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도자기에 담긴 동서교류 600년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세계도자실
기 간 : 2021.1.25 ~ 2022.11.13
글/ 김진녕
국립중앙박물관에 네덜란드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Princessehof National Museum of Ceramics), 흐로닝어르박물관(Groninger Museum)에서 빌려온 청화백자 113점이 선보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 이름은 <도자기에 담긴 동서교류 600년>이다. 이 전시에 등장하는 유물이 243점 중 네덜란드에서 빌려온 유물이 반을 차지한다. 지난 2019년 12월 이집트실을 열면서 시작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세계문화관’ 컨셉트의 전시장 개편 작업이 이번 세계도자실 개관으로 완료됐음을 알리는 전시이기도 하다.
주목할만한 점은 기획전이기는 하지만 상설전에 버금가는 긴 기간 동안 열린다는 점이다. 지난 1월25일 개막해 내년 11월13일까지 22개월간 열린다. 이집트실도 미국 브루클린박물관의 이집트 유물을 빌려와 꾸민 전시라 해외 주요 박물관과의 교류를 통해 밀도 높은 장기 기획전을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번 전시는 빌려온 유물만으로 이뤄진 전시가 아니라 신안선 출토 유물 등 기존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던 도자유물의 비중이 반을 차지하면서 도자기를 통해 16세기 이후 문명사를 입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만으로는 입체적인 조명이 어려웠던 대항해의 시대와 동서양의 도자기 무역, 그로인한 서양의 근대화와 산업혁명, 18세기 이후 세계사의 주도권을 쥐고 현대까지 이어진 서양 위주의 ‘지구촌 질서’가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 ‘도자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아시아관'을 신설했다. 문제는 국박에 식민지 시절 조선총독부가 남기고 간 중앙아시아의 둔황 유물과 1323년(고려 충숙왕 10년)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신안선에서 건져올린 도자 유물, 식민지 시절 이왕가 컬렉션의 일본 근대회화류를 빼고는 이렇다할 해외 유물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시아관이라고는 하지만 일본실을 빼고는 전시 유물 교체도 없고, 기획전도 없는 구색 메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2019년에 ‛아시아관'을 ‛세계문화관'으로 개편하면서 처음 선보인 이집트실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기획전이 선보였다. 브루클린박물관의 협조로 이집트 유물이 확보됐기에 가능했고, 국립중앙박물관의 해외 교류의 결실이기도 할 것이다.
국박에서는 이번에 선보이는 세계도자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특정 지역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계의 여러 문화가 교류하는 양상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동서교류의 대표적인 산물인 도자기는 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제이다. 도자기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해 한반도와 일본을 비롯해서 동남아시아에 전해졌고, 아라비아반도까지 수출되었다.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신안선은 14세기 일본으로 향하던 무역선으로 당시 교역 상황을 잘 보여준다. 16세기 이후 포르투갈에 의해 해상 무역로가 개척되면서 동양과 서양의 교류 폭이 넓어졌고, 중국의 청화백자에 열광한 유럽인들은 처음에는 이를 왕성하게 수입하였다. 유럽 왕실은 자신이 원하는 문양을 넣은 자기를 주문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단순히 수입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모방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18세기 초에는 드디어 독일 마이센에서 제대로 된 자기를 만들게 된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며 자기를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을 갖추었고 세계 자기 생산의 중심지가 유럽으로 옮겨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러한 도자기 동서교류사를 담기 위해 네덜란드의 국립도자박물관과 흐로닝어르박물관에서 유럽의 도자기를 차용하였다.”
