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중국 고대 청동기, 신에서 인간으로
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전시기간 : 2021.9.16~2021.11.14
글 / 김진녕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 <중국 고대 청동기, 신에서 인간으로>전(~ 2021.11.14.)이 열리고 있다. 중국 상하이박물관에서 빌려온 하상주에서 한나라까지 청동기 67점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동제기와 함께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에 소장 유물을 국립중앙박물관에 빌려준 상하이박물관은 청동기 컬렉션으로 이름이 높은 곳이다. 심재훈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상하이박물관은 청동기의 보고다. 중국에는 청동기 전문 박물관이 두 군데 있다. 산시성 바오지에 있는 청동기박물관과 산시성 타이위안에 있는 산시청동박물관이다. 두 곳 모두 그 지역에서 고고학적으로 발굴한 상주시대 청동기가 소장품의 주종을 이룬다. 이와 달리 상하이박물관의 청동기는 거의 세상에 떠돌던 청동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수립한 것이다. 출토 정황을 알 수 없는 대신, 각 기물은 나름대로 유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1928년 허난(河南)성 은허殷墟 유적에서 삼천 삼백여 년 전의 청동기가 대규모로 발굴된 이래 도굴과 무단 반출로 세상을 떠돌던 청동 제기 유물 중 상당 수가 상하이박물관의 청동기컬렉션이 됐다는 얘기다.
중국문명의 시원으로 여겨지는 하상주 시대는 은허의 유적을 통해 상나라의 존재가 역사로 편입됐다. 이번 전시에는 기원 전 18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의 청동기 유물이 나왔다. 전시장 들머리에는 이번 전시 출품작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기원전 18세기~기원전 16세기 하나라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세 발 술잔(속요작束腰爵)이 놓여있다.
전시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청동기문화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토기를 본떠서 만든 하나라 때의 초기 청동기를 전시하고 그 제작방법을 소개하였다. 2부 ‘신을 위한 그릇’은 하나라를 이은 상나라 때 국가적인 의례로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쓰는 다양한 청동기를 전시했다. 3부에서는 주나라의 신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제도화된 청동그릇과 청동 악기 사용제도를 ‘권력의 상징’이라는 주제로 펼쳐놨다. 신분에 따라 의례에 쓸 수 있는 악기의 종류와 배치 방식을 법으로 정해 놓은 게 ‘악현樂懸 제도’다. 편종의 하나인 청동 종(중국 이름 鎛 bo)은 신분에 따라 천자는 4면, 제후는 3면, 경대부는 2면, 사는 1면에 배치할 수 있는 의례의 규모를 신분에 따라 정해놨다. 마찬가지로 당대의 하이테크 상징인 청동 그릇의 수도 신분에 따라 쓸 수 있는 개수가 정해져있다. 이를 ‘열정列鼎 제도’라고 한다. <예기>를 보면 서주 시대에 열정제도가 확립됐다. 천자는 9정8궤, 제후는 7정6궤, 경대부는 8정4궤, 사는 3정2궤를 쓰라고 못박아놨다.
4부에서는 춘추전국시대 노예제도의 붕괴 등 사회 변화와 철기의 등장 등 기술의 진화가 일면서 청동기는 ‘신물神物’에서 ‘고급 기호품’으로 성격 변화가 일어난다. 4부는 그런 변화상의 증거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청동기 유물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보조재로 디지털 기술이 사용됐다. 전시장에 준비된 패드를 유물 그림 위에 올려놓으면 실제 활용 예가 애니메이션으로 재생된다. 3부에 전시된 마지막으로 청동 종 옆에는 QR코드를 배치해 관람객이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접속하면 청동 종이 등장하고 이를 누르면 실제 악기를 연주하고 소리를 들어보는 코너가 있다.
근대까지도 생명력이 이어진 대표적인 청동 유물은 정鼎이다.
정은 세 발 달리 그릇이다. 경복궁 근정전 앞에도 있고 자금성 태화전 앞에도 있다. 동아시아 고건축의 대표적인 장식재(?)라서 그 자리에 놓인 것일까?
한국어에서 일상에 쓰이는 말 중 삼국정립, 삼당정립 같은 말 속에 정鼎은 살아있다.
중국에선 ‘문정問鼎’이 ‘주도권을 쟁탈하다’, 또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고 엿본다’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중국 고대 설화에선 하나라를 세운 우왕이 천하(九州)의 쇠붙이를 모아 아홉 개의 세 발 솥(九鼎)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구정을 얻어야 천하를 얻는다는 뜻이다. 근정전이나 태화전 앞에 놓인 정은 곧 권력의 상징인 것이다.
그 ‘정鼎’이 알고 보면 청동기 시대에 고기삶는 세 발 달린 청동 솥이고, 당대의 파워맨만 제사에쓸 수 있는 그릇이었다. 그 상징 의미가 고기삶는 솥이란 용도를 진작에 잃어버리고도 3000년 넘게 동아시아에 공유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청동기 시대의 첨단 제품인 청동 그릇을 통해 동아시아의 청동기 사회상을 보여준다. 청동기 시대에도 권력과 계급, 자원의 배분 문제는 중요한 이슈였고 제사 방식이나 그릇 크기, 사용 개수 제한 등을 통해 권력의 의지를 작동시키는 방식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보편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번 전시는 2016년 가을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공자와 그의 고향: 산동>전에 중국 산동박물관 소장의 청동예악기와 청동제기 수십 점이 소개된 이후 처음 열리는 하상주시대의 청동 제기 관련 전시다.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이번 전시는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무산될 뻔도 했다. 애초에 예정했던 상하이박물관에서 오기로 했던 유물도 반 정도로 축소됐고 전시 개막을 앞두고도 공항봉쇄로 유물 이동에 애를 먹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국제 교류전의 업무 협의는 화상회의로 대신하고 ‘유물만 이동’이라는 우회로가 <영국 초상화전>에 이어 다시 쓰였다. 그래서 컨디션 조절이 중요한 민감한 유물은 전시에 빠졌다고 한다. 코로나란 새로운 위협에 새로운 우회로를 통해 해외교류전을 이어가고 있는 국박측에선 몇 년 전부터 예고됐다 올해도 내년 이후로 미뤄진 삼성퇴 유물 전시도 반드시 성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