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기 간 : 2010년 10월 12일(화) - 2010년 11월 21(일)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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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려불화와 서역 하라호트의 불화 실크로드의 마지막 도시 주천(酒泉)은 요즘 다른 이름으로 유명하다. 이곳 중국위성발사센터에서 쏘아 올려진 선저우(神舟) 5호는 소련, 미국 다음으로 유인 궤도비행에 성공했다. 그 주천에서 길도 없는 사막을 가로질러 북동쪽을 450km 쯤 가면 몽골과의 국경이 멀지 않은곳에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한 폐허 유적이 있다. 하라호토(Khara-Khoto) 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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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호토 출토 불화가 그려진 시기는 대개 12, 13세기. 고려불화보다는 약 100년 정도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동아시아는 중국 송나라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서하, 그리고 동쪽에 고려가 있었다. 그 사이는 족히 4천 킬로미터는 된다. 경제든 문화든 당시 교류를 생각하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교통 수단이라고는 말이나 수레 정도. 거기에 빈약하기 짝이 없는 여행 도구와 장비에 불편한 숙박 시설 등등. 28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동아시아 불교회화와 고려불화」의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한 에르미타주의 수석 큐레이터 키라 사모슉은 하라호토 불화의 뿌리로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중국 송나라의 영향을 받은 계통과 다른 하나는 서하 독자적인 창작에 근거한 계통이다. 내영도나 수월관음도에 대해 중국 특히 타이완 고궁박물원 큐레이터 리위먼(李玉珉)은 북송 영향을 주장하지만, 그는 당시 이 일대인 동투르키스탄과 중국에 거주했던 탕구트인과 티베트인 사이에 탄생한 새로운 양식, 즉 중국과 티베트 절충 양식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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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장대로 라면 고려시대 불화제작자는 어쨌든 탕구트 불화를 손에 넣거나 알고 있어야 했다. 당시 불화제작자는 서하의 수도인 흥경부(지금이 영하성 은천)가 아니면 적어도 북송의 수도 변경이나 남송의 수도 임안(지금의 항주) 그리고 원나라 수도 북경과의 어떤 네트워크를 쥐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쪽의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이번 고려불화 전시에는 송, 원 시대의 불화 7점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냥 함께 놓고 감상할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려불화의 독자성과 창의성을 뛰어넘어 외부와의 교류 또는 소통이란 또 다른 감상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전시 자체의 참신성을 돋보이게 해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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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의 시대였던 고려 그리고 대륙을 지배하던 송과 원, 그 너머 사막 한가운데의 나라였던 탕구트. 아득히 먼 역사나 거리감은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또 미지의 세계는 지적 흥미를 자극한다. 그림이 인문학의 재료가 된다는 것은 징검다리처럼 늘어선 고려, 중국의 송과 원 그리고 서하를 건너뛸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장엄 화려한 고려불화도 어느 때에는 느낌과 상상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