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풍경의 이면
장 소 : 서울 필갤러리
기 간 : 2020.8.11.-9.24
일상이 무너졌다고,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다고 이야기한다. 서로 다닥다닥 붙어 살며 편리와 효율을 추구한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이 일개 병원체 하나도 제어하지 못해 기능 불능이 되어 버렸다. 8월말부터 진행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 움츠러든 도시. 그 도시의 모습,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에 대한 포착이라는 키워드로 모아 놓은 다섯 명 중진 화가들의 작품을 모은 화랑 전시실의 늦여름은 아마도 그 때문에 썰렁했을 것이다.
김선두, 이길우, 이이정은, 진민욱, 황주리 다섯 명의 작가들이 일상에서 포착한 이미지들을 각자의 어법으로 그려낸 작업들을 모은 전시가 이번 주까지 관객을 기다린다.
먼저 한국화를 뿌리로 한 채색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매체에 방법에 대한 탐구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화가 김선두는 이번 전시에 거친 장지에 대비되는 색채에 한국적 미감을 담은 작품 ‘별을 보여드립니다_맨드라미’ 연작을 내놓았다.
김선두 <별을 보여드립니다-맨드라미> 2020년, 90x118cm, 장지에 먹, 분채
화가가 한국화 매체의 가능성이라는 틀 안에 담은 것은 도시의 삶이다. 시들어가는 꽃, 빈 캔과 과자봉지 등은 욕망과 그 달콤함이 사라진 후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낮별이라면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계속 그 자리에 존재했던 목표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될까. 삶의 소중한 것, 본질, 뭐 그러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당연한 일상들을 찌그러져버린 욕망과 대비시켜 힘겹게 주목하도록 만든다.
황주리 <식물학> 2014년, 100x80cm, 캔버스에 아크릴
화려한 채색의 황주리 그림들은 모두 ‘식물학’ 연작이다. 스스로 산책주의자라고 말하는 황주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것들을 그녀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말하듯이 소설을 쓰듯이 그려나간다. 둥글게 프레임된 장면 하나하나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곽희는 산수화의 이론을 말하면서 "방을 나서지 않고도 앉은 채로 시내와 골짜기를 접할 수 있는" 경지를 말하면서 화가는 “산수의 세(勢)는 멀리서 보아서 취하고, 질(質)은 가까이에서 보아 취한다”고도 썼다. 이런 경지는 그대로 도시의 풍경화로도 옮겨올 수 있다. 진민욱은 작품의 제목인 소소경逍小景, 미미경微美景에서도 알 수 있듯 도시의 길을 걸어가면서 보게 되는 길가 작은 식물들에 줌인하여 채집하듯 화폭에 담는다. 점점 달라지는 먼 데 경치의 변화를 동선에 따라 배치하고 같은 장소를 반복적으로 지나가면서 받은 인상의 이미지를 구현해 섬세하게 도시인의 삶을 표현하고자 한다.
진민욱 <미미경微美景> 2018년, 53 x 70.5cm, 비단에 수묵채색
이밖에 이이정은 두껍게 바른 유채의 강렬한 필치로 담거나 소리를 내는 것들을 의인화해 다양한 에너지를 구현했고, 이길우는 순지에 향불로 구멍을 내어 점묘화로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여러 인간 군상을 담았다. 사회적 거리는 두고, 주변의 풍경은 가까이 하다보면 언젠가 비대면의 세상이 끝나지 않을까.
이이정은 <거기, 소리쟁이의 밤> 2020년 140x70cm, 캔버스에 유채
이길우 <서천, 마당이 보이는 카페> 2019년, 72X90cm, 순지에 향불, 장지에 채색, 꼴라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