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 간 : 2021.2.4 ~ 2021.5.30
글/ 김진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2.4.-5.30.)란 이름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참여작가는 백석, 이상, 박태원, 이태준, 김광균 같은 문학 작가와 구본웅, 황술조, 김용준, 최재덕, 이여성, 이쾌대,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김병기, 천경자 등 50여 명으로 월북 작가, 재북 작가와 한국 작가가 섞여 있다. 이들의 작품 140여 점과 서지 자료 200여 점, 각종 시각 자료 300여 점이 덕수궁관 4개의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주최측은 이번 전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시대의 전위’를 함께 꿈꾸었던 일제 강점기와 해방시기 문예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통상적으로 일제 강점기는 ‘암흑’의 시대로 인식되어 왔지만 놀랍게도 이 시대는 수많은 문인과 화가가 자라난 때이기도 하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수많은 시인(정지용, 이상, 김기림, 김광균 등)과 소설가(이태준, 박태원 등), 그리고 화가(구본웅, 김용준, 최재덕, 이중섭, 김환기 등)들이 모두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활동을 시작하며 서로 영감을 주고받았다.
프랑스의 에콜 드 파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들은 다방과 술집에 모여 앉아 부조리한 현실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대 인식을 공유하며 함께 ‘전위’를 외쳤던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이들은 어떠한 사회적 모순과 몰이해 속에서도 문학과 예술의 가치를 믿고 이를 함께 추구했던 예술가들 사이의 각별한 ‘연대감’을 통해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갈 추동력을 얻었다.
전시는 1부 전위와 융합, 2부 지상(紙上)의 미술관, 3부 이인행각(二人行脚), 4부 화가의 글ㆍ그림 등 4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구성된다.”
주최측의 말처럼 전시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의 작품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1910년 전후해 태어난 ‘20세기 소년들’이 화가로 발언하기 시작한 20대부터 40대까지 인생의 절정기에 쏟아낸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시민으로 태어나 일본어를 배우고 자란 그들은 1945년까지 일본 제국의 패망도,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남북 분단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물론 제4전시실에 1950~60년대의 작품이 배치됐지만 전체적인 비중은 1930~40년대에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30~40대를 통과한 세대의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황술조 자화상, 1939, 캔버스에 유채
제 1전시실은 1931년 일본 유학화가 이순석이 개업한 신식다방 ‘낙랑파라’가 문 앞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고 곧바로 구본웅(1906-1952)의 세계가 펼쳐진다. 최근 국현이 주최한 전시 중 가장 많은 작품이 출품된 전시이기도 하다. 국현 소장의 <비파와 체리>(1927),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인형이 있는 정물>(1937) 등 7점의 작품이 1부에, 조선일보에 연재된 홍명희의 <임꺽정전> 삽화(1933) 등 삽화와 드로잉 여러 점이 2부에 출품됐다. 일찍 세상을 뜬데다 전하는 작품도 많지 않은 황술조(1904-1939)의 작품도 ‘무려’ 6점이나 등장했다.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황술조가 그린 두 점의 된 정물화(1930년대 제작)와 자화상(1939) 등을 실물로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제2 전시실은 대형 도서관의 열람실처럼 꾸며놨다.
1920~40년대 서양식 미술 교육을 받은 인물이 적극 참여한 ‘인쇄 미술’의 성과를 스탠딩형 열람대에서 대형 스크랩북을 넘겨가면서 확인할 수있도록 만들었다.
1916년 도쿄 유학생이던 김관호가 제10회 문부성 미술전람회에서 <해질녘>으로 특선을 차지했다고 대서특필했던 조선의 신문은 특선 작품이 여성 누드를 묘사한 것이라 신문에 실을 수 없다며 ‘김군의 요사이 그린 그림’인 풍경화로 대신했다. 그랬던 식민지 조선의 사회는 1935년 9월 한용운이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소설 <흑풍>의 삽화(김규택)로 몸을 뒤튼채 공중부양하고 있는 여성의 누드를 소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전시실은 20세기 중후반 최고의 동양화가로 평가받던 이상범이 1930년대 착실한 신문사 직원이자 삽화가로 작업한 결과물과 1930~40년대 삽화가이자 최고의 북디자이너로 활동했지만 월북으로 실체를 실감하기 어려웠던 정현웅의 여러 성과물을 눈으로 볼 수 있다.
3전시실은 이여성과 이쾌대, 김용준이 월북 작가로 분류되기 이전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인행각(二人行脚)’이라는 소제목에서 보듯 문학인과 미술인, 이를테면 정지용과 장발, 백석과 정현웅, 김기림과 이여성, 이태준과 김용준 등 서로를 단골로 삼았던 1930~40년대 조선 문화계의 속살을 엿볼 수 있다.
제3 전시실에서 눈에 띄는 작가는 최재덕이다. 최재덕(1916-?)은 월북작가인데다 남겨진 작품도 별로 없어서 공공 미술관의 전시에서 크게 판을 벌인 적이 없다. 이번 전시에는 국현 소장의 <농가>(1940)와 시인 김광균의 구장품으로 알려졌던 <한강의 포퓰라 나무>(1940년대), <금붕어>(1940년대), <포도>(40년대)와 드로잉 작품인 <허수아비>(1948) 등과 김광균의 시집 <기항지> 장정(1947) 작업 실물과 잡지 표지 일러스트 등이 소개되고 있다.
3부에서 사진이 한 장 소개되는 김광균(1914~1993)은 시 <와사등>과 ‘모더니스트’라는 키워드로 소비되던 ‘20세기 유명인사’가 시인이자 실업가로 한국전쟁 임시 수도 부산에서 김환기가 그린 서정 넘치는 <달밤>(1951)이란 작품을 사무실 뒷편에 걸어놓을 정도의 미술 애호가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섹션에 배치된 <한강의 포퓰라 나무>(1940년대) 역시 <달밤>만큼이나 색감의 변주가 뛰어난 작품으로 그가 소장했던 작품이다. 1940년대와 한국전쟁 직후의 상황, 예술의 후원자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자주 소개되는 작가는 김환기다. 1부 전시장 끄트머리에 <론도>(1938)가 걸려있고, 3부 전시실에 <달밤>(1951)과 50년대 항아리와 매화, 달 소재 작품이, 4부 전시실에 60년대 이후의 전면점화가 걸리는 등 작은 규모의 김환기 특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시 제목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문장은 그 결과물에 대한 전시임을 암시한다. 그 1차적인 결과물은 신문 삽화와 잡지나 단행본의 삽화나 장정일 것이다. 그런 결과물은 2부에 몰려있고, 열람대에 놓인 2부 전시물만 놓고 보면 열거식의 전개가 산만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만 그 '장광설'을 기억하면서 전시 전체를 보면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모던 보이가 한국전쟁이라는 파국을 맞이하기 직전, 그 파국을 알지 못하던 상태에서, 30~40대의 나이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들이 통과한 조선의 1930~40년대가 어떤 시대였다는 것을 거칠게나마 짐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