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APMA CHAPTER ONE - FROM THE APMA COLLECTION
장 소 :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기 간 : 2019.2.14~2019.5.19
글/ 김진녕
2018년 문을 연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이 두 번째 현대미술 전시회를 열었다. 2019년 2월 아모레퍼시픽이 소장하고 있는 현대미술품으로 꾸민 첫번째 소장품전인 ≪APMA, CHAPTER ONE- FROM THE APMA COLLECTION≫(~5월19일)이 그것이다.
용산 신사옥에 마련된 APMA의 개관 이후 아모레퍼시픽 또는 서경배 회장이 그동안 모아온 고미술품과 현대미술품이 공개되기를 기다려온 수요(?)가 미술 애호가 사이에 꽤 있었다. 고미술품 컬렉션의 일단은 APMA의 두 번째 전시인 ≪병풍≫전에서 소개됐고, 현대미술품 컬렉션은 이번 ≪챕터1≫이 처음이기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내에서, 현대미술 분야에, 특정 컬렉터의 취향을 반영한 소장품전이 열린 적이 거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전시에 공개된 컬렉션은 제목의 ‘챕터1’에서 보듯 일부이다. 여기엔 일반인이 알만한 20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작가부터 21세기에 들어와서야 활동을 시작해 현대미술 팬만 알 수 있는 당대 작가까지 골고루 들어있다.
백남준이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독일관 작가로 참가해 황금사자상을 탈 때, 출품했던 〈마르코폴로〉나 지난해 작고한 미국 팝아트의 거장인 로버트 인디애나의 간판 격인 ‘LOVE’ 조각품은 인디애나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각인시킨 뉴욕 맨해튼 55번가에 설치한 작품과 같은 에디션이라 낯익다. 특히 인디애나의 ‘LOVE’는 국내에도 신문로 세화미술관과 명동 대신증권에 시리즈가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작품이지만 맨해튼 버전과 같은 것은 아모레퍼시픽 소장품이다. 이 작품은 아모레퍼시픽의 용산 구사옥 1층 로비에 전시됐다가 신사옥 공사로 자취를 감춘 뒤 이번 전시로 다시 공개된 것이기도 하다.
국내 작가 작품으로는 배우 이정재와 임수정이 출연했다는 것 때문에 미술계 바깥에서도 유명세를 탔던 문경원+전준호의 카셀 도큐멘타 출품작인 〈세상의 저편〉, 영화 〈도둑들〉에 등장했지만 실물을 볼 수 없었던 최우람의 〈우나 루미노〉(2008) 등이 소개되고 있다.
전체 40여 점의 작품 중 국내 작가는 전준호, 문경원, 최우람, 김병호, 강형구, 이불 등이다. 여기에 한국계로 백남준을 추가할 수 있는 정도다. 이중 페인팅은 강형구 작가의 〈고흐〉가 유일하고, 이불 작가의 설치 작업 〈비밀 공유자〉와 연계된 드로잉 한 점 정도가 추가된다.
외국 작가 작품으로는 언어로 개념미술 작품을 만들어낸 조셉 코수스의 1966년 작 〈다섯 개의 복사물〉부터 상업광고물과 순수 예술의 경계에 걸터앉은 카우스의 〈Companion〉(2016)까지 평면 회화부터 소리 조각, 영상 설치, 애니메이션, LED와 거울을 활용한 다양한 미디어 작품이 망라돼 있다.
APMA측은 전시 소개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넣었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미술관의 소장품 중 현대미술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전시는 회화, 드로잉, 사진, 설치, 조각, 미디어아트 등 여러 장르를 포함하고 있으며 아시아, 미국, 유럽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와 배경을 갖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1979년 한국전통미술품을 기반으로 한 태평양박물관을 시작으로 점차 활동과 수집의 영역을 넓혀 한국의 현대미술은 물론 외국의 현대미술을 누구나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관심을 확대했다. 한국과 외국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대미술 소장품은 아모레퍼시픽이 걸어온 미(美)의 여정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현대미술품 중 일부 작품을 선정하여 선보이며, 전시된 다수의 작품이 처음 소개될 예정이다.”
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전시된 다수의 작품이 (이번에) 처음 소개될 예정’이라는 것.
한국의 공공미술관은 아시아권 현대작가의 작품은 소개하고 있지만 현재 세계 미술계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북유럽이나 북미의 현대 작가 작품 소개는 인색한 편이고 국내 상업 갤러리는 생리상 이미 유명세를 확보한 유명작가의 개인전 위주로 전시를 진행하는 형편이라 진행형의 컨템포러리 작품을 국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광주비엔날레 등 극히 제한적이다.
