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기 간 : 2010년 10월 12일(화) - 2010년 11월 21(일)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전시명 :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기 간 : 2010년 10월 12일(화) - 2010년 11월 21(일)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
2 자비로운 빛줄기 속의 영원한 구원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세계에 전하는 고려불화 숫자는 1백60여점에 이른다고 한다. 고려 불화라고 해도 그려진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몇 가지로 나뉜다. 우선 깨달은 자인 부처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다. 또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誓願)을 하고 성불을 미룬 여러 보살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모습을 한 채 깨달음을 수행하는 수행자 모습의 나한이 있다. 부처님 그림도 신앙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불법, 즉 가르침을 중시할 경우에는 비로자나불이 된다. 또 국락 정토의 왕생을 기원하는 때에는 아미타불이다. 그리고 깨달음 그 자체를 중요시할 경우에는 석가모니불이 된다. 현재 전하는 고려불화 가운데 50여점, 즉 3분의 1 가까운 수자를 차지하는 불화가 이 아미타불을 그린 불화다.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를 주재하시는 부처님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이 죽은 뒤 극락 세계에 태어나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주시는 부처님인 것이다.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겠다는 의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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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아미타불을 그리는 데도 몇 가지 형식이 있다. 대개 제작된 목적 또는 사용된 의식이나 행사에 따라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느 때, 어느 경우에 구체적으로 어떤 형식으로 그렸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현재의 구분상으로 단독으로 모셔진 그림, 양쪽에 한 분씩 두 분 보살과 함께 그려진 것, 그리고 여덟 분의 보살과 같이 모셔진 그림 등이 있다.
그중에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아미타삼존도》는 아마도 그중에서 가장 용도에 가까운 설명할 수 있는 불화일 것이다. 이 불화는 금박의 당초 문양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가사를 걸친 아미타불께서 왼쪽 아래로 몸을 틀고 손을 뻗고 계신다. 그리고 손이 가리키는 방향의 끝, 그러니까 그림의 왼쪽 아래에는 무릎을 꿇고 양손을 받들어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흰옷차림의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들 이외에 그림 속에는 투명 보주를 든 승려 모습의 지장 보살이 서 있으며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보관을 쓴 관음 보살이 허리를 굽혀 무엇인가를 내밀고 있다. 관음 보살이 오른쪽 손에 들고 내미는 것은 연꽃으로 된 받침대이다.
왼쪽 아래의 흰옷 입은 인물이 곧 임종을 맞이해 서방 세계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그곳에 아미타불께서 몸소 두 보살을 데리고 맞이하려 오신 장면이란 것이다. 이른바 와서 맞이한다는 내영도(內迎圖)이다. 연화 받침대는 아미타불의 인도에 따라 극락으로 가게 될 임종자가 올라타게 될 보좌이다.
이 그림에는 그런 사실을 말해주는 단적인 증거로 아미타불의 정수리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색 빛줄기를 들 수 있다. 이 빛은 처음에는 보이지 않게 가늘다가 지장보살과 관음보살 사이를 거치면서 분명한 빛줄기가 돼 기도자의 몸 전체를 휘감고 있다.
아미타성중내영도(阿彌陀聖衆來迎圖) 일본 가마쿠라(鎌倉) 14세기
비단에 색ㅣ 131.5 x 156.5cmㅣ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일본 가마쿠라불화 가운데에도 이런 용도를 점쳐보게 하는 불화가 있다. 그림은 멀리 산등성이를 넘어오는 아미타불 일행을 병풍에 그린 것이다. 예전에 이 그림속의 아미타불 손가락에는 다섯 가닥을 색실이 묶여져 있었다고 했다.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이 손에 이 실을 쥐고 숨을 거두면 곧장 아미타불의 인도를 받아 곧장 서방 세계로 가 그곳에서 왕생했다고한다.
고려시대, 왕실과 그 주변의 귀족 세계에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처럼 기대고 의지할 곳이 있었다. 당시에도 현실은 팍팍했을 것이다. 왕이고 귀족이었지만 몽골에 밀려 강화도까지 갔다가 거의 강제로 개성에 돌아온 몸들이 아니었는가. 머릿속 혼이라도 반 쯤은 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온갖 노력과 정성을 다해 화려 장엄한 고려 불화의 세계에 몰두했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