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그윽한 산수를 거닐다: 조선 전기 서화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
기 간 : 2020. 5. 6. ~ 9. 6.
바이러스 창궐로 인한 긴 폐관 기간을 마친 후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관 2층 서화실의 정기 교체 전시는 어느 때보다도 반갑다. 원래 계획대로 진행된 것임에도(기간만 약간 뒤로 연장된 것 말고는) 서울 내 주요 국공립 기관의 전시가 휴식 후의 도약처럼 힘을 실어 경쟁적으로 소장품 전시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조용히 빛이 난다.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전시 외에 조선 전기의 서화를 보여주는 <그윽한 산수를 거닐다> 전이 9월 6일까지 진행된다.
그림이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작가 미상이거나 내력에 대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기는 하나 15, 16세기 조선의 서화는 우아한 고전미를 풍긴다. 오래된 서화의 보존 문제로 어둡고 조용한 전시실에서 당시의 산수도, 소나무와 매화 그림, 동물 그림, 모임의 기록, 시첩의 글씨를 둘러보면서 당시의 왕실과 사대부들이 지향하던 예술적 정서나 미감을 느낄 수 있다.
조선 초기는 고려의 전통이 아직 남아 있으면서 중국, 특히 송이나 원나라의 고풍古風을 지향했다. 전시실 중앙에 안견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사시팔경도, 소상팔경도를 배치, 책에 실려 있는 도판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섬세하고 시적인 분위기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전 안견(安堅)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부분, 비단에 먹, 35.8x28.5cm
안평대군의 적극적 지지와 후원을 받았던 안견(1410년경-1464 이후)은 곽희(郭熙) 화풍을 토대로 여러 화풍을 종합, 절충하여 독자적 경지에 올라 16세기 안견파를 만들어낼 정도로 영향력 있는 전기의 대가다. <몽유도원도> 외에는 그의 작품이라 확정된 것이 없으나 <사시팔경도>는 전칭작 중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이다. 조선 초기 안견파 화풍의 전형이며 한쪽 끝 부분에 치우친 편파 구도 등 두드러진 특징들이 있다.
전 이상좌(李上佐, 16세기)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 비단에 먹, 190x81.8cm
<송하보월도> 부분
본래 노비였다가 어릴 때부터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여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는 이상좌의 소나무 그림이다. 화면을 압도하는 키 큰 소나무와는 대조적으로 달을 감상하는 선비와 시동, 그리고 멀리 보이는 배경의 산은 잘 보이지 않는다. 중국 남송의 마원의 소나무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중국의 영향이 강하게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눈에 띄는 그림 중 하나는 <학포 찬 산수도>라고 설명되어 있는 한 쌍의 산수도이다. 왼쪽의 그림은 ‘본관 2034’라는 소장품 번호가, 오른쪽 그림은 ‘구10086’라는 번호가 붙여져 있다. 두 작품이 따로 흩어져 있다가 두 번째 작품의 구입(2017년)을 통해 만나게 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처음 이 그림은 화제에 붙여진 ‘학포사學圃寫’라는 글씨 때문에 학포 양팽손(梁彭孫, 1480-1545)의 그림으로 여겨졌다가 서체가 유사한 같은 글씨 낙관이 후대의 그림인 윤두서의 것에도 있다는 것 때문에 학포라는 호를 쓰는 후대 누군가의 소장인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대개 ‘사寫’는 그림을 그렸다는 뜻으로 해석되므로 모호한 부분이 남아 있다.
<산수도山水圖> 각 88.2x46.7cm
처음 이 그림은 화제에 붙여진 ‘학포사學圃寫’라는 글씨 때문에 학포 양팽손(梁彭孫, 1480-1545)의 그림으로 여겨졌다가 서체가 유사한 같은 글씨 낙관이 후대의 그림인 윤두서의 것에도 있다는 것 때문에 학포라는 호를 쓰는 후대 누군가의 소장인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대개 ‘사寫’는 그림을 그렸다는 뜻으로 해석되므로 모호한 부분이 남아 있다.
안견 전칭의 <사시팔경도> 중 만춘(晩春)과 통하는 부분이 많으며, 근경에 보이는 언덕과 산기슭이 중간 부분에 한번 더 나타나 삼단 구도를 보인다는 차이가 있다.
(참고도판) 공재 윤두서의 심산지록(간송미술관 소장). 학포 낙관이 있다.
전시중인 이 산수도 두 폭((1), (2))에 써 있는 화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전시장 캡션에 원문과 해석이 있어 그림 감상에 도움이 된다.
1)
맑은 강가에 집을 짓고
맑은 강가에 집을 짓고
갠 날마다 창을 열어두네
숲 그림자 빙 둘러 산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강물 소리에 세상일 전혀 들을 수 없네
조수 따라 나그네 타고 온 배 닻을 내리고
고깃배는 낚시 걷어 돌어오네
저 멀리 대 위의 나그네는 분명
산천 구경 나온 것이리라
강은 넓어 세상일 가로막고
여울소리 요란해 속세의 말 들려오지 않네
고깃배야 오고가지 마라
행여 세상과 통할까 두렵구나
2)
산 속 사찰 희미하게 보이고
강에 돛배는 넘실대는 물결위에 있네
고깃배 서둘러 뭍에 대어야
비바람 걱정되지 않으리
이암 <모견도母犬圖> 16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73.2 × 42.4cm
이밖에 오만원 지폐에 선택된 어몽룡의 <월매도>, 왕족화가 이암의 <모견도> 등 교과서적인 명작들이 모습을 보이고 있고, 명나라 사신과 집현전 학사들(성삼문, 신숙주, 정인지) 사이에 주고받은 시를 모은 시권(봉사조선창화시권), 안평대군의 명으로 당대 명사들이 팔경시를 지어 모은 <소상팔경시첩> 등을 통해 조맹부趙孟頫(1254-1322)의 서체가 바탕이 된 당시의 글씨들을 볼 수 있다. <서총대친림사연도>, <기영회도> 등 왕실 행사와 관료들의 모임을 그린 유명한 그림 등 오랜 세월을 거쳐 현재까지 전해진 귀한 서화들을 볼 수 있는 자리다. 마스크를 끼고 그윽한 산수를 거닐다 보면 이런 그림들을 직관하는 기회가 언제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니, 전대미문의 폐관 사건도 관람자들에게는 의미 있는 일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