이번 전시 이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은 2019년에 네덜란드 국립도자박물관에서 열린 ‛Sunken Treasure(침몰선전)' 특별전에 국박 소장품인 신안선 출토 도자기를 10개월간 출품하는 등 상호 신뢰를 쌓아왔다. 이런 장기적인 협력 관계로 인한 신뢰가 있었기에 코로나19로 직원 왕래가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비대면 영상회의로 출품 관련 업무를 처리하면서 이번 전시의 막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전시의 대부분은 대항해 시대 이후 중국과 일본산 자기가 실크로드 대신 뱃길을 따라 서구에 전해지면서 당대의 서구 문명이 얼마나 이에 열광했는지, 그때 소개된 청화백자가 어떤 것인지, 근대의 유럽은 이런 수요와 열망을 어떻게 근대와 현대의 가속 페달로 활용했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위해 조반니 벨리니의 <신들의 연회>(1514~1529, 워싱턴DC 국립박물관 소장품), 피테르 클라즈의 <칠면조 파이가 있는 정물>(1627, 암스테르담 레이크스 국립박물관 소장품) 등 명대 청화 접시와 발 등 당대 유럽에서 부를 상징하는 박래품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회화 작품을 참고 도판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원화가 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도판으로도 당대 유럽의 청화백자를 향한 열망이 충분히 전해진다.
이 회화 이미지는 전시실에서 상영되는 동영상 ‘시누아즈리’에서도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시누아즈리(Chinoiserie, 영어로는 Chinoiserie)는 중국풍(中國風) 또는 중국 양식(中國樣式)을 뜻한다. 유럽의 로코코 시대 이후 중국적인 요소의 문양을 회화, 건축 양식 등에 사용한 미술 양식을 이르는 말이다. 하노버 등 유럽 각지의 건출물에서 중국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독일 고성의 도자기 방과 벨리니의 회화 작품을 3D 모델링 기술로 재현한 이 동영상은 영화 <신과 함께>에서 CG기술력을 선보였던 덱스터스튜디오의 작품이다.
‘시누아즈리’ 코너는 전시 전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당대 유럽의 군주가 도자기 궁전을 지으려했고, 회화 작품에 청화백자가 영광과 부유함의 상징으로 등장할 정도로 근대 유럽 문화사에서 청화백자가 남긴 영향은 크다. 황금에 버금가는 비싼 값에 거래되는 중국산 도자기와 향신료의 직거래를 위해 먼 바다로 무작정 뛰어들어 대항해 시대를 연 유럽은 그 이전에는 세계사의 주인공이 된 적이 한번도 없는 야만의 땅이었다. 하지만 대항해시대를 통해 직거래 무역을 통해 지중해시대를 끝낸 북유럽은 부를 축적하고, 산업혁명을 주도해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청화백자를 향한 욕망이 문명의 도약과 세계사의 헤게모니까지 바꿨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표1. 도자기 근대 교류사
1323년 | 신안선의 침몰 |
---|---|
1368년 | 명나라 건국 |
1497년 | 포르투갈 바스쿠 다 가마, 인도항로 개척 |
1511년 | 말레이시아 믈라카항, 포르투갈이 점령 |
1592~1598년 | 임진왜란 |
1584년 |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연질 자기 생산 시작 |
1593년 | 포르투갈 탐험가 조르즈 알바르스가 광동성에 도착, 바닷길을 통한 본격적인 교류 시작 |
1598년 | 네덜란드 리프더호의 일본 진출, 동방 무역의 시작 |
1615년 | 연질 자기에 코발트블루로 무늬를 그린 뒤 투명 유약을 칠한 청화백자 모방품 ‘델프트 블루’(코발트블루를 사용한 유럽 최초의 도기) 탄생 |
1616년 | 임진왜란 때 끌려간 이삼평, 아리타 동부에서 고령토를 발견해 일본 첫 백자 생산 |
1636년 | 청나라 건국, 명말 청초 혼란기에 중국 자기 수출 감소 |
1641년 | 믈라카항, 네덜란드가 점령 |
1641년 |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나가사키항 데지마에 지점 설치 |
1650년 | 일본, 자기 수출 시작 |
1659년 |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일본에 56,700개의 자기 주문 |
1710년 | 독일 마이센에 경질 백자 제작소 설립. 이후 영국 오스트리아 덴마크 프랑스도 자기 제작소 설립 |
1824년 | 믈라카항 영국이 점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