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미술사학자)
권근영(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최열(미술사학자)
정준모(전시기획자)
윤철규(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일시 7월 10일(수)
조은정 여름방학이 됐네요. 각 미술관 박물관에서 대규모 전시회들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블록버스터’급 전시라고 이야기하는데, 많은 작품을 빌려와 큰 규모로 전시하고 광고에도 물량공세를 하는, 결과적으로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는 전시들을 떠올리게 되죠. 블록버스터급 전시란 무엇이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진행되어야하는가 자유롭게 이야기해 봅시다.
권근영 먼저 블록버스터 전시의 정의를 내려야 되겠어요. ‘블록버스터’의 사전적인 의미는 폭탄입니다. 2차 대전 때 영국이 독일 도시의 한 블록을 다 날릴 수 있는 고성능 폭탄을 ‘블록버스터’라고 불렀다고 해요. 보통 영화판에서 많이 쓰이는데 흥행에서 단기간 흥행을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만든 대작을 말하죠. 특수효과, 톱스타, 방학시즌 등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죠. 미술계도 그러고 보면 똑같네요. 샤갈, 반 고흐, 고갱 등의 톱스타, 방학 등등.
조은정 톰크루즈가 그러면 반고흐인가요?(웃음)
정준모 둘 다 레오나르도니까 디카프리오는 다빈치?(웃음)
권근영 시즌은 방학이고, 상영장소도 중요한데 보통 목 좋은 곳에서 하죠. 지방으로 가면 흥행이 힘드니까 거의 서울이고.
블록버스터 전시의 시작
정준모 우리나라에서 블록버스터 전시의 조상이라고 하면 76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프랑스 인상파 특별전 대관전시일 듯해요. 그때 밀레, 모네, 마네 등 인상파 대가의 작품이 많이 왔었어요. 故이성자 선생의 아들이자 조선일보 주불특파원 신용석기자의 역할이 컸었죠.
윤철규 그건 블록버스터 전시와 분리되어야 하지 않나요? 해외 미술의 소개 전시일 뿐인 거라고 봐야 될 거 같은데요.
최열 50년대에도 모마(MoMA) 순회 전시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이런 것들은 해외미술이 소개된 수준이지 본격적인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없겠죠.
조은정 그 전까지는 볼 수 있는 큰 전시라고 해 봐야 국전 정도였으니까.
정준모 그 당시에는 블록버스터 개념이 없었죠 사실. 2000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한 오르세 전람회가 블록버스터 전시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 <러시아 천년의 삶과 예술> 전(2000)은 블록버스터 개념 없이 한러수교 10주년을 기념으로 한 것이고. <오르셰 미술관> 전(2000-2001)은 덕수궁미술관에서 손님을 끌기 위해 유치한 블록버스터 개념이었던 거죠. 흥행 위주의 전시가 시작됐던 배경 중 하나는 대처 정부의 정책 때문에 문화예술 시설들이 돈 버는 일을 하도록 내몰렸던 겁니다. 테이트브리튼이나 테이트모던 내쇼널갤러리 등에서 여름철 관광객이 많이 오는 시즌에 대형 전시를 여는 거죠. 주제도 테이트모던에서 느닷없이 마티스를 한다든가, 코톨드에서 고갱전을 한다든가 내쇼널갤러리에서 베르메르와 악기전을 한다든가 전문성과 관련 없이 전시를 하기도 했구요.
최열 문화예술계에서의 블록버스터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관련 있는 거군요.
정준모 미술관 관장들이나 학예직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얘기들이 있어요. 미술관에서 돈 떨어지면 고흐 고갱 마티스 피카소 샤갈 달리 불러온다고. 몇몇 작가는 계속 울궈먹었죠.
조은정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사람들이 길게 줄서있는 모습이 낯설었는데 블록버스터 이후에는 자연스러워졌어요.
정준모 줄서서 본 걸로 한다면 1993~1994년에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고분벽화사진전인 ‘아! 고구려’도 블록버스터에 낄 수 있을 겁니다. 언론사의 엄청난 홍보가 그 배경이었겠지만요.
