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고미술 소장품 특별전 챕터 투
장 소 : 아모레퍼시픽미술관 (APMA)
기 간 : 2020년 7월 28일 ~ 2020년 11월 8일(2020년 8월 25일부터 임시휴관)
글/ 김진녕
-2018년 개관 이후 처음 여는 고미술 컬렉션 소개전
-70년대 화장도구 컬렉션으로 시작해 근현대 미술품 컬렉션으로 확장한 역사
코로나19의 여파로 미뤄졌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2018년 문을 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다른 미술관과 달리 상설전 전시가 없는 독특한 운영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개관 프레쇼로 소장품전을 잠깐 하고 2018년 5월 첫 정규 프로그램으로 라파엘 로자노헤머쇼, 그해 11월 <병풍전>, 2019년 3월 APMA 현대미술소장품전
이번 전시는 지난 50여 년간 아모레퍼시픽이 수집한 고미술 작품 가운데 1500점이 등장했다. 선사시대의 장신구부터 삼국시대 금속공예품, 조선 시대 목공예품,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 등 도자류, 18세기 조선 르네상스의 산물인 병풍과 근대 산수화 등 한국 전통 미술의 모든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 개관 전부터 관심을 받아온 아모레퍼시픽(서성환-서경배) 고미술 컬렉션을 2년 만에 메인 메뉴로 올린 것이다.
물론 보물로 지정돼 아모레퍼시픽 소장품이란 게 널리 알려져 있는 넉 점의 유물도 전시장에 나와 있다. 보물 제1559호인 ‘감지은니대방광불화엄경’은 전시장 들머리에 등장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고, 회화류가 선보이고 있는 제1전시실에 보물 제1426호인 ‘수월관음도’가, 도자류 전시장인 제2전시실에는 보물 제1441호 백자대호와 보물 제1450호 ‘분청사기 인화문사각편병’이 놓여있다.
1전시장은 <병풍전>의 연장전쯤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전시에 한 점만 선보였던 <곽분양행락도> 여덟 폭 병풍이 두 점이 등장했고, 김규진이 큰 붓으로 그린 <월하죽림도>도 쌍으로 나란히 배치돼 크기에서 오는 미감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APMA측에서는 <요지연도> 여덟 폭 병풍이 보존처리를 마치고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같은 공간에 전시된 <곽분양행락도> 옆에는 보존처리 과정을 담은 사진 자료도 전시해 APMA가 보전 처리 능력이 있는 박물관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해상군선도> 열 폭 병풍이나 <요지연도>, <곽분양행락도> 등의 병풍 그림은 18세기 정조 연간에 크게 유행하던 장르화다. 국박 소장의 <곽분양행락도>(덕수3153)과 APMA 소장의 <곽분양행락도> 두 점은 전체 구도와 진행은 거의 같지만 곽분양과 손자를 묘사하는 부분, 시녀가 든 부채의 그림 등 디테일이 조금씩 달라 보는 재미를 준다. 정조는 자주 병풍화를 주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18세기 병풍화 유행의 핵이다. 이때 정조의 신임이 컸던 김홍도가 정조 연간 왕실을 포함한 조선 시대 최상위층에게 쓰이던 병풍화를 그렸을 것이다. 때문에 국박 소장의 곽분양행락도를 ‘전傳 김홍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18세기 미술사와 경제 사회사를 거론할 때 병풍화를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제2전시실의 도자류 전시는 기존의 박물관 전시와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어서 이색적이다. 따로 이름표를 달거나 칸막이를 두지 않고 그룻가게처럼 널찍한 전시대에 수백 점의 도자기를 ‘널어놓는’ 방식을 취했다. 자연광에 가까운 조명아래 유물을 가로막는(또는 보호하는) 유리창의 번들거림없이 길게는 천 년, 짧게는 백 년의 시간을 건너온 토기와 청자, 백자류를 만난다는 것은 독특한 시각적 경험이다. 대신 10cm까지 바짝 다가가 자세히 볼 수 있었던 회화 전시실과는 달리 작품 보호를 위해 철망너머에서 봐야 한다. 일일이 작품 이름이나 설명서를 달지 않았고, 주최측이 판단으로 주요 작품에 간략한 이름 정도를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불친절한 전시 연출은 조영하(1898~1988)의 기증품으로 이뤄진 제3전시실의 분청사기와 백자다. 박물관측의 설명에 따르면 조영하는 서성환 회장과의 인연으로 723점의 도자류를 APMA에 기증했다고 한다. 이중 700점이 분청이나 백자로 만든 다기라고 한다. 하지만 관람객이 볼 수 있는 것은 4미터가 넘는 전시장 천정까지 선반을 만들어 그가 기증했다는 수백 점의 도자기를 담고 있는 오동나무 상자 뿐이다. 그 옆에 작게 놓여진 다완류는 전시실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철망과 낮은 조도로 인해 볼 수가 없다. 소장품 전의 다음 전시, 챕터 3이 다완류나 도자류가 될 수 있기에 일부러 이번 전시에는 ‘많은’ 도자 소장품의 부피감만 보여주고 유물과의 ‘근접 조우’는 막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상을 깨는 전시연출은 목조가구를 전시한 6전시실에서도 반복된다. 입방체인 목조가구를 3면이 꽉끼는 전시장을 만들어서 집어넣고 입면 한쪽만 노출시켜 입체의 평면화를 꾀했다. 반면 사각소반이나 원형 소반, 떡살 같은 소품은 벽면에 걸어서 입체감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전시했다. 주최측에선 ‘전통 목가구의 현대적 조형감각을 재발견하도록 연출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태평양박물관’ 시절 주력 컬렉션이었던 반지와 목걸이, 빗, 청동 거울 등의 금속 공예품과 전통 자수공예품은 5전시실에 배치됐다. 전시 비중을 따지면 이번 전시의 세가지 기둥이 회화와 도자, 전통 금속 공예품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이다.
‘태평양박물관’의 시작에는 아모레퍼시픽 그룹의 창업주인 서성환 회장(1924~2003)이 있다. APMA개관 이후 처음으로 본 전시실 입구에 마련된 아카이브룸을 통해 APMA의 역사와 서성환 회장의 자료를 소개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서 창업주가 컬렉션을 화장품 사업을 하는 기업의 본업과 연관시켰다는 점을 자료로 보여주고 있다. APMA측에 따르면 서성환 회장은 10여 년의 준비 끝에 1979년 국내 최초의 화장품·장신구 박물관인 ‘태평양 화장사관’을 열었고, 1981년에는 다예관(茶藝館)도 개관했다. 이후 태평양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1980년대에는 기업 바깥의 공공 장소에서 소장품 전시를 열기도 했다. 사진과 박물관 관련 서류로 꾸며진 아카이브 룸에 걸린 유일한 회화작품은 이상범의 소품인 <강상어락>(1959)이다. 박물관 측에선 “(서 회장이)이 그림을 늘 곁에 두고 감상”했다는 설명을 달아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