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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캔버스에 실현한 억압된 현실 너머 자유가 숨쉬는 낯선 숲의 매혹 <현대 한국미술의 발견 – 권여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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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전시 공간에서 250점의 작품이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
-감각의 구도자가 찾은 꿈과 현실, 그리고 일탈자

전시명 : 현대 한국미술의 발견 – 권여현
서울 - 순화동천(2.8~5.12) / 자하미술관(2.8~2.26) / 헬렌앤제이 갤러리(2.8~3.6) / 북과 바디(3.2~4.1)
파주 - 잼일레븐(2.8~5.12) / 북하우스(2.8~5.12)
글/ 김진녕

서양화가 권여현(b.1961)의 대규모 전시가 열리고 있다. <현대 한국미술의 발견 – 권여현>전이 서울과 파주의 6개 공간(잼일레븐, 헤이리북하우스 ART SPACE, 갤러리 동천, 자하미술관, 북과바디, 헬렌앤제이 갤러리 오브 서울), 연면적 550평의 공간에 250점의 작품을 걸었다. 장소가 산발적으로 흩어져있기는 하지만 엄청난 물량공세라고 부를 수 있는 전시 규모다.


전시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작품은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2020-2023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다만 헬렌앤제이갤러리에 최근작과 함께 2000년대 초반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고, 자하미술관에 그의 대학생 시절 작품인 〈무제〉(1982)와 초기의 대표작이라고 꼽을 수 있는 〈1988- existence space 21 던져짐〉 등 넉 점의 20세기 작품도 걸려 있다.

헤이리북하우스나 동천, 헬렌앤제이, 자하미술관 전시장 초입에 공통적으로 걸린 작품은 이제 막 청년기에 들어선 군살없는 젊은 남자 네 명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이 장면은 낯이 익다. 어디서 본 듯해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한때 널리 알려졌던 영화의 한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목이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았다. ‘브레이킹 XX’였던 것 같아서 ‘브레이킹’과 ‘청춘 영화’의 조합으로 검색을 해보니 이내 답이 나왔다. 〈Breaking Away〉(1979). 국내에선 1980년 7월 개봉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는 <낯선 숲의 일탈자들>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2020-2023년 제작 작품은 대개 두 계열로 나뉜다. 하나는 <낯선 숲의 일탈자들> 시리즈, 또 하나는 <눈 먼 자의 숲에서 메두사를 보라> 시리즈. <낯선 숲의 일탈자들> 시리즈는 〈breaking away〉을 인용한 작품 외에도 대부분 육체적으로 섹스가 가능해진 지 얼마 안 된 젊은(또는 어린) 남녀가 어울려 한적한 숲 속으로, 술과 약물과 섹스가 넘쳐 나는 그들만의 캠핑을 떠나서, 관객에게 실컷 눈요기를 보여준 뒤 사지절단 엔딩을 맞이하는, 헐리우드의 청춘 공포물의 스틸 같은 전형적인 이미지가 넘쳐난다.

그가 왜 이런 이미지를 자주 다뤘는지는 어느 전시장에든 설치돼 있는 권여현 작가의 인터뷰 동영상 속에 힌트가 있었다.


“너무나 많은 기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들, 그리고 상징적이 되거나 환유적으로 생략되는 많은 감각의 것은 어떻게 표출할 수 있을까요?
고착된 욕동(慾動, Drive)이나 욕망의 찌꺼기들은 짤이나 밈같은 엉뚱한 행동으로 표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그림 속의 인물은 낯선 숲에서 감각의 해방과 자유를 갈구하는 신호는 보내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 절실한 신호를 가벼운 웃음으로 넘기지 말고 내게 다가와서 깨워 달라고 손짓합니다.”


“감각의 해방과 자유를 갈구하는 신호가 낯선 숲으로부터 들려옵니다…. 나의 숲 그림에는 복잡한 우리 사회가 숨겨져 있습니다. 숲에는 규정하기 힘든 많은 상황이 교환되는데, 내 작업의 모호성과 이미지의 혼성에 적합한 uncanny한 소재였습니다. 숲은 억제된 현실 너머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이미지를 혼용시키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결코 만날 수 없는 숲이며, 두 세 가지의 다른 공간이 조합된 가상의 장소입니다. 공익과 절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가치 때문에 희생되고, 생략되고, 반올림되지 못한 채, 소멸되어야 했던 것들이 저장된 곳입니다. 이성이 지배하는 장소에 대한 감각의 비자발적이고 하위 문화를 대면하는 장소입니다. 일탈자의 행위는 이상하고 엉뚱하고 찌질하고 이유없고 반항적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리비도를 타고 지킴이의 감시를 피하려고 가면을 쓰고 꿈 속에서 소망을 충족하듯이, 일탈자는 밈의 전달 체계에 올라타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위장하여 현실의 규범을 속이려 합니다. 그들의 행동은 억압된 욕망과 감각을 대신 표현해주는 우리 시대의 히피적 기호입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많은 문제가 노출됩니다. 그 문제들은 선별적으로 폐기되거나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고착되어 감시받게 됩니다."