권근영 전시회에 언론사가 끼는 것은 일본에서 시작한 거 아닌가요?
정준모 일본의 경우는 좀 달라요. 신문사의 문화적 기여와 이미지 제고를 목적으로 하고 그걸 강조하죠.
윤철규 크게 보면 문화적인 행사가 엔터테인먼트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보를 많이 하고 볼거리를 많이 배치하면 거기에 현혹되어 사람들이 몰려가게 되죠.
정준모 슈와르츠의 『구경꾼의 탄생』에서 언급된 것처럼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거치면서 유럽의 대중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볼 거리를 찾았고 박물관 등이 그 수요를 충족시켰죠.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과정 없이 뒤늦게 중산층이 등장하고 최근에야 문화적 수요가 크게 늘어났어요. 그림을 보고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러한 것들이 중산층의 과시욕이나 허영심에서 생겨난 부분도 많단 말이에요.
조은정 그러고 보면 여행의 자유화도 블록버스터 전시 붐에 한 몫을 한 게 아닌가 싶어요. 1989년에야 완전히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는데, 그 전에는 초청장이나 특별한 사유 없으면 해외로 못 나갔어요. 해외여행을 하게되고 해외미술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거죠.
정준모 88올림픽을 계기로 많은 일들이 있었죠. 국제현대미술전, 올림픽 조각공원, 백남준, 해외현대미술의 유입...
조은정 굿모닝 미스터오웰도..
정준모 그 때 해외미술에 대한 수요가 더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후에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오픈, 광주비엔날레 등등 미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어요. 오르셰미술관전을 기획할 때를 돌이켜 보면, 재개관 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찾아올 수 있을 무언가를 찾아서였어요. 큐레이터가 직접 기획에 참여했구요.
블록버스터에 자리를 내어주는 미술관
권근영 미술관이 직접 기획해서 대형 전시를 하는 것은 대관전 형식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전시와 구분해서 얘기해야 될 것 같습니다. 미술관 입장에서 블록버스터 전시를 하는 건 관람객 수 때문인 경우가 많지 않나요?
조은정 미술관이 지방자치단체 소속이 되면서 관람객수가 미술관 평가, 그리고 그와 연관되어서 미술관장 임명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죠.
권근영 관람객 수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자체적으로 대형 전시를 기획해 내면 될 텐데, 자체 학예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정준모 단순히 말하면 돈이 없어서. 좀더 복잡하게 말하자면... 첫째, 전시의 질을 관람객이 얼마나 들었냐의 평가로만 보기 때문이고, 둘째, 일단 대관을 해줌으로써 별 어려움 없이 대관료로 수입이 생기는 것 때문이죠. 일정 관람객 이상이 되면 기획사 측과 입장료를 나누게 되는데 이게 짭짤했거든요. 기획사가 더 전문성이 있어서냐는 질문들을 하는데, 미술관이 기획사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에요. 미술관이 블록버스터 전람회를 할 때 직접 핸들링을 하면 (현재 블록버스터 전시에 소모되는 비용보다 훨씬 적은) 3억 내지 5억이면 일반적인 규모가 가능해요. 대부분 대여료와 운송비 등으로 소모되겠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어느 미술관이 (국립현대만 빼고) 전시 한 건에 3-5억을 쓸 수 있겠냐는 거죠. 일년 전체 전시예산이 3억도 안되는 곳이 대부분인데. 공립 미술관은 기부금도 투자도 못 받게 되어있어요.
권근영 기부금이나 투자는 못 받는데 대관료는 받을 수 있나요?
정준모 수입대체경비라고 해서 국고에 흡수된 후에 국회 통과를 거쳐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시립미술관에서 블록버스터 전시를 할 때는 시민들의 돈으로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시민들이 또 비싼 돈을 내고 전시를 보게 되는 거죠. 돈은 기획사가 벌고 미술관이 쪼금 벌고. 지자체장은 선심 쓴 게 되니까 이익이고.
