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관 특별전시실
기 간 : 2019.07.23~2019.09.22
글/ 김진녕
-김홍도와 김응환을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
-정수영과 함께 뱃머리에 앉아서 보는 남한강변 풍경
-조선 후기에 들어 본격화된 ‘내가 사는 이곳’의 풍경 그리기
현전하는 전통회화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이 대개는 중국식 복장에 조선 땅에 있지도 않은 상상의 이상향을 담은 그림류다. 근대기 이전 한반도에 살던 이들이 자신이 사는 곳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전후다. 한반도의 지형과 풍경을 눈에 보이는대로 스케치하고 그린 전통 회화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 산수화>전(~9월22일).
전시는 1307년 고려 태조가 금강산에서 담무갈보살에게 예배하는 모습을 금니로 그린 <담무갈보살도>부터 시작된다. 한국의 실경 전통이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거의 유일한 물증이다. 태조가 금강산에서 담무갈보살에게 예배하고 정양사를 다시 지었다는 것은 <동국여지승람>(1530년)에 문자 기록으로 전한다. 담무갈보살도에는 엎드린 왕건을 사방에 애워싸고 있는 암벽을 금강산 특유의 세로로 길게 찢어진 골산으로 표현해 그렸다. ‘실경 산수’의 증거.
<담무갈보살도>옆에 <동국여지승람>이 전시돼 있고 그 옆에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윤익성, 윤광자 기증품)된 16세기 중반에 제작된 <경포대도>와 <총석정전도>가 걸려있다.
그리고 전시물은 곧바로 2부, 18세기 조선화가의 스케치로 점프하면서 본격적인 실경 산수의 향연이 펼쳐진다.
전시는 크게 네 마디로 짜여있다.
1부는 ‘실재하는 산수를 그리다’로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중기의 실경산수화의 전통과 제작배경을 짧게 소개하고 2부 ‘화가, 그 곳에서 스케치하다’에서 강을 따라, 길을 따라 여행을 떠난 화가의 현장 스케치(초본)을 길게 보여준다. 사실상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2부다.
강세황의 변산 여행 스케치인 <부안유람도권扶安遊覽圖卷>(1770~1771)은 소장처인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빌려올 때 전체 3미터를 다보여주겠다고 빌려온 것으로 맞춤 제작한 진열장 속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홍도 해동명산도첩 중 <만물초>, 1788 이후, 종이에 먹, 30.5x43.0cm, 국립중앙박물관
이어지는 김홍도(1745~1806년 이후)의 <해동명산도첩>(1788년 이후 제작)은 특별 제작된 가로 길이 9미터 짜리 진열대 안에서 전체 32면 중 19면을 보여주고 있다. 금강산 그림을 그려오라는 정조의 명을 받고 그림을 그려 받치기 위해(봉명사경 奉命寫景) 1788년 9월을 전후해 김홍도와 김응환(1742~1789)이 금강산과 설악산 등 영동 지역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녀온 뒤 그린 그림이다.
막힘없이 죽죽 이어지는 그림을 따라 걷다보면 동해안 명승지를 화가의 눈으로 보는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이어지는 정수영(1743~1831)의 <한임강유람도권 漢臨江遊覽圖卷>(1796~97)에서 절정에 달한다.
정수영 한임강유람도권 일부, 1796-1797, 종이에 엷은 색, 24.8x1575.6cm,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선 전체 16미터의 그림 중 8.6미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한강과 임진강 수계를 따라 뱃놀이에 나선 화가 정수영의 눈에 비친 18세기 말 강변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풍경만 이어진 게 아니라 사람 이야기도 들어간다. 여주 휴류암편에는 배웅하러 나온 여춘영이 얼떨결에 배에 올라타 정수영 일행과 뱃놀이를 즐긴 일화를 글과 그림으로 담고 있어 생동감을 배가시킨다.
명승지의 파노라마식 풍경은 3부 ‘실경을 재단하다’에서도 이어진다.
현장 사생을 통해 초본을 그린 뒤 작업실로 돌아온 화가가 초본과 기억을 통해 산과 계곡, 바다, 나무와 바위, 물결 등 그림의 구성 요소를 재구성해 채색본으로 완성하는 과정을, 결과를 보여준다.
