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모악산 금산사_도솔천에서 빛을 밝히다
장 소 : 불교중앙박물관
기 간 : 2019.9.4 ~ 11.30
글/ 김진녕
1400년이 넘는 오래된 절집 금산사가 품고 있는 불교 미술품
-오래된 책과 그림, 조각품이 보여주는 불교미술의 전통
-허련과 김복진을 통한 근대 미술과의 접점도 전시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모악산 금산사_도솔천에서 빛을 밝히다>(~11월 30일)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보물 9건, 유형문화재 8건, 등록문화재 1건, 민속문화재 1건 등 모두 94건 118점의 불교문화재가 선보이고 있다.
호남지역의 대표적 사찰인 금산사는 한반도에 있는 절 중에서도 아주 오래된 절이다.
금산사사적(金山寺事蹟)의 기록에 따르면 ‘599년 백제 법왕이 살생을 금지하는 법을 반포하고, 이듬해에 금산사에서 38명의 승려를 득도시켰다'고 한다. 최소한 금산사가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있었던 것이다. 금산사가 큰 절이 된 것은 통일신라 시대인 762년(경덕왕 21년)부터 766년(혜공왕 2년) 사이에 진표율사의 중창불사 때문이다. 이후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전시장 들머리에 걸린 <금산사도>도 한국 근대미술사와 연관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소치 허련, <금산사도>
소치 허련(1809~1892)이 모악산 금산사 일대를 실경으로 그린 <금산사도>(19세기, 전북대박물관 소장품)는 19세기 금산사의 가람배치를 보여주는 ‘증명 사진’이기도 하다. 소치는 윤두서를 사숙하고 김정희에게 배우고 이하응이나 민영익과 교류했다. 허련의 화업은 아들 허형과 손자 허건에게 이어지면서 현대 호남의 한국화로 이어지고 있다.
금산사와 한국 근대미술의 접점은 김복진의 <금산사미륵전본존상(金山寺彌勒殿本尊像)>에서도 확인된다. 김복진은 서양식 교육을 받은 1세대 근대 조각가다.
김복진이 제작한 금산사미륵전본존상은 한국 근대 미술사에 반드시 언급되는 작품이다. 1935년 금산사 미륵전 화재 때 본존불이 불탔다. 금산사는 당대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당시로는 파격적인 ‘공모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조선인 조각가 김복진을 선정하고 민간 모금을 통해 모은 거액의 제작비를 들였다는 점에서 당시 큰 화제를 모은 빅 이벤트였다. 이 작품의 제작비는 1만6000원(현재 돈으로 2억원 안팎)은 민간 모금을 통해 모았고 모금과 작품 의뢰, 제작과정이 모두 당시 신문기사로 남아있다.
남긴 작품이 몇 안되는 김복진의 이 작품은 1935년 제작 당시 남긴 모델링 석고 조각상(공주 신원사 소림원 소장품)을 바탕으로 1999년 청동으로 작품을 뜬 뒤 <미륵불>(114x47x47)이란 이름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김복진의 ‘미륵불’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과 같은 크기지만 감상용 미술품이 아닌 신앙의 대상으로서 금박을 입힌 것이라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끔 전시되는 청동 <미륵불>과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전해 주기도 한다.
김복진, 금산사 석고 미륵여래 입상
종교 미술은 미술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근대 이전의 미술은 종교 미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 미술은 동양이건 서양이건 후원자(시주자)의 재정지원이 중요하다. 서양 미술사에서도 14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나 15세기 플랑드르를 중심으로 한 북유럽 르네상스가 근대 미술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미술 제작 활동을 후원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부자의 출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14~15세기가 유럽에서 근대의 출발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지배 계급 외에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세력이 체제 변화를 주도했고 이들이 사원에 헌정하는 종교 미술품과 초상화에 대한 주문을 대폭 늘리면서 그림으로 밥벌이가 가능한 ‘화가’라는 직업이 성립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탈리아부터 플랑드르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직업 화가가 등장했고 이들은 시장 수요를 따라 전유럽을 이동했다.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금산사와 금산사 말사에 보존되어 있는 다수의 예술품이 조선 후기의 마지막 부흥기인 17~18세기에 조성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예술품의 조성이 결국은 그 사회의 잉여력의 축적과 그로인한 부산물이라는 것이 한반도에서도 확인된다.
심곡사 칠층석탑 출토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과 금동불감(1655, 보물 제1890호), 불주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1666), 실상사 신중도(1752), 선국사 삼불회도(1780) 등이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 또는 ‘경배의 대상’은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 설법상>(1782, 보물 제421호)이다.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소장 중인 이 작품은 17세기 이전에는 한반도에서 예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양식이다. 여러 개의 나무판을 이어 만든 목판에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팔대보살과 제자를 이단으로 나눠 배치해 새겼다. 이 중 아미타여래불은 조각으로 도드라지게 표현했고 나머지 보살과 제자는 부조양식의 돋을 새김으로 표현했다.
조성 연대는 정조 6년(1782년)으로 이 시기는 임진왜란의 상처가 어느 정도 회복된 숙종 때부터 시작된 조선 후기 르네상스의 절정으로 꼽히는 시기다. 신앙심의 증거이기도 한 목각아미타여래 설법상은 그때가 조선 사회의 살림살이가 가장 좋았던 시기라는 것을 실감나게 할만큼 화려하고 정교하게 제작된 목조각품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절집 바깥에 공개되지 않았던 금산사 오층석탑에서 발견된 불상과 심곡사 칠층석탑 발견 불상, 위봉사 구천오백불도를 이번 전시를 통해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보물 제1266호 진안 금당사 괘불
금산사 특별전과 연계해 불교중앙박물관 1층 로비에 걸린 <금당사 괘불>(1692년, 보물 제1266호)을 볼 수 있는 것도 안복이다. 지난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걸린 이후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다. <금당사 괘불>은 균형잡힌 모습과 화려한 색감의 광배 표현 등 조선 괘불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으로 이 역시 조선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이다.
21세기의 한국은 단군 이래 가장 잘살고 있는 시대로 평가받고 있다. 21세기의 한국의 불사가 훗날 문화적 유산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만큼 ‘당대 잉여력의 결집’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