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손세기·손창근 기증 명품 서화전
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 202호
전시기간 : 2018년 11월 22일 ~ 2019년 3월 24일
글/ 김진녕
2대에 걸쳐 한국 고미술품을 수집해온 수장가 손세기-손창근 부자의 기증전이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손세기•손창근 기증 명품 서화전>(~‘19.3.24.)이, 서강대박물관에서는 <석포 손세기 선생 기증전>(~12.14)이 열리고 있다.
서강대박물관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의 손세기•손창근 기증전은 지난 11월21일 손창근 선생(1929년 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추사秋史 김정희 金正喜(1786~1856)의 <불이선란도 不二禪蘭圖>를 포함한 손세기•손창근 컬렉션 202건 304점에 대한 기증식 직후에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손창근 기증자는 기증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한 점 한 점 정도 있고, 한 점 한 점 애착이 가는 물건들이다.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 고민 고민 생각하다가 박물관에 맡기기로 하였다. 우리나라의 귀중한 국보급 유물을 나대신 길이길이 잘 보관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앞으로 내 물건에 대해서 손아무개 기증이라고 붙여주세요.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합니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손창근 기증자 부부
‘손세기•손창근 부자’의 이름을 모르는 일반인도 추사의 <세한도>(국보 제180호)는 알 것이다. <세한도>는 서예가 손재형이 1944년 도쿄의 일본인 컬렉터로부터 입수해 환국했지만 손재형이 해방 뒤 정치에 입문하면서 큰 빚을 지게 되어 사채업자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이를 사들인 게 개성 출신의 석포石圃 손세기孫世基(1903-1983) 선생이다. 컬렉션은 대가 넘어가면 지키는 것만도 큰 일이다. 재물이 흩어지기 쉬운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무니다. 하지만 손세기 선생의 장남 손창근은 선대의 컬렉션을 손대지 않고 잘지켰고 부친의 대를 이어 고미술품을 가려모았다. 손창근은 지난 2010년 <세한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했다. 법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을 뿐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넘겨 박물관이 마음대로 연구, 조사, 전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 단원 김홍도의 걸작 중 하나인 <비로봉도>도 기탁됐다.
불이선란도
공공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은 기증자의 선한 의지가 중요한 것이라 비교하는 게 적당한 것은 아니지만 질적인 면에서 1970년대 수정 박병래의 도자기 기증이나 1980년대 동원 이홍근의 도자와 서화류 기증을 연상시킬만하다. 이 컬렉션에 속한 작품들이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회화> 특별전 등 이후 다수의 전시와 서적에 소개되었고 한국미술사 연구 분야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손창근 선생은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컬렉션을 기탁하여 전시와 연구에 활용되도록 하다가 올해 11월 아흔 살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조건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 컬렉션에는 값을 따질 수 없는 지정문화재급 명품이 포함돼 있다. 겸재 謙齋 정선鄭敾(1676-1754)이 서울 장의동(장동壯洞) 안 북원에서 마을 원로의 장수를 기원한 축하 잔치 장면을 그린 <북원수회도北園壽會圖>가 수록된 <북원수회첩北園壽會帖>(1716년 이후), 김정희의 40대 작품으로 추사체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과 청나라 문인과의 교유交遊 관계를 보여주는 <함추각 행서 대련涵秋閣行書對聯>(1831년 이전), 추사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히는 <불이선란도>와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등이 그것이다. <불이선란도>는 난초를 그리고 글을 덧댄 절묘한 조형감각이 추사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지금도 많은 논의와 학술 연구를 이끌어내는 걸작이다.
손세기-손창근 부자의 고미술품 기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석포 손세기는 생전인 1973년 1월 서강대학교에 <양사언필 초서>(보물 제1624호) 등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다. 서강대는 석포의 기증 덕분에 1974년 2월 서강대박물관의 문을 열 수 있었다. 1970년대에는 종합대학교 유지 조건에 박물관 개설이 있었다. 석포와 서강대를 연결해 준 이는 동향(개성)인 혜곡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로 알려졌다. 석포는 고미술 컬렉션에 손을 대면서 혜곡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교류관계가 있었고 최순우가 기증을 권하자 이를 따랐다고 한다.
양사언초서
서강대박물관측은 “현재 2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지만 석포의 기증 작품이 여전히 서강대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이라고 밝히고 있다. 서강대박물관에서는 지난 10월12일 <손세기 선생 기증 서화 특별전>을 개막 당일 ‘석포 기증 서화의 특징과 문화사적 의의’라는 학술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번 서강대박물관 전시에는 <양사언필 초서>는 물론 한호의 <초서난정첩>과 유덕장, 정선, 최북, 윤두서, 이인상, 김홍도, 김양기, 이하응, 민영익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장이 크지 않은 탓인지 김정희와 이하응의 서예 작품은 디지털 아카이브로만 접할 수 있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손세기•손창근 기증 명품 서화전>에도 손창근-손세기 부자의 기증품 모두가 나온 것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손창근 선생의 기증을 계기로 상설전시관 2층 서화관에 ‘손세기•손창근 기념실’을 따로 꾸리며 기증품 중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불이선란도>, <잔서완석루>, <주학년을 위해 쓴 함추각 행서대련>등의 추사의 작품 7점과 추사의 제자 허련이 그린 <김정희 초상>, 여기에 덧붙여 남계우의 나비와 장승업의 화조영모도를 걸었다.
이 기념실의 첫 번째 전시가 추사에 맞춰졌다면 내년 3월 이후 두 번째 열리는 기증명품 서화전에는 정선의 <북원수회첩>, <비로봉도> 등 회화 위주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