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미술관에 書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기 간 : (오프라인 미정. 온라인 2020.03.30~)
글, 정리/ 김진녕
-개관 이래 50년 만의 첫 서예 기획전
-‘브러시 스트로크’로 역수입되기 이전에 이미 있었던 내재율, 필획
국립현대미술관의 개관 이래 50년 만에 처음으로 서예가 주인공인 전시가 열린다.
코로나19 시대의 첫 전시라 이미 애초 예고했던 개막일이 지났지만 아직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격리 지침이 완화되는 5월 초에 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이 전시는 개막이 미뤄지면서 지난 3월30일 유투브를 통해 온라인 개막식을 갖고 서비스되고 있다. 이 영상은 조회수 6만회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공립 공연단체가 유투브에 공개한 온라인 컨텐츠 중 국립극장의 전통 무용극 <향연>이나 서울시향의 <힘내라 대한민국>편이 조회 수 4만회 근방으로 <미술관에 서>가 코로나 국면에서 예술 분야 컨텐츠 중 최고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는 4부로 구성돼 있다.
프롤로그격인 1부 ‘서예를 그리다 그림을 쓰다’, 2부 ‘글씨가 그 사람이다:한국 근현대 서예가 1세대들’, 3부 ‘다시 서예:현대 서예의 실험과 파격’, 4부 ‘디자인을 입다 일상을 품다’ 등 각각의 섹션이 독립된 별개의 전시로 기획될만한 주제로 구성돼 있다.
전시에는 서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정규 교육과정으로 배웠던 세대가 서예나 조각, 평면회화 등 장르 구분없이 서화동원書畵同源의 정서에서 시작해 필획-브러시 스트로크를 구사한 작품을 모아놓고 있다. 미국이나 프랑스 또는 일본에서의 사조 유입에 따라 추상 표현주의 또는 앵포르멜, 액션 페인팅, 전위서라는 관점에서 단락지어지고 분류됐던 작가들을 서예의 서화동원이란 관점에서 분류해 모아놓은 방이다. 한문 교육을 받고 한시를 스스럼없이 지을 정도로 내재화시켰던 작가들이 활약하고 서예를 이물감없이 받아들이던 대중이 존재했던 시기는, 결과론적으로 1950~60년대가 마지막이었다.
2부에는 한국 현대 서예가 1세대 또는 ‘국전 1세대’로 불리는 12인의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사실상 이번 전시의 주빈이다. 손재형(1903~1981, 호는 소전素筌), 김응현(1927~2007, 호는 여초如初), 유희강(1911~1976, 호는 검여劍如), 현중화(1907~1997, 호는 소암素菴), 송성용(1913~1999, 호는 강암剛菴), 배길기(1917~1999, 호는 시암是菴), 고봉주(1906~1993, 호는 석봉石峯), 이기우(1921~1993, 호는 철농鐵農), 김충현(1921~2006, 호는 일중一中), 이철경(1914~1989, 호는 갈물), 김기승(1909~2000, 호는 원곡原谷), 서희환(1934~1995, 호는 평보平步).
세로 길이가 374cm에 달하는 대작인 손재형의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탁본>을 전시장 천정 골조까지 치고 올라가 걸어놓은 모습은 일종의 스펙터클이었다. 인생 후반기에 오른쪽 몸의 마비가 오는 치명상을 입은 유희강이 굴하지 않고 왼손 글씨를 연습해 좌서로 재기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전시장 남쪽 끝에 유희강의 사진 패널을 중심으로 그의 오른팔 방향에는 이서구의 글을 쓴 열폭 병풍 <우후종서강구>(1968)를, 왼쪽 팔 방향에는 이색의 시를 쓴 열폭 병풍 <홍시자가>(1976)을 좌우 대칭으로 전시했다. 한자를 읽지 못하는 이에게도 두 폭의 병풍에서 보여주는 유희강의 글씨는 다른 미감을 전해준다. 68년 작품은 검여가 뇌출혈로 쓰러지기 한 달 전에 쓴 오른손 글씨이고, 76년 작품은 검여가 세상을 뜨기 한 달 전에 쓴 왼손 글씨다.
