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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꽃과 나무 꽃을 거쳐 사람이란 꽃을 선보이는 전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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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의 유화, 한지로 만든 부조, 립스틱으로 그린 초상을 관통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전시명 : 전병현 초대전Rouge Story
장 소 : 나마갤러리
기 간 : 2020.09.02~09.22
글/ 김진녕

전병현 작가가 서울 돈화문 앞의 나마갤러리에서 <전병현 전>을 열고 있다. 2017년 2월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이란 전시로 초상화를, 그해 6월 <어피어링 시리즈Appearing Series>에서 한지를 찢어내고 이어붙인 정물과 꽃을 보여준 가나아트센터 전시 이후 잠잠했던 그가 이번엔 그 두 작업을 이어가는 한편 새로운 ‘루즈 스토리Rouge Story’라는 립스틱 소재의 작품을 들고 나왔다. 루즈 스토리는 그간 그가 보여줬던 정적이고 선적으로 보이던 세계와는 달리 여러가지 색으로 욕망의 상징을 화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육십줄을 넘기면서 변한 것일까? 그에게 묻고 대답을 들어봤다.  


-흐름이 바뀐 것인가.

바뀐 게 없다. 거의 20년 가까이 죽 템포를 이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여기 전시장 1층의 ‘풀꽃’은 유화로 들꽃을 그렸고, 전시장 2층의 ‘나무 꽃’은 한지에 그린 꽃과 백자, 3층 전시장에는 립스틱 그림이라고 단순하게 이야기한다.

외형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이어지는 이야기다. 이전 전시를 못봤으면 이해를 못하는 작품이다.

립스틱으로 눈감은 표정을 그린 것은 아트사이드에서 2017년에 전시한 작업의 연장선이다. 그때 전부 눈감고 있는 120명의 표정을 그려서 전시했다. 그때는 화면에 얼굴만 있고 여백에 아무 것도 그리지 않았다. 지금처럼 민화풍의 글씨나 색을 넣지 않아서 화려하지는 않았다.

초상화를 기록성으로,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것을 그리는 게 많다. 조선시대의 초상화가 기록적인 성격이기는 하지만 매우 성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인물화가 퇴색기다. 나는 초상화를 예술로서 그리고 싶었다. 눈을 떠야 볼 수 있지만 눈을 감고 볼 수 있는 게 심안, 마음 속의 눈이다. 눈을 감은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눈 감으면 죽는 줄 알고 모델을 안 서 주더라. 이걸 어떻게 할까, 그래서 나를 많이 죽였다. 눈 감은 내 모습 스무 개를 그리고 자꾸 보여주고, ‘나 안 죽지 않나’라고 설득해서 120명을 그려서 전시했다. 반응이 괜찮았다. 전시도 하고 책도 만들고. 판매는 안 됐다. 눈 감은 걸 누가 사겠나. 안 팔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감을 얻었다.

그런 걸 계승해서 두 번째로 시도한 게 이번 전시 작품이다. 여전히 다 눈을 감고 있지만 재료를 바꿔보았다.


-립스틱 그림은 처음 아닌가.

1층의 유화로 그린 풀꽃이나 2층의 한지로 작업한 블로썸 시리즈는 2006년 무렵부터 선보인 것이다. 립스틱만 신작인 셈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다음카페에 ‘싹공일기’(싹공은 그의 호)라고 대중을 상대로 매일 그림을 올리고. 단상을 올리는 운동(캠페인)을 했다. 팬이 많았다. 오래했다. 그렇게 노하우가 생겼는데 요즘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가 엄청나게 발달했다. 페북이나 인스타는 과거보다 더 빨라졌다. 예전엔 담배 두 대 피워야 그림 하나 올라갔는데 지금은 바로바로 올라간다.

어느날 우리 집에서 장롱을 뒤지니까 20여개가 나오더라. 집마다 이런 게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페북에 전세계 여성에게 편지를 썼다. ‘립스틱 안 쓰는 것을 보내주면 당신과 콜라보를 하겠다’, 즉 전시를 통해서 보여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6개월 만에 1800개가 오더라. ‘이거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지에 작업하지 않았다.

2층에 있는 게 한지 부조 작품인데 한동안 한지 작업을 안했다. 내게 종이를 대주던 한지장(韓紙匠) 류행영(중요무형문화재 117호, 1932∼2013)이 돌아가시고 상황이 안 좋게 됐다. 인사동 나가면 전부 중국산이고 그건 쓰기 싫고, 그래서 한지 작업을 십 년 쉬었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에 닥나무 400 그루를 심어 한지를 만들었다. 처음에 한지에다 립스틱으로 작업을 했는데 한지가 너무 질기니까 립스틱을 잘 안 먹더라. 그렇게 궁리하다가 연구하다가 이번 전시는 협찬을 받자는 생각이 들어서 한솔의 이인희 고문(1929~2019)에게 허락을 얻었다. 권준성 팀장이 두터운 중성지 한 트럭을 싣고 왔다. 중성지 위에 립스틱을 올려보니 잘스며 들었다.


