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호림박물관 2020 민화특별전 <書架의 풍경_冊巨里·文字圖>
장 소 :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기 간 : 5월 12일~8월 22일(토)까지 연장전시
이번 주 마지막 관객을 맞게 되는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의 2020년 특별전시는 기관의 두 번째 민화 특별전인 <서가의 풍경_책거리·문자도>이다. 책으로 가득한 서가를 소재로 독특한 기법과 형식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책거리 그림, 그리고 유교의 도리 중 효제충신예의염치를 정해진 모티브의 조합으로 문자로 구성해내는 문자도 그림 두 가지가 주제가 된다.
책거리의 경우 상서롭고 귀한 물건들, 고귀한 정신세계를 가득 담은 책을 다채롭고 정교하게 그려내고자 한 것인데 이러한 욕망과 민화가 가지는 도식적이고 세속적인 성격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교차점이 책거리 그림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섬세함과 중후함, 반듯함과 자유로움, 이상과 현실의 욕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담는다. 전문화가가 그린 것과 이를 제멋대로 흉내낸 민간의 무명화가의 것이 모두 한 자리에서 감상 가능한, 퍼즐과도 같은 득특한 장르다.
호림박물관이 이번에 선보이는 민화 그림들은 대개 지난 수 년간 박물관이 수집해 온 신소장품이다. 전시장 첫머리를 장식하는 작품은 각 폭에 개별적으로 일상용품과 도자기, 책들을 배치한 기물들을 배치한 소형 시리즈 그림을 묶은 8폭 책거리 병풍이다. 책 사이사이 가늠줄에도 기물에도 오방색을 섞어 모티브가 된 사물과 함께 길상적 의미를 담았다.
예쁘게 쌓인 책거리 그림 병풍이 맞이하는 입구를 지나면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인 <책가도 8폭병풍>을 볼 수 있다. 전체 책가 안에 책과 함께 각종 고동기, 문방구, 화훼 등 값나가 보이는 것들을 채웠다. 채색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산뜻하며 음영이나 원근법의 시도 등 서양화법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책거리 그림이 대중화되면서 길상적 의미를 가진 과일과 동물들이 책을 압도하며 많이 나타난다. 토끼가 책 위에 앉아있기도 하고, 과일을 담은 귀면 그릇, 산수화를 그린 바둑판, 책상 위에 놓인 마작패, 수박, 석류, 씨를 드러낸 수세미 등 자손 번식에 열광하는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별다른 장치가 없어도 전시된 책거리 그림 중의 소재들을 하나하나 찾아보기도 바쁘다.
문자도 전시장은 책거리와 결합된 문자도를 시작으로 경상도 지역의 문자도, 백수백복도, 화조도와 연결되는 지점의 흐름을 가지고 도안화된 문자도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유교적 통치 이념의 저변화 분위기가 투영된 문자도부터, 점차 대표적인 상징물이 문자를 함몰시키고 대체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글자의 획보다는 그림의 장식적 효과가 목적이 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문자도의 감상 방식은 다양하겠으나 글자의 회화화 방식, 문자의 의미와 상징물의 조합, 언뜻 조잡스러워 보이는 파격과 상상력 등에 집중하여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문자도 부분에는 비백서가 포함되었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버드나무 가지를 깎아 그 끝을 갈라지게 하여 먹을 찍어 효제충신여의염치 등의 글자를 썼다”는 기록을 들어 비백서 전통을 소개했다. 비백서처럼 그려진 혁필화 문자도 병풍도 소개했다.
남관, 이응노, 손동현 등 민화의 현대적인 미감에 주목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 말미에 이어진다.
이번 특별전은 2013년에 기획했던 <민화, 상상의 나라_민화여행>에 이은 호림의 두 번째 민화특별전으로 야심차게 준비되었으나 불운한 때를 맞아 많은 관객이 이를 볼 기회를 놓친 듯하다.
호림의 민화 전시는 민화를 주제별로 세분화하여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이후 화조화, 산수인물화를 중심으로 또 다른 민화전시가 계획되고 있는데 하루빨리 정상적인 관람이 가능해지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