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최경선 <生.물>
장 소: 인사동 나무아트갤러리
기 간: 2019.10.2 - 10.29
글/ 김진녕
손의 기량이 아닌 자기 얘기를 할 줄 아는 작가를 고르는 법
인사동 들머리, 옛 동문당 건물 4층에 나무아트란 작은 화랑이 있다. 1989년부터 계속 같은 자리를 지킨 화랑이고 기획자이기도 한 김진하 관장의 취향(운영방침)이 분명한 화랑이기도 하다.
동문당은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화 전성기에 인사동에서 손꼽히는 화랑 중 하나였다. 이 건물 4층은 애초에는 운보 김기창이 작업실로 쓰던 공간으로 이후 민경갑 작가가 이어받고, 민경갑이 떠난 뒤 작가 출신 기획자 김진하와 이섭, 장익화가 만든 독립기획가 모임인 나무기획이 들어왔다.
그게 1989년이다, 기획 사무실이 나무아트라는 평면 페인팅과 목판화 위주의 전시장으로, 운영주체도 김진하로 정리되기까지 30년 동안 여러 일이 있었지만 주소는 바뀌지 않았다.
나무아트에서 10월 한 달 간은 <生.물>이라는 이름의 최경선 작가 전시가 열리고 있다. 공간이 작아서 보름씩 나눠서 작품을 바꿔다는 방식의 1,2부 전시로 진행되고 있다. 김진하 기획자로부터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경선 작가를 주목한 이유는.
일단 그림을 잘그리고, 자기 얘기를 회화로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우리나라 작가의 80% 이상이 내가 얼마나 대상을 치밀하게 잘그리는지를 과시하는데 집중한다. 그건 자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최 작가는 자기가 사는 이야기, 겪었던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똑같이 반복되는 형상을 그리지 않는다.
이번 전시에는 2006~2012년까지 작가가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그린 작품이 나온 구작전이다. 작가가 이걸 그렸던 2010년을 전후해도 이런 화풍 자체가 외국작가를 포함해도 비슷한 사례가 없다. 또 1부 전시에 등장했던 그림 중에는 2007년, 2008년 작도 있었지만 그 때도 자기만의 어법이 있고 다른 작가의 유형과 닮지 않았다.
2부 전시에 집으로 가는 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과 관련이 있다. 작가는 꼬맹이부터 동생을 엄마처럼 돌봤다. 엄마는 일하러 가고, 자기가 동생을 보호했다. 어릴 때부터 어른 노릇을 한 것이다. 1부 주제가 양생養生이었다. 건설현장의 노동자 같은 사람 등장하고 콘크리트에 물을 주는 형상이 등장한다.(시멘트를 사용하는 벽돌이나 콘크리트 구조물에 마르는 과정에 물을 뿌려주면 강도가 더 커진다. 벽돌을 찍어서 말릴 때 물을 주지 않으면 마른 빵처럼 부스러저 버린다.)
작가는 중국 생활을 통해서 다시 자신과 대면한 것이다. 작가가 중국 생활 초창기에 마주친 2006년의 베이징은 올림픽을 앞두고 어디를 가던 도시 전체가 공사판이었다. 작가는 낯선 도시에서 산책을 다니다 수많은 공사장을 마주치고 그곳의 이름모를 노동자가 양생을 위해 물을 뿌리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노동의 어려움과 고통, 양생이란 의미를 거기서 마주하고 찾아내고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된 것이다.
거리에서 마주친 콘크리트에 물을 뿌리며 양생하는 노동자의 모습에 어린 나이부터 남의 인생을 책임지던 작가의 모습이 투사된다. 양생은, 누군가를 살려주는 것이다. 이타심의 문제다. 어렸을 때, 아마도 작가는 힘들었을 것이다.
2부에선 1부에 등장했던 고무호수를 쥐고 물을 주던 노동자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바쁜 부모 밑에서 방치된 빈민가 아이가 동네 폐가에서 놀고 있다. 이런 데서 작가의 어린 시절이 드러난다.
거기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는 것은 타자에 대한 연민, 자기 자신에 대한 응시가 있기 때문이다. 1부에서 보여준 게 물을 주는 ‘양생’이라면 2부는 기화, 수분이 날라가며 단단해지는 과정에 대한 응시다.
성인이 된 작가가 동네의 방치된 아이를 보면서 공감하고 연민하고 더 단단해진다. 사람의 관계는 공감을 통해서 더 단단해진다.
2부에 등장하는 해질녘의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집이 잠겨있다. 그럼에도 아이들 우회해서라도 집에 돌아갈 길을 찾고 있다. 작가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거기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자각한다.
전시 소제목으로 쓰인 양생이나 기화란 이름은 누가 지은 것인가.
작가가 중국에서 작업 한 게 240여 점인데 이번 전시에 나온 것은 30여 점이다. 여러 내용을 담은 많은 그림이 있지만 그 중에서 ‘양생’이나 ‘기화’란 맥락에 놓여있는 작품을 골라내서 만든 것이다. 작가의 전시를 만들면서 양생이나 기화의 개념을 구체화시키고 고른 것은 내가 한 일이다.
기획자로서의 취향이 페인팅과 목판화쪽으로 집중된 것 같다.
애정이라면 애정이고… 내가 다른 미디어도 다 다뤘다. 영상도 다루고. 그런데 목판화를 어디에서도 안하니까 나라도 해야겠기에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현역 작가일 때 목판을 하기도 했지만 목판화가 현대 미술에서 배제되고 사라져버릴만큼 형편없는 게 아니다. 요즘의 현대 화단이 영상이나 설치가 주류가 되고 여기에만 돈이 몰리고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다. 정작 목판화 작가들은 치열하게 하고 있는데……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하는 것이다. 큰 데서 하면 내가 안했지.
요즘은 ‘대안공간’에서 영상이나 설치를 다루는데.
‘대안’이란 말이 필요했던 시기가 있었다. 새로운 문맥의 미술이 형성될 때 그걸 펼쳐서 보여주는 장소가 대안공간이었다.
지금 한국 미술계에서 ‘대안공간’이라고 불리는 곳이 나온지 꽤 됐다. 로컬리즘, 페미니즘 등 이런 것을 수용하는 공간이 초기엔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대안공간이 정부 기금을 받고 있다. 공공기금을 받아서 하는 것은 제도권으로 들어왔다는 얘기다. 조형적으로 설치나 영상 등 대안공간에서 해왔던 게 이제 주류가 되기도 했고. 때문에 지금 한국의 ‘대안공간’은 퇴색화된 대안이다.
나무아트의 페인팅 작업 고르는 기준은 목판화보다 더 엄격한 것 같다.
여기서 전시한 작가 중 비슷한 유형의 작가는 없다. 자기 언어를 가져야 하고. 형상성은 서사를 담보로 해야하고, 자기 발언을, 자기가 지향하는 것을 그림으로 증명해야 한다. 열심히 잘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포인트에서 세계를 바라보느냐, 그만한 손의 기량을 갖추고 있느냐, 그런 관점에서 작가를 고른다.
나는 현실을 다루고 한국 사회와 접목이 되는 그림이 미술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장식적인 그림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관객에게 보여진 뒤 결과적으로 관객이 공감을 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작가가 갖고 있는 생각에 교감하는 과정을 나는 정치적이라고 본다. 미술은 궁극적으로 그런 소통과정을 통해 정치적 행위가 된다. 나는 이런 정치적 공감력을 가진 미술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예뻐서 거는 것은 장식적 미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