-립스틱 작품은 과거보다 화려해졌다.

종이가 해결되고 립스틱이 해결되니까 기법만 남은 것이다.

기법은, 처음엔 SNS를 통한 이벤트를 하려면 구상쪽으로 가야지, 추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아트사이드에서 선보인 얼굴 시리즈에 접목해 보기로 했다.

립스틱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다. 고종이 ‘뺀’(립스틱) 수입금지까지 내린 적이 있다.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이걸 잘 풀면 소비사회나 욕망과 엮이지 않을까 싶었다.


-립스틱 초상화의 치장이 화려하다.

요즘 사람은 성형도 하고 화장도 화려하게 한다. 결국은 상대를 잘 만나서 행복하려고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다. 민화는 조선시대의 욕망을 드러내는 강력한 팝아트다. 립스틱 초상화 옆을 잘보면 민화나 문자도 등에 들어가는 이미지 요소를 끌어다 썼다. 굉장히 재미있다.


-이전 작업인 꽃그림에선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는데.

극과 극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2007년 무렵 백색 작업을 할 때 박수량(1491~1554)의 백비白碑 등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관점에서 상징하는 흰색 등 이런 저런 연구를 많이 했다. 박수량의 백비 하사설 처럼 조선에선 백색은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런 걸 한지나 도자기 작업에 응용했다. 1층에 걸린 풀꽃 시리즈도 백색이나 선적인 요소를 반영한 것이다.

이번에 인물을 다루면서, 인물이란 건,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생각이 깊은 사람, 없는 사람 등 극단도 있다. 그걸 누구를 탓하겠는가. 핵심은 율곡이 금강산에서 불교 승려와 토론하던 일화다. 결론은 ‘네가 뭐를 하든 행복으로 가는 방향은 똑같지 않느냐’로 기억하고 있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예술이란 게 편을 가르지도 말고, 색도 만색을 써야 하고, 생각 자체도 욕망도 다 들어가 있어야 하겠다 싶었다. 그게 아티스트다. 그런 걸 표현하다 보니, 색의 구별에 대한 자신감이 붙더라.



-사람도 꽃으로 본 것인가.

그렇다. 생명은 같은 게 없다. 2층에 걸린 블로썸 시리즈는 만개한 꽃을 그렸다. 자연에 똑같은 꽃이 어디 있나? 내가 꽃을 아무리 그려도 그 꽃을 따라갈 수는 없다.


-모자를 벗는 것인지 쓰는 것인지, 문을 여는 것인지 닫는 것인지 구별이 안되는 순간을 그렸다

저쪽으로 나가면 우주로 나가는 것이라면, 들어오는 것은 갇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들어온다’는 표현을 쓴다. 이걸 문지방 사고라고 하는데, 탕건을 움켜쥔 그림 역시 쓰는 것인지 벗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내 입장에서는 감투를 버리자는 쪽이다.

문과 탕건은 비슷한 이야기다. 들어가는지 나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구별이 없다. 선인장이 머리 위에 쏟아지는 순간 앞에 창살이 있는 작품도 비슷한 이야기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엮여져 있다. 가족과 엮여 있고. 어떤 시인이 ‘엮여 있는 동안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노래했다. 그런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추상화 같은 초상도 있다.

내가 예전에 10년을 프랑스에서 살았다. 그때 내가 가장 많이 공부한 게 탈모더니즘이다.

모더니즘은 세상을 상대로 지식인이 우기는 것이다. 내가 한 공부는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우리는 그게 시작도 하기 전에 없어지고 말았지만. 그때 내 선생이 누보 리얼리즘 계열의 아르망과 세자르 발다치니다. 누보리얼리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다. 공부한다는 것은 스승의 움직임을 보는 것인데, 그때 내가 모더니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모더니즘으로 가는 게 쉽지만 나는 반대쪽으로 갔다.


-우리 사회는 70년대까지 산업혁명기, 이후 모더니즘이었고, 이제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들어선 게 아닌가.

맞다. 이제 들어선 것이다. 내년에 선보일 나의 주제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그리스 신화나 우리 신화에 나오는 신화적 인물을 배치해서 풀어보겠다고 갤러리에 제안했다. 3층 전시 작품 중 일부는 내년 10월에 전시할 것을 미리 선보이는 작업도 있다.




글/ 김진녕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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