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김성국 개인전 - The Trees
장 소 : 갤러리 마노
기 간 : 2020.6.2-6.23
글/ 김진녕
갤러리마노에서 김성국(b.1982)의 개인전 <나무들 the Trees>(~6.30)이 열리고 있다.
김성국은 2008년 서울대 미술대 졸업작품전에서 총장상을 받았고, 2018년 영국왕립예술학교(RCA) 졸업작품전에서는 <개기일식the Total Solar Eclipse>이라는 작품이 최고가인 9000파운드에 팔리면서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지(2018년 7월3일자)에 실리기도 했다.
2009년 2월 서울대 미대 서양화가 졸업 이후 2012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유학 전까지 극사실화에 가까운 인물 위주의 작업을 많이 했다. 2018년 RCA졸업으로 그는 두 개의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전업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장르인 페인팅에서 나의 방법을 찾으려 분투 중인 30대 작가 김성국에게 ‘오늘의 회화’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성국, The Trees_13, Oil on canvas, 116.8x91cm, 2020
-호크니도 RCA를 나왔고, 영국이 초상화 전통도 강하니 기본을 열심히 가르치나?
그런 거 없어졌다. 나는 한국에도, 영국에도 없는 화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국 사람이 내 그림보고 ‘이런 부류의 화가는 이 시대에는 처음 본다’고 말하더라. 그 얘기를 크리스티에서도 들었다. 학교 선생도 “이건 사진이나 기술로 다 할 수 있는 작업, 이렇게 노동력을 쓸 필요가 있냐. 네가 열심히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존경한다. 이 시대에 왜 이렇게 그리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게 너의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은 다 이렇게 그리지?”라고 묻더라. 내 대답은 ‘여기도 한국 학생 많지만 나처럼 그리는 사람 없지 않나’였다.
물론 채찍질(?)도 있었다. 항상 열심히 그렸지만 한 교수가 나에게 “너는 게으르다”고 한 말도 기억난다. 나보다 두 세 살 정도 나이 많은 분이었는데 “너만의 창의성이나 독특함이 없다면 그렇게 아무리 열심히 그려도 그 그림은 게으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학을 생각한 이유는.
나의 고민, 문제점은 ‘뭘 그려야할지 몰랐다’는 점이다. 서울예고 2학년 때 학교에서 상상화란 걸 그리게 했다. 그때 서울대 입시 미술이 바뀌면서 그런 과목이 생겼다. .
내가 석고 데생은 전교에서 손꼽을 정도로 잘했는데 상상화만 그리면 중간도 안됐다. 주관의 객관화, 그게 미술인데, 그런 기술이 부족했다. 내 생각을 객관화시켜 형상화하는데 약했다. 내가 작가의 자질이 없나,란 고민이 많았다. 미술은 상상력인데.
대학 가서도 기술이야 연습하면 되는 것이고. 뭐를 그려야 할지 정하는 게 어려웠다.
졸업할 때까지 고민했다. 3학년 때 우연찮게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차용한 <물 항아리를 든 소녀>라는 작품이 나왔다. 몸통을 만들어서 그려넣었다. 이 작품으로 그때 처음 생긴 총장상을 받았다.
석사 때도 내가 뭘 그려야 할지 정확하게는 몰랐다.
그때 지도교수인 한운성 교수가 “(대학원은)그림을 완성하러 온 게 아니라 논문을 쓰러 온거니 논문을 위한 그림을 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논문 주제가 ‘서양 명화를 차용한 일상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차용 그림을 계속하게 됐다. 이게 너무 두리뭉실했지만 논문을 위해서 계속 가야했다. 논문은 점수가 괜찮았지만 대학원 졸업 뒤에도 고민은 계속됐다. 내가 이론적인 부분이 불확실한 것같은데 남들을 보면 그쪽도 다 불확실해 보이기도 하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만족할 것인지, 이론을 더 공부해 중심을 더 잡아야 할지 고민이 계속됐다. 이론이 불확실하니 그림도 딱딱해지는 거 같기도 하고.
혼자 작업하면서 나의 이론, ‘서양 명화를 차용해서 나의 일상을 표현하고 소통을 이끌어낸다’는 말이 안쪽의 중간 고리가 비어있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더 공부해야겠다. 뭘 그릴지에 대해서 확실히 정리해보자는 생각에 유학을 결정했다.
김성국, The Trees_20, 1/3 / The Trees_20 2/3, The Trees_20 3/3, Oil on canvas, 33x24cm, 2020
-유학을 통해 바뀐 게 있나.
한국에선 사진처럼 그리는 것을 잘그린다고 한다. 나를 바꾸고 싶어서 사진처럼 그리는 것을 지양하기 시작했다. 유학 직전에 내린 생각이다. 2013년까진 정말 사진처럼 그렸다. 피부를 스푸마토 기법으로 30~40번 올리고. 그런 작업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이번 전시에 나온 나무 같은걸 그리는 게 더 어렵고 시간이 더 걸린다. 3~4개월이 걸린다.
