금을 조성하는데 활용한다고 보는 검찰이나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 미술품 가격의 유동적 상황을 오히려 이용해서 가격을 엄청나게 부풀려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신들의 업적(?)을 과대홍보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미술품이나 서화 골동의 정성적 가격결정구조를 활용해서 스스로 실제보다 가격을 부풀리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최; 물론 미술계 외부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일정부분 미술동네 내부의 책임도 아울러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그림 자체가 존경과 감동을 불러오지 않아요. 미술 공동체가 사회와 국민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을 만큼, 감동을 줄 수 있을 만큼 장치와 행위들이 이루어져야 되는데... 지난 30년 동안을 미술계가 성찰해야 해요.
미술사학계도 그렇습니다. 미술사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자유 평등 박애에 기반하는 근대의 역사정신을 무시할 수 없는데도, 신군부 가문의 성강문화재단 부설 연구소에서 미술사학회지를 내고 많은 유능한 학자들이 거기 줄지어 참여하고, 여기서 저서를 내고 싶어들 합니다. 그 연구소의 논문집이 학진 등재지라서 유명 학자들이 줄을 서는데 사실 그래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요. 근대적 가치가 망실되는 느낌이에요. 인류 공동체적인 정신, 지식인이 지켜야 할 이상적 가치와 그의 사명, 지식인의 책무가 있는 건데... 한국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신군부 가문의 재단과 그 연구소에 미술사 연구자들이 줄을 서고 있는 이 사태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법으로 정해지진 않아도 지켜야 될 윤리와 가치가 무너지면 안 되죠.
윤; 미술품에 대한 이런 선입견과 오해가 있었던 데는 미술계 내부에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내부적 요인이 컸다는 반성도 아울러 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정; 미술계에 대한 편견을 없앨 수 있었으면 해요. 경제적 수준과 인문학적 소양이 균형 발전해야죠. 오늘날 한국사회는 믿고 싶은 것만 믿어버려요. 재벌이나 권력자의 경우 당연히 미술품이 있겠지? 비싼 거겠지? 그리고 그것은 부정한 방법으로 취 했겠지 하면서.
미술품이 비자금 수단이 된다는데 그림을 사고팔아 본 사람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압니다. 제가 만약 100억이 있어 자식에게 세금없이 상속해주려고 한다면 금을 사거나 무기명 채권을 사는 게 낫지 그림은 안 살 거예요(웃음).
조; 전 전 대통령의 국고환수를 위해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서 미술작품이 세간의 관심으로 떠올랐고 그 속에서 미술작품 평가가 얘기되고 있는데, 여기서 저는 디트로이트 시 파산에 따른 미술품 매각 사건도 떠오릅니다. “미술품은 곧 돈”이라는 생각 말이죠. “행복한 눈물”이라는 작품을 대기업 비자금 사건 뉴스를 통해서야 알게 되는 상황입니다. 농담으로 미술계 내부에서 하는 말들이 “말 못하는 미술품이 뭔 죄냐”고들 하죠. 작품으로 얘기되지 않고 사건에서 얘기 되는 웃지 못 할 현실이죠. 미술품을 사고파는 물건으로만 보고 그 문화적 가치와 사회적, 미적가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사회야 말로 정말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최; 근본적으로 물신주의 사회이기 때문이죠. 미술품이라는 게 일률적으로 값이 오르거나 하는 게 아닌데도 말입니다. 70~80년대 미술시장을 조사해 보면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그리고 동시대 여러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비슷비슷하게 오르다가, 몇 년 후 김환기는 호당 200인데 이중섭은 호당 7~800이 되고, 나머지는 오히려 호당 2~30으로 떨어져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또 5년 정도 지났을 때를 보면 오르는 작가들은 오르고 2진은 가격이 더욱 떨어져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런 현상은 무시되고 언제부터 한국사회에서 미술품이 무조건 고가품으로 대접받고 인식되기 시작했는지? 현상과 무관하게 말입니다.
