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한국근현대명작전 《근대의 꿈: 꽃나무는 심어 놓고》
기 간 : 2019.7.2 - 9.15
장 소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글/ 김진녕
-한국화 전시에 오랜만에 관람객 행렬 줄이어
-올해 부쩍 늘어난 한국 근대 미술 전시, 한국 미술 시장의 신수종 꿈나무로 자랄지 주목
한국 근현대 그림 전시 <근대의 꿈-꽃나무는 심어 놓고>가 서울 중계동 북서울미술관에서 9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여느 한국화 전시보다 많은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고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시회에 나온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같은 한국 경매 시장의 3대장 작품이 여러 점 등장했다는 점이 일반 관객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것 같다. 평일 저녁에 관람한 필자는 아버지와 엄마, 10대 딸로 구성된 관람객이 전시장 들머리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아버지가 “우리가 아는 작가가 누가 있니?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라고 말하자 엄마가 ‘천경자와 김기창’을 보탰다. ‘나도 아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
여기에 소설미디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팝스타까지 가세했다. 지난 7월 9일 방탄소년단의 공식 트위터에 이 팀의 리더 RM이 <근대의 꿈>에 출품된 작품인 김환기의 <영원한 노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을 올린 것이다. 광고로 따지면 가장 시청률이 높은 TV 프로그램에 슈퍼모델을 써서 광고한 셈이다.
그렇게 북서울시립미술관의 <근대의 꿈-꽃나무는 심어 놓고>는 역대 관객 신기록을 작성 중이라고 한다. 서울의 대표적인 주택가에 자리잡은 북서울시립미술관의 장소 특성을 잠재관객 눈높이에 맞추면서 서울 한쪽에 치우쳐 자리잡고 있다는 약점을 만회한 것이다.
이번 전시회의 이름은 이태준의 소설 <꽃나무는 심어 놓고>에서 빌려온 것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전시회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 이번 전시에 호명한 ‘근대’는 일제 강정기인 1920년대부터 개발연대에 가속이 붙던 1970년대까지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는 대부분 20세기 초반에 태어난,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교육받은 경험이 있는 작가다. 구본운, 권진규, 김기창, 김인승, 김환기, 나혜석, 남관, 박래현, 박수근, 유영국, 이대원, 이유태, 이마동, 이중섭, 장우성, 장욱진, 천경자 등 30여 명의 작가가 남긴 작품 7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정치적 사안으로 작가를 고른 것 같지는 않다. 친일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작가도 다수 들어가있고, 전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월북 작가 김만형의 작품도 들어가 있다. 다만 전시장 첫머리에 세운 이유태의 <화운>(1944)과 <탐구>(1944)는 제작 시기에서 보듯 ‘대일본제국의 시스템’ 아래서 식민지 백성 조선인이 선망하는 엘리트의 삶을 그린 것이라는 점에서 굳이 <근대의 꿈>이란 이름을 붙인 전시회의 간판으로 올리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주최측은 이 전시의 기획 취지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근현대 시기 제작된 주요 작품을 통하여 근대화가 초래한 우리 삶과 인식의 변화, 그리고 근대적 시각성의 확장을 살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전시된 작품의 상한선은 이종우의 1926년 작 <노랑머리>(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와 나혜석의 1928년 작 <나부>(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 등 초기 유학파의 작품이고, 하한선은 유영국의 1979년 작이다. 대부분은 1940~60년대 작품이다.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김환기 여섯 점, 박수근 세 점, 이중섭 넉 점, 유영국 넉 점, 천경자 다섯 점, 장욱진 석 점 등은 전시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이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고려대박물관 등 한국 근대미술품의 주요 수장처에서 빌려온 것이다.
근현대를 대표하는 대표 작가의 유명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이번 전시의 장점이다. 상업 전시에서 흔히 보던 ‘유명한 작가의 안유명한 작품으로 꾸민 전시’가 아니다. 천경자나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등은 작가를 언급할 때 자주 언급되는 급의 작품이 나왔다.
일반 관객의 눈높이를 고려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추상미술까지 소개하고 있지만 일반 관람객이 감정 이입을 쉬이 할 수 있는 포인트도 있다. 이를테면 1940~60년대 서울 풍경이 그런 예다.
권옥연의 <신당동 풍경>(1947)이나 김중현의 <정동 풍경>(1948), 박득순의 <서울 풍경>(1949), 박상옥의 <서울의 아침>(1958) 도상봉의 <명륜당>(1956), 윤재우의 <시민회관이 보이는 풍경>(1959), 이마동의 <흑석동 풍경>(1965) 등은 작품이 담고 있는 장소와 제작 당시의 시간대가 지닌 뉘앙스는 한국인 관람객에게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올해 들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근대 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 갤러리현대의 <소정과 청전>, 덕수궁미술관의 <근대미술가의 재발견-절필시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곽인식>전, 고려대박물관의 소장품 순회전 등 한국 근대 미술을 다루는 전시가 연이어 열렸거나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이런 ‘근대 미술 붐’에 <근대의 꿈> 카드로 참전한 셈이다. 올해 들어 열리고 있는 근대 회화 전시가 한국의 20세기 미술사에 김환기나 이중섭, 박수근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전체 한국 미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