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그림으로 보는 근대 진주사 <회화소록>전
전시기간 : 2022.9.6 ~ 2022.10.30
전시장소 : 국립진주박물관
글/ 김진녕
국립진주박물관에서 <회화소록>전(202.9.6- 10.30)이 열리고 있다. 1920년대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진주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또는 진주에 연고를 두고 서울로, 세계로 진출한 작가 13인의 작품을 조망하는 전시다. 전시에 등장한 작가는 황영두(1881-1957), 황현룡(1883-1960), 정대기(1886-1953), 강신호(1904-1927), 박생광(1904-1985), 허민(1911-1967), 조영제(1912-1984), 성재휴(1915-1996), 설창수(1916-1998), 홍영표(1917-1994), 이성자(1918-2009), 정문현(1926-2015), 안재덕(1956-1992) 등이다.
황영두나 황현룡은 전통 수묵화의 세계를 지켰고, 허민과 성재휴는 수묵과 채색에 두루 능했고, 일본에 유학했던 박생광은 1980년대에 채색화의 범주를 ‘현대 한국화’로 넓였다. 또 강신호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이성자, 정문현, 안재덕은 서양화쪽에서 활동했다. 진주라는 키워드를 가운데 놓고 살펴보는 한국 근대미술 전시인 것이다. 때문에 전시의 소제목도 ‘서양화의 유입과 지역 화단의 형성’, ‘단체 설립과 화단의 정착’, ‘영남예술제’, ‘중앙 화단과의 교류와 해외 현대미술의 수용’으로 장르의 구분이 아닌 지역사와 시대 순으로 정리해 소개하고 있다.
황영두 <세한삼우> 1944, 종이에 수묵, 132x42cm(8폭)
황현룡 <소나무> 종이에 수묵, 110x32.5cm(8폭)
전시장 들머리엔 스물 셋의 나이에 요절한 강신호이 정물화 한 점이 걸려있다. 그가 1925년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미술학교로 유학을 갔고 고3 때부터 선전에 입상했고, 1926년에 진주 지역에서는 최초로 서양화 개인전을 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진주 지역의 근대미술 운동의 상징으로 강신호를 소개한 전시 입구에 등장하는 개별적인 작가의 행적과 한국 미술사 전체의 주요 사건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 진주 미술 연표를 등장시킨 것도 전시의 이해를 높이고 있다.
강신호는 양화 도입 초기에 진주 지역이 경성부에 뒤치지 않는 속도로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인 동시에 1920년대 한반도 최초의 인권운동으로 꼽히는 형평운동(衡平運動)을 넌지시 일깨워주는 존재이다. 강신호는 그때 형평운동을 주도했던 진주의 유지이던 강상호(姜相鎬)의 막내동생이다. 강상호는 진주농업학교 1회 졸업생으로 백정의 인권회복 운동인 형평운동에 앞장섰고 자본가 계급에 속하는 그가 형평운동에 가세했다는 것은 조선의 형평운동이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한 계급투쟁 운동으로 단정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강상호의 행적은 형평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2023년 진주에서 대규모 전시를 통해 다시 조명될 예정이기도 하다.
박생광 <촉석루> 1947, 비단에 채색, 43.5x34.5cm
진주가 고향이고 해방 전후 진주에서 활동한 박생광의 출품작 중엔 <촉석루>(1947)와 <청곡사 가는 길>(1950)가 있다. 특히 <촉석루>는 1980년대에 그가 그린 촉석루와도, 그가 1970년대 이전에 그린 일본화풍과도 다른 필치로 민화류의 고졸한 표현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박생광의 ‘한국적인 것’에 대한 모색이 적어도 해방 전후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1945년 해방 뒤 설창수, 박생광, 박세재 등을 중심으로 진주 문화예술 운동사의 시발점인 ‘문화건설대’가 조직됐고 이를 바탕으로 대안동 박생광의 자택(그때 청동다방)에 모인 이들을 중심으로 진주미술인동호회가 결성됐고 이것이 1948년 진주미술협회의 결성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박생광의 이번 전시 출품작 중의 시화도 석 점은 진주 중심의 미술활동과 관련된 것이다. 이 시화도는 1949년 영남예술제 창설을 주도한 언론인이자 시인인 설창수와의 합작품이다. 이 ‘시화도’가 진주에서 자생적으로 태동한 지역주도의 미술운동과 영남예술제라는 그 시대의 문화 유산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주최측에선 “1951년 제2회부터 미술인과 문학인이 함께 하는 ‘시화전’이 시작되었고, 여기에 박생광 성재휴 조영제 홍영표 등이 참여하면서 영남예술제의 꽃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시대의 시서화 일체론이 여전히 유효했던 1950년대, 당대의 대중에게 서書와 화畵가 분리된 ‘현대 미술’을 설득시키는 한 방법으로 기존의 ‘서화’와 가장 가까운 형식인 시인과 화가의 합작품인 ‘시화’를 선보였고 이게 198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시화전 행사가 열리는 계기가 된 셈이다.
또 당시 문화 기반시절이 부족했던 탓에 다방도 전시장으로 적극 활용됐고, 1954년 박생광의 초청으로 진주에 머물던 이중섭이 진주 시내 카나리아다방에서 개인전을 열고, <진주 붉은 소>를 그려 박생광에게 선물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성재휴의 출품작 중엔 풍곡이라는 널리 알려진 호 대신 운당이라는 초기에 쓰던 호가 쓰인 단폭의 산수도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재미있는 점은 성재휴의 출품작 중 <쏘가리>는 2020년에 한 경매에 출품됐던 작품이다.
한 관계자는 전시 작품을 출품한 이들이 지역 컬렉터라고 했다.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출품한 이성자 작가의 작품 석 점을 빼고는 모두 개인 컬렉터의 소장품이라는 것. 이들은 최근까지, 아니 계속해서 진주가 연고인 작가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컬렉터의 모임이 이번 전시의 주최자인 ‘사단법인 진주목문화사랑방’이다. 민간 단체에서 지역미술사를 복원하는 주최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도 지난 7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열었던 전시를 더 보강해서 만든 앵콜 전시격이다.
박생광 <십장생> 1982, 종이에 채색, 136x42cm(6폭)
전시의 제목으로 쓰인 ‘회화소록’은 어딘가 낯익다. 아마도 <양화소록 養花小錄>이란 말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양화소록>은 조선시대 세종 때 활동한 문신 강희안(姜希顔, 1417~1465)이 쓴 책으로 꽃과 나무의 특성을 정리한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원예서로 꼽힌다. 강희안은 진주 강씨이고 진주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날로 아득한 산 바라보며 진양을 생각하니(日望遙岑憶晉陽)’로 시작하는 <억진양(憶晉陽)>이란 시도 남겼다.
진주를 사랑했던 강희안의 저서에서 제목 일부를 빌려온 이번 전시는 진주(진양)란 도시를 매개로 이어지는 문화와 전통이 15세기 강희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두터운 문화의 층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진주를 주어로 놓고 당대의 문화사를 제대로 쓰겠다는 이들의 노력이 한국 근대미술의 층을 두텁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