윤; 제가 미술기자를 시작한 것이 80년대 초반이었어요. 제가 보기엔 이때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미술’이라는 것이 문화로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미술계는 그 이전에는 정말 작고 특수한 집단이었어요. 그 무렵 미술계가 확대되는 데 매개가 된 것이 미술시장입니다. 그러면서부터 그림, 하면 그림 감상이 아니라 그림 값이 되었던 것이죠. 부동산이 투자대상이 된 것과 같은 시기라고도 볼 수 있구요. Smar tK 사이트를 통해 중국 미술시장 동향을 보면 미술시장이 천정부지로 뛰고있는 요즘 중국의 경우 우리의 80년대와 똑같습니다. 중국 신화사통신 문화란에 들어가 보면 어떤 그림이 얼마에 팔렸다는 얘기밖에 없어요. 누구, 하면 호당 얼마. 이런 식으로 생각하죠. 미술이나 그림에 대한 가격평가만 있지 가치에 대한 평가는 전무한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공공재로서의 미술, 서화 골동류 그리고 이를 지키는 사람들
조; 70년대 미술품 구입을 위해 계 하던 부인들이 있었죠. 우스개 소리로 작가에게 ‘저 사람이 산 작품에는 왜 내 것보다 학이 한 마리 더 있냐. 나도 더 그려 달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미술 작품을 감상차원의 예술적 질과 가치가 아니라 투자로 보고, 물질적 가치만 따지는 거죠.
정; 70년대의 계는 사실 투자목적이라기보다는 그림을 모으는 것으로 예술적 소양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강했지요. 오페라를 본다든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속적인 권력뿐만 아니라 교양과 미적 감각까지 지닌 비르투오소(virtuoso)로서의 자신을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동시에 남에게 그렇게 보이고자 하는 심리가 그들을 그림에 갖기 위해 계를 만들게 한 동기입니다. 그리고 계원들은 무언가 ‘품격 있는’모임의 일원이라는 동류의식을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뭐 그런.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당대 그림은 돈 많고 격이 있는 것 처럼 보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컬렉션해 줘야 그 그림, 문화재들이 당대에 살아남아 다음시대를 넘어가면서 문화재로 문화유산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는 점을 좀 상기했으면 해요. 가난하던 부자던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미술품을 사 모으고 이를 후대에게 물려주고.. 글쎄요... 당장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이게 가능 할까요.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과 수집은 부자들에게 부과된 사회적 책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와 국민이 키워준 기업을 통해 부를 쌓은 이들이 그 부의 일부를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방법. 그래서인지 나오시마 섬을 예술의 섬으로 만든 후쿠다테 회장의 ‘공익적 자본주의’라는 말이 떠 오릅니다. 당대에서의 나눔도 중요하지만 시간을 초월해서 세대간 민족간 문화를 공유하게 하는 나눔. 이런 착한 부자들의 출현 같은 것 말입니다.
최; 역사적으로 미술 작품은 그렇게 존재해 왔고, 그런 역할은 당연하다고 봐요.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는, 사회 속에서 예술가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식민지, 분단 시기,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런지, 자신들이 사회적 주체로서 자각이 부족합니다. 미술계 구성원도 분명 사회적 존재이기는 하지만, 사실 직접 생산적인 노동을 해내는 것이 아니니, 사회로부터 후원을 받아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재화를 취하는, 이른바 기생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어요.
