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세종대왕과 음악, 치화평
장 소 : 세종시 소재 대통령기록관
기 간 : 2019.10.5 - 10.31
글/김진녕
세종시 대통령기록관 기획전시실에서 <세종대왕과 음악, 치화평>(~10.31)이 열리고 있다. 세종대왕이 나라의 평안을 기원한 용비어천가에 곡을 붙인 '치화평'이 주제다.
전시 감독인 조은정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장은 한국 작가와 미국ㆍ홍콩ㆍ말레이시아 등 외국작가 3인을 포함해 총 4개국 10개 팀이 참여한 전시를 만들어냈다.
국내 작가로는 김홍식, 노진아, 박준범, 신미경, 신제현, 이이남, 조숙진, 태싯그룹이 참여했고 홍콩 실라스 퐁, 말레이시아의 임국영, 미국의 작곡가 겸 클라리넷 연주자인 데릭 버멀이 가세했다.
지난해 세종시에서 열린 <세종대왕의 음과 악, 황종>을 국제전시회로 격상시킨 이번 전시회는 2020년 파리와 뉴욕 등의 해외전시로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세종의 이름을 딴 ‘행정수도’ 세종시에서 신도시의 아이덴티티 확립을 위해 조선 왕조의 제도를 완성시킨 세종을 기리는 사업을 하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세종과 관련된 수많은 키워드 중에서 왜 ‘치화평’이라는 이름을 골라서 전시를 하는지 알아야 전시의 방향성이나 의도가 이해될 것 같다.
1. 조선의 왕 세종
세종대왕은 한반도에서 명멸해 간 여러 왕조의 군주 중에서 가장 탁월한 업적을 남긴 왕이다. 조선 왕조의 다섯번 째 왕으로 등장한 그는 신생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증명하는 여러 사업을 펼쳤다. 거기에는 글자 표준화 사업이라 할 수 있는 한글 창제, 음의 표준화 사업인 편경과 편종 제작, 음악을 기록하는 새로운 악보 기법인 정간보 창제, 이를 바탕으로 한 신악 제작, 세금 제도의 개혁, 표준시 제정(자격루, 앙부일구) 등 큰 업적을 남겼다.
이중에서도 한글 창제(글자)-용비어천가(가사) 간행-봉래의 작곡(음악)에 이르는 과정은 세종이 한글 보급과 그의 사후 한글이 사문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 제사에 한글 가사 노래 사용을 제도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김홍식, 세종의궤도병-해동육룡이 ᄂᆞᄅᆞ샤, 2019,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돋을새김, 잉크, 페인팅, 실크스크린 등
실제로 세종 때 만들어진 <봉래의>는 조선 말기(고종)에 이르는 동안 변화가 있었고, 춤의 반주음악도 본래의 <봉래의> 대신에 다른 음악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었다. 노랫말이다. 조선 말기 <봉래의> 정재 연주 때 기생이 부른 노래의 가사는 조선 초기의 것과 같았다고 한다. .
2. 세종의 마스터 플랜
1443년 한글을 창제한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명해 세종 직계 조상의 영웅담인 서사시 <용비어천가> 창작에 들어갔다.
<용비어천가>는 1장 '해동 육룡이 나라샤'로 시작해 125장 '님금하 아라쇼셔. 낙수예 산행가 이셔 하나빌 미드니잇가'라는 경구로 끝난다.
세종의 명을 받든 집현전 학자들이 집단 창작한 이 서사시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과 세종 직계 조상의 영웅적인 풍모를 노래하고 있다. 1445년 4월 완성된 뒤, 1446년 한글 반포 뒤 1447년 5월 책으로 펴냈다.
한글 창제 뒤 한글이 적용된 첫번째 한글 문헌이다.
용비어천가를 완성한 세종은 이를 가사로 삼아 곡을 붙였다.
과거의 궁중 의식에 쓰이던 음악과 다르다는 의미에서 ‘신악’이라고 불렀다.
<세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좌우의 신하에게 이르기를, “아악(雅樂)은 본시 우리나라의 성음이 아니고 실은 중국의 성음인데, 중국 사람은 평소에 익숙하게 들었을 것이므로 제사에 연주하여도 마땅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살아서는 향악(鄕樂)을 듣고, 죽은 뒤에는 아악을 연주한다는 것이 과연 어떨까 한다.”
<세종실록> 1430년(세종 12) 9월 11일(기유): 受常參 視事 上謂左右曰 雅樂 本非我
國之聲 實中國之音也 中國之人平日聞之熟矣 奏之祭祀宜矣 我國之人 則生而聞鄕樂 歿而奏
雅樂 何如.
이미 세종은 임기 전반부터 조선 고유의 글자인 한글과 한글 가사를 붙인 고유의 음악인 신악을 만들 계획이 다 있었던 것이다. 세종이 만든 새로운 음악이 봉래의(鳳來儀)다. 봉래의는 정재(呈才:대궐 안의 잔치 때 하던 춤과 노래)를 위해 만들어진 무용 음악의 하나다. .
봉래의는 <전인자 前引子>ㆍ<여민락 與民樂>ㆍ<치화평 致和平>ㆍ<취풍형 醉豐亨>ㆍ<후인자 後引子> 등 다섯 개의 곡으로 구성되었다. 악보는 <세종실록>에, 춤사위에 관한 기록은 <악학궤범>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치화평>은 용비어천가의 1장부터 125장까지 모든 장을 가사로 삼은 노래다. 봉래의에서 가장 비중이 큰 부분이 <치화평>인 것이다.
3. ’치화평’이 뭐길래.
조규익 숭실대 교수는 그의 논문 <봉래의 악장 연구>(2012년)에서 치화평에 대해 이렇게 풀었다.
