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장 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 간 : 2021.7.8 ~2021.10.10
글 / 김진녕
-21세기 초반에 바라보는 한국 미술의 오늘 풍경
-’어제’ 우리가 소비한 것과 ‘오늘’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 전통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DNA’ 또는 ‘한국 미술 어제와 오늘’이란 말, 주최측에서 밝힌 전시 설명 글의 이런 대목, ‘한국의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자리에서 감상하고 비교하며 한국의 미美를 새롭게 바라보는 전시를 연다. 근대의 미학자인 고유섭, 최순우, 김용준 등의 한국 미론을 통해 한국의 대표 문화재 10점을 선정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통이 한국 근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과 의미는 무엇인지 바라본다’는 미술사 교과서의 어느 대목처럼 건조하게 다가왔다.
전시장은 성聖, 아雅, 속俗, 화和 등 네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주최측에선 ‘근현대 미술의 양상을 '성스럽고 숭고하다(성聖)',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아雅)',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다(속俗)', '조화로움으로 통일에 이르다(화和)'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살폈다’고 밝혔다.
전시를 보고 난 느낌은 전시 제목이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이 아니라 부제로 작게 써놓은 ‘Dynamic & Alive Korean Art’란 말이 전시 제목으로 더 어울렸다. 물어보니 제목의 ‘DNA’가 ‘Dynamic & Alive’의 약자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 전시가 미술사 담론 전시장도 아니고, 연대기적인 ‘한국미 전시’도 아니라는 것은, 속俗 섹션에 전시된 ‘미인도’ 코너에서 드라마틱하게 드러났다.
한국 대표 미인도인 간송이 소장하고 있는 신윤복의 <미인도> 복제본과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 개인 소장품), 장운상의 <청향>(1973), 장우성의 <단군일백이십대손>(2000, 월전미술문화재단 소장품), 장욱진의 <진진묘>(1970, 개인 소장품)이 나란히 걸려있다.
여성을 그린 미인도란 장르 자체가 조선에는 없던 장르다. 현대에 풍속화가의 대명사로 통하는 김홍도에 대해 조선조 말과 왜정시대를 살았던 오세창은 ‘신선도’를 잘 그리는 화가로 인식했지 풍속화가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단원이 지금 우리가 풍속화라고 부르는 그림을 잘 그린 것은 맞지만 그가 자신이 살던 시대에 평가받았던 항목은 궁중 장식화나 왕실 이벤트화(행사 기록화)에 능했고 신선도를 특출나게 잘그렸다고 평가받았던 것이다. 그러다 근대에 들어서 일본에 의해 번안돼 들어온 서양미술 개념에서 조선식 풍속화가 발굴됐고, 거기에 풍속화에도 능한 김홍도가 있었고, 현대에선 그가 풍속화의 대가라고 불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신윤복의 미인도도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것이다. 여기에 시장의 흐름에 민감하게 대응했던 채용신이 20세기의 <팔도 미인도>를 내놓으면서 ‘미인도’는 전통의 일부로 합류했지만 미인도는 사실상 서구기준으로 20세기 초반 ‘재조립된’ 전통이다.
그 ‘미인도’를 20세기 한반도에서 어떻게 소비하고 변형했는지 이 코너는 흥미롭게 보여준다. 장운상의 <청향>은 1970년대쯤 소비됐던 한복을 차려입고 고궁을 배경으로 사진에 담긴 캘린더 걸을 연상시킨다. 비슷한 무렵 제작된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은 그가 무수히 많은 미인도를 그린 20세기 후반 미인도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노년에 들어선 스스로를 담담히 들여다보는 자존감 넘치는 모습이다. 반면 장우성의 <단군일백이십대손>은 20세기 후반의 한국 젊은 여성에 대한 오체불만족 급의 불만을 화면 가득 늘어놓은 ‘미인도’다. 이 각각의 작품은 20세기 전반에 ‘옹립된’ 한국의 전통과, 세대 간의 시각차, 남녀간의 역할, 성적 대상화에 대한 논쟁, 최근의 페미니즘 담론까지 다양한 변화상과 논쟁 지점을 함축하고 있다.
이 섹션의 다른 코너에 모여있는 오윤의 <마케팅V:지옥도>(1980)와 일선의 <제존집회도>(1951, 송광사 성보박물관 소장품), <지장시왕도>(호림박물관 소장품), 이화자의 <달밤>(1997, 개인소장품>도 다층적으로 전통과 현대의 관계를 생각케 한다. 지옥 같은 수탈을 유머로 승화한 조선조 후기의 <지장시왕도> 속에 묘사된 고단한 현실과 유머는 오윤의 작품 속에서 다른 시대의 옷을 입고 반복되고, 이화자가 묘사한 드뷔시의 달빛만큼이나 꿈결 같은 달밤이나 기원은 그만큼 고단하고 잔인했던 현실이 있기에 절절했을 것이다.
이 전시가 미술사 담론 전시가 아니라는 점은 2층 회랑에 전시된 1920~30년대 잡지 표지와 1970~80년대 잡지 표지를 모은 아카이브 전시물에서 또렸이 확인된다.
아카이브성 전시물은 첫번째 섹션이 ‘성聖’ 섹션 입구에도 있다. 여기에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의 미술>(1922),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1929), 김용준의 <조선미술대요>(1949), 이동주의 <한국회화소사>(1985)가 전시돼 있다. 미술사 담론 소개는 그것 뿐이다. 전시장 내부에도 각 섹션의 소개글 정도만 짧게 붙어있고 작품 설명은 일체 없다.
이런 태도는 전시장 2층 회랑에 마련된 잡지 표지에서도 일관한다. 잡지 발간 연도와 잡지 이름만 소개했다.
