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삶
장 소 : 인사아트센터
기 간 : 2020.3.4 ~ 2020.3.20
글/ 김진녕
지난해 제주비엔날레 준비를 위한 회의가 있었다. 회의 자리에서 사소하지만 평범하지는 않은 명패를 봤다.
제주도에 사는 이명복 작가도 그 모임에 참석했다. 그의 자리 앞에는 ‘입도入島 작가 이명복’이라는 명패가 붙어있었다. ‘입도’라는 말은 그 회의에 참석한 제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강요배 작가나 백광익 작가 앞에는 없는 수식이다. 이는 근래 많은 시각 예술 분야 창작인이 제주로 이주를 했기에 이를 비엔날레에 반영하기 위한 주최측의 묘안일 수도 있고, ‘내지인’과 ‘외지인’을 가르는 경계가 있는 제주만의 분위기일 수도 있다.
‘입도 작가 이명복’.
2009년 다니던 방송사에서 사표를 내고 2010년 2월 제주로 이주한 그가 3월16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가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모두 제주가 주제다. 제주에 연고가 없는, 그가 어느날 제주에 내려가서 제주의 사람과 역사와 하늘과 바람을 십 년 동안 삭여서 토해낸 작품이다.
‘11년차 입도 작가’인 그에게 ‘제주’를 그리는 이유에 대해 들어봤다.
- 제주행의 계기는.
2009년에 제주에서 세계문화유산 지정 관련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 기념전에 참여했고, 그때와서 보고 제주행을 결심했다. 2009년 6월에 회사를 퇴직하고 2010년 2월 제주도로 이사했다.
대학 졸업하던 1982년도에 임술년그룹을 만들고 그룹전 활동을 했다. 1983년 MBC 입사한 뒤에도 계속 작업을 병행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직장생활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26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 만으로 52세에 퇴직하고 전업작가로 변신한 셈이다.
- 제주에 아는 이가 있었나.
80년대에 민중미술 활동을 하면서 제주 대표 작가인 강요배 작가를 알게 됐다. 강 작가는 민미협에서 같이 활동하면서 알게 됐다. 서울에서는 그렇게 가깝지 않았지만, 제주도에 와서 더 친분을 쌓게 됐다.
- 이번 전시에 제주 시절 그림만 선보이는 것인가.
내 그림을 구분하자면 82~90년,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이렇게 4시기로 나눌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제주 이주 이후의 작업을 선보인다.
제주도에서 살고 제주 역사를 공부해보니 여기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역사적 배경이 아프고 어둡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걸 어떻게 형성화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 제주도에 산다고 꼭 제주 이야기를 해야 하나.
나는 우리 역사에 관심도 있고, 그걸 배경으로 해서 그림을 많이 그리는 입장이다. 제주가 내 고향은 아니지만, 내가 한국인이니까, 제주에 와서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4.3사건을 공부하면서 민족의 입장에서, 역사적 맥락에서 나와 이어진 사건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내 작업은 그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 그걸 갖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제주에서 태어난 ‘제주 사람’이 아니고, 내 작업이 여기서 나고 자란 제주 분들이 만들어 내는 것과 다를 수 있겠지만, 제3자 입장에서 역사적 증거물로 작업을 하는 나의 작품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삶’이고 제주에서 들일이나 물질하는 사람의 초상화를 담은 작품이 걸린 1층의부제는 <’삶’으로 표현된 제주>이고, 제주의 숲과 폭포를 부유하는 삼라만상을 2층에는 <제주의 숲>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그가 그린 제주의 삶을 산 이들은 들일을 하면서 강렬한 햇볕에 오래 노출된 육신의 겉면이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밭고랑처럼 깊게 패인 삶의 역사를 내보이고 있다. 2층의 제주의 숲은 1층보다 환상적이다. 그가 그린 제주의 숲은 난대림 특유의 성글게 우거진 수풀 사이로 군데 군데 빛이 고여있는 모습을 그린다. 그런데 그가 묘사한 밀림에 가까운 제주의 숲은 회색이거나 붉거나 파랗거나 모노톤으로 빛난다. 현실을 그대로 옮긴 게 아니다.
이명복, 푸른 밤, 2014
-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의 허공 위에 제주말이 그려진 그림이 인상적이다.
<푸른 밤>(2014)은 내 자전적 작품이다. 그때만 해도 내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였다.