‘지극한 화평에 이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치화평(致和平)은 ‘감응(感應)과 형통(亨通)을 바탕으로 한 춘추대의(春秋大義)의 해명’을 주제로 하고 있다. 치화평(致和平)은 『주역』 「하경(下經)」의 택산함괘(澤山咸卦)를 설명하는 정자의 언급에 등장하는 어구로, 천지(天地)와 인심(人心)의 감통과 조화가 천하태평의 요체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택산함괘의 핵심은 ‘감응’이며, 이는 임금과 신하가 감응하고, 상하가 서로 감응하여 서로의 뜻이 통하는 것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뜻한다. ‘인심을 감동시켜 화평을 이루는 도’가 치화평의 방도인 것이며, 세종이 치화평 정재를 만들고, 여기에 가장 많은 악장을 편성한 것도 안정된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세종이 봉래의(鳳來儀)에서 치화평(致和平)을 한 가운데 배치하고, 또 용비어천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의 시가(詩歌)를 가져와 제작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안정된 정치, 특히 치자층의 ‘감응과 형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왕과 신하가 감응하지 못하면 불화가 생기게 되고, 그들이 불화하면 형통하지 못하게 되며, 왕과 신하가 형통하지 못한 속에서 백성의 감응 역시 일어날 수 없다. 즉, 치자층이 인심을 감동시킬 때, 천하가 조화롭고 태평해져 천지만물의 정을 가히 볼 수 있게 되고, ‘인심을 감동시켜 화평에 이르게 하는 도’인 ‘치화평’에 이르게 되므로, 이를 선정(善政)을 위한 지름길이라 여겼던 것이다.
신미경, 시가 時價, 2019, 비누, 가변설치
4. 세종의 치화평, 오늘의 치화평
조은정 전시 감독은 이번 전시의 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종의 치화평은 이상적 사회의 중심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세종의 견해이자 시대 공통의 관심을 반영한다.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 동방의 조선 군주 세종. 그의 적극적인 의지는 어지러운 세상에 누군가 힘과 자격이 있다면, 이룰 수 있는 많은 것에 대해 꿈꾸게 한다.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꾸 그것을 생각해 보는 계기, 평화를 꿈꾸는 이유에 대한 사유만으로도 살만한 세상이란 어떤 것인가를 작가들의 상상력 속에서 확인하고 그리고 함께 꿈구어 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10개 팀의 작가는 세종대왕의 음악이 갖는 의미와 평화에 대한 생각을 교차하며 사유했다.”
5. 열 팀의 해석과 창조
전시에 참여한 열 팀에게는 사전에 <치화평>의 시청각 자료와 논문이 전해졌고, 종묘 등 조선 궁궐 탐방과 세미나가 진행됐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열 편의 작품은 평면 페인팅과 조명, 연주가 결합된 <세종의 꿈>(조숙진+데릭 버밀)은 데릭 버밀이 치화평 모티브로 작곡한 곡 자체만 따로 떼내 들어도 근사하다. 버멀은 "봉래의에는 125개의 노래(CANTOS) 또는 시구가 들어있다. 향악을 들으며 나는 음악의 구조와 음높이에 매료됐다. 음의 구조와 관련해 나는 치화평에서 감지한 5음계 집중하고 영감을 얻었다. 오음악보에서 치조(徵調, 솔-라-도-레-미)를 기반으로 작곡했다”고 밝혔다. 가사도, 악보도 치화평에 대해 숙지했다는 얘기다.
임국영, 봉황의 인식론, 2019, 나무,PLA플라스틱, 영상 프로젝션, 가변설치
청각을 시각화한 <봉황의 인식론>(임국영), 종묘의 장중한 건축언어와 시간의 휘발성을 장방형의 거대한 비누조각과 향기로 표현한 <시가時價>(신미경), 순백의 캔버스 위에 맨발로 걸으면 어느샌가 걷는 이의 발주변으로 몰려드는 송사리 떼 같은 붓의 획과 즐기는 인터렉티브 영상 <음音을 걷다>(노진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치화평’을 인용하고 있다.
불안의 도가니 한가운데에 들어가 있는 홍콩 시민 실라스 퐁은 ‘치화평’이란 단어에서 ‘평화’를 먼저 떠올렸다고 한다. 인터뷰 자료에서 실라스 퐁은 “평화는 조화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먼저 조화를 이룬 다음에라야 지킬 수 있으니 조화롭지 않은 상태에서는 투쟁을 통해 조화를 먼저 쟁취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평화의 조화를 찾는 것에 대해’ 윤동주의 시에서 받은 영감을 더해 <그 약속>이라는 3채널 비디오 영상을 완성했다. 이 작품에는 커튼을 다 걷지 못하고 어두운 밤거리를 훔쳐보는 사람의 뒷모습과 방독면을 쓴 인물을 등장시켜 ‘조화로운 상태’를 갈망하는 불안한 오늘의 홍콩을 이야기하고 있다.
노진아, 음(音)을 걷다, 2019, 인터렉티브 영상, 가변설치
2차원의 퍼즐맞추기를 영상 언어로 옮기는 형식을 통해 도시와 삶의 이면을 주목했던 박준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조상 분묘의 이장’이라는 이벤트 그 특유의 형식에 담아냈다. 제목은 <분쟁과 효도>. 대의 명분에 집착했던 유교 사제들과 힘겨루기를 하며 한글을 만들고 새로운 제례음악을 만들어냈던 세종의 ‘생각’에 주목하는듯 하다. 그는 “화평에 이르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고, 그 중 하나는 분쟁이다. 분쟁을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15세기의 군주 세종이 바랬던 '화평'의 상태가, '시민의 감응'이 광장에서 인터넷 게시판으로 옮겨간 21세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