소비재라기보다 기호품 사치품을 생산하죠. 삶의 토대가 그러한 이상, 자신들이 어떻게 그 사회에서 존재하고 어떤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고 조절해 나가야 합니다. 최근 30년 동안을 살펴보면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야 하는지 존재론적 고민을 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화상만 봐도 그렇죠. 그림을 중개하면서 자신의 재물을 그러모아 살아간 사람들이 수없이 많아요. 그런데 이중섭 그림을 사고 팔아 수익을 창출해서 수많은 돈을 벌면서 사회에 기부한 사람은 박명자씨 이호재씨 두 사람 정도죠. 소장가들도 마찬가지.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처음 이중섭 작품을 소장했던 사람들, 되팔아 돈을 챙긴 사람들, 대체 그런 사람들은 다 뭔가요? 소장했던 이들 이름이 많은데 그 가운데 단 두 분, 시인 구상과 맥타가트라는 이름만이 이중섭 작품 되팔아 거둔 돈을 전액 기부했더군요. 나머지는 뭔가요? 사회에 단 한가지도 기여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부만을 채우면서, 미술, 미술수집가, 중개상 그 모든 이들이 사회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이 사회로부터 뭘 바라는 건지 참으로 깊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해요. 신군부가문 탓만 하지 말고, 언론, 검찰 탓만 하지 말고, 자기 반성, 자기 성찰해야 해요.
정; 선진 자본주의국가가 되려면 소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공익적 자본가가 많이 나와야합니다. 미술품 콜렉터 중에는 재벌 오너는 아니더라도 정말 진정 그림을 좋아하고 사서 모으고 컬렉터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나쁜 짓하는 사람들이 주로 뉴스에 나오니까 이미지가 하락되는 거죠. 문화재를 아끼기 위해 사재를 털어 수집 보존하고,,, 이 사람들까지 도매금에 넘어가는 것이 안타까워요.
최; 간송 집안처럼 갑부는 아니더라도 수정 박병래 선생님의 경우 의사로서 번 돈을 모두 문화재에 털어 넣으셨고.. 국립중앙박물관에 핵심적인 유물들인 동원 선생님의 기증품을 보면 존경을 하게 되죠. 사회적 기여라는 것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전 귀족들은 세속의 권력만이 아니라 명예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품격을 지키고 교양을 과시하는 것 등이 절대적인 요소였어요. 오늘날도 그게 필요한 건 인정할 수 있죠. 자본가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건 기본 사명이고, 호암 이병철처럼 작품을 구입하고 또 몇몇 후원자들처럼 재능있고 어려운 작가들을 지지하고 후원해야 하는데 이건 아무나 할 수 없죠. 나름 미감과 안목을 과시하는 면도 있고. 후원이라는 것은 그나마 자본주의에 품격을 주는 것이에요.
조; 컬렉터에 대한 오해가 커지게 된것은 지난 10여 년간 주식을 사는 것처럼 미술품을 산 사람들 때문입니다.
정; 주식 사는 것보다 품위도 있고 교양도 있어 보이는 동시에 주식처럼 돈도 벌게 해 줄꺼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미술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있었지요. 아마도 2005년부터 2007년 그 언저리에. 하지만 해보니 주식보다도 못하고, 사기도 어렵지만 팔긴 더 어렵고, 해서 다 떨어져 나갔어요. 미술시장을 원망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라고 욕하면서. 하지만 미술시장에 들어왔다 털고 나간 사람들에 물어보면 알 수 있지요. 왜 미술품이 비자금을 만들고 상속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 없는 지를 말입니다.
조; 그런 점에서 문제는 우리에게 미술작품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되네요. 우리 사회가 경직화되고 기회주의적이고 하지만, 어쩌면 그나마 이렇게 자유를 이야기하고 인간을 얘기하는 것은 예술계 아닌가요. 억압되었던 시기에 민중미술의 역할도 있었고. 사실 예술 특히 미술이란 시대를 증언하는 역사의 증인인 동시에, 잠수함의 토끼처럼 사회와 국가가 민주주의의 위기, 인권탄압 등의 순간에 이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알람같은 역할을 해 왔고 또 해나가야 하는 존재 아닙니까.
정; 그건 숨 쉬는 것처럼 미술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책무지요. 그런 점에서 다 시 한번 천민자본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공익적 자본주의’ 를 이야기하면서 미술가들이 공익적 활동, 사회적 기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때 가 아닌가 합니다.
과연 전 컬렉션(?)의 가치 또는 수준은?
