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공예연구 기획전 <백자-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서울공예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2022.11.8.~2023.1.29.
청자실 개편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2022.11.23.~
인간이 사용할 그릇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도자기가 조명을 받고 박물관에서 사람들의 찬탄어린 시선을 받는다. 사람들은 도자의 표면만을 보지만, 땅 속의 흙을 파내어 오랜 시간 다듬고 어루만지고 칠하고 높은 온도로 세심하고도 터프한 환경을 거쳐 나온 오묘한 색과 질감을 생각하면 저절로 그 섬세한 특성이 발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도자를 그저 겉모습만 보지 않고 좀더 깊이 있게 감상하는 데에 도자의 원료와 제작 방법을 아는 것은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에 더해 도자가 시대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는지, 지역에 따라 어떤 다른 특성을 보이는지 구분할 수 있다면, 또 그렇게 달라진 이유를 이해한다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감상을 할 수 있다. 또 백자와 도자를 비교해서 본다면 각각의 본질에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다.
지난 늦가을부터 시작된 두 기관의 백자 전시와 청자 전시는 제작 방법, 시대와 지역의 특성과 차별점을 주목하도록 했다는 장점을 보여주었다. 특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알기 쉽도록 최대한의 배려를 보인 점이 주목된다.
서울공예박물관 전시장
서울공예박물관의 <백자-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전은 규모가 크지 않다. 백자에 매료된 김환기의 말에서 따 온 제목이지만 백자의 제작 방법을 설명하겠다는 의지가 보여지기도 한다. 특히 백자의 원료와 기법에 대한 연구 결과물들을 다양한 샘플을 통해 보여준 것이 흥미롭다.
백자와 관련된 수년간의 연구 결과 아카이브를 펼쳐 놓았다. ‘재료의 발견’ 파트에서는 한국세라믹기술원, 명지대학교 한국도자기연구센터 등에서 진행한 재미있는 연구들을 보여준다. 다양한 자연 광물을 백자의 태토·유약·안료로 가공하고, 구운 후 나타나는 변화를 작은 도편으로 비교해 보여주는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옆에는 서울공예박물관이 제작한 책장 형태의 ‘재료상자’와 사방탁자처럼 생긴 ‘기법상자’가 있다. 재료상자에는 주요 태토, 유약, 안료로 제작한 89점의 표본이 들어 있고, 기법상자에는 조선~근대기의 백자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장식기법을 재현한 35점의 표본을 담았다. 완성된 작품을 보아서는 알기 힘든 원재료의 정체, 모양, 완성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도록 풀어준다. 표본을 만져보도록 하는 것도 재미있다.
학습용 전시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환기, 구본창, 전병현 같은 유명 작가들이 백자를 소재로 그린 회화 작품도 있고, 청진동에서 출토된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백자 항아리>와 호림박물관 소장 <백태 청유 호> 등 전통 백자 감상 공간도 있다. ‘공예’박물관으로서 자연의 물질에서 인간의 손에 생명력 있는 결과물을 가져다주는 공예 활동에 방점을 찍고, 전통 백자와의 연결고리를 이어가려는 동시대 공예작가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장
반면, 새단장 후에 공개된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시관 청자실은 국보 12점과 보물 12점 등 국립 박물관의 이름에 걸맞는 명품 청자 250여 점을 선보인다. 여기서는 고려청자가 지닌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작기법과 쓰임새, 그리고 자기 제작의 시작과 완성이라는 문화사적 의의를 설명하는 데에 주력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요 가마터에서 나온 청자 조각이나 제작기법에 대한 시각자료 등 그동안 청자실의 모습과는 다르게 여러 자료를 활용하여 고려청자를 다각적인 관점에서 보여주려 했다. 시대의 흐름을 알아채게끔 도자를 배치한다든가, 가마터에 따른 차이를 알아보도록 한다든가, 친절한 설명을 붙인다는가 하는 배려가 좋은데 지나치게 교육적인 느낌이 나지 않도록 신경을 쓴 느낌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다소 설명패널의 글씨가 작고, 설명글 배치가 작품 배치와 나란하지 않아 얼른 알아보기 어려운 곳이 있다는 것.)
또한, 비색과 조형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청자 18점(국보 5점, 보물 3점 포함)을 선정, 따로 공간을 두어 비색청자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여 몰입형 감상을 하게끔 한 것도 박물관의 강조사항이다. 세계적인 예술품으로 평가받는 고려 상형청자 18점이 한자리에 모여 전시된 것은 처음이다.
이전에 자기에 대해 잘 몰랐던 고려 사람들은 150여 년 정도의 세월 만에 자기 제작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의 완성에는 굽는 온도, 구울 때 산소의 공급과 차단 같은 기술에 대한 지식, 좋은 태토를 찾아 가마터를 짓는 일 등의 여러 성취가 쌓인 결과다. 시기가 변함에 따라 특징적인 문양이나 형태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흙이 변화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면서 백자로 넘어가는 것은 마치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나 진화 같은 스토리로 보인다.
공예박물관의 소박하고 개성있는 백자 전시와 명품이 즐비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청자실을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왜 청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지다가 조선에 와서는 만들어지지 않고 백자를 만들게 되었는지 같은 질문을 가진 관객이 두 전시를 모두 꼼꼼히 본다면 각 도자 스타일들이 기법과 재료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같은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난 하반기부터 호림박물관 개관 40주년 특별전 <상감>이 막바지이고, 곧 삼성미술관리움이 재개관 후 첫 고미술 전시로 백자 전시를 열 계획이라고 하니 조금 더 알게 된 눈과 안목으로 도자를 감상해 볼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