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기념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1부. 1900-1950
장 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기 간 : 2019.10.17-2020.2.9
글/ 김진녕
국립현대미술관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미술 100년을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을 열고 있다. ‘한국미술 100년을 대표한다’ 는 회화, 조각, 설치 등 450여 점의 작품을 시대별로 구분해 1•2•3부로 나누고 1900년부터 1950년대를 다루는 1부는 덕수궁관에서, 1950년대부터 현재를 통사적으로 바라보는 2부는 과천관에서, 현대 한국 사회의 이슈를 다루는 3부 전시는 서울관에서 각각 열리고 있는 대규모 전시다.
이 글에선 덕수궁관의 1부 전시에 대해서만 다뤘다.
이 글에선 덕수궁관의 1부 전시에 대해서만 다뤘다.
국립현대미술관(국현)에선 1부 전시에 대해 배포한 자료를 통해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려 한 의로움의 미술사’라고 정체성을 못박았다. 1900~1950년 사이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진 여러 미술 활동 중 ‘의로움’을 기준으로 작품을 선별한 전시란 얘기다.
국현 쪽에선 보도자료를 통해 ‘19세기말 개화기에서부터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격동하는 시대의 파고 속에서도 ‘의로움’을 지켰던 역사적 인물과 그들의 유산을 살펴본다. 오래도록 후세에 기억되어야 할 올곧은 인물들의 유묵(遺墨)에서부터, 망국(亡國)의 시대에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예술가들의 고민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의로운 이들의 기록”, “예술과 계몽”, “민중의 소리”, “조선의 마음” 4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예술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입장이 공존한 역동적인 한국 근대사를 조망한다. 채용신, 오세창, 안중식, 김용준, 김환기, 이쾌대 등 작가 80여 명 작품 130여 점과 자료 190여 점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덕수궁관의 네 개 전시실 앞에는 전시 순서에 따라 각기 ‘의義’, ‘예藝’, ‘중衆’, ‘조선의 마음’이란 간판이 걸려있다.
‘의義’ 섹션에는 김진만-김진우 형제나 정대기, 여성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조기순, 김일, 송태회 등 지사형 화가의 작품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들은 그동안의 국현 전시에서 보기 힘들었던 작가라는 점에서 의미를 둘 수 있다. 여기에 삼일독립운동에 참여한 뒤 일제에 의해 체포된 이름없는 독립지사의 사진을 이용한 장민승의 영상 설치물 <미상>(2019, 국현 의뢰 작품)을 더하면 ‘삼일운동 백주년, 임시정부 수립 백주년 기념 전시’라는 주최측의 ‘전시 정의’에 부합된다.
2019년 3월1일에 전시장 문을 닫아걸었다가 이제야 삼일운동을 기념하는 전시를 여는 게 공무원의 ‘의무방어전’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섹션의 구성이 서예박물관에서 삼일절에 맞춰서 열었던 <나를 보다>전의 리프라이즈로 여겨질 정도로 기시감이 들었다. 이회영 가문에 대한 소개, 김진만-김진우 형제, 김용준의 <벽초와 근원>, 오세창의 <삼한일편도>, 배운성 등 등.
오세창, 삼한일편토, 종이에 수묵, 1948
그렇다고 모든 전시가 기시감이 넘친 것은 아니었다. 섹션3 ‘중衆’에서는 잊혀졌던 1920년대 경향파, 사회주의 계열의 잡지와 이를 배경으로 활동했던 삽화가와 목판화,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일본의 <형성화보>와 목판화가 오카다 다츠오, 오노 타다시케 등의 작품이 함께 등장했다. 이 섹션에는 북한에서 북한식 아동문학의 기원으로 삼을 정도로 계급주의 문학관을 옹호한 <별나라>(1926년 창간), <신소년>(1923년 창간) 등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 불어닥친 공산주의 열풍의 산물을 전시해 눈길을 끈다. 1980년대 다시 되살아난 민중화나 목판화가 한반도에 그때 처음 등장한 게 아니라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 셈이다. 물론 최남선의 신문관에서 발행한 잡지와 그 잡지의 장정이나 삽화를 맡았던 안중식과 이도영도 등장한다.
1920년대 공산주의 열풍의 흔적을 미술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는, 월북으로 한국 미술사에서 지워졌다가 최근에 복권이 이뤄지고 있는 김용준이나 최재덕, 이쾌대의 작품을 국립미술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만큼이나 긍정적인 일이다. 있었던 일을 지울 수 없는 일이고, 과거의 부정은 현재의 한국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이번 전시에 친일로 분류되거나 또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채색화가 계열이 ‘한국 미술 백년의 역사를 조망하는’ 전시에 거의 삭제된 것은 백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데도, 모든 이가 만나는 ‘광장’이란 이름에도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쾌대, 해방고지, 1948
물론 주최측에선 보도 자료를 통해 두 개의 잣대(또는 트랩)가 있음을 공지했기에 기준에 따른 전시라고 볼 수도 있다.
1900~1950년이라는 시간적인 기준과 ‘의로움을 지켰던 역사적 인물과 그들의 유산’이라는 두가지기준.
일본이란 창구를 통해 신문물을 받아들인 20세기 전반의 한반도에서 일본의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이번 전시에도 섹션3의 중衆 코너에는 일본 목판화 운동과 목판화가를 소개하고 있다. 1920년대 조선의 목판화에 이들이 영향을 끼쳤기에 전시에 등장시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대 일본 목판화 화보의 영향을 받아 별나라나 신소년의 표지화나 삽화를 맡은 이들을 친일 미술인으로 분류해야할까. 물론 주최측은 이들이 ‘의로움을 지켰다’고 판단했기에 전시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1900~1950년대 한국 미술사에서 꽤 많은 지분을 가졌던 채색화 진영의 작가가 ‘한국 미술사 백년을 조명하는’ <광장>전에 빠진 것은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전체를 보는 균형감있는 조망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블랙 리스트’와 같은 말은 ‘화이트 리스트’다. 블랙 리스트를 좋아하는 취향은 화이트 리스트를 작성한다. 흑색과 백색은 양극단으로 보이지만 동전의 앞 뒷면이다. 흰색과 백색의 명확한 가름을 애호하는 취향은 그 양극단을 채워나간 수많은 색의 스펙트럼을 의미없게 만들고 사라지게 만든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광장>전 1부는 ‘의義로 쓴 한국 미술사 1900~1950’전이라고 붙이는 게 더 정확한 이름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