정; 전 전대통령에게 서운한 건 말이죠.. 이것저것 많겠지만. 저는 이번 검찰 수사를 보면서 더 좋은 그림, 서화 골동을 많이 갖고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건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이었는데, 나름대로 소장한 그림이나 서화 골동류에서 적어도 50년 100년이 지나면 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그런 작품이 나와 주길. 그것도 국격의 일부일 터이니까요. 그런데 언론에서 붙인 것이긴 하지만 소위 ‘컬렉션’이라는 것이. 글쎄 현재 나온 수준이 전부라면 글쎄요 컬렉션이 아니라 아르비방 작가들의 작품과 일부 몇 점을 빼면 ‘액자 류의 집합’ 수준이에요.
그런 점에서 아무튼 이번에 전 전 대통령은 또 한 번 국민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좋은 그림, 비싼 서화 골동류를 소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큰 거 한방을 기대했던 검찰이나 언론은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 그리고 저희 같은 사람에게는 그렇게 허접한 ‘모듬세트’로 미술동네에 대한 인식만 나쁘게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국의 대통령의 집안에서 제대로 된 그림이나 서화 골동을 소장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좀 원망스러울 정도입니다.
최; 미술품을 사들이고 후원하는 그 자체를 비난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미술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전두환과 그 일가, 신군부 가문이 가졌다는, 현재 드러난 300여점의 천박함을 보세요. 어떤 이가 이번에 모 일간지에 인터뷰한 것을 보니, ‘장남 전재국이 92년 미국에 가서 날이 추웠는데 피카소를 보기 위해 2시간 이상 줄 서는 사람들을 인상적으로 봐서 미술애호가가 되었다’, ‘그가 프란시스 베이컨을 좋아한다.’ 등을 언급 했더라구요. 그래서 어떠했다는 말인가죠? 왜 그렇게 옹호하고 변호하는 거죠? 미술사가라는 직함이 부끄럽지 않은가요? 옹호하고 찬양할 가문을 가려서 해야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죠. 만약 저 300점이 모두라면 천박한 것이고 또 감춰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하면 그건 또 뭔가요? 부끄러워서 감추는 건가요? 도대체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미술품 애호가랄 것도 못 되잖아요.
정; 아까 언급했지만 덧붙이자면 어느 언론에서 ‘전재국 컬렉션’이라고 지칭하던데 그런 걸 컬렉션이라고 하는 것은 미술에 대한 모독입니다. 컬렉션이란 나름대로 ‘가려 뽑아 모은’ 것이라야 하는데 전혀 그런 의지를 찾아볼 수 없어요.
사실 검찰이 미술품을 가지고 수사 초기 단계에서 너무 부풀렸고. 그 어떤 것 보다 소위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림이 되니까 미술품에 주목하게 된 거라고 합시다. 그런데 실상 압수해 놓고 살펴보니 기대에 못 미쳐 난감한 상태인 거죠.
앞으로 정치가들의 재산 공개목록에 예술품이나 고서 등이 좀 들어있는 그런 재산공개 목록을 기대해 봅니다. 앞으론 좀 나오겠지요? (웃음) 제가 아는 한 전재국씨를 도와 미술품을 수집했다고 전해진 전 모씨의 경우 매우 깐깐하고 안목있는 사람이에요. 만일 그 사람이 조력자로 나섰다면 글쎄요 이렇게 잡탕이 되진 않았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전문가의 손이나 눈이 미치지 않은 그렇고 그런 권력자, 재산가 집안 창고에 들어있는 그런 수준의 것이라 짐작됩니다.
윤; 그림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가, 그림이 고가의 투자품이라는 거고, 그 다음 오해가 작가들이 직접 팔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정; 사실 이번에도 언론의 보도를 보면 작가들, 화가들의 이름이 다 밝혀졌어요. 사실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그림이 화면에 등장하면 사실 이름을 알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누구하나 가명을 쓰거나 그림을 가려주지 않았단 말입니다. 흉악범들의 경우도 얼굴과 수갑 찬 손을 을 가려주면서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검찰이나 언론은 작가의 이름을 다 까발렸어요. 심지어 작가에게 직접 전화해서 인터뷰 요청하고.. 그게 적어도 예술가로서 나름대로 시대를 고민하면서 어렵지만 명예를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할 짓이었을까요?