현중화의 초대형 작품인 세로 194cm, 가로 430cm의 <취시선>(1976)은 그가 취흥이 도도히 오른 뒤 음식점 방벽에 쓴 것을 벽지째 그대로 뜯어내 장황한 작품이다. 물흐르듯 춤추는듯 한 필선을 보다보면 취흥에 겨웠던 한 순간에 이를 빚어낸 예술가와 이를 이해한 음식점 주인, 이걸 떼어내 보존할 생각을 한 지인 등 예술은 곧 시대의 분위기라는 걸 절감하게 만드는 시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3부에서는 ‘현대 서예의 실험과 파격’이란 부제에서 보듯 국전 1세대에게 서예 교육을 받은 2세대 작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1세대와 다른 파격과 실험성을 전시하고 있다. 권창륜, 이돈흥, 박원규, 황석봉, 최민렬, 여태명 등의 작가가 보여준 2000년대 이후의 작품이 주로 소개되고 있다.
4부는 제목 ‘디자인을 입다 일상을 품다’에서 보듯 21세기의 일상 속에 소비되는 ‘붓으로 쓴 글씨’에 대한 섹션이다. 대중과의 접점이 가장 많은 부분일 것이다. 영화 포스터에서, TV프로그램의 제목으로, 공산품 술이나 과자 등의 포장지에 활용되는 ‘캘리그라피’가, 실은 서예를 부분적으로 확장 변형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패널과 동영상 자료로 보여주고 있다.
<미술관에 書>의 오프라인 개막은 5월 초로 예상되고 있다. 개막에 즈음해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연구사에게 전시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서예 작품은 보기 힘들었다.
개관이래 처음이다. 1980년대에 열렸던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서예 부문이 포함됐었던 경우는 있지만, 서예가 단독 전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최초이다.
-서예계의 관심도 컸기에 준비가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전시회 준비는 다 어려운 법이다. 특별히 더 어려운 점은 없었다. 좋은 서예가도 많지만 첫 전시이기도 하고, 전시장의 크기에 한계도 있고, 그래서 작품 선정이나 전시 방향성에 명분과 타당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나름 기준도 만들고, 작가 선정위원회도 만들고 자문을 구했지만 선별하는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가가 ‘근현대를 대표한다’라고 보기 보다는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향후 근현대 서예가에 대한 조명이 더 활발히 이뤄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전시장의 물리적 한계가 있기에 ‘누가 들어갔다’, ‘누가 빠졌다’는 것은 의미도 없고, 바람직스럽지도 않다.
국현의 전시는 공모전도 아니고 아카이브도 아니다. 작가별로 해서 초서 행서 전서 예서 등 오체를 다 전시할 수도 없고, 똑 같은 크기의 공간을 배정하는 규칙을 적용할 수 없다. ‘이 작가는 이런 스타일’이라는 식으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특징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그런 관점에서 작품을 여러 서예가와 평론가와 함께 작품을 선정했다.
-요즘 시대엔 소통 수단으로서 한자가 영어만도 못한데.
요즘은 서예를 어렵게 생각하고 나이든 분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문 서예는 읽을 수도 없고(그래서 뜻을 알 수 없는) 고리타분한 장르라는 편견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서예가 왜 미술인지’, ‘왜 미술관에서 전시를 해야 하는 조형예술인지’ 관람객에게 자연스레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전시 시작부분과 끄트머리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배치했다.
1부에선 서예와 미술의 교차점에 대해서, 2부에 배치된 국전 1세대의 서예 작품은 보수적인 측면과 아닌 측면이 공존한다. 그들은 전통 서예를 계승하면서 모더니티를 확보하기 위한 자체적인 노력을 하면서 전통서예를 계승하는 갈래와 읽는 서예에서 보는 서예로 변하는 부분을 담은 작품도 있다. ‘다시, 서예’라는 3번 섹션에서, 현대 서예의 파격과 실험을 보여주는 작가는 국전 1세대의 제자격인 2세대로 생존해 있는 원로급 작가다. 이들 이후의 젊은 세대도 좋은 작품을 한다. 서예의 그런 여러 부분이, 구식과 신식의 이분법이 아닌, 모든 갈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 전시를 통해 담아내고 싶었다.
