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
장 소 : 국립민속박물관
기 간 : 2020.05.20.~10.05.
넉넉한 객주 1890년대. MARKK 소장(replica)
규모가 큰 기와집과 집 안에 마구간이 있는 부유한 객주. 말에게 먹이를 주는 하인, 흑돼지 가족 등이 보인다.
김홍도나 신윤복 만큼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화가는 아니지만, 기산箕山 김준근 하면 풍속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국내에 김준근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84년 MARKK 소장 기산 풍속화들을 소개한 게르노트 프루너(Gernot Prunner)의 《기산풍속도첩(箕山風俗圖帖)》(조흥윤, 범양사)이 국내에 발간되면서부터다. MARKK 소장품은 제물포(인천)에 있던 세창양행(마이어상사의 지사)의 경영자 에두아르드 마이어(H. C. Eduard Meyer, 1841~1926)가 수집한 것들이다. 이들은 1894년 이전에 박물관에 입수된 것이므로 김준근은 적어도 그 이전에 그림을 그리고 판매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인생에 대해서는 1880년 무렵에서 20세기 초까지 활동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 외에는 정확한 출생과 사망연도, 어떤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인지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는지 등 하나도 알려진 게 없다. 조선 말기 인천, 원산 등의 개항장에서 조선의 일상과 풍습을 담은 풍속화를 제작하였다는 것과 그의 작품이 삽화로 실렸던 서양 책들의 연대로 그 활동시기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번역된 서양 문학작품인『텬로력뎡』(천로역정天路歷程)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김준근의 삽화가 실린 텬로력뎡 1895
존과 헤리엇 게일 부부가 한글로 번역하고 삽화의 인물을 조선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 넣었다.
어떤 계기로 그의 그림이 서양인의 눈에 띄었는지 알 수 없으나, 생업과 의식주, 의례, 세시풍속, 놀이 등 전 분야의 풍속을 그린 그의 그림이 당시 우리나라를 다녀간 여행가, 외교관, 선교사 등 외국인에게 많이 팔렸으며, 현재 프랑스,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 20여 곳의 박물관에 1,500여 점이나 되는 김준근 그림이 남아 있다(그중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은 프랑스 국립 기메동양박물관).
전시 2부는 그림에 등장하는 실제 기물을 민속박물관 스타일로 구성하여 보여 주는 공간이고, 전시 1부 ‘풍속이 속살대다’에서 MARKK 소장품을 중심으로 150여 점에 이르는 130여 년 전 조선의 모습이 펼쳐진다. 대부분 국내에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가객(歌客) 소리하고> MARKK 소장. 판소리 연회 장면.
<광대 줄 타고> MARKK 소장.
<광대 줄 타고> 부분.
시장과 주막, 소리꾼, 굿중패, 솟대장이패의 갖가지 연희, 갓, 망건, 탕건, 바디, 짚신, 붓, 먹, 옹기, 가마솥 만드는 장면 등 조선의 이색적인 생활과 문화를 서양인에게 소개하기 위한 목적의식적 주제 선택이 흥미롭다. 글 가르치는 모습, 과거(科擧) 장면, 신고식이라 할 수 있는 신래(新來) 장면, 혼례와 상·장례 등의 의례, 널뛰기와 그네뛰기, 줄다리기와 제기차기 등의 세시풍속과 놀이, 주리 틀고 곤장 치는 혹독한 형벌 제도 등이 소개되어, 이제는 우리에게도 낯선 한 세기 전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기생방에 배반杯盤나고> MARKK 소장. 기방에 주안상이 들어온 모습.
<기생방에 배반 나고> 부분
‘그네뛰기’, ‘베 짜기’ 등에서는 유사한 장면을 조금씩 다른 인물과 구도로 그렸던 것을 나란히 보여주기도 한다. 혼례 같은 중요한 문화인류학적 행사에 관련되어서는 예물 보내는 모습부터 친영 행렬, 초례, 신부 행렬에 이르기까지 혼례 과정을 보여주는, 마치 파노라마 같은 그림도 볼 수 있다.
<장가가고> MARKK 소장. 신랑이 신부를 맞으러 신붓집으로 가는 친영 행렬 모습.
그의 그림은 18~19세기 조선의 풍속화 전통과 딱히 연관 짓기가 어렵다. 장례식이나 형벌, 포도청에서의 심문 모습 같이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딱히 보고자 할 것 같지 않은 그림들을 많이 남겼다는 사실은 그가 철저히 외국인들의 수요에 따른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어떻게 하다가 그가 개항장에서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려 유명해지게 되었을지 그 스토리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바이러스 사태에 앞서 운좋게 고국 여행을 온 풍속화들을 많은 관람객들이 눈에 담았으면 좋겠는데, 재개관 일정이 불투명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