윤; 그건 검찰이 잘못한 것 같네요. 거론 된 작가들의 인권은 아예 무시되었고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은 처사지요. 흉악범들에게도 인권을 보호해야한다고 하는 시대에 이들의 이름을 공공연하게 밝혔다는 사실은 이 나라, 시대의 공권력과 언론권력이 미술을, 문화를 대하는 태도의 일단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 작가들에게 전화를 해서 어떤 루트로 팔았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화가를 장사꾼으로 본다고 밖에 볼 수 없네요.
정; 시민들은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화가들이 예술가들이 전 전대통령의 부정한 돈을 받아 그림을 그리고 생활 한 것처럼 오해 할 수 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예술가의 실추된 명예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이냐는 것입니다. 아르비방 책 문제도 거기서 생겨났어요. 전재국의 시공사에게 미술계가 고마워해야 되는 것은 사실이죠. 지금도 아르비방 작가들은 미술사적 가치는 여전히 대단합니다. 이번에 B작가의 사진이 많이 나왔는데, 그 당시에는 사진 값이 낮아서 사고파는 대상으로 보지도 않았죠. 그 사진은 저자가 증정본 이상의 책을 받은 대가로 사진작품으로 정산을 하다 보니 숫자가 남보다 많아 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윤; 이번 리스트에 있는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받은 K모씨의 경우 100호짜리 800만원도 안 하는 작품도 많아요.
정; 그런데다 작가의 이름으로 가격이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사람들 때문이에요. ‘그 작가 백억 넘죠’ 하면 그대로 그것이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가격이 되는 것 처럼.
조; 사회 전반적으로 미술품에 대한 정보나 판단이 부족한 상태인데 그림의 가격에 대한 과대망상 적인 면이 많아요. 사실 미술품의 가격은 호가(Asking Price)와 실거래가(Acting Price)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마치 호가가 거래간 인것 처럼 독자와 시청자들을 호도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 흔히 우리가 미술품을 분류할 때 미술관 박물관급 작품과 작가 그리고 18세기 말 광통교 근처에서 팔던 장식용 그림, 요즘의 삼각지나 신반포 지하상가 또는 서울근교의 대규모 매장에서 판매하는 장식품이나 그림 그리고 아트 샵이나 기타 액자가게에서 파는 액자류나 옵셋 인쇄된 명화 등등으로 나뉘는데 이를 모두 미술품으로 통칭하면서 고가의 작품 운운하는 것은 정말 낮 뜨거워지는 일입니다.
조; 미술관급 작가와 갤러리 작가 등등 나름으로 구분되는데 일반인들에게는 그게 그건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참으로 이런 문화적 수준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일 일텐데 되려 적반하장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번 일도 그렇구요.
최; 검찰 수사 방식에 대해 한마디 더하자면.. 삼성 용인 창고에 들어갈 때도 그렇지만 이번에도 특공대처럼 쳐들어가서 안타까웠어요. 미술품 압류는 조심해야 될 문제가 많은데.
조; 그들 말처럼 고가의 중요한 미술품이라면 더더욱 조심하고 소중하게 다루었어야 할 텐데.
정; 무진동차량이다 뭐다 하는데, 실제 무진동차량인지 모르겠지만.. 시속 30km 이상 달리면 무진동이 안 되거든요. 근데 보도를 보니 언론사 차량이 쫓아가니까 30km 이상으로 빨리 달리더라구요.
윤; 정리해 보자면, 비자금 의혹을 받는 사람의 수중에 미술품이 있다는 것 때문에, 미술품을 소장하는 행위 자체가 백안시되거나 소장자의 역할이 평가 절하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수사를 하는 검찰도, 언론을 대하는 국민들도 미술품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계 내에서 분명 자신이 지켜야 할 책무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하겠구요. 참으로 문화 선진국이 되는 길은 멀고 험하군요. 단순하게 국민소득만으로 선진국이 된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