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명장과 미래의 명장
장 소 : 통인화랑
기 간 : 2021.6.1 ~2021.6.13
글 / 김진녕
-현대에 되살아난 신라토기와 고려청자의 유전자
-과거를 읽고 미래를 보는 창, 한국 현대도자기
통인화랑에서 <명장과 미래의 명장>(6.1-13)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2000년 동안 한국인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발전해 온 과거의 도자 유물과 그 한반도 도자의 유전자를 간직하고 20세기의 현대와 어울려 사는 오늘의 도자를 함께 조망하는 전시다. 전시 출품작은 많지 않다. 현대 작가 12명(김세용 김판기 박래헌 이규탁 이향구 지순탁 최인규 곽경태 김대용 이송암 정세욱)의 작품 12점과 신라시대 토기 한 점,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와 분청 사기 12점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계선 관장은 “(도자)역사의 흐름을 얘기하는 전시다. 신라시대에, 고려시대에, 조선시대에, 현재에 한국인과 함께 하는 도자기를 골랐다. 전통은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 삶 속에 스며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현대 한국 도자 작가 작품 안에 녹아든 기법과 유악은 과거에서 온 것이다. 예를 들면 이규탁은 회령도자기를, 곽경태는 분청을, 김대용은 삼국시대 토기의 미감을 재해석하고 있다. 그 미감의 흐름과 이어짐을 비교 설명하기 위해 옛 도자 유물과 오늘의 작가 작품을 함께 전시장에 전시했다”고 밝혔다.
함축적인 전시이니 대표 작가를 선정하고 그들의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딱 한 점씩만 골랐다고 한다. 한 점이기에 어떤 것을 고를지 신중하게 결정했다고 한다. 이계선 관장의 통인화랑은 1990년대 이래 한국 현대 도자 작가의 작품들을 활발히 전시해 왔고,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뉴욕에 통인화랑뉴욕을 열어 한국 도자 작가 60명을 한 달에 한 명씩 소개하면서 한국 현대 도자쪽에 내공을 쌓아왔다.
통인화랑의 이력을 잠깐 살펴보자. 통인화랑은 고가구와 고미술품을 거래하는 '통인가게'에서 출발했다. 통인가게는 1924년에 시작된 인사동의 터줏대감이다. 통인가게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올린 것은 1973년, 이어 1975년에 남농 허건의 전시로 통인화랑의 문을 열었다. 표구사였던 동산방이 화랑을 겸업한 것과 인사동 현대화랑이 사간동으로 이사간 게 1975년으로, 통인화랑은 한국 상업화랑 1세대에 속한다.
1970년대의 문화 현상이었던 잡지 『뿌리깊은 나무』(1976-1980)에 호작도의 호랑이가 크게 등장하는 통인가게 광고가 실린 것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당시 뿌리깊은 나무가 한국잡지의 전형성을 깨는 한글 가로쓰기 잡지였고, 통인가게 광고도 그때 잡지 광고의 전형성을 깨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통인가게의 김완규 회장과 뿌리깊은 나무의 발행인이던 한창기 선생의 친분이 있었다. 통인가구에서 통인가게로 개명한 것이나 고가구의 이름에 ‘통인 되살림 가구’란 이름을 붙여준 것도 한창기 선생 아이디어였고, 두 사람은 한국 전통문화를 사랑하고 존중했다.
이계선 관장이 통인화랑의 운영을 맡은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남편인 김완규 회장은 통인가게에 더 주력하고, 응용미술을 했던 이 관장이 화랑 운영을 맡았다. 금속 공예를 전공한 이 관장은 상공미전에서 특선을 한 작가이기도 하다.
“내가 작가로 작업을 해 본 경력이 있지 않나. 작품으로 이루지 못한 꿈을 화랑 주인으로서 대리만족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시 기획에 대한 얘기를 작가와 함께 나누다 보면 내가 작품의 코디네이터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다. 통인가게 1층에 크래프트 매장이 있다. 공예는 미감과 쓰임이 있는 물건의 접합이다. 쓰면서 미감을 즐기는 것이다. 공예는 각 시대의 당대 생활사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이해도가 높다.”
