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때빼고 광낸 보화각의 보물을 다시 만나는 자리 <보화수보>전
전시기간 : 2022.4.16(토)~6.5(일)
전시장소 : 간송미술관
글/ 김진녕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보화각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세운 한반도 최초의 민간 박물관이다. 컬렉터가 자신의 수집품을 모아놓은 곳이란 의미에서 르네상스 후기에 등장한 박물관의 원형인 ‘경이로운 방’(wunderkammer)에 딱 들어맞는 곳이기도 하다. 보화각은 20세기 후반부터는 매해 봄 가을로 여는 ‘간송문화대전’으로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다. 정부의 지원도 받지않고, 등록된 미술관(박물관)도 아니었지만 컬렉터의 ‘호의’로 일반은 간송컬렉션의 일부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간송미술관
그러는 사이 설립자 간송미술관장은 설립자 전형필(1906-1962)에 이어, 전성우(1934-2018)를 거쳐간송의 손자인 전인건이 관장이 됐고 미술관의 운영방침도 약간의 변화가 온듯 하다. 7년 만에 다시 문을 연 간송미술관의 전시는 그 변화의 폭과 방향을 가늠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이름은 <보화수보寶華修補>다. 이름에서 짐작하듯 간송미술관 소장품 중 최근 보존처리가 완료된 작품을 공개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모습의 간송미술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은 “이번 전시는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문화재 다량소장처 보존관리 지원 사업’을 통하여 2020년부터 2년 간에 걸쳐 보존처리가 완료된 작품을 공개하는 자리이다. 특히 ‘비지정문화재 보존처리 및 예방적 관리’로 문화재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지정문화재를 대상으로 하는 최초의 보존관리 사업의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라고 밝혔다. 이번에 전시된 유물은 이미 지난해 보존처리가 끝난 것으로 이미 지난해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사업이다. 그 사이 추가된 사항이 있다면 문화재청의 예산지원을 받아 건립이 추진되던 간송미술관의 수장고 시설이 완공된 것이있고, 간송미술관 소장품 중 일부가 경매를 통해 매각됐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풍림정거, 이인상, 지본담채, 30.9x41cm
간송미술관쪽에선 “재단 소장품 중 잠재적으로 지정가치를 지니고, 보존처리가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작품을 선정하여 해체 수리를 진행했다. 여말선초의 문인인 매헌梅軒 권우權遇(1363-1419)의 문집인 <매헌선생문집>, 조선 후기 대수장가인 석농 김광국(1727-1797)이 수집한 그림을 모아놓은 <해동명화집>, 영조대 문인화가인 능호관 이인상(1710-1760)의 <원령희초첩元靈戲草帖>, 조선 말기의 관료 민영익의 <운미난첩>, 조선 중기 화원화가 설탄雪灘 한시각(1621-?)의 <포대화상> 등이 그 대상이었다. 김명국의 <수로예구>와 김홍도의 <낭원투도>와 같이 손상등급이 높지 않은 서화 및 도자류 약 200여 점을 대상으로 예방적 관리 차원에서 응급처리를 진행하고, 보존환경을 개선하는 작업도 병행했다”고 밝혔다.
삼일포, 심사정, 지본담채, 27.6x30.8cm
<포대화상>이나 <낭원투도>, <운미난첩>, <해동명화집> 등은 모두 간송문화대전에 자주 등장하던 작품이라 과거에 비해 말끔해진 모습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간송쪽에선 수복 보존 처리 과정에 대해서도 짤막한 설명을 전시장에 붙여놓기도 했다.
보존 처리를 겪고도 크게 티가 나지 않은 작품은 <해동명화집>에 들어가 있는 심사정의 <삼일포>이다. 흡사 눈내리는 겨울 풍경을 그린듯 화면 가득 ‘눈송이’가 가득히 ‘묘사’되어 있어서 일반인도 쉬이 기억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눈송이’가 심사정의 의도가 아니라 벌레에 의한 충식 흔적이다. 시간과 벌레와 인간의 착각이 결합해 ‘낭만가득한 눈내리는 삼일포’란 판타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간송쪽에선 이번 수리를 통해서 이 ‘눈 내리는’ 광경을 크게 손보지 않았다. 이미 일반의 머리 속에 자리잡은 ‘벌레의 기여분’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보수한 것이다.
2층 전시장
보통 간송문화대전이 보화각에서 열리면 1층 전시장은 대형족자류의 작품이 걸리고, 2층 전시장엔 화첩류와 도자류가 전시됐다. 이번 전시엔 1층만 활용됐고 2층은 비워놨다. 대신 2층 전시실엔 수장고가 들어서기전 밀림을 방불케 했던 보화각 앞 뜰의 모습 등 1938년 개관 이래 크게 변하지 않았던 지난 시절의 보화각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은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그리고 개관 이래 전시장을 지켜온 목재 캐비닛이 빈 칸으로 관람객과 햇살을 맞이하고 있다. 수많은 간송의 컬렉션을 담아내던 캐비닛은 1938년에 세워진 보화각 건물만큼이나 근대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전시장
전시장
간송측은 이번 전시가 끝나고 보화각의 수리 작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것이 아닌 ‘수리’라고 밝혔기에 보화각의 수리가 끝난 뒤에 서울 간송미술관의 전시 기능이 다시 살아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구시의 제안과 지원으로 대구에 짓고 있는 간송미술관의 ‘전용 전시장’과 서울 보화각의 전시 기능을 어떻게 병행할 것인지 등 향후 간송미술관의 행보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전인건 관장은 이번 전시회 개막식을 통해 “향후 더 이상의 소장품 매각은 없다”라는 점만 분명히 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의 의지가 담긴 ‘1938년 산 보화각’이 어떤 모습으로 2038년을 맞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