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백자실
글/ 김진녕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2021년 2월18일 상설전시관 3층의 ‘분청사기 백자실’을 공개했다. 청자실을 먼저 리뉴얼한 뒤 기존의 분청사기실과 백자실을 통합해 새로운 전시 연출을 통해 조선 도자기 500여 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단장했다.
<분청사기 구름 용무늬 항아리>(국보 제259호)와 <백자 달항아리> (보물 제1437호) 등 국보 6점과 보물 5점 등 400여 점을 전시하여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도자기인 분청사기와 백자가 시작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선 시대 초기를 대표하는 분청사기粉靑沙器는 회청색 흙으로 만든 그릇에 백토를 입힌 뒤 여러 기법으로 장식한 도자기로 고려 말 상감청자에서 유래하여 16세기 전반까지 제작되었다.
1300도가 넘는 고온에서 구워내는 백자白磁는 당대 최고의 도자 기술이 집약된 하이테크 상품이었다. 조선 15세기~16세기 중엽까지 분청사기와 백자가 함께 쓰였지만 1467년(세조 13) 무렵 국영 도자기 제작소인 관요官窯 체제가 확립되면서 백자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자기가 되었다.
전시장은 제1부 ‘조선의 건국과 새로운 도자 문화’, 제2부 ‘관요 설치 이후 조선 도자기’, 제3부 ‘백자로 꽃피운 도자 문화’, 제4부 ‘조선 백자의 대중화와 마지막 여정’ 등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물리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리뉴얼 이전보다 전시장의 조명이 낮아지고(어두워지고), 개별 캐비닛을 향한 핀조명이 더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조선 백자를 대표하는 달항아리는 독립된 전시공간 안에서 관람객과 완전히 분리된 상태에서 영상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거리로 나있는 백화점 1층 쇼케이스를 방불케 한다. 박물관 측에선 새로운 시도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절제와 고요함, 자연미를 상징하는 달항아리에 이런 상점 점방 같은 전시 연출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달항아리는 부조가 아니라 사방에서 바라보는 환조라는 점에서도 아쉬운 부분이다.
대신 제사그룻을 모아놓은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고, 비슷한 모양의 제사용 잔이라도 동원 컬렉션(이홍근 기증품)과 수정 컬렉션(박병래 기증품)의 잔을 나란히 전시해 컬렉터의 취향 차이를 볼 수 있게 한다거나 세종이 열세 살에 죽은 딸(정소공주)의 무덤에 넣어준 분청사기 석 점을 나란히 전시해 도자기에 스토리를 부여한 점은 눈에 띄었다.
특히 기존의 휴게 공간을 조선시대 도자기 장인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사기장의 공방’ 공간으로 만든 점은 돋보인다. 유물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조선조 유물의 특징은 유교 계급이 남긴 서화류를 빼고는 모두 익명의 노동으로 취급됐다. 유일한 예외가 작품 제작에 돈을 댄 이와 제작에 참여한 화가의 이름까지 남긴 종교화(불화) 정도다.
때문에 조선의 백자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면서도 정작 그 시대에 노동의 가치를, 기술의 가치를 인정받아 후대까지 이름을 남긴 전문가(사기장)는 일본에 정착한 심수관 등 일본에 끌려간 도공 뿐이다. 원천 기술을 보유했음에도 조선은 대항해 시대와 함께 펼쳐진 근대의 흐름에서 탈락했고, 일본은 임진왜란을 통해 ‘확보’한 조선 도공을 통해 무역의 시대에 동참했다.
바뀐 국박의 분청사기 백자실은 이전과는 다르게 ‘사기장의 공방’을 통해 21세기의 한국인이 자랑스러워 하는 하이테크 기물을 만든이를 조명하고 있다. 작업 과정 동영상을 현대의 하이테크인 투명 디스플레이어에 전시하고 그들이 일상 용기로 만들어낸 사발 200여 점도 찬장 안의 그릇처럼 전시하고 있다. 그 ‘찬장’의 그릇 사이 사이에 1709년 이하곤(李夏坤, 1677년 숙종 3 -1724년 영조 즉위년)이 광주 분원의 풍경을 목격하고 지은 시조 일곱 수를 패널에 적어놓았다.
18세기 초는 임란과 호란을 겪고 무너졌던 조선의 살림이 어느정도 나아지고 회청도 다시 수입해 청화백자를 다시 만드는 등 조선 후기의 백자 르네상스로 꼽히는 시기다. 그럼에도 이하곤이 목격한 분원리 풍경은 도자기 제조라는 기술을 갖고 있는 죄로 진상품과 노역에 허덕이는 노동 계층의 삶이었다.
이하 인용.
광주 분원에서 20여일 머물며 무료한 중에 두보의 夔州歌體를 본 떠 우리말을 섞어 장난삼아 절구를 짓다(住分院二十餘日 無聊中效杜子美夔州歌體 雜用俚語 戱成絶句) (이하곤의 두타초頭陀草 冊三 중)
앵자산(鶯子山) 북쪽 우천(牛川) 동쪽에
남한산성이 눈 앞에 있고
강 구름은 밤마다 비를 만들고
산골 나무에는 긴 바람이 열흘이나 부네.
鸎子之北牛川東。南漢山城在眼中。江雲能作連宵 雨。峽樹長吹十日風。
사기장은 이 산 모퉁이에 사는데
오랜 부역에 괴롭다네.
길 따라 지난해 넘었던 고개로 갔더니
진주 백토를 배로 실어 왔다네.
窰人居在此山隈。長役官門亦苦哉。自道前年踰嶺去。晉州白土載舡來。
선천의 흙은 눈처럼 하얀데
임금님의 그릇 굽는 데는 이것이 제일이네
관찰사가 글을 올려 노역은 덜었지만
해마다 퇴짜맞는 진상품 그룻 많기도 하네
宣川土色白如雪。御器燔成此第一。監司奏罷蠲民役。進上年年多退物。
수비(水飛)한 흙은 솜보다 부드럽고
발로 물레 돌리니 저절로 돌아가네
잠깐 사이 천 여 개 빚어내니
사발(盂), 완(梡), 병(甁), 항아리(櫻) 하나 같이 둥그네.
水飛精土軟於綿。足撥輪機自斡旋。須臾捏就千餘事。盂椀甁甖一羕圓。撥一作蹋
궁에 바칠 그릇은 삼십 종이요
사옹원에 들어갈 뇌물은 사백 바리구나
정교하고 거칠거나 색과 모양을 따지지 않더라도
다만 살 돈이 없는 게 죄로구나.
御供器皿三十種。本院人情四百駄。精粗色㨾不須論。直是無錢便罪過。
회청(回靑) 한 글자를 은과 같이 아껴 써서
갖가지 종류를 그려내어도 색이 고르네
지난해 궁궐에 용항아리(龍樽)을 바치니
내수사에서 공인에게 면포를 상으로 주었다네.
回靑一字惜如銀。種種描成着色均。前歲龍樽供 大內。內司綿布賞工人。
칠십 노인의 성은 박씨인데
사기장 중에서도 솜씨 좋은 장인이라 불린다네
그가 빚은 두꺼비 연적은 가장 진기한 물건이고
여덟 모 항아리(八面唐壺)는 정말 좋은 모양이네.
七十老翁身姓朴。就中稱爲善手匠。蟾蜍硯滴最奇品。八面唐壺眞好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