그가 공예 중에서도 도자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 유산 중 세계 1등이 될 수 있는 자원이 도자 문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K-팝처럼 도자문화가 세계 1등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우리 고려청자나 조선 달항아리는 우리 대표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우리 젊은 세대가 우리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너무 낮다. 더 알리고 싶은 게 내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가 2002년에 뉴욕에 한국 도자 전시를 하는 통인화랑뉴욕을 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2000년 초부터 준비를 시작해, 세계 도자의 중심이 어디인지, 미국 도자의 중심이 어디인지 따져보고 공부한 뒤 뉴욕에 도자 중심의 화랑을 열었다. 2008년까지 운영한 통인뉴욕은 작가 한 명의 전시를 한 달 동안 진행했고 60명의 한국 현대 도자작가가 뉴욕 미술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한국 회화와 도자를 병행하려고 했는데 뉴욕에 가서 보니 회화는 기라성 같은 화랑이 너무 많았다. 1등 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도자 화랑을 조사해보니 상대의 수가 확 줄기도 하고 우리가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때 뉴욕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가 어디 기관 돈 받고 한 것도 아니고 내 돈 들여서 하는 것이라, 여러 전문가의 조언을 들으며 작가 선정에 공을 들였다. 충실한 작업량, 작품이 좋고, 한국색이 드러난 작가를 뽑았다. 그때 안 뽑힌 교수가 항의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교수들은 엄청 잘하고 있다며 힘을 실어줬다. 내가 사심이 없었으니까. 내가 어디 후원받아서 했다면 엄청 압력에 시달렸을 텐데 그런 것에 대한 유혹이 없고 공평하게 선정했다고 자부한다.”
그때 작가를 고르기 위한 과정이 그에게는 한국 현대 도자에 대한 보는 눈을 더욱 심화시켰다.
“한 달에 한 명씩 어떤 작가를 뽑아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공부를 했다. 내가 미국에서 산 것도 아니고, 미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 도자 작가를 어떻게 알리고 어떤 작가를 뽑아야 효과적인가를 놓고 고민이 컸다. 궁리를 거듭하면서 한국의 독특함이 묻어 있는, 한국만의 색을 갖고 있는 작가를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섰고 그 기준으로 작가를 골랐다. 그때의 생각이 지금의 전시를 하는 밑바탕이 됐다.”
통인화랑뉴욕의 전시를 발판으로 전성근(2015년 별세)이나 윤광조, 신상호의 작품이 빛을 봤다. 특히 학벌 위주로 돌아가는 국내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전성근은 뉴욕 전시 이후 한국 현대 도예작가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되는 기록을 남겼고 영국 로열앨버트뮤지엄이 작품을 소장품으로 구입하는 등 각광을 받았다.
이렇게 한국 현대도자 작가의 작품 세계 진행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계선 관장은 이번 전시에서 ‘명장’으로 김세용, 고(故) 지순탁, 김판기, 이향구를 호명했고, ‘미래의 명장’으로 김대용과 이송암, 정세욱, 곽경태 등을 호명한 뒤 그들의 작품과 이름모를 장인이 남긴 2000년간의 도자유물 대표작과 함께 전시장에 풀어놨다.
“고미술은 과거의 도자, 명장은 현재의 도자, 미래의 명장은 미래의 도자를 의미한다. 나는 선조의 작품 안에 도자의 모든 중요핵심적인 기술적, 미학적 요소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통인가게는 고미술품을 오래 다룬 가게다. 김완규 회장은 강화도에 고미술품 컬렉션 위주의 미술관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오래 한국 현대 도자를 지켜보고 고미술 컬렉션을 진행한 곳에서 열리는 <명장과 미래의 명장>전은 ‘한국 도자사의 흐름을 보는 눈’을 볼 수 있는 전시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