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상감(象嵌) - 이질적인 것들의 어우러짐
장 소 :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1~4층
기 간 : 2022.07.26 ~ 10.15 (1차) 10.28 ~ 12.30 (2차)
우리는 보통 ‘상감’이라고 할 때 우리의 대표적 문화재 고려청자를 떠올리지만, 파내고 다른 물질을 채워 넣어 문양을 만드는 것은 다양한 공예 분야에서 사용되는 기법이다. 영어로는 Damascening, Inlaying 등으로 말할 수 있는데 이 단어를 들은 유럽 사람들은 철이나 청동에 금이나 은을 새겨넣는 기술을 더 먼저 떠올릴 것이다.
호림의 특별전 <상감>은 모두 '이질적인 것을 주입해 넣는' 작업이라는 주제 하에 여러 분야를 아우른다. 제1전시실은 ‘색(色)을 새기다’, 제2전시실은 ‘선(線)을 새기다’, 제3전시실은 ‘빛[光]을 새기다’, 제4전시실은 ‘이질적인 것들의 어우러짐’으로 이름지었는데, 색을 새기는 것은 도자의 상감, 선을 새기는 것은 금속 입사 기법, 빛을 새기는 것은 반짝반짝 아름다운 나전칠기가 주된 전시물이 된다. (네번째 전시장은 기법과 관련 없이 '이색 조합' 또는 '혼성'의미를 계승했다고 해석할 만한 현대 작가들 작품이 주를 이룬다.) 즉 맨 위 제1전시실에서부터 내려오면서 보면 도자 → 금속 → 목공예 → 현대작가 순서다.
금속이나 목공예에서의 다양하고 화려한 상감 기법도 흥미롭지만 역시 호림의 전시라면 도자에서 깊이와 다양성을 볼 수 있길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오묘한 색의 청자 바탕에 섬세하게 꾸며진 상감 문양의 고려청자는 인류의 자산이다. 도자 위에 그냥 붓으로 무늬를 그려넣지 않고 그림 부분을 홈을 파고 바탕이 되는 흙과 다른 색의 흙을 채워넣는 정성을 들이는데 여기에 색과 형태의 완성도가 갖춰진다면 감탄을 자아낼 만한 완벽한 아름다움의 명품으로 거듭나는 독특한 요소가 된다.
청자 상감 모란국화문 팔각장경병, 고려 12세기 후반~13세기 전반
상감 청자 매병 등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 이미지를 나도 모르게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을까. 전시실 입구에 청자로 만들어진 도자기판과 베개가 눈길을 끌고 있어 신선한 느낌이었다. 청자 판은 뒤쪽에는 유약이 묻어 있지 않고 표면에 상처가 없어 (바닥 타일은 아니고)건물 벽면을 장식하는 용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음각과 상감 기법으로 꽃과 구름, 학 등 각종 문양이 진사와 희고 검은 흙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쓰이는 빈도에 비해 만드는 것이 까다로웠던지 부안에 있는 청자 가마에서 소량 제작됐고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유물이다.
청자상감 도판
이밖에도 전시장에는 매병, 편병을 비롯한 각종 병, 주자, 호, 합, 잔, 완 등 다양한 형태의 청자가 다수 등장한다. 무덤에서 발견된 것, 궁중에서 아주 귀한 사람만이 썼음직한 화려한 그릇, 상감은 상감이나 소박한 문양을 가진 다소 둔탁한 청자 용기 등등.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품 외에도 다양한 만듦새의 도자들이 고려의 전성기 청자와 시대의 흐름에 따른 스타일의 변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서 이를 비교해 가면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특별전의 좋은 점 중 하나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상감 기법이 무르익고, 구름이나 버드나무 같은 문양이 차차 변화하여 양식화되고, 찍어서 반복되는 인화문이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청자 흙의 변화로 인해 색이 탁해지는 변화를 겪고 결국은 분청사기로 넘어가는 과정이 조용히 펼쳐진다.
(좌) 청자 상감 포류수금문 완, 14세기
(우) 청자 상감 유죽료수금문(버드나무, 대나무, 여뀌蓼, 물새 무늬) 표형병 13세기
고려의 상감 전통은 조선으로 이어져 분청사기에 구현, 활달하면서도 소박한 전혀 다른 미감을 보여준다. 그릇 표면에 여백이 거의 없이 빼곡하게 인화문양을 새긴 분청사기는 현대 디자인에 적용해도 어색함이 없을 것 같고, 순백 바탕에 흑상감으로 간결하면서도 대범하게 표현한 백자 속 상감 문양까지 훑고 나면 상감에 대한 인상이 넓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청자 철채상감 보상화당초문 매병, 고려 13세기
이번 전시에서는 호림의 명품 외에도 국립 박물관이나 유명 사립박물관, 개인소장가로부터 대여해 온 도자 및 공예품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전시 흐름을 더욱 풍부하게 해 준다.
철제 은입사 장식 대반(부분), 국립중앙박물관
금속공예에서의 상감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금이나 은 와이어를 틈에 넣는 기술이기 때문에 입사(入絲)라고 불린다. 제2 전시실의 ‘선(線)을 새기다’에서는 우리 전통 공예에서의 입사 기술을 보여주고 있는데 입사 역시 고려시대가 전성기라 할 수 있다. 향완, 정병, 향합, 여의 같은 불교문화재와 거울걸이, 촛대, 자물쇠, 투구, 칼 등의 금속 공예품을 감상하면서 입사 기술에 좀더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설명문을 자세히 읽으면서 감상한다면 쪼음이나 끼움 등의 입사 기법을 구분해 볼 수도 있다.
철제 금은입사 여의,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목공예에서의 ‘끼워넣음’의 대표주자는 나전칠기. 목기 기물의 바탕에 단순히 자개를 붙이기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 화려한 목공예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장인들의 손이 몇날 며칠 반복해서 가해지는 복잡하고 세밀한 작업이 있었음을 상상하며 보게 된다. 자개 뿐만 아니라 거북이 껍데기 대모(玳瑁), 어피, 소뿔(화각) 등 재료의 특성을 살린 화려한 칠기 작품들을 선보인다.
공예 기법이 주제가 된 전시라서 더 유심히 디테일을 살펴보게 된다. 40년이라는 긴 세월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소장품을 늘여가고 관리하고 유지하고, 새로운 기획으로 유물을 소개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관심을 기울일수록 더 좋은 기획들이 나올 수 있음은 당연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