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가야본성-칼(劒)과 현(絃)
기간 : 2019.12.03 ~ 2020.03.01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글/ 김진녕
1년 여 전부터 전시 개최를 홍보할 정도로 공을 들였던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 주최의 <가야본성加耶本性-칼과 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최측에선 “지난 1991년에 선보였던 <신비한 고대왕국 가야>전 이후 28년 만에 열리는 전시로 지금까지 발굴한 유적과 유물, 그리고 이를 토대로 새롭게 진전된 연구 성과를 종합하고, 가야사의 역사적 의의를 새롭게 소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과 영호남의 국공립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등 총 31개 기관이 출품한 <말 탄 무사모양 뿔잔>(국보 275호) 등 2,600여 점(국보 2건, 보물 4건 등)의 가야 문화재 2600여 점이 한 자리에 모였다.
큰항아리
고대 한반도 남부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와 520여 년을 함께 한 가야는 ‘철의 나라’정도로만 알려져 있고, 대가야 금관가야 등 여러 나라로 나뉘어져 존재했던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반도 남부에서 가야 관련 고고학적 조사 성과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가야사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자료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금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한 이번 전시는 ‘공존’이라는 단어로, 1500년 전 한반도 남부에서 존재했던 가야의 존재를 2019년의 한국인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 시절이 고구려 백제 신라만의 삼국시대가 아니라 다양한 세력이 공존했던 가야라는 나라도 무려 500년 동안 이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전시장의 시작은 김수로왕 설화와 관련된 구지가의 가사를 한글과 한자로 벽면에 투사하면서 관람객을 고대 가야의 세계로 끌어들인 뒤 거북무늬가 새겨진 흙으로 만든 방울이 차지하고 있다. 이어서 곧바로 ‘인도에서 왔다’는 허황옥 설화를 담은 동영상을 배경으로 김해의 ‘수로왕비릉’의 ‘파사석탑’ 실물을 전시장으로 끌어들여 바다로 열려있던 가야의 성격과 외부와의 교류를 암시하고 있다. 그 바로 옆에 가야 지역에서 발굴된 북방계와 남방계 두개골 유물과 편두의 흔적이 남아있는 두개골까지 전시하며 1~5세기 무렵 한반도 남쪽에 자리잡았던 가야가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 다양한 외부인이 교류하며 함께 공존하던 지역이었음을 물증으로 보여주고 있다. 21세기의 현대 언어로 표현하면 이는 ‘다문화 사회’다. 지역주의와 이민자에 대한 혐오가 가세하며 편가름 현상이 기승을 부리는 오늘의 이슈에 대해 고고학으로 대응한 셈이다.
봉황장식 큰칼
전시장 안에는 가야와 백제, 가야와 신라의 관계에 대해 각각 별도의 섹션을 만들어 관련 유물을전시하고 있고, 가야와 왜와의 관계도 가야의 영역에선 발견된 스에키(須惠器)계 토기 등을 별도의 섹션으로 다루어, 1500년 전 한반도에 고구려-백제-신라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한반도 남부에서 철이란 당대의 첨단 테크놀로지 상품으로 백제와 신라, 왜와 교류하며 500년 동안 부족국가 수준의 연합체로 공존했던 가야의 존재와 생존방식은 삼국과 비교하면 특이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가야가 연맹체 수준의 느슨한 결속체였음에도 주위의 강국에 흡수되지 않고 500년을 이어갔다는 것은 자체적 힘도 컸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선 그 비결을 ‘공존’과 ‘화합’에서 찾고 있는 모양새다.
전시는 1세기부터~6세기까지 한반도 중부와 남부는 고구려-백제-신라로만 설명되는 ‘삼국시대’라고 부르기엔 부적절 또는 부당하다고 유물로 설명하고 있다. 백제와 가야의 공존 방식이나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왜식 무덤과 가야 지역에서 발굴되는 왜식 토기 등 그때 해양 교류에 활발했던 백제와 가야, 왜의 연결 고리 등도 전시장의 주요 항목으로 등장시키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말탄무사모양 뿔잔
주최측이 펴낸 자료에는 유독 ‘화합’과 ‘공존’이란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가라국(대가야)은 낙동강에서 섬진강에 이르는 여러 지역을 규합했는데, 남으로 여수 고락산성, 서로는 지리산을 넘어 장수 삼봉리와 남원 두락리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남원의 운봉고원과 순천 등지에서 발견되는 가야 무덤은 가야의 여러 세력이 가라국의 편에 섰음을 말하고 있다. 새롭게 발굴한 호남동부지역의 가야 모습은 가야가 추구한 화합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가야는 『삼국유사』가 말하는 오가야를 넘어 여러 세력이 공존했다는 점과 가야의 유력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가라국(대가야)를 포함한 가야 제세력의 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실체를 밝혀낸 점 등도 중요한 성과이다. 특히 동아시아의 기항지로 번영을 누렸던 가락국(금관가야)이 삼국이 추구했던 통합을 왜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가야가 오늘의 지도 개념으로 보면 영호남 지역에 산재해 있었고, 인종적으로 다문화 사회였기에 현대 한국의 거울로도 쓰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청동 세발솥
전시물 중에서 물량 면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다양한 철갑이나 마구, 덩이쇠(잉곳) 등 가야의 철 유물과 토기다. 가야의 철제 유물은 2017년 국박에서 열린 <쇠 철 강> 전시에서 보다 더 많은 물량이 모였고, 3미터쯤 되는 대형 오단 유리장에 모아놓은 가야의 토기는 2016년 국박의 <신안>전을 연상시킬 정도로 물량을 강조한 전시 연출이다. 가야 토기를 양적으로 이렇게 많이 한자리에 모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유물이 주로 고분 발굴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해 전시실 한 섹션을 떼무덤처럼 처리해 벽면에 실물대의 가야무덤을 프린팅하고 바닥에 출토 당시의 구성으로 유물을 모아놓은 점, 순장 풍습까지 유물을 통해 재현한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이번 전시는 일본쪽에서 출품에 협조한 유물도 있다. 개막일에 일본쪽 인사도 찾아올 정도로 관심을 보이고 있고 서울 전시가 끝나면 부산시립박물관(2020.4.1.~5.31.)과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2020.7.6.~9.6), 일본 규슈국립박물관(2020.10.12.~12.6) 전시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