전에 그린 사진 같은 그림은 드로잉을 안했다. 요즘 많은 작가들이 쓰는 방법인 사진으로 찍고. 그걸 프로젝터로 쏘고 전사시켜 유화로 그렸다. 문제는 이렇게 그리면 내가 전하고 싶은 얘기가 전달이 어렵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초점이 하나다. 카메라 아이는 내 의지와 상관없는 시점을 가지고 있다. 유학갈 때 프로젝터를 버리고 갔다. 유학 기간 중에는 드로잉만 해서 그렸다. 훈련이 돼있었는지, 뭘 그려도 ‘사실적’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카메라 아이를 포기한 게 잘한 것이다.
김성국, The Trees_8, Oil on canvas, 162.2x130.3cm, 2019
-유학 시절부터 분할된 공간이 화면에 등장한다.
‘서양명화를 차용해 나의 일상 공유’하는 작업에도 카메라의 시선인 일점투시도는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효율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 공간에 대한 공부를 함께 해보자는 교수님이 계시기도 했다. 영국 생활을 통해 시점을 다변화하고 공간을 조각내는 방법을 계속 시도했다. 한국식이나 미국식과 다른 영국식 집도 나를 자극했다. 영국에서 집에서 작업실까지 가는데 걸어서 20~30분이 걸리는데 거리와 집을 많이 사진찍고 드로잉했다. 화면을3~4개로 나눠서 구성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공간을 분할하면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나의 이야기를 한 화면 안에서 설명할 때 공간 분할이 나에게 자유로움을 증가시킨다.
-영국 생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상도 몇 개 받았고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이런저런 제의도 받고 실제 판매도 이뤄졌다. 학교 친구들이 신문(텔레그래프)에 ‘네 작품이 졸업 작품전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렸다’고 보도됐다고 알려줬다. 페인팅이 영국 미술의 자존심이자 주무기인데 유명 미술잡지(Elephant)에서 ‘올해의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 10인’을 꼽았는데 페인팅 분야에선 내가 유일했다. 그런 게 기분 좋았다.
John Cook, Glittering, Mixed media, 67x55cm, 2/50, 2019
-이번 전시에 나온 그림은 사람 대신 식물이 주인공이다.
영국에 있을 때 통일에 대한 작품 의뢰받았던 적이 있었다.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길거리에서 보이는 식물을 모아서 숲처럼 보이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사람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처럼. 그게 나의 통일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번엔 그 작업에서 좀 더 발전시켜 평범한 길가의 식물을 격자로 배치했다. 세상에 사소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다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한다. 일상에서도 유명인 아니면 주목 안 한다. 모든 게 동등해질 수는 없지만, 평상시에 눈에 잘 안띄는 것이라도 같은 공간을 내주고 싶었다.
일상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 평화, 옳은 삶을 표현하고 추구하는 과정이 내 작업이다. 좋은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만든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마름모꼴 콜라주인데 정밀 실사를 내세운 작품은 아니다. 회화적인 표현이 들어있다. 만화 같은 표현을 차용하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선 사실적으로, 어떤 부분에선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기술적으로 이런 것을 노렸다,고 꾸미고 싶지 않지만 ‘사진의 관점’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John Cook, The night of London, Mixed media, 55x67cm, 2/50, 2019
-회화 장르는 더 이상 새로운 게 없지 않나.
완벽하게 새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익숙한 것을 ‘어떻게 특별하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세상에 유니크하고 프레시한 것 있다면 그나마 가까운 게 나만 알 수 있는, 내 일상이다. 나의 평범한 일상을 나만의 평범하지 않은 방법으로 전달하고 싶다. 공유하고 싶다.
왕세자비, 전쟁, 미사일 같은 평범한 일상 밖의 거대함 보다는, 내 주변의 이야기, 내가 경험한 것, 내가 본 것을 표현하고 싶다. 그 작은 차이를 보여주는 게 내 작업의 목적이다.
나처럼 노동력으로 승부하는 작가도 한 명쯤 필요하지 않나.
김성국 작가는 요즘 유행하는 ‘부캐’도 있다.
RCA동창생인 김시종 작가와 결성한 듀오 ‘존 쿡’.
존 쿡의 작업은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컬렉션에도 들어가 있고, DDP에서 열린 개인전 참석을 위해 한국에 왔던 폴 스미스가 이들의 작업실을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이미 파리와 베를린에서 전시를 했고, 이번 달에 소호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로 취소됐다.
존 쿡의 작업 속에서 김성국 작가는 본캐에서 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자신을 작품 속에 드러내고 있다. 김시종 작가가 사진 콜라주를 출력하면 그 위에 김성국 작가가 이방인으로서 런던에 살았던 기억과 욕망을 그려넣고, 이를 다시 김시종이 사진으로 찍고 재배열해 출력하는 식으로 작업이 이어진다. 어디서 작업이 끝낼지를 결정하는 것에 따라서 수많은 원본이 파생하는 작품이다. 김성국 작가도 ‘부캐’ 작업을 재미있어 하고 있다. 이번 마노 전시에선 존 쿡의 작품 석 점도 샘플러 격으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