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붓을 물들이다 – 근역화휘와 조선의 화가들
전시기간 : 2022.10.1 ~ 2023.1.31
전시장소 : 서울대학교박물관 기획전시실
글/ 김진녕
서울대박물관에서 <붓을 물들이다 – 근역화휘와 조선의 화가들>전(-2023.1.31)이 열리고 있다.
2002년 서울대박물관 소장의 『근역서휘』와 『근역화휘』 도록을 펴내면서 열렸던 전시 이후 오랜만에 『근역화휘』에 수록된 작품 67점을 전부 공개하는 전시가 열린 것이다.
전시에는 『근역화휘』에 실린 67점과 <근역서화징>, <겸현신품첩>, <오로회첩> 등 14건 86점의 작품이 선보이고 있다.
근역화휘
『근역화휘』는 서울대학교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으로 위창 오세창(吳世昌,1864-1953)이 조선시대 화가의 작품을 수집하여 편집한 화집이다. 시대적으로는 조선 초기, 중기, 후기, 말기까지를 아우르며, 주제도 다양하다. 오세창은 1910년 부터 7년 동안 『근역서휘』, 『근역화휘』, 『근역서화사』를 편집했다고 한다. 한용운의 1916년 기록에 따르면, 오세창은 『근역화휘』를 총 7권으로 편집했다. 이때 『근역화휘』에는 191명의 그림 251점이 수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간송 전형필(1906-1962)과 박영철(朴榮喆, 1879-1939)이 『근역화휘』를 나누어 소장하게 되면서 원본이 분리되었다. 서울대박물관에 소장된 『근역화휘』는 총 67점이며, 박영철이 기증한 것이다. 간송미술관에도 오세창이 편집했다고 전하는 동명(同名)의 화첩(畵帖)이 소장되어 있다.
근역서화징
박영철은 일제 강점기에 은행장을 지낸 자산가이자 친일파다. 박영철은 우리나라의 역대 명필 1107명의 글씨를 모은 『근역서휘』와 67점의 그림을 모은 『근역화휘』를 1940년 10월 경성제국대학에 기증했다. 해방 뒤 경성대의 자산은 서울대가 인수했고 이 기증품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이 됐다.
『근역화휘』나 『근역서휘』가 어떤 경로로 박영철의 수장품이 됐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다만 박영철은 오세창이나 김용진(金容鎭, 1878-1968) 등과 친분이 있었다. 이는 화첩 중 김홍도(金弘道), 조중묵(趙重默), 박기준(朴基駿), 유재소(劉在韶) 4인의 작품에 ‘영운(穎雲, 김용진의 호)’ 혹은 “김용진가진장(金容鎭家珍藏)”이라는 도인(圖印)이 찍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근역화휘』는 천첩(天帖)에 25점, 지첩(地帖)과 인첩(人帖)에 각 21점, 도합 67점의 그림이 실려 있다. 시기별로는 조선 초기 2점, 중기 8점, 후기 30점, 말기 이후가 27점이며, 주제별로는 산수 18점, 인물 4점, 사군자 14점, 화조 10점, 동물 5점, 물고기와 게가 7점, 초충이 9점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집시기를 알 수 없다.
전시는 작품을 책에 배열된 원래 순서가 아닌, 산수·인물, 사군자, 영모·어해, 화조 등 큰 주제로 나누어 재배치했다.
전시장 들머리에는 『근역화휘』의 편집자인 오세창의 글씨 몇 점과 탁본을 소개하며 20세기 초반에 19세기 조선 서화를 정리한 미술사가이자 서화가, 수장가인 '오세창'을 조망하고 있다.
‘화폭에 옮긴 자연, 산수’에서는 산수 인물화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정선은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겸현신품첩>에 실린 실경 산수화인 <만폭동도>와 <혈망봉도>, 실경풍의 <산수도> 석 점을 『근역화휘』에 실린 관념산수화 한 점과 함께 전시해 정선이라는 18세기 전반의 최고 화가를 조망하고 있다.
