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전시기간 : 2020.11.24 ~ 2021.1.31
글/ 김진녕
-조선 후기 최대의 관제 쇼 평안감사 취임잔치
-구경꾼(관객)의 시대 도래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에서 2020년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전을 열고 있다.(~2021.1.31)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가리키는 말인 ‘세한歲寒’과 봄날 같은 ‘평안平安’은 사계절의 시간에서 공존하는 말이지만 인간사에서는 반대말이다. 그래서일까, 전시 장소인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도 ‘세한’과 ‘평안’이 전시된 공간은 완전히 별개의 공간으로 분리돼 있다.
‘세한’의 주제는 손창근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이다. ‘평안’의 주제는 <전 김홍도 필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국립중앙박물관 분류 번호 덕수5769)이다. 그 동안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가 여러 유물을 통해 시대의 미감과 경향을 보여주는 전시였다면 이번 전시는 단 두 개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라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여기에 영상의 비중을 크게 높여서 세한과 평안을 상영하는 멀티플렉스 같은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번 회에서는 ‘평안’ 전시장을 소개한다.
1.
‘평안平安-어느 봄날의 기억’은 덕수5769로 불리는 <평안감사향연도> 3점을 보여준다. 단순히 보여주는 게 아니라 각 그림에 등장하는 관리의 복식이나 기생의 무용, 부벽루浮碧樓, 연광정練光亭 등 당대 건물의 건축 정보, 조선 조 후기의 신분제 속의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분석,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구경꾼에 대한 묘사를 3편의 영상으로 만들어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 인물이 살아움직이는 애니메이션 형식의 영상과 그림 속 사자품과 학춤, 북춤, 칼춤을 재현한 무용을 21세기의 무용수가 공연하는 영상, 대동강에서 벌어지는 달밤의 뱃놀이(월야선유도)를 추상적으로 재현한 영상 등 세 개의 영상은 그 자체로 스펙타클한 볼거리다.
이 영상을 보고 난 뒤에야 관객은 세로 71.2cm, 가로 196.5cm의 크기에 세 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평안감사향연도>의 실물을 보게 된다. 세 개의 영상을 보고 난 뒤라 관람객은 ‘전 김홍도’로 불리는 김홍도 추종자 그룹이 그린 그림 속에서 방금 본 영상 속의 18~19세기 조선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게 된다. 실물 작품이 전시된 공간 안에도 인터랙션이 가능한 디스플레이를 통해 ‘그림 속 과학’, ‘그림 속 건축’, 그림 속 풍속화’, ‘그림 속 사람들’ 등 관람객이 평안감사향연도가 담고있는 조선 후기의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조선조의 마지막 불꽃이라고 불리는 18~19세기 조선시대 사회상에 대한 동영상 백과사전을 만들었다고 해도 될 정도다.
2.
조선조 500년 동안 1392년 조온을 시작으로 1894년 김만식에 이르기까지 379명의 평안감사가 있었다고 한다. ‘평안감사도 저가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이 지금도 살아있다. ‘평안감사’가 ‘꿀보직’의 대명사로 조선이 망하고 난 뒤 백년 뒤에도 사어가 되지 않고 있다. 그만큼 평안도 지역의 경제적인 위세가 조선시대에 대단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문동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은 <평안감사향연도에 대한 고찰>이라는 글에서 이 작품에서다루고 있는 주인공(평안감사)이 채제공(1720~1799)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채제공은 영조 시절인 1774년 평안도관찰사(평안감사)를 지냈고, 정조 통치 시절인 1786년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지낸 정조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문동수 전시과장은 “채제공은 감사와 병마절도사로 평안도와 두 번의 인연을 맺었다. 그의 독특한 이력은 영조와 정조 두 임금의 절대적인 신임에 따른 것이었다. 정조의 정책을 실현하는데 앞장선 그는 화성 축성의 초기 단계부터 비용을 마련하는데 각 관청의 갹출을 요청했다. 그 가운데에는 평안감영이 별도로 마련한 재원도 포함돼 있다. 수원화성의 완공을 기념해 1797년 혜경궁 홍씨를 위해 제작한 한글본 <뎡니위궤>의 ‘낙성연도’에는 정조를 대신해 낙성연을 주재하는 총리대신 채제공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고 밝혔다.
채제공의 영정조 시대 활약상을 보면 평안감사향연도의 주인공이 채제공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3.
<연광정연회도練光亭宴會圖><부벽루연회도浮碧樓宴會圖>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 등 석 점으로 이뤄진 <평안감사향연도>는 조선 후기의 왕실행사나 잔치 그림과 좀 다르다. 19세기의 대몰락 직전, 18세기 조선은 마지막 불꽃이 타오르던 시기고 병풍화의 시대였다. 영조의 치세를 거치면서 살림이 윤택해지고 화려한 그림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태평성시도나 요지연도, 효자도, 평생도, 왕실 행사를 담은 행차도 등의 장식용 연작 병풍이다.
하지만 평안감사향연도는 가로로 긴 그림으로, 세로로 길고 병풍화 양식과 다르다.
물리적인 크기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왕실행사 기록용 그림과도 다르다. 정조의 화성행차를 담은 능행도류에서는 왕과 관리의 움직임 형태와 순서, 관리와 병사의 대형에 집중하고 있다. 행차를 구경하는 상민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화면 구성의 부차적 요소에 그친다. 19세기 그림 중 활발하게 움직이는 서민 대중의 모습을 담고있는 <대쾌도> 같은 경우도 있지만 이는 그림의 주인공이 권력자가 아닌 경우에 그친다.
<평안감사향연도>는 평안감사의 ‘영광과 위엄’을 자랑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평안감사의 잔치’를 빅 이벤트를, 구경꺼리로 즐기는 일반 서민의 모습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특히 <월야선유도>의 경우 하상의 모래톱에까지 빼곡하게 늘어선 구경꾼을 평안감사를 위한 잔칫상 마련에 전념하는 일군의 관리 못지않은 비중으로 그리고 있다. 각각의 표정 부여는 물론 손주를 데리고 나온 노파와 어두운 강변을 휘영청하게 밝히는 불빛에 신난 아이들 등 구경꾼1,2,3이 아니라 제각기 스토리를 부여했다. 비슷한 무렵의 <태평성시도>에서 떠들썩한 군중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이 그림의 군중은 중국풍 복식에 중국풍 건물 사이에 서있다.
<월야선유도>는 밤뱃놀이를 하는 평안감사가 그림의 주인공인지, 평안감사가 주연하는 스펙타클한 볼거리를 소비하는 강변에 늘어선 조선의 장삼이사가 주인공인지 헛갈릴 정도로 구경꾼의 묘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삼오오 늘어선 상민이 각 그룹마다 깨알 같이 조선식 해학을 풀어내는 장면은 근대의 기운이 느껴진다. 안중식이 20세기 초에 <영광풍경도>에서 조심스럽게 드러낸 실경과 조선 사람의 풍경이 이미 그 백 년 전에 훨씬 더 과감하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