이번 APMA의 챕터원 전시에선 국내에서 비엔날레나 공공미술관의 기획전 말고는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여러 현대작가의 작품이 등장하고 있다. 조셉 코수스나 아드리안 게니, 린 티안미야오, 더스틴 옐린, 레오 빌라리얼 등의 작가가 그렇다.
레오 빌라리얼은 지난해 5월 아모레퍼시픽의 용산 신사옥 완공 때 한국 미디어에 이름이 처음 등장한 작가다. 그때 신사옥 5층 루프가든에 설치된 그의 〈Infinite Bloom〉이란 작품이 화제가 됐다. 길거리에서도 볼 수 있게끔 5층 중정의 천정에 가로 35m, 세로 24m 크기에 LED 22,000개가 달린 대형 전광판에서 나선형 회전 운동을 하는 듯한 은하계를 닮은 영상이 쏟아져 내린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2011년 작인 〈실린더〉란 작품이 나왔다. 〈Infinite Bloom〉에 비해서는 높이가 3m도 안되는 소형(?) 작품이다.
그나마 대중에게 익숙한 작품은 중국 작가인 린 티안미야오의 〈more or less the same〉이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으로 지난 2015년 겨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동아시아 페미니즘≫전에 나왔던 작품과 같은 시리즈다. 그때 전시에 나온 작품과 차이가 있다면 오브제를 감싼 비단실이 색실이냐 짙은 회색이냐의 차이 정도다. 이 작품은 적어도 2014년에 아모레퍼시픽 또는 서경배 회장의 컬렉션에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월에 나온 서경배 회장를 다룬 잡지 글에 자료 사진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로 아모레퍼시픽의 현대미술품 컬렉션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알기는 힘들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여러 장르의 버라이어티한 작품이 등장했지만 특정 사조나 작가에 대한 선호 등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집중 조명’됐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이불 정도다. 7전시장에 배정된 이불의 작품 〈비밀 공유자〉(2012)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배정받았다. 이 작품의 소재는 작가가 16년간 키운 죽은 애완견이라고 한다. 늙은 뒤에 먹은 것을 종종 토해내곤 했던 애완견에 대한 기억을 작가는 얼려놓은 순간처럼 형상화했다.
이 공간에는 〈비밀 공유자〉의 설계도 격인 드로잉도 걸려있고 그 한켠에는 아모레퍼시픽의 주문에 응해 만든 아나그램 시리즈인 〈몬스터 드로잉 no.1〉(2015)이 설치돼 있어서 2010년대에 이불이 펼쳐놓은 성과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아모레퍼시픽 컬렉션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는 서경배 회장일 것이다. 그의 취향과 의지가 있었기에 현대미술품도 모으고 본사신축 사옥에 미술관도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와 관련된 미디어의 보도를 보면 그가 한 말 중 “가업을 이어 경영인이 되지 않았다면 미술 평론가가 됐을 것이다”이란 말이 있다. 미술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고 직접 작품을 보러 다닌다는 의미일 것이다. 국내에서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는 현대미술품을 컬렉션 했다는 게 그 방증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는 서 회장의 현대미술에 대한 취향 중 극히 일부가 공개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의 취향이 어떤 것인지 전시품만 놓고보면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다만 APMA의 개관 전시였던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디시전 포레스트≫와 연결해 보면 그때 나왔던 반짝이는 LED 조명을 이용한 〈블루 썬〉과 이번 전시의 〈실린더〉가 비슷한 형상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또 하나는 관람객이 머리를 집어넣는 행동을 통해서만 작품이 완성되는 형태의 작품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의 마지막 작품인 더그 에이트킨의 〈Inside Me〉란 작품이 관람자가 머리를 집어넣고 조각난 거울을 통해 파편화된 이미지(자신의 모습)를 체험하는 인터랙티브한 작품이다. 로자노헤머의 ≪디시전 포레스트≫의 끄트머리에 배치됐던 〈external interior〉란 작품 역시 관람자가 디스코볼처럼 생긴 구체 안에 머리를 집어넣고 파편화된 이미지를 경험하는 작품이었다.
작품을 수동적으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관람자가 행동을 통해 작품을 완성한다는 면에서 재미를 강조한 작품이다. 적어도 컬렉터의 취향과 큐레이터의 취향이 이런 부분에서 일치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