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소화素畵-한국 근현대 드로잉
장 소 : 소마미술관
기 간 : 2019.4.12.-6.23
녹음이 짙어가는 한가운데 담백한 무채색의 본격적인 드로잉 전시가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드로잉이라는 말 대신 이번 전시의 제목에는 ‘소화素畵’라는 번역을 붙였는데, 김동인의 소설 <신앙으로>(1930) 등에서 ‘소묘’와 같은 뜻으로 등장했던 말이라고 한다. 기술적인 느낌을 주는 ‘묘(描)’라는 말 대신에 ‘화(畵)’라는 글자를 써서 드로잉이 가지는 창조적인 면, 예술성을 부각시키고자 한 듯하다. 드로잉이 예술을 설명하는 아카이브가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적으로 독자적이고 핵심적인 가치를 보여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전시임을 드러냈다.
1920년대부터 현대까지 200명이 넘는 유명 작가를 망라하고 있고, 그들의 작품 300여점이 한꺼번에 5개 전시실에 걸려 있다. 말하자면 20세기의 한국미술사를 드로잉을 통해 보고자 한 통시적인 전시이다. 기획 의도에서도 ‘한국에서 서양화단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1920년대 이후 서양의 드로잉 개념이 한국 미술에서 전개되어 온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 것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중섭 <물고기와 동자> 1952, 종이 위에 콘테, 10.1 X 12.5cm
제1전시실에서는 전시에 소개된 화가들을 타임라인으로 펼쳐 놓고 이와 함께 서양화가 소개되면서 시작된 드로잉의 초기 모습을 보여준다. 2전시실과 3전시실은 드로잉의 주제에 따라 인체, 인물, 정물, 풍경 / 비구상, 추상, 개념, 아이디어의 드로잉을 펼쳐 놓았고, 이어서 4전시실과 5전시실은 현대미술에서의 드로잉 작업을 화가의 카테고리에 따라 이상과 현실 /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해 보여준다.
박고석 <산> 1971, 종이 위에 수채, 25 X 35cm
드로잉의 개념은 서양의 것이고 보통 소묘素描라는 말로 번역되는 데생의 영어라고 할 수 있다. 서양화의 최종 고지는 유화이고 그것은 한 인간의 인고의 노력과 집념의 결과물인 것과는 달리 드로잉은 자유롭고 발산적인 아이디어 스케치를 포함하기 때문에 꾸며지지 않은 예술가의 머리 속을 직접 엿보는 것 같은 친밀감을 준다. 거기에 담백한 선적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박수근 <소녀와 강아지> 연도미상, 종이 위에 펜, 먹, 유채, 17.1 X 9.2cm
서양화에서의 드로잉이라면 본질적으로 자체 완결되는 성질의 예술이 아닌 경우가 많지만, 드로잉의 선적인 아름다움이 강조된 문인화 같은 작품들을 대하자니 분명 한국의 화가들은 그 선들을 그으면서 전통적인 미감의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과 여백이 만들어 내는 정신적 세계. 적어도 전시장의 뒤쪽으로 갈수록 수묵화와 드로잉 중간 어디쯤인 그림들이 많이 보였다.
전시장 전체에 흥미로운 그림들이 넘쳐나는데 한편으로 너무 많은 작가를 다루어 한 두 점의 드로잉이 그 화가의 화업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인 면이 있다. 어떤 관객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부실한 한국 현대회화의 내러티브 위에 드로잉을 겹쳐놓으면서 애써 감상할 것이고, 어떤 관객은 그저 각각의 그림을 즐기면서 어쩌다 캡션에서 자신이 아는 화가를 발견하는 작은 즐거움으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다.
윤석남 <자화상> 2016, 49x74.5cm
천경자 <자화상> 연도미상, 종이 위에 연필, 35.2 X 25.3cm
드로잉을 통해 한국의 20세기 미술을 돌아보고자 하는 시도로 이 전시는 성공일까? 적어도 20세기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정리의 발판 또는 제안이 된 전시로 남을 것은 명확해 보인다.
봄날 공원을 찾은 많은 어린이와 가족 관객이 미술관에서 즐겁게 관람을 하고 갔다고 한다. 흥미로웠던 드로잉을 남긴 그 화가는 어떤 명작들을 남겼는지 찾아보는 관객이 많았기를.
----
전시작가 218명 목록(가나다 순)
강국진, 강신석, 강연균, 강요배, 강우문, 강환섭, 고영훈, 곽덕준, 곽인식, 구본웅, 권순철, 권영우, 권옥연, 권진규, 김경, 김구림, 김기창, 김두환, 김명숙, 김범, 김범렬, 김봉준, 김상유, 김세용, 김수자, 김영덕, 김영주, 김영창, 김영환, 김용익, 김용조, 김용준, 김원, 김원숙, 김윤민, 김을, 김점선, 김정명, 김정헌, 김종복, 김종식, 김종영, 김종학, 김중현, 김지원, 김진석, 김진열, 김차섭, 김청정, 김충선, 김태, 김학량, 김한, 김홍석, 김홍주, 김환기, 김훈, 김흥수, 남관, 노원희, 도상봉, 류경채, 류병엽, 류인, 문성식, 문신, 문우식, 민정기, 박고석, 박길웅, 박득순, 박래현, 박미현, 박상옥, 박생광, 박서보, 박석호, 박일주, 박성환, 박세진, 박수근, 박영선, 박이소, 박종배, 박항섭, 박현기, 방정아, 배동신, 배운성, 백남준, 백영수, 변관식, 변종하, 샌 정, 서동진, 서세옥, 서용선, 서진달, 석희만, 성능경, 성백주, 손상기, 손응성, 손일봉, 손장섭, 송번수, 송영수, 송혜수, 신성희, 신학철, 심문섭, 심형구, 안규철, 안창홍, 양달석, 양수아, 오경환, 오수환, 오영재, 오원배, 오윤, 오지호, 원계홍, 원석연, 유강렬, 유영국, 유현경, 유혜숙, 윤석남, 윤중식, 윤형근, 이강소, 이건용, 이경희, 이규상, 이대원, 이동기, 이동엽, 이만익, 이봉상, 이불, 이상범, 이상욱, 이샛별, 이승만, 이승조, 이승택, 이배, 이우환, 이응노, 이인성, 이제, 이종구, 이종우, 이준, 이중섭, 이진이, 이철수, 이철이, 이쾌대, 이타미 준, 이항성, 임군홍, 임옥상, 임직순, 장두건, 장리석, 장욱진, 장화진, 전뢰진, 전상수, 전성우, 전혁림, 정규, 정문규, 정보영, 정복수, 정상화, 정서영, 정점식, 정찬승, 정현, 정현웅, 조덕현, 조병덕, 조원득, 존배, 주경, 주재환, 주정이, 천경자, 최경태, 최덕휴, 최병소, 최쌍중, 최석운, 최영림, 최욱경, 최인수, 최재덕, 최정화, 하인두, 한만영, 한묵, 허황, 형진식, 홍명섭, 홍성담, 홍승혜, 홍종명, 황규응, 황술조, 황영성, 황용엽, 황유엽, 황재형, 황주리, 황창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