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짐작-우리는 초승달을 보고도 만월을 그릴 수 있다
장 소 : 아트레온갤러리
기 간 : 2019.8.15-9.14
거친 아사 천 위에 자리를 잡은 섬과 바다는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정신 세계를 추구했던 수묵 산수와 색면 추상이 한 자리에서 만난 것처럼 색다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섬-독도1> 2폭 각 60.6X91cm, 아사천에 채색, 2018
신촌의 분주한 영화관 아래 고즈넉한 한 갤러리에서 금릉 김현철(b.1959)의 산수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작년 가을 제주도 풍경을 중심으로 한 개인전 '누구나 자신만의 바다를 품고 있다'의 연장선으로, 잘 알려진 경관와 장소를 그린 산수화만을 2개 층에 나누어 보여준다.
<울릉도>(부분)
<청량제색>(부분)
그는 간송미술관 연구원으로 오랜 기간 진경산수를 중심으로 고전 회화를 탐구하며 한국의 자연을 담는 산수화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시도를 지속해 왔다.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해남, 제주, 청령포, 단양, 인왕산, 남한강, 울릉도와 녹우당의 풍경이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진으로 또는 눈으로 직접 보았던 장소의 익숙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거장 화가들의 그림에서 보아 온 것 같은 산과 나무, 바위의 모습을 닮은 탓이기도 하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청전과 소정 이후 전통 산수화의 형식과 내용을 수용하고 발전시킨 많지 않은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그를 진경산수의 계승자라 일컫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그의 작품이 실제 경치를 표현했다는 것에서가 아니라 진경의 본질, 즉 대상의 충실한 재현을 넘어서 그 대상의 진실된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점이다.
자연의 이미지를 화폭에 담는다는 뻔한 작업에서 그 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을 담아내기 위해 오히려 과거에 산천을 앞에 두고 대가들이 어떤 시각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표현하였는지를 충실히 재현한 끝에 선배들의 기법에 더해 여백/면과 청색을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청록산수에서 화려하고 세밀한 붓질은 빼고, 단지 그 색면만을 가져 오면서 색면 추상이 가져다 주는 숭고함, 수묵 산수화의 여백이 안내하는 사색의 길이라는 이종(異種)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만들어냈다.
<녹우당 어초은사당> 30x60cm, 한지에 수묵담채, 2018
<단양 도담삼봉> 30X60cm, 한지에 수묵담채, 2019
근대의 전통 화가들에게 주어졌던 과제-어떻게 과거의 전통을 잇고 극복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것인가-는 이 시대의 한국화가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지루하고 구태의연해 보이는 옛 화가들의 작업을 거듭 연구해서 올드하지 않은 결과물을 내는 길은 지난해 보인다. 힙합에 국악을 접목하듯 서양화에 동양화 기법을 가볍게 접목하는 것과는 다른 길이다.
그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전시 제목에서 시사하듯이 그가 비워 둔 공간을 300여년 전 선배 화가들이라면 어떻게 채웠을지, 그 경관을 직접 바라보던 화가는 그 대상에서 무엇을 느꼈을지 짐작하며 조용히 화면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이 좋겠다.
작가 홈페이지 http://www.hyunchul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