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한국미술 전시리뷰
  • 공예 전시리뷰
  • 한국미술 도서리뷰
  • 미술계 이야기
  • On View
  • 학술논문 브리핑
타이틀
  • 그릇으로 들여다본 19세기 문화사 <완상의 벽>전
  • 1396      
-기물을 통해 취향을 드러내던 책가도와 기명절지도의 시대

전 시 명 : 2022년 소장품 특별전 <완상玩賞의 벽癖>전
장 소 : OCI미술관
전시기간 : 2022.1.13-3.5
글/ 김진녕

OCI미술관에서 <완상玩賞의 벽癖>(- 3.5)이 열리고 있다. OCI그룹의 창업주인 송암 이회림 회장의 컬렉션에서 골라 뽑아 차려낸 고미술품 위주의 전시이고, OCI미술관 이름으로 처음 여는 고미술 전시다.

주최측은 전시 제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였다.


《완상의 벽》은 한국의 도자기와 회화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완상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다. ‘완상玩賞이란어떤 대상을 취미로 즐기며 구경한다는 뜻으로감상鑑賞과는 달리취미로 즐긴다는 조건이 충족된 행위를 칭하는 단어다. 이 완상의 대상으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표적으로그릇이 꼽힌다. 과거 선조들은완물상지玩物喪志라 해 어떤 물건에 지나치게 심취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일상 속의 그릇과 문방구 등을 통해 문인의 신념을 지키면서 완상하는 고아한 완상문화를 만들어냈다.”

 


의암 유인석 초상, 비단에 채색, 66.3x110.6cm, 20세기 전반, 김은호


전시장 들머리엔 김은호(1892-1972)가 그린 의암 유인석의 초상(1842-1915)이 걸려있다. 이 작품은 정확한 제작 연대는 미상이지만 김은호의 제자인 장우성(1912-2005) 1935년에 그린 <장수영 초상>과 작품 속의 얼굴만 다를뿐 옷차림이나 난 화분 등 기물의 배치와 구도까지 판박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주최측에서 이 그림을 이번 전시의 상징 격으로 걸어놓은 것은 월전의 그림과 같아서는 아닐 것이다. 19세기 유교 세계관의 신봉자이자 의병장으로 활동한 유인석을 시각화한 초상화를 그리면서 배경으로 책가도 풍의 붓과 벼루, 책을 뒷배경으로 활용했다는 점에 주목한 게 아닌가 싶다. 20세기 전반, 조선조의 화원 밑에서 그림을 배운 이당이 생각하기에 19세기 유교 엘리트의 성정을 드러내는데 이런 뒷배경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이번 전시는 18세기 영조와 정조의 시대 이후 20세기 초까지 한반도 엘리트 계급의 완상 취향을 보여주는 전시고 그 예로 유인석의 초상을 걸어놓은 것이다.

 

전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완상의 대상이던 그릇(도자기)을 내세운 1완상의 시대: 서가에 든 그릇들은 청자부터 분청, 백자, 청화백자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도자기를 선보인다. 2문방청완의 향수: 그릇을 그리다에서는 조선 후기 문방청완 취미의 확산과 함께 유행한기명절지도책가도를 선보이고 있다.

 



도자 파트에서 눈에 띄는 유물은 OCI미술관의 시그니처이기도 한 <백자청화운현명만자문병>(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84)과 백자 발(15-16세기)이다.

18-19세기는 청화백자의 시대라고 할만큼 다양한 청화백자가 양산됐는데 이 작품은 만자무늬(卍字文)가 그려진 도자기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꼽을만하다. 송암이 인천 송암미술관에 기증한 만자 무늬 접시나 수정 박병래의 수장품 중 만자 무늬 접시가 널리 알려졌지만 소품이고 이 유물처럼 만자무늬가 병의 형태를 따라 사방으로 연속해 퍼지는 무늬는 그 예가 이 작품 외에는 알려진 게 없다. 도자기 전문가인 이완식 위원은 밑부분에 기물의 주인이 운현궁이라고 쓰여있는 점이나 무늬의 정교한 구현이 화원급 전문가가 그렸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백자청화운현명만자문병>(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84호)

투명한 우유 빛이 도는 백자 발(15-16세기) 한 점은 약간 이울어진 모양이지만 광택이나 색이 여느 백자 사발과는 다르다. 이완식 위원은 임란 이전 광주 번천리 가마에서 나온 유물로 천지현황명 발과 같은 시대 같은 가마에서 나온 유물이라고 판단했다. 번천리에서 나온 대표적인 백자 유물은 국보 제286호 천지현황명 발이 있다. 이 작품은 이건희컬렉션으로 국립중앙박물에 기증됐다. 번천리 가마에서 나온 백자가 우리나라 백자 중 색이 손에 꼽을만큼 좋았고 이후엔 그런 빛이 안나왔다는 것이다.


백자발, 조선 15~16세기, 21.5x14(h)cm


2부의 회화 작품에선 책가도 두 점과 장승업의 기명절지도가 포인트다. 책가도나 기명절지도나 도자류가 그려지는 일종의 정물화이자 서양과 동양의 근대가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책가도는 정조 치세에서 크게 유행한 그림이다. 전시에 등장한 <책가도 8폭 병풍> <책가도 10폭 병풍>의 차이점은 책꽂이의 유무. 책꽂이(서가)가 있는 작품이 시대가 좀 더 빠르고, 책꽂이 없이 겹겹히 책을 뉘어서 쌓아놓고 화병과 문방구를 그린 책가도는 책가도가 민간으로 확산되던 시기, 즉 좀 더 후대의 작품이다.

전시된 회화류 대부분은 기명절지도다. 기명절지도는 정조 사후 19세기 청나라의 복고풍 바람이 조선에 유입되면서 들어와 장승업의 이름을 널리 알린 그림 형식으로 장승업(1843-1897)-안중식(1861-1919)-서화미술회란 흐름을 타고 20세기 전반까지 한반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기명절지도, 조선, 비단에 채색, 각 29x105cm(10), 장승업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도헌 학예사는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골랐다. 이번 전시에 안중식이나 이도영 등 서화미술회 출신 작가 작품이 많은데 안중식은 그 시대에 스승 노릇을 많이 했기에 선택했다. 소장품 중 안중식의 병풍도 있지만 호가 심전 대신에 초기에 쓰던 뇌당賚堂으로 돼있는 작품을 골랐다. 안중식의 스승이었던 장승업풍이 더 드러나는 작품이다. 변관식의 기명절지도도 그가 1920년대에 쓰던 호인 석남石南이 쓰인 것을 고른 것도 서화미술회 풍을 그대로 따르던 시기의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구쪽에서 활동하던 서병오의 교남시서화회에서 배운 서동균의 기명절지도가 선보인 이유도 흐름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이다. 서병오가 중국을 오가며 활동한 탓인지 서화미술회 진영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중국색이 조금 더 강하다는 것이다. 평양 화단의 양기훈은 노안도로 유명하고 이번 전시에 출품된 화훼영모도열 폭 병풍은 제목에서 보듯 기명절지도가 아니지만 6번째 폭에 큰 화병을 그려넣었다. 19세기의 문방청완 취미가 영향을 끼쳤기에 화훼영모도 안에 기명절지 한폭이 들어간 것이다. 

 



회화는 고화만 나온 게 아니다. 1층 도자 파트에는 20세기 후반의 화가 문학진과 최영림, 정상화의 그림과 21세기에 그려진 이만익과 오관진의 회화 작품이 한국 사람의 여전한 도자기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릇으로 시대와 문화를 좁고 깊숙히 들여다본 전시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2 21:54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