윤철규 블록버스터 전시를 하면 전시를 보지 않던 사람들도 미술관에 가니까 좋은 점도 있지 않은가요?
조은정 전북도립미술관이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2012-2013) 전을 했었는데, 미술관 내부에서 열심히 뛰어서 기획사의 도움을 받아 한 경우에요. 많은 관객이 들어 9억의 이익이 났다고 신문에 났더군요. 미술관에서는 관람객도 많고 반응도 좋고 해서 이 이익금으로 다시 새로운 좋은 전시를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결국 예산을 배정 받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권근영 제도적으로 묶여 있는 게 답답하다면 왜 그걸 안 바꿀까요.
정준모 수입대체경비를 기관에서 사용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이익을 낼 만큼 미리 예산을 신청해서 쓰고 연말까지 벌어서 올리면 됩니다. 그 전북도립의 전시를 말하자면 남미에서 가져온 것들이어서 유명작이라기보다 다소 희귀한 작품들을 가져왔어요. 유명작가의 유명작품을 기대한 사람들이라면 실망을 좀 했을 겁니다.
언론사와 기획사
조은정 최고의 미술관에 직접 가서 최고의 미술품을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 해외에 나가기 힘든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회조차 기쁘고 즐거울 수 있어요.
권근영 한국의 지나친 교육열이 블록버스터 전시를 몰아보게 하는 면도 있어요.
정준모 교과서에 나오는 화가 ‘이름’이 걸린 전시를 보는 것이에요.
윤철규 블록버스터 전시가 제대로 평가되면.. 그렇게 과대광고를 하지 못한다든가 전시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관객이 별로 없다든가 할 수 있을 텐데, 블록버스터 전시가 대부분 언론사를 끼고 있으니까 나머지 언론사들이 검증하는 역할을 못 하는 거예요. 신문사들끼리 서로 비판한다면 ‘너도 저번에 그랬잖아’ 수준이 될 테니까.
정준모 언론사가 주최를 하는 것이 문제인 면이 있죠.
권근영 현 시점에서는 사실 언론사 입지라는 것도 초라합니다. 거대 기획사의 경우는 이미 언론사들에 홍보를 의존하지 않습니다. 대신 포털이나 대기업이 개입하죠.
정준모 지엔씨는 정말 많이 성장했죠.
권근영 일간지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다 보면, 인상파나 서구 명화에 대한 목마름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미술계의 현장이라면 동시대 미술이겠지만, 모딜리아니나 반 고흐에 대한 글의 반응이 훨씬 폭발적이거든요.
윤철규 그렇죠. 누군가 인상파 작가의 작품을 보고 싶다고 했을 때 국내에서 블록버스터 전시 말고는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은 없으니까.
정준모 네덜란드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와 있다던데...(웃음) 문화적으로는 제3세계 국가 수준이에요. 국민들이 인상파 그림들을 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블록버스터 전시가 흥행하는 겁니다. 문화 향수를 충족시키고 또 다른 요구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가장 큰 불만이라면 큐레이터쉽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에요. 좋아할 만한 것, 아는 것만 보여주려는 경향만 있고 왜 이 작품을 보여주는지에 대한 시대적인 당위성이 없습니다. 왜 이 시점에서 고갱이고 반 고흐인지.
권근영 봄에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전을 봤어요.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어요. 참신했던 것은 전시 말미의 아카이브전이었어요. 왜 지금 여기서 베이컨전을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랄지. 베이컨이 활약했던 70년대 당시 일본서 베이컨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몸의 미학은 일본의 전통 공연과 현대 무용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하는 미술잡지 기사, 퍼포먼스 영상 등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었죠.
정준모 일본 전시의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연관성을 찾고 당위성을 찾아 엮어 넣어요.
권근영 기획만 일 년 넘게 할 텐데 당연히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요. 옛날에 80만 왔으니까 지금도 오겠지 하는 정도로 특별한 전시컨셉 없이 특별전을 가지는 것은 사람들을 너무 무시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준모 그래서인지 적자인 블록버스터가 수두룩해요.(下편에 계속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