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셀럽이 사랑한 Bag and Shoes 전
전시기간 : 2022.12.31 ~ 2023.03.25
전시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글/ 김진녕
한국의 유명 컬렉터는 대개 미술품을 모았다. 이랜드그룹의 박성수 회장은 예외적으로 미술품이 아닌 영역으로 분류되는, 유명인이 소유했던 보석이나 그들이 입었던 의상, 신었던 구두, 들었던 가방 또는 유명 음악인이나 정치인, 종교지도자의 무대의상이나 다루던 악기, 실착 의류와 구두 등을 모았다. 가끔 해외 토픽란에 해외 유명 경매에서 박 회장이 낙찰받았다는 뉴스가 보도되곤 했다. 그렇게 모은 소장품에는 197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메달,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81만 8,500달러(당시 101억원)에 낙찰받은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다이아몬드, 미국에서 대통령을 지낸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진주목걸이,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 직위봉, 가수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의 무대 의상, 팝스타 비틀스가 직접 쳤던 기타와 사인이 담긴 앨범, 현대 영화 역사에서 반드시 거론되는 영화 <시민 케인>으로 감독 겸 극작가이자 배우였던 오손 웰스가 이 영화로 1942년 받은 오스카 트로피 등 아카데미상 트로피 28점,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유격수 아지 스미스의 우승 트로피와 올스타 반지(20개), 골든 글러브(13개) 등의 메이저리그 관련 유물 등이 포함된다. 이랜드뮤지엄은 소장품만 50만 점이라고 한다.
이 50만 점 중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유명 배우와 스포츠 스타, 가수, 정치인, 종교인의 신발과 가방, 의상 200점을 뽑아 대중에 공개하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셀럽이 사랑한 Bag & Shoes>(세종미술관, - 3.25)란 이름의 전시다. 이랜드그룹 계열사의 리조트나 식음료업장 등의 사업장에 전시된 적은 있지만 이랜드의 울타리 밖으로 나와서 미술관의 기획을 더해 선보이는 전시로는 사실상 처음인 자리다.
전시는 크게 여덟 개의 섹션으로 이뤄졌다.
첫 번째 코너는 ‘리더스’. 20세기 후반 영국 총리로 한시대를 장식했던 마가렛 대처의 의상과 구두가 소개되고 있다. 남성 정치인보다 다양한 형식과 색상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대처가 입은 옷의 색상은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되면서 ‘패션 코드’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종교인 코너에는 로마 바티칸공국의 최장기 교황이었던 비오 9세가 신었던 빨간 구두가 전시물로 나와있다. 최근 선종한 베네딕토 16세는 재위 당시 ‘빨간색 프라다 구두’가 대중매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구두는 프라다도 아니었고 그 분의 취향을 반영한 게 아닌 카톨릭의 전통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전시장에는 베네딕토 16세가 사용하던 하얀색 모자 주케토도 나와 있다.
두 번째 섹션인 ‘유행어’에는 18세기 중후반의 로코코 시대부터, 19세기 빅토리아 시대-1차 대전 직전까지의 벨에포크 시대-1차 세계대전-20세기 중후반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유행하던 여성용 구두와 가방을 전시했다. 패션의 역사를 통해 시대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식 구성을 취한 코너이다.
세 번째 섹션은 ‘영화 속 신 스틸러’. <메리 포핀스>에 등장했던 여주인공의 가방이 실물로 등장하고, <닥터 두리틀>에 등장했던 왕진 가방,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이 신었던 나이키 운동화, <록키> 시리즈의 복서 가운 등 세대를 넘어서 사랑받는 영화의 소품과 출연 배우 친필 사인이 들어간 포스터 등이 전시돼 영화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유명인 코너로는 영화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찰리 채플린, 대중음악계의 마이클 잭슨, 농구인 마이클 조던이 각각의 코너를 부여받아 시대를 뛰어넘는 슈퍼스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일곱 번째 섹션은 ‘무대 위 신 스틸러’로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수 중 하나인 밥 딜런의 기타, 핑크 플로이드의 투어 케이스부터 21세기의 ‘슈퍼 관종’으로 음악계 밖에서도 화제를 모았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레이디 가가, 니키 미나즈의 무대 의상도 선보이고 있다.
마지막 섹션은 ‘더 라스트’란 이름으로 신발과 이 신발을 제작하는데 쓰이는 구두골(Last)이 주인공이다. 목형으로도 불리는 구두골은 나무로 만드는데, 유명인이나 부호 등은 자신의 발을 본뜬 구두골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코너에는 팝스타 마돈나의 무대용 부츠, 배우 스티브 맥퀸의 구두, 아카데미상을 4번이나 탄 캐서린 햅번의 부츠와 그의 영화 의상 제작을 위해 아카데미 의상상을 8번 수상한 다자이너 에디스 헤드가 만든 캐서린 햅번의 슈 라스트가 함께 전시돼 있다. 이 섹션에는 국내 신발 장인과의 협업 전시물도 나와 있다. 메탈밴드 건스앤로지즈의 기타리스트 슬래시의 슈 라스트와 이를 바탕으로 유홍식 명장이 복원한 슬래시의 웨스턴 부츠가 함께 나와 있고, 팝스타 엘튼 존의 슈 라스트를 바탕으로 전태수 명인이 복원한 엘튼 존 특유의 높은 굽의 플랫폼 부츠도 있다. 이게 모두 유명인의 ‘구두골’을 소장품으로 확보했기에 가능했던 복원품이다.
이랜드쪽에선 소장 물품에 대한 해외 유명 박물관의 대여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영국의 빅토리아알버트뮤지엄(VA), 아카데미상박물관, 루이비통재단 등에서 요청을 받아 실제 대여를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19세기 이후 근현대의 의류 등 패션 용품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지만 박물관에서 전시하기 힘들만큼 희소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랜드의 소장품처럼 ‘유명인 OO가 사용했던’이라는 스토리성, 역사적 근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유물은 희소할 수 밖에 없다. 현대 영화역사를 주제로 전시를 꾸밀 때, 20세기 미국 위주의 대중음악사를 시각 유물로 꾸민 전시를 만들 때, 20세기 후반에 만개한 현대 프로스포츠를 주제로 전시를 꾸밀 때, 특히 농구나 야구의 역사 전시를 만들 때 이랜드의 소장품이 꼭 필요했으니 유물 대여 요청이 들어왔을 것이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 이는 이랜드뮤지엄이 자체 기획으로 20세기 현대 패션사나 음악사, 영화사, 스포츠 관련 전시를 기획할 때 VA나 아카데미박물관 등 해외 유명 박물관의 소장품을 빌려올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이랜드뮤지엄의 소장품 범주가 굉장히 넓고 방대하다는 것도 확인시켜 줬다. 장르를 나눠 패션박물관이나 스포츠박물관, 영화박물관, 대중음악 박물관을 만들만한 수량의 소장품 규모다. 다만 패션이나 스포츠, 영화 등 대중문화 각 분야의 미시사까지 제대로 꿸 수 있는 소장품을 확보하고 있는지는 이번 전시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에 패션이나 음악, 영화 등 특정 장르를 지목하지 않고 ‘셀렙이 사랑한’이란 수식을 붙인 것도 이번 전시 자체가 이랜드컬렉션의 샘플러 성격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소장품의 ‘깊이’에 대한 궁금증은 이랜드그룹이 마곡에 짓고 있다는 자체 박물관이 문을 열 때까지 미뤄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