마지막에서 서예가 일상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전시가 끝난다. 에필로그에 디자인과 서예의 관련성을 배치했다고, 서예의 미래가 타이포에 있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상업미술로 활용되는 타이포를 다룬 이유는.
지금의 서양미술에서 팝아트가 중요하지만, 서양미술의 미래가 팝아트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캘리그라피나 타이포를 이번 전시에 포함시켜야 하나를 놓고 고민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젊은 세대에게 한자는 독해가 가능하지 않은 ‘도형’이다. 그런 세대의 일상에서 문자 미술-서예와 가장 접점이 넓은 지점이 캘리그라피나 타이포다. 지금 이시점에서 캘리나 타이포를 다룬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 전시에 등장하는 작가가 생소할 것 같다.
서예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소전(손재형)을 알지만 일반 대중은 거의 모른다. 잘 모르는 것을 소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김환기나 박수근의 그림은 백억 원대의 가격표가 붙어도 시장에서 거래되지만 그와 동시대에 활동한 검여(유희강)나 소전의 작품은 수십만원대에 거래된다. 참담하다라는 말로 표현될까.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전시를 통해 해야할 일 중 하나는 서예와 대중과의 괴리를 좁히는 일이다.
이번 전시의 2부에 등장하는 12명의 작가는 국전 1세대다. 이들의 작품은 촌스럽다거나 구식이란 말을 들을 작품이 아니다. 관람객이 이런 작품을 ‘모르는 글씨네’라고 그냥 지나치면 너무 아쉬운 일이다. 서예가 모던하고 세련된 것이라는 점을 관람객이 알았으면 한다. 서예는 할아버지 세대만 알아주는 예술이 아닌 보편적인 미술이란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시각적으로는 1부가 가장 화려하다.
50~60년대에 활발히 활동했던 작가를 중심으로 배치했다. 그들의 50~60년대 작품을 전시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때 활동했던 작가는 태어나자마자 붓을 쥐는 게 당연했던 세대다. ‘서화동원’이란 말을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몸으로 알았던 세대다. 50~60년대는 서와 화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이후에도 황창배나 황인기 같은 작가는 작품에 한글로 시를 써넣기도 했다. 여전히 문인화는 그려지고 있다.
다만 50년대에 활동했던 이응노나 김용준 김환기 등은 서예를 내재화시킨 뒤 그림을 그렸던 분들이다. 서양미술에 영향을 받아서 ‘브러시 스트로크’를 한 게 아니라 서예적 필선이 뭔지 알았던 분이고 자연스럽게 ‘붓질’ ‘필획’을 구사한 분들이다. 한국적 모더니즘은 그 분들로부터 시작된다. 한국 현대미술을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온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일본 전위서 등을 기준으로 재단하는데, 우리의 서예를 놓고 보면 20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어떻게 흘러갔는지 자연스레 설명이 된다. 그렇게 흘러갔던 내재적 동인이 뭔지가 설명된다.
-한문 서예가 걸린 방은 검은 톤이고 한글 서예가 걸린 전시실은 하얀 톤이다.
한문이 문자로서의 기능을 잃은 요즘 세대에게 한자의 조형원리부터 설명하기 시작하면 박물관이 돼버린다. 2부의 국전 1세대 12명을 조명한 전시실은 서예를 관람대상으로 바라보는 세대를 위해, 서로 다른 색깔의 서예작품이 충돌하도록 배치했다. 소전의 조형미가 넘치는 작품과 김응현의 칼칼한 글씨가 주는 다른 맛, 검여의 좌수와 우수를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배치해 읽지는 못하더라도 (시각적으로)느낄 수는 있도록 배치했다.
한글 서예방은 화이트 톤으로 정리하고 한글의 자모 디자인처럼 규칙적이고 네모 반듯하게 교차하도록 전시했다. 한글은 한국인 관객이라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자니까 한글 서예방은 텍스트를 읽으면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각각의 섹션이 별개의 전시를 따로 만들만한 주제다.
각각의 섹션 주제가 별도의 전시로 만들어도 될만한 내용이다. 개관 이래 50년 만에 처음으로 열리는 서예 기획전이라 서예의 흐름을 보여주고, 서예가 보편적인 미술이란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섹션 구분을 했다. 각각의 섹션을 따로 다룰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관람객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