3부의 하이라이트는 1788년 김홍도와 함께 금강산 스케치 투어를 떠났던 김응환이 완성한 <해악전도첩>. <해악전도첩>의 60면 중 반 이상을 4개의 진열장에 펼쳐놨다. 원元(내금강)–형亨(내금강)-이利(외금강)-정貞(해금강, 관동팔경) 4책으로 구성된 <해악전도첩>의 구성 방식을 그대로 전시장으로 옮긴 것. 이번 전시를 기획한 오다연 학예사는 “최대한 많이 펼쳐놨지만 공간의 한계로 다 펴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하종 해산도첩 중 <해금강> 1816, 비단에 엷은 색, 27.2x41.8cm, 국립중앙박물관
김응환 해악전도첩 중 <백운대> 1788-1789, 비단에 엷은 색, 32.2x43.0cm, 개인 소장
개인 소장가의 품에 있는 <해악전도첩>이 전면적으로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다연 학예사는 “현전하는 김응환 작품이 많지 않았는데 이 작품의 공개로 인해 김응환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부의 김홍도가 그린 금강산 스케치와 비교해보면 둘의 차이와 비슷한 점이 느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3부 출품작에서 눈에 띄는 작품 중 하나는 부드럽게 이어지는 육산 특유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김윤겸(1711~1775)의 지리산 그림(지리전면도)이다. 이 그림은 조선의 화가가 보지도 못한 침식지형의 중국 명승지를 외워서 반복해 그리던 존재만은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4부는 ‘실경을 뛰어넘다’. 실경을 ‘넘어서’ 자신의 개성이나 해석을 전면에 내세운 일군의 작품을 타임라인과 상관없이 모아놨다.
삼각산 노적봉이라는 실제 장소의 이름을 붙였지만 실제와는 거리가 먼 김득신의 <삼각산 노적봉도>(1800), ‘당신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겠다’며 서양화법이 섞인 <영통구도>(강세황, 1757)를 선보인 강세황의 필치, 15년 동안 마음 속에서 거르고 걸러 살점없이 골격만 남은 구룡폭포를 선으로만 그린 이인상의 <구룡연도>(1752)는 반추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강세황 송도기행첩 중 <영통동구> 1757, 종이에 엷은 색, 32.8x53.4cm 국립중앙박물관(1981년 이홍근 기증)
4부에서 가장 얄궂고 재미있는 작품은 19세기 화원화가 조중묵의 <인왕선영도>(1868).
조중묵 <인왕선영도> 1868, 10폭 병풍, 비단에 엷은 색, 1폭 10폭 각 127.9x34.1cm, 2-9폭 각 128.0x36.5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에 한양은 왕의 거처다. 사대문 안에 왕의 궁이 여러군데 있고, 왕과 왕족을 보필하고 유교 제례에 참여하는 신하가 살고, 왕과 관료의 삶의 편리를 도모해줄 수 있는 평민들이 사는 곳이 한양이다. 그런 한양의 주산인 인왕산에는 왕족도 무덤을 쓰지 않았다. 당연히 양반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인왕산에 무덤을 쓸 수 없게 국법으로 정해놨다.
그런데 박경빈이란 이는 공무원(화원화가)에게 인왕산에 몰래 쓴 아버지 무덤의 지도 겸 풍경화인 열 폭짜리 초호화 스펙터클 병풍을 주문했다. 아마도 이 주문 그림을 얻기 위해 주문자 박경빈이 치른 그림값은 상당했을 것이다. 병풍 가운데 자리잡은 선영을 무덤인듯 무덤아닌듯 그린 것도 나라가 금한 매장 금지 구역에 묏자리를 쓴 사연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주문자는 이를 화가에게 특별히 주문해서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공무원 조중묵’도 이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던 것. 그림 속에 유색의 갓과 도포를 차려입은 남자(아마도 그림값을 낸 이)가 선영쪽으로 올라가는 뒷모습도 분명하게 그려넣어 숱한 난관을 뚫고 ‘조상을 기리는 성공한 후손’의 기분도 한껏 만족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홍제원 같은 지명,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그려넣어 얼핏 풍경화나 풍속화 요소도 있다.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하면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음택 풍수가 기승을 부리고, 양반 시스템의 붕괴와 신흥 부자의 대두, 나라가 정한 규칙을 우습게 아는 재산가의 위세, 주문을 받으면 뭐든 들어주는 공무원 등 조선 후기의 사회 변화상이 파노라마처럼 몰아친다.
딱히 한국 전통회화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한반도의 명승지를, 정선이나 김홍도 같은 최고의 화가의 눈을 빌려 유람하고 덤으로 조선 후기의 변화상까지 느낄 수 있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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