관람자는 다만 1930년대에 나온 <문장>의 표지화를 그렸던 김용준과 길진섭이 서양미술교육을받았지만 대중과의 접점이 넓은 이 잡지 표지로 조선식 문인화 구도나 기명절지화를 번안해서 그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이중섭이나 김환기가 1950년대에 그린 유화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재미있는 지점은 20세기 초반 야나기 무네요시가 ‘민예운동’을 주창하면서 ‘발견한’ 한국 전통 공예품의 미감이 1970~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뿌리깊은 나무>나 <공간> 잡지 표지에 그대로 구현됐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천년 한반도 역사에 비하면 무척 짧은 백년의 시간이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도 옛 것과 새 것의 사라짐과 솟아남, 스침, 혹은 스밈, 재발견이 부단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장에 구현시킨 배원정 학예사는 이런 얘기를 했다.
“사실 이번 전시에서 원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러니까 정답이 없고 나부터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그랬을 때 한국의 미래 담론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 ‘어, 나는 이거 이렇게 생각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라는 식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것을 얘기하는 활발한 장이 됐으면 했다. 그래서 작품의 해제에 내가 왜 이 작품을 선정했는지를 구구절절히 박물관처럼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없이 전시한 작품은 단 한 점도 없다. 대신 그것을 담아내고자 650쪽 짜리 도록을 만들었다. 이번 도록에 참여한 44명의 필자는 48편의 논고와 칼럼을 써줬는데 그 분들께 작품 해제를 써달라고 하지 않았다. 필자한테, 일반 관람객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한국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사고와 상상력을 제한하지 마시고, 종교의 경전처럼 답을 내시려고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다. 이를테면 겸재 정선이 근대 이후에 진경 산수의 대가로 인정 받은 게 어떤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우리가 ‘전통’이란 이름으로 겸재를 소환한 게 언제인지, 겸재가 그래서 우리의 근현대에 화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겸재를 전공한 전통 미술사학자에게 글을 부탁했다. 이런 식으로 맥락적으로 칼럼을 써달라고 부탁했지 작품 해제를 써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무지 조심스러웠다. 여러 번 돌다리를 두드리면서 치밀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전시 자체를 여러 레이어가 겹쳐 쌓여있는 다층적인 구조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그 생각을 전시장 안에 충분히 소화해 냈느냐는 내 입장에선 말하기 어렵지만 그런 맥락에서 준비한 전시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전시장에 나온 겸재의 작품은 <박연폭>(개인 소장품)과 금강산도(고려대박물관 소장품), <겸현신품첩 중 만폭동도>(서울대박물관 소장품) 등 석 점이 이번 전시의 두 번째 섹션인 ‘아雅’에 걸려있다. 겸재의 작품이 걸려있는 아 섹션은 18세기 이후 20세기까지 한국 전통 미술을 지배했던 김정희류의 문인화 전통과 수묵화에 할애하고 있다. 김호석의 <아파트 풍경>(1979), 이철량의 <도시 새벽>(1986), 윤명로의 <겸재예찬 M.310>(2000), 박대성의 <금강예찬>(2000)이 걸려있다. 네 번째 섹션 ‘화和’에는 황인기가 레고와 크리스탈로 제작한 <방금강전도>(2017, 개인소장품), <오래된 바람-금강산>(2016, 아모레퍼시픽뮤지엄 소장품)이 걸려있다.
한국미술사의 연대기적 서술도, 미술사 담론의 진열도 아닌 전통이 우리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소환되고 소비됐는지 얘기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올해 초 미디어에 보도된 국립현대미술관의 2021년 전시 라인업을 보면 ‘국립중앙박물관 등과 협력해 7월 '한국미술, 전통과 현대' 개최’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전 기사를 찾아보면 2019년 11월쯤 이런 보도가 있었다. “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올들어 두 차례에 걸쳐 양 기관 큐레이터가 참여하는 공동 워크숍을 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두 기관이 공동 전시를 여는 것을 목표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융합하는 자리를 갖자는 취지로 마련됐다”면서 “이르면 내년 말쯤엔 가시적인 전시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각 고미술과 동시대미술을 관장하는 두 기관이 칸막이를 허물고 공동 전시를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위에 쓴 겸재 출품작 관련 출품작을 보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품을 빌려오는 것을 극력 피해간 느낌이 든다. 물론 이번 전시에 신라금관과 기마인물형 토기 등 국보급 국박 소장품이 출품되기는 했지만 이전에 보도된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의 ‘협력 전시’와는 거리가 멀다. 이번 전시에서 국박은, 호림박물관이나 삼성미술관 리움, 한양대박물관 등 이번 전시의 여러 ‘협조 기관’ 중 하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자제한 덕분에’ 세번째 섹션인 ‘속俗’ 들머리엔 국박이 소장하고 있는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이 아닌 한양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전 김홍도 경직풍속도 여덟 폭 병풍>을 현대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고, 호림박물관의 도자 유물을 감상하는 기회가 생기기도 했다.
다만 이 사례는 정부 부처의 같은 산하기관임에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성격이 어떻게 다르고 부서 칸막이를 뛰어넘는 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최근 정부에서 이건희 회장의 근현대미술품 기증분(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과 고미술 컬렉션 기증품(소장품)을 한데 엮어 공동의 ‘진열장’으로 ‘이건희 기증관’을 짓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때 그때 미술 쇼를 여는 임대용 전시 공간이라면 몰라도 유물(미술품)의 연구와 보존, 발표를 하는 것이 ‘박물관(미술관)’의 소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국자가 ‘통섭’이란 단어를 엉뚱한 곳에 쓰고 있는듯 보인다. ‘공동 진열장 신축’을 추진하는 걸 ‘통섭’이라고 부를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