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특별전 <자연의 빛깔을 담은 분청_귀얄과 덤벙>
기 간 : 2018.10.20.-2019.02.02.
장 소 :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고려말기의 청자를 보면, 전성기를 지나면서 불순물이 많은 좋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게 되면서 색도 나빠지고 거친 표면을 보인다. 좋지 않은 피부를 화장으로 감추듯, 흰색의 분장토를 이용해서 표면을 분장粉裝하며 나타나게 된 것이 분장 회청사기, 즉 분청사기다. 분청사기는 조선으로 넘어오는 시기 약 150년 짧은 기간 동안만 제작된 것이지만, 생산지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었고 대량으로 생산되며 다양한 계층에서 두루 사용됐다. 그 자신만의 개성적인 조형미를 가지고 있어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세계와 팬을 확보하고 있다.
호림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분청사기는 분청사기의 분장과 무늬를 나타내는 여러 기법 중에서 귀얄과 덤벙 기법을 사용한 것을 추려낸 것이다.
‘귀얄’은 풀칠을 하는 거친 빗자루같은 솔을 부르는 말이다. 빚어낸 기물 표면에 귀얄로 백토물을 묻혀 빗자루 자국이 남도록 칠하면서 바탕의 태토와 백토가 조화롭게 무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귀얄문이다. 귀얄 자국 위에 박지나 음각의 무늬를 새기기도 하고 순수하게 귀얄문만 남긴 것도 있다.
덤벙 기법은 백토에 그릇을 전체/부분 담궈 백토를 입히는 것이라서 담금 기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백토가 차분히 씌워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쾌한 귀얄문과는 달리 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릇의 벽이 얇아 가볍고 깨어지기 쉬워 분청사기 중에는 남아있는 양이 드문 편이다. 전체적으로 백토가 입혀진 덤벙문 분청사기는 백자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거꾸로 백토물에 담그면서 굽 언저리가 백토가 닿지 않아 어두운 내부 색이 보이는 것이 많이 있고, 백토물 흐른 자국이 남아 그 자체로 무늬가 된 것도 있다.
표면이 어둡고 색이 좋지 않아서 백토물을 입히면서도 중간쯤 담갔다가 빼고 백토물이 흘러도 그대로 놓아두어 무늬가 되게 한다는 것,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했기에 다량으로 제작하고 여태껏 귀하게 여겨지며 남아있다는 것은 독특한 일이다. 뭔가 예쁘게 꾸미고 그려넣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인 바탕을 그대로 두고 그것을 즐겼다는 것이니, 귀얄문이나 덤벙문 분청사기 같은 것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을 단순히 그 때의 사람들이 무늬를 꾸며넣을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게 된다. 진짜 한국의 미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보다 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적인 미의 원형을 꼭 따져야 하는지는 제껴두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정의하고자 했던 여러 시도들에서 야나기 무네요시 쪽의 주된 흐름은 '부드러운 선의 아름다움'과 '순박한 아름다움' 이 두 가지 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두 번째의 요소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 분청사기이며, 건강의 미, 무위자연의 미, 무기교의 기교를 보여주는 덤벙문과 귀얄문 분청사기는 그중 가장 전형적인 예시라고 하겠다.
정돈되지 않은 수더분함, 박진감, 경쾌함, 자유분방함 그리고 익살스러움을 지니고 있는 데다가 이런 부분들이 현대적 미감에도 우연히 잘 들어맞았다고나 할까.
일반적으로는 고려시대의 귀족중심의 불교사회가 청자를 만들게 되었고, 고려 말 불교의 폐단과 새로운 시대를 갈구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분청사기가 등장하게 됐다고 한다. 민중적이면서도 자유롭기 바라는 마음이 반영되어 분청사기가 출현하고, 조선시대에 유교가 자리 잡고 검소하고 소박한 미덕이 청자와는 다른 단순하고 깨끗한 도자기 백자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실상은 도자의 재료가 되었던 점토의 공급 문제, 도자기의 실용화 단계에서 다량생산의 필요했던 것, 새로운 국가가 세워지고 변화가 밀려들던 사회적 분위기 이러한 것들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일 것이다.
호림박물관 측은 여러 가지 기법 중 귀얄과 덤벙을 선택한 이유로 이 두 기법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현대적 미감을 들고 있다. 귀얄이라고 하는 붓으로 스피드있게 바르면서 느껴지는 운동감, 물게 탄 백토물에 덤벙하고 담가 무심하면서도 묵직한 분위기를 내는 덤벙기법은 마치 현대에 그려진 현대회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모양이 같다고 해서 같은 미감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추상표현주의가 평면 회화의 가능성을 끝까지 탐구한 것이라면 귀얄과 덤벙문은 기물에 문양을 새겨넣는 필요성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했던 것일까. 형상을 표현하지 않은 패턴에서 최대의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던 것을 현대미술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지만 어느 정도 흥미로운 유사성이기는 하다.
특별전 <자연의 빛깔을 담은 분청_귀얄과 덤벙>에서는 호림박물관 소장품 70여점과 현대작가 9인(윤광조, 노경조, 권대섭, 변승훈, 이강효, 최성재, 정재효, 박성욱, 차규선)의 분청작품 50여점을 전시한다. 15세기의 분청과 600여년이 지난 현대의 분청이 어떤 부분에서 계승과 발전이 모색되고 있는지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최성재 분청 덤벙문, 귀얄수화오리문 사각병, 사각호(2008-2017)
정재효 분청사기귀얄사각발(2007~2014), 수화문차호(2016)
뒤쪽은 변승훈 <대지의 노래-산> (1996, 1998)
박성욱 <화이트 포레스트白林> (2017)
권대섭 분청대접 (2000-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