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서울공예박물관 개관전
전시기간: 상설(관람일: 2021년 8월 27일)
장소: 서울공예박물관
글: 김세린(공예평론가,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
한 시대와 문화의 풍경을 모두 담는 것이란 정말 어렵다. 모든 시대와 문화를 담는 일은 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지금은 시대 문화와 작가의 정체성이 반영된 작품과 여러 취향을 담은 공예품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공예가 익숙하지만, 사실 오래 전 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긴 시간 일상의 문화와 함께해 온 존재였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익숙했던 것이 지금과 같이 새삼스러운 존재가 된 것은 채 몇 십 년 되지 않는다.
공예는 인간의 삶과 함께 했기에 당시의 상황과 생활방식이 공예품 제작의 기준이 되었고, 사람의 문화와 함께 했기에 당대의 문화가 반영되었다. 왕실에서 여러 의례에 사용했던 제기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옷을 담을 때 쓰는 함도, 서재에 비치하는 여러 종류의 사방탁자도, 구멍을 뚫을 때 사용했던 활비비도 모두 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풍요로운 물질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거의 없는 일이지만, 과거에는 구리로 제작해야 하는데도 국가 전체적으로 재료가 부족해 나무나 도자기로 대신하던 일도 있었던 만큼, 공예는 당시 시대상과 생활, 경제, 기술, 문화와 긴밀하고 유기적인 관계로 전개되었다.
그렇기에 공예 전반을 읽을 때 일률적인 기준으로 정리하거나 구성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린이를 포함한 일반 대중에게 전시를 통해 공예 문화의 여러 다채로운 면모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보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한 기준이 필요한 것도 분명하다. 그리고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공예박물관 역시 이를 위한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공예박물관 관람은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사전예약을 통해 시간을 정해 관람할 수 있다. 제한된 관람시간 내에 모두 보기란 무리라고 느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집약적인 박물관이었다. 발열체크를 한 후 들어갈 수 있는 박물관 입구는 총 2개였는데, 어느 입구를 통해 들어가느냐에 따라 박물관의 전시 흐름을 다르게 읽을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전시 1동을 통해 들어가면 과거부터 현재의 공예 흐름을 읽을 수 있고, 전시 3동으로 진입하면 반대로 현재의 공예를 시작으로 공예가 어떠한 여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느낄 수 있다.
박물관 내 전시는 상설전시 3개(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자수, 꽃이 피다/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 기획전시 6개(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 / 손끝으로 이어가는 서울의 공예 / 귀걸이, 과거와 현재를 꿰다 / Objects 9: 공예작품설치 프로젝트 / 아임 프롬 코리아 I`m from Korea / 크래프트 윈도우 #1. 공예오색) 총 9개로 구성되어 있다.
도1.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 일부
그 중 상설전이었던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는 조선시대 장인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고, 관련 유물들을 구성해 전시한 공간이었다. 또 대한제국~일제강점기 관영 공예품 제작소인 미술품제작소 제작 유물을 함께 선보임으로써 조선에서 근대로 공예품의 제작 시스템과 공예품의 양상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간 학계와 현장을 제외하고 거의 일반에서는 조망 받지 못했던 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공예 제작 주체였던 장인에 대해 소개하고 유물을 통해 보여준 전시의 내용은 흥미로웠다. 다만 제한된 공간의 한계 때문인지 조선~근대기까지 방대한 양의 내용과 유물을 소개하기 위해 집약적으로 유물과 패널이 설치되어 있었던 점은 많은 내용을 볼 수 있어 좋으면서도, 가독성 측면에서 아쉬움으로 남았다.
도2.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 일부
기획전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는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공예가들의 작품을 압축적으로 살펴보며 현재의 공예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정교한 손기술로 완성된 공예품부터 3D 스캐너로 제작된 소반까지. 항상 당대의 기술과 쓰임이 집약적으로 반영되어 제작되는 공예품의 현재를 조망함으로써 오늘날의 공예문화와 작가의 창작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도3. ‘귀걸이, 과거와 현재를 꿰다’ 일부
기획전 ‘귀걸이, 과거와 현재를 꿰다’는 귀걸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공예품의 본래 쓰임과 시대에 따른 쓰임과 조형의 확장을 보여주었다. 공예품 개개의 역할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고정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경향과 문화에 따라 본래의 쓰임이 확장되기도 한다. 전시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귀걸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공예품의 용도(쓰임)가 지닌 특성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부장품 귀걸이부터 일상에 착용하는 귀걸이, 일상에서 착용하는 귀걸이, 작가의 정체성을 반영한 귀걸이를 함께 구성해 한 공간에서 귀걸이의 흐름과 용도의 확장을 감상할 수 있다.
도4. ‘자수 꽃이 피다’ 일부
기증 전시도 있었다. 먼저 상설전 ‘자수, 꽃이 피다’는 한국자수박물관 관장이자 수집가였던 故허동화(1926-2018), 박영숙 부부의 수집 기증품으로 조각보와 자수 공예품을 비롯한 익숙하면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여러 섬유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획전 ‘아임 프롬 코리아’는 전통 문화와 민속문화의 가치를 알렸던 언론인이자 학자 故예용해(1929-1995)가 활동하며 남긴 여러 기록자료들을 볼 수 있어 공예 자체는 물론 공예를 둘러싼 삶과 문화에 대한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전시였다.
도5. ‘공예작품설치 프로젝트 Object 9’ 일부
마지막으로 봤던 '공예작품설치 프로젝트 Object 9'은 무척 재미있게 봤던 전시이다.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상영되고, 스크린 앞에는 책상과 같이 생긴 여러 장이 놓여져 있었다. 그 장에는 작가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작품을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 도구들이 함께 있어, 공예품을 제작하며 사용하는 여러 도구와 재료들이 어떻게 공예품에 나타나는 지까지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어떤 도구로 완성했을까에 대한 의문도 조금은 해소되는 자리였다.
관람을 마치며 '정말 많은 것을 봤다'라는 느낌이 바로 들 정도로 서울공예박물관의 전시는 내용이 풍부했다. 또 휴식 공간 곳곳에 비치된 공예가들이 제작한 의자 등은 현재도 공예가 일상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서울공예박물관은 이제 처음 발을 내딛어 대중에게 선보인 박물관이다. 관람을 하며 박물관을 구성함에 있어 얼마나 많은 치열한 고민을 했는지 집약적인 전시 구성과 내용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 결과 한 자리에서 공예에 대한 다채로운 내용을 접하고 작품, 유물을 볼 수 있는 유익한 박물관이 우리 곁에 탄생했다. 사람들의 취향이 각기 다른 것처럼 처음 시작이기에 모든 관람객의 니즈를 만족할 수는 없다. 많은 관심 속에 시작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계속 찾을 것이고 박물관도 여러 전시와 활동을 거치며 점차 확장되고 보다 안정적인 짜임새를 갖출 것이다.
사실 선사시대부터 오랜 기간 축적되어 갖춰진 다채로운 공예의 면모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전시는 공예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며 이를 제작하고 소비한 인류의 삶을 놓치지 않았다. 이를 현재와 과거를 놓치지 않고 풍부한 내용으로 풀어나간 박물관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함께 느끼고 즐기는 우리 시대의 공예로 나아가고 저변을 확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공예 전시는 공예가 지닌 일상 문화적 측면과 다채로운 특성을 반영한 전시들이 대폭 증가하고 있다. 9월 8일 개막한 청주공예비엔날레도 그 중 하나이다. 앞으로 흥미롭게 확장하며 전개할 서울공예박물관의 여정과 삶과 늘 함께하는 우리 시대의 공예를 계속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