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손세기·손창근 기증 명품서화전 3: 안복眼福을 나누다
장 소: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
기 간 : 2019.11.12 - 2020.3.15
글/ 김진녕
2018년 11월 손세기-손창근 부자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미술품 202건 304점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 손세기•손창근 기념실이 생겼다. 이후 1년 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손컬렉션의 세번째 기획전이 선보이고 있다. 지난 7월7일 두 번째 전시가 끝난 뒤 11월10일까지 손창근 기증품이 일부 섞인 ‘관아와 누정이 있는 그림’전이 열렸다. 때문에 손컬렉션만의 작품으로 이뤄진 전시는 이번이 세 번째다.
세 번째 특별전의 부제는 <안복眼福을 나누다>와 <겨울을 이겨내다>, 두 가지다.
박물관 측은 이번 전시가 ‘19세기 서화 수요층의 확장과 새로운 미감美感에 부응하며 김정희 일파 및 직업 화가가 개성적인 작품을 제작했던 양상을 조명한다’고 밝히고 있다. 전시품 중 절반 이상이 최초로 공개하는 작품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허련, <노송도 老松圖>, 조선, 19세기 후반 종이에 색, 2018년 손창근 기증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은 큰 소나무 한 그루를 열 폭의 병풍으로 그려낸 허련許鍊(1808~1893)의 <노송도>다. 박물관 쪽에선 이 작품에 앞에 부제로 ‘겨울을 이겨내다’라는 이름표를 달아줬다. 그만큼 강조하는 전시품이란 얘기다.
작품은 오래도록 꾸불퉁하게 자란 소나무를 길이로 다 남아내지 않고 높이의 3분의2 지점에서 가지가 옆으로 펼쳐지는 수평적인 확장감을 강조한 구도다. 이런 구도는 허련보다 한 세대 위를 살았던 조희룡(1789~1866)의 홍매백매 병풍 그림에서 보이는 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조희룡은 허련의 스승 김정희(1786~1856)와 곧잘 비교되곤 한다. 특히 김정희가 제주 유배살이 시절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희룡의 작품에 문자향이 없다’고 흉을 보면서 김정희와 조희룡의 영향 관계가 논란이 되곤 한다.
허련의 노송도는 조희룡의 매화도만큼이나 줄기의 꿈틀거림을 생동감있게 표현해 장식성을 끌어올린다. 허련은 김정희가 높이 평가했던 제자로 초의선사의 소개로 김정희의 제자가 되어 남종화풍의 그림과 서권기書卷氣를 강조한 글씨를 배웠다. 1856년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 허련은 고향인 진도로 내려가 활동하며 오늘날 호남 화단의 한 맥으로 이어지고 있다. 허련이 말년에 그린 노송도는 추사가 사라진 19세기 후반 허련이 이룩한 성취가 어떤 것이었는지, 조선조 말의 그림 수요는 어떤 것이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는 허련과 함께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정학교丁學敎(1832~1914), 장승업張承業(1843~1897), 민영익閔泳翊(1860~1914), 안중식安中植(1861~1919), 오세창吳世昌(1864~1953) 등의 서화가 작품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정학교는 그동안 대나무나 괴석 그림은 자주 소개됐지만 이번 전시에 등장한 <행초10폭 병풍>은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정학교, <행초10폭병풍>, 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2018년 손창근 기증
오세창, <연경실>, 1938, 종이에 먹, 2018년 손창근 기증
이들이 남긴 작품은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인 조선이 망하기 직전, 19세기 후반이 어떤 사회였고, 어떤 흐름이 지배하던 단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민영익, <묵란도> 조선, 20세기 초, 종이에 먹, 2018년 손창근 기증
조선조 말의 실권자 중 하나였던 명성왕후의 외척 민영익은 오랜 기간 상하이에서 활동할 만큼 재력가였다. 그때 그가 남긴 <묵란도>에 청나라 서화가 푸화蒲華(1832~1911)의 제발이 남아있을 정도로 그는 상하이에서 유명인사의 삶을 살았다. 조선조의 도화서와 현대 한국화를 연결시킨 20세기 초의 ‘조선 화가’ 안중식安中植(1861~1919)의 제시가 있는 장승업의 <화조영모화花鳥翎毛畫>는 안중식과 장승업의 사승관계의 물증이다.
이번 전시에 <연경실硏經室>(경서를 연구하는 집) 편액과 장승업의 <술에 취한 이백[醉太白]>에 제첨을 쓴 오세창(1864~1953)은 서화 비평가이자 개화사상가, 독립운동가였다. 오세창의 부친은 역관으로 활동했던 오경석이다. 오경석은 김정희의 실사구시 사상에 영향을 받았고 오세창이 서화와 금석학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 것은 부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승업, <술에 취한 이백>, 조선 19세기, 종이에 채색, 2018년 손창근 기증
간송 컬렉션이나 동원 컬렉션, 손 컬렉션의 19세기 작품군은 김정희에 영향을 받은 오세창이 세운 기준점으로 반복 배열되고 있고 그 기준이 21세기 전반 현대 한국에도 여전히 통하고 있다.
그런 19세기 후반의 조선 서화계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