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해제(解題): 금기어
기 간: 2020.9.4 ~ 10.5
장 소: 여수엑스포D전시홀, 엑스포아트갤러리
글/ 김진녕
2020년 여수국제미술제가 9월4일 문을 열었다. 오는 10월5일까지 2012여수세계박람회장 전시홀(D1~D4)과 엑스포아트갤러리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아홉 번을 ‘여수국제아트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진행됐다가 이번에 여수국제미술제로 이름을 바꿨다.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열 예정이었던 부산비엔날레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기약없이 랜선 전시회로 노선을 바꿔탔지만 여수국제미술제는 오프라인 전시도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귀한 미술행사가 됐다. 여수가 규모가 작은 도시인데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현재까지 한 명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판데믹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올해의 주제는 ‘해제(解題): 금기어’다. 코로나19 감염을 둘러싸고 사회적 낙인찍기와 정치적 의도가 첨가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금기’의 형성 과정이 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되는 일상이 반복되는 시기에 미술로 ‘금기’에 대한 전시를 보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조은정 전시 감독은 주제전에 한국전쟁의 상처를 다룬 원석연(1922~2003)과 80년대의 억압과 공포를 경험한 류인 등 작고한 작가의 작품은 물론 200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권여현, 김기라, 김도희, 김선두, 김성복, 김홍식, 박경근, 박성태, 선무, 신미경, 심철웅, 정정엽, 정종미, 정직성, 하태범 등 5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태어난 작가를 통해 현대의 금기를 살펴보고 있다. ‘해제;금기어’를 내세운 주제전에는 국내외 작가 46명(팀)이, 참여전에는 지역 작가 41명(팀)이 참여하고 있다.
기획전은 죽음이나 마약, 섹스, 배설, 질병 등 개인적 육체적 금기의 영역부터 사회적 정치적 영역이 금기까지 두루 다루고 있다. 1948년 여순사건의 상흔이 현재도 진행형으로 남아있는 여수 지역의 상처와 금기, 금기의 설정과 활용을 통해 피아의 식별을 명확히 하고 ‘국민총화’와 ‘갈라치기’라는 현실 공포정치가 횡행했던 개발연대의 풍경을 시각화한 작품부터 용산 재개발 4구역을 둘러싼 갈등과 혐오, 자유를 찾아 월남한 탈북 작가가 마주한 남한의 현실과 북한 체제에 대한 적대감 사이의 미묘한 간극, 지구에서 압도적인 포식자로 군림하는 인간이 폭발적인 번식력을 뒷받침하는 먹이사슬 유지를 위해 끔찍한 동물학대를 당연시하는 인간 위주 서술의 모순과 금기, 여전히 홍콩에서 반복되고 있는 새로운 금기의 강요와 이에 반발하는 우산혁명 사례 등 21세기의 평범한 시민이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여러가지 모순과 금기, 이로인한 폭력성에 대한 성찰을 전시장 곳곳에 풀어놨다.
다만 전시 배열은 느슨하게 열려있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다룬 원석연의 작품과 같은 공간에 인간의 식욕을 위해 단백질 낳는 생산기계로 다뤄지는 어미 돼지의 사체를 형상화한 한효석의 조각 작품과 마약과 고기에 대한 탐닉을 다룬 김선두의 평면 작업이 같은 동선에 놓여있다.
조은정 전시 감독은 이런 구성 방식의 ‘의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주제전이 열리는 3개의 전시실에서 다시금 작가별, 주제별 분류를 하지 않았다. 금기어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하나의 작품에서 복합적인 양상과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관객에게 열린 형태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학술적으로 세계의 금기어는 죽음, 성, 배설, 질병에 관련된 것이 가장 기초적인 분류법이다. 하지만 식민지 전쟁 독재와 민주화 운동 등을 겪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어는 보다 복잡성을 띠는데 그것은 이념을 의미하는 빨갱이, 빈부 격차에 대한 생태적인 지적인 흙수저, 낙오자, 하위 문화의 오타쿠와 퀴어, 여혐, 남형 등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그리고 타자로 지칭되는 많은 대상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 또한 안다. 따라서 육식문화에 대한 드러냄은 단순히 생명주의의 표면화만은 아닌,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가의 의도를 중심으로 작품을 설명하고자 했는데, 세계에 대한 관여로서 작가를 강조하고 싶은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감염증이 세상을 덮은 세상에서 내 옆을 지나는 이가 ‘어깨만 스쳐도 인연’이 아닌 더러운 병균의 외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넘쳐나는 지금이다. 죽음 너머의 고통을 이기고 돌아와서도 생에의 귀환을 기뻐하며 나눌 수 없는 완치자에게 금기어는 ‘코로나19’이다.
죽음과 같은 공포스러운 것, 똥과 오줌 같은 배설물 그리고 계급이나 집단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건이나 자본주의의 어두운 부분들, 환경, 식민, 성소수자 등 사회 전반에 만연한 억압하고 경계짓는 것은 금기어를 통해 실체를 드러낸다. 금기어를 호명하고 해석하는 것은 우리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발화(發話)이다. 상상해 보라! 똥을 똥이라 말하고, 오줌을 오줌이라 말하고 피를 피라고 말하는 것을.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는 분류하고 분석하기 좋아하는 학자의 태도를 버리기로 했다. 금기, 타자, 혐오와 같은 것은 하나의 모습이 아니며 한 가지 이유에서 생성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해석된다. 여전히 여수에서 ‘여순’이라는 단어가 금기어에 가까운 것은 여전히 그 피가 멈추지 않는 상처가 각기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개인사와 사회, 사건, 역사적 입장과 해석에 의해 동일한 상황이 얼마나 다르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또한 예술의 일 중 하나이다. 그 상상하지 못한 것들에서 나, 우리의 무지와 대면하는 것 그것은 다양한 언어와 이미지로 만나는 것이 맞다."
그래서일까. 절대자와 인간의 한계를 다룬 류인의 바로크적인 비장미가 넘치는 작품 앞에는 최석운이 친애하는 주인공이 세상의 고뇌야 큰 문제가 되겠냐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해먹을 타고 있고, 김도희의 지린내가 진동하는 <야뇨증> 앞에는 데비 한의 벌거벗은 여신들이 코를 감아쥐며 즉각적으로 지린내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대역병의 시대는 밝혀지지 않은 역병의 실체 때문에 금기와 미신이 역병만큼 창궐했던 시기다. 중세의 흑사병 시대가 그랬고, 조선의 마마가 그랬다. 첨단 과학의 시대라는 21세기에 치료약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대역병의 시대가 다시 올줄 아무도 예상을 못했을 것이다. ‘해제(解題): 금기어’전은 새로운 금기의 탄생과 성장 과정이 미디어를 통해 생중계되는 시절이라 의미가 더욱 도드라지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