처음 여기와서 3년 동안 ‘내 그림’을 못그렸다. 고민이 많았다. 3~4년 동안 대가를 혹독한 수업료를 낸 셈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가 여기(제주) 살 이유도 없는 것이고, 제주도는 껍데기는 그릴 수 있지만 속은 그릴 수 없다.
그 말은 내 자화상 같은 말이다. 말하고 나를 동일시했다.
서울을 벗어났는데, 반은 제주에 있고, 반은 서울에 살던 오랜 습성이나 사고가 엉켜있어서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걸 서울 야경을 배경으로 내가 그 위에 떠있는 그런 모습, 흔들리는 정체성, 서글픔 같은 것을 묘사한 그림이다. 내가 그때 말만 수십마리 그렸다.(웃음)
- 폭포에서 동백꽃이 날리고, 거친 숲 속에 빛이 웅덩이처럼 고여있는 제주를 그렸다.
4.3사건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숲이다. 제주의 숲은 육지의 숲과 다르다. 4.3 당시 ‘산사람’이 된 그들. 그 사람들이 숲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바탕에 깔고,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생각했다. 그 덤불 같은 제주 숲이 깊거나 그런 게 아니다. 그걸 지나면 벌판이 나오고 다시 한라산으로 이어지고 그들은 거기로 갔다. 일반적인 풍경화로 그린 게 아니다, 그래서 4월의 숲이라 이름지었다. 제주의 4월은 굉장히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시절에, 어떤 심정으로 그 사람들이 숲속으로 들어갔을까, 그런 심정을 헤아리며 그렸다.
이명복, 4월의 숲, 2020
- 4.3은 지금 60대 이하의 제주 시민에겐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지 않나.
예전에는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최근에야 과거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제주 사람에게 4.3사건은 모두 연결이 돼 있는 일이다. 어느 집이고, 거의 70~80프로 정도는 4.3사건이 가족사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4.3희생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이전에도 쉬쉬하면서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하던 사안이다. 고모가,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외삼촌이 모두 희생된 이야기다. 가족 내에서는 이야기를 했어도 밖에 나와서는 그런 이야기를 안했다. 이건 시간이 오래 흘러도 쉽게 바뀌지 않을 부분이고 상처다.
- 향후 작업도 이번 전시와 이어지나.
제주도에 사는 나는 두 가지 방향을 정해놓고 있다.
하나는 내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그 기록은 얼굴이라기 보다는 그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을 포함한 인물화다. 매끈한 초상화가 아니라 둔하지만, 개인사가 보이는 인물화를 계속 그리고 싶다.
또 하나는 4.3사건이다. 내가 60대 초반이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하고 싶다. 제주 출신 작가도 4.3 작업을 많이 한다. 제주에서 4.3은 아주 특별하고 커다란 존재고, 없어질 일이 아니다. 나는 4.3을 제3의 입장에서 본, 감정적인 것이 아닌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한 4.3에 대한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이다. ‘이명복의 시각’으로 4.3을 형상화하고 싶다. 할 일은 많다.
이명복, 침묵, 2014
- ‘외부인’이 4.3을 형상화하는 것에 대해 ‘내지인’의 시각은 어떤가.
이곳 출신 화가도 내가 이쪽 작업을 계속하니까 이젠 인정해준다. 그래서 그 작품을 끌고 서울로 가서 전시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4.3사건에 대한 팩트는 널리 알려지고 일반화됐다. 하지만 그걸 분석하고, 작품으로 옮기는 것은 개인의 역량이다. 역사적인 사건에 작가의 상상이 개입하고 인간의 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다. 제주 4.3사건을 탐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를 시각 예술로 구현해 대중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공감대를 끌어내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다.
이명복, 부유, 2019
- 이번 전시 규모가 크다.
2017년 광주시립미술관, 2018년에 제주에서 크게 했는데 서울에서 이렇게 큰 규모로 전시한 적은 없었다.(인사아트센터 1,2층 전시)
애초에는 4월에 계획을 잡았는데, 그림을 한 번 올려보내고 한 주만 전시하는 것보다 좀 길게 전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갤러리에서 3월에 하면 두 주 동안 가능하다기에 일정을 당겼는데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때가 이래서, 아쉽기는 하지만 타고난 복이라고 생각한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