그의 말대로 <낯선 숲의 일탈자> 시리즈에 등장하는 도상은 욕망의 표출과 실현에 거침없어 보이는 여러 순간이 짤처럼 화면에 흐트러져 있지만 그 욕망이 사회적 룰에 어긋난다고, 도덕 규범을 위반한다며 사지절단으로 훈계하는 ‘헬피 엔딩’의 순간은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낯선 숲’ 시리즈와 ‘눈 먼 자의 숲’ 시리즈에서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시각적인 쾌감은 매끄러운 속필의 완숙한 묘사력이다. 특히 성근 숲 속에 칡넝쿨 같은 줄기 속에 놓여있는 캐릭터의 묘사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빠른 붓질이 보이는데도 음영과 르네상스적인 매끄러운 피부결과 등신대의 비례감이 들어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권여현이 사로잡힌’ 푸코나 라캉, 데리다, 들뢰즈, 벤야민 같은 철학자의 20세기 중후반의 사변적인 담론을 따라가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미감이다.

그는 이에 대해 "한번의 붓질에서 색채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표현되고 형태의 경계선은 흐리거나, 선명하게 드러나야 됩니다. 나는 이것을 감각의 드로잉, 회화적 그림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감각적 형태라는 것은 딱딱하지 않으며 유동적이고 변용 가능하고 액체적인 형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너무나 허물어져 형태의 구성 최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형태의 속성을 잃어버린 질료의 단계가 되는 것은 거부합니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헬렌앤제이갤러리의 권여현전 제목이 <감각의 구도자>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든 궁금증 중 하나는 그가 밈으로 활용하고 있는 장면장면의 등장 캐릭터가 모두 ‘홍안으로 그리고 백인이라고 읽는’ 캐릭터라는 것이었다. <브레이킹 어웨이>에서 보듯 그가 성장기에 세례받은 대중문화가 미국 중심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를 ‘사로잡았던’ 철학자가 모두 20세기의 백인이어서 그랬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가 모색 중인 영국이나 미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것 때문일까.

그는 이런 궁금증을 예상했는지 갤러리 동천의 전시장 벽에 이런 말을 붙여놨다. "노랑머리의 사람은 더 이상 서양인이 아니며 흰색이나 구리색 피부 역시 인종을 표현하는 색채가 아니다. 단시 사물의 층위를 표현하는 조형 장치다", “우리가 접하는 색채 대부분이 배면에서 발광하는 빛과 관련 있는데 색채는 맑고 투명하다. 현대적인 색채는 물감을 혼합한 회색톤 느낌보다 빛의 혼합에 의한 투명한 흰색톤에 가깝다. 일탈자들을 표현하는 색채는 얇고 맑고 투명하며 재빠르다." 일정한 경향성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했는데 ‘색에 의미 부여를 하지 말라’는 요지의 답변은 일종의 ‘미끄러져 내리는’ 말이었다.


물론 인터뷰 동영상에서는 재빠르고 능숙한 붓질과 감각적인 색채감과 관련된 답변을 찾을 수 있었다.
"물감은 기름이나 물을 매개로 번지거나 고착됩니다. 그 유연성의 붓질로 인해 그림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어야만 됩니다. 감각적으로 색채는 칠해져야 합니다. 농도와 명도와 채도의 차이가 극히 미세한 변화로 구성되어 관람자의 눈도 역시 예민해야 작품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일탈자들을 표현하는 색칠은 맑고 투명하고 재빨라야 합니다. 색채의 선택은 형태와 무관합니다. 단지 그것들은 색채가 칠해질 영역에 따라서 조화롭게 구사될 뿐입니다.”

출판사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와 전시기획자 김노암이 공동기획자로 나선 이번 전시는 한길사의 공간인 헤이리북하우스 아트스페이스 서울(- 5. 12)과 서울 순화동의 동천갤러리(- 5. 12), 파주의 잼스페이스(- 2. 26), 부암동 자하미술관(- 2. 26), 팔판동 헬렌앤제이갤러리(- 3. 6), 논현동 갤러리북과바디(3. 2 - 4. 1) 등 여섯 곳에서 열리고 있고 장소마다 폐막일이 조금씩 다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노암 기획자는 전시 장소별 차이점과 전시의 의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자하미술관에서는 80년대부터 현재까지 권여현 작가의 작품세계의 변화와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헬렌앤제이에서는 최근 회화작업과 함께 대형 연출사진과 퍼포먼스 90년대 중반 이후 진행했던 자아 탐구의 다양한 실험을 확인할 수 있다. 갤러리동천과 북하우스에서는 최근 4~5년 사이 제작된 회화작업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 잼일레븐에서는 회화작업과 함께 오브제와 조각 작업을 확인 할 수 있다. 작가는 방대한 작업양으로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 외에도 매우 많은 작품들이 미처 공개되지 못했거나 공개되었어도 일회성이나 잠시 소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최근 10여 년 간은 권여현 작가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다룬 기획전이 많지 않아서 40대 이상의 전문가나 소수의 미술애호가 외에 밀레니엄 이후 새롭게 미술계에 진입했거나 미술시장의 붐에 따라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일반 미술애호가에게는 일부분만 알려져 있거나 신비한 또는 망각된 작가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번 전시는 권여현 작가이 지난 40여년 간 쉼없이 도전하고 모색했던 현대 회화의 예술세계를 전체적으로 그리고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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