‘선비의 벗, 사군자’ 섹션에서는 조선 문인화의 단골 소재인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그림을 모아놨다. 이 섹션에서는 매화로 유명했던 조희룡(1789-1866)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홍매도, 조희룡
조희룡은 19세기를 대표하는 중인 출신 화가이고 여항인이다. 여항인이란 통역이나 약품 유통 등 기술직이나 실무직에 종사하던 사람으로 신분적으로 양반과 평민 사이고, 18세기부터 경제적 사회적으로 조선사회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양반처럼’ 시사(詩社, 시모임)를 결성하고 그림과 글을 쓰는 활동에 열성적이었고 19세기 문예활동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조희룡은 19세기 여항인 중에서도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시를 즐기는 모임 활동과 양반 출신 당대의 서예가로 꼽히던 김정희와의 교류를 통해 양반을 능가하는 ‘문기’를 보여줬다. 김정희는 ‘중인 출신이라 문기가 없다’고 했지만. 조희룡은 매화를 무척 좋아하여 숱한 매화 그림을 남겼다. 전시장에는 『근역화휘』에 실린 작품 외에 <호산외사 쌍절첩>에 실린 <묵란도> 한 점, <편우영환첩>에 실린 <홍매도>와 <백매도> 등 모두 넉 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묵란도>는 화분이 아닌 화병에 꼽혀있는 구도로 그려졌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동물에 담아낸 염원’에서는 짐승의 털묘사가 담긴 영모도 위주의 그림이 모여있다.
다섯번째 섹션은 ‘꽃과 나비가 있는 정원’. ‘화조도’ ‘화훼도’ ‘초충도’로 불리던 장르의 그림이 선보이고 있다. 신사임당(1504-1551)과 이우(1542-1609) 모자의 그림, 벼슬길이 막혀 그림으로 방향을 튼 몰락한양반 심정주(1678-1750)와 심사정(1707-1769) 부자의 포도도와 꿩 그림을 볼 수 있다.
전시 마지막 부분에선 조석진 (1853-1920)을 따로 조명하고 있다. 주최측에선 그를 ‘전통에 서서 새 것을 연 화가’로 규정했다. 안중식과 함께 청나라에 유학(영선사) 경험이 있고, 어진 제작에 참여한 마지막 화원이자 19세기에 가장 유명했던 화가 장승업의 화풍을 계승했고, 서화미술원 교수로 안중식과 함께 김은호 등 현대 채색화가를 길러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부신독서도, 유운홍
『근역화휘』에 실린 <이어도>(1918)는 잉어 두 마리를 그린 그림이고 족자 형식의 <어해도>(131x39.8cm)는 선묘 대신 먹의 번짐을 이용한 조석진의 솜씨가 게와 물고기를 형상화하는데 얼마나 탁월했는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전시에선 이외에도 진재해(秦再奚), 김덕성(金德成), 마군후(馬君厚), 우상하(禹相夏) 등 전하는 작품이 많지 않은 조선조 화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오세창과 동시대 화가 중 어떤 화가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일하는 어부를 크게 그리고 음영 묘사에서 서양화풍의 영향이 감지되는 우상하(19세기 후반)의 작품은 충분히 흥미롭다.
또 20세기 초반까지 생존했던 작가의 작품, 양기훈(1843- ?)의 <노안도>, 일본 남화의 영향이 감지되는 김용수(1901-1934)의 <연지도>(1932), 서회보(1849-1923 이후)의 <유마도>(1923), 지창한(1851-1921)의 <해도>, 김규진(1868-1933)의 <해도>는 오세창이 살아가던 ‘당대의 서화’(미술)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쓰임의 물건이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2층 기획전시실에 『근역화휘』가 전시되어 있고 상설관인 1층 메인 전시실